야안 259화
그 어떤 힘도 느끼지 못했다.
큰 주술사의 기감은 초인의 직감보다 더 날카롭다. 애초에 무의식과 의식의 길을 이용하여 만든 힘이 주술이었으니 직감만큼은 더 날카로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기에 그는 현자가 마법을 부릴 때면 그 마나의 움직임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으며, 검객이 보이는 검의 구의 흐름을 단번에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신기 묘묘한 힘을 보인다 할지라도, 상급 익스퍼트에 달하는 자들을 셋이나 상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 그렇기에 그는 야안이 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가진 것이다. 마치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식을 넘는 아니, 인과의 법칙을 넘어선 위대한 의지의 발현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리트담은 천천히 마음의 동요를 다스리며 야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치었다.
야안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가 마음의 동요를 다스리자 감탄을 보였다.
“많이 놀라셨을 것인데 이처럼 마음을 다스리시니 대단하십니다.”
야안의 이야기는 그 하나하나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기에 이 같은 확인 과정이 없다면 쉽사리 마음에 와 닿기 어려움이 많았다.
곧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리트담으로서는 야안의 그 놀라운 이야기에 다시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야안이 앞서 그 같은 놀라운 일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로서는 그 마음의 동요를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리스 님에게서부터 선택 받은 이방인의 그 이적. 드래곤의 등장, 천년 이상을 거스른 마법. 죽음의 지배자의 등장. 대륙의 모든 이종족의 멸망. 악마의 등장. 주술 제국의 자이한. 전설의 현자 등등.
그 하나만으로도 믿어지지 않는. 거짓이라 생각이 드는 이 이야기였건만, 야안이 앞서 보인 그 놀라운 일 때문일까? 아니면 야안의 그 담담한 어투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너무 거짓 같아서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리트담은 야안의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요는 끝이 없었다. 그 동요를 진정시키기도 전에 너무도 놀라운 진실들이 그의 앞에 줄을 지었으니 말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고, 말없이 두 눈을 감고 있는 리트담을 바라보던 야안은 자신의 앞에 놓인 와인을 마셨다.
와인을 마시는 그의 눈은 쓸쓸해 보였다.
지난 일을 이야기 면서 그 또한 본래의 시간에 있는 자신의 고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없이 따뜻한 정을 나에게 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자신을 언제나 믿고 인내하는 부인과 귀여운 아이들.
주군인 마크 자작과 한없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수하들. 그리고 자신을 따라와 많은 고생과 우정을 나눈 자이한.
그 하나하나가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어느새 잔에 자리한 와인을 비우고 다시 와인을 따르며 그 와인마저 다시 비웠을 때쯤 리트담이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뜬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내 흘렀다.
그는 그 믿어지지 않는 진실을 받아들이면서 눈앞에 자리한 이 초인이 너무나 가여웠고, 또한 너무나도 위대하게 느껴졌다.
어느 누가 그런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제국을 일으킨 황제라 해도 그의 고귀한 운명 앞에서는 보잘것없었다. 그의 운명 앞에서 탐욕 따위는 티끌만도 못한 것이니.
죽음의 지배자를 막았던 이 전의 전설의 현자들과 달리 그는 홀로 그 전설의 현자의 길을 걷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를 위한 그 상상할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은 감히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자신이었다면 그 무게에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죽음의 지배자가 지워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온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대륙의 이종족을 살리기 위해,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모든 이종족과 인간이 함께하는 왕국을 건설한다니.
그것은 왕국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이상을 위해 모인 연합체로 보는 것이 맞을 터이다. 소수의 이권을 위해 만드는 왕국이 아니었으니.
그것으로도 놀랍건만, 그는 그 과정에서 이 바 대륙의 난세를 빠른 시간 안에 종결짓기 위해 베론 제국을 끌어들이고 이곳에 또 다른 이종족 연합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오래전 지나간 고대의 역사일 뿐인데. 그는 그럼에도 발버둥을 친다.
그 자신이 희생하면 대륙은 그만큼의 피를 덜 흘릴 것으로 생각하며.
리트담은 그렇기에 그런 그가 너무도 가여웠고, 또한 그렇기에 너무도 위대한 존재라 느꼈다.
자신은 감히 보지 못할 아득한 이상을 꿈꾸는 이를 눈앞에 대하게 되자 리트담은 자신의 복수나 가문을 일으키는 일 따위가 너무나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머리는 가문을 세우고 복수를 하라고 하지만, 정작 가슴은 그것이 아닌 이자를 따르라 말한다.
그리고 그는…….
“어리석은 자는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그런 자가 되었습니다. 눈앞에 위대한 자를 두고 그저 저의 욕심에 빠져 알아보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부족한 저 리케하르산 리트담이 감히 야안 님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가고자 하니 부디 이끌어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러며 크게 주군의 예로 야안을 대했다.
야안은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가 그 같은 모습을 보이자 당황하며 서둘러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이 못 나고 부족한 나를 따르겠다는 그대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소이다. 다만,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으니 이를 어찌합니까?”
그 야안의 물음에 리트담이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리트담의 물음에 야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이곳의 난세를 빠르게 종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그대의 복수도, 그대의 가문을 일으키는 것도 어려울지 모릅니다. 이미 그 절절한 사정을 알고 있음에 저의 욕심 때문에 그것을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야안의 그 마음 씀씀이에 리트담은 입가에 긴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욕심이라 하십니까? 저는 야안 님으로부터 그 모두 부질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지배자라는 그 거대한 대적을 눈앞에 둔 지금 무엇이 중요 하겠습니까? 이미 그에 대한 마음도 내려놓고 야안 님을 모시고자 하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하자 야안도 더 이상 그의 마음을 물릴 수 없었다. 강력한 심력을 지닌 그 또한 홀로 이렇게 세상을 떠도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인가? 리트담의 제안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달콤한 것이었지만, 그를 생각해 애서 물린 것이었으니 이런 리트담의 마음은 더없이 기쁜 일이다.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군요.”
야안의 그 말을 기다리던 리트담은 정작 허락이 되자 가슴 가득히 무언가 더없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붉은 와인으로 그 맹세를 대신 하며 삼키니 지금껏 보지 못한 성취감을 이루는 듯한 기분이다.
야안은 그런 리트담을 보며 전설의 검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리트담은 무엇인가 싶어 보다 이내 그것이 아주 오래된 책임을 알았다.
한데 그 책이 기이하다. 마치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은 지팡이와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주술이 자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트담이 놀라 야안을 보니 야안이 웃음을 보이며 리트담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말년에 이룩한 마지막 정수입니다. ‘리트담의 저서’ 라 불리기도 하지요. 이 책은 보는 이마다 다르고 얻는 것도 달라집니다. 운 좋게도 저는 그대의 후예에게서 이 책을 얻게 되었고, 그것으로 주술과 인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야안의 말에 리트담은 다시금 야안이 인과법칙을 거스른 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연 책은 자신의 주술과 그 파장이 같았다.
그 원천적인 주술의 근본이 같은 것인데 느끼기에는 지금의 자신으로서도 막연한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잠시 멈칫한 그를 보며 야안이 말을 이었다.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책에는 그대의 검의 지팡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주술이 자리해 있으며, 제 생각에는 이것을 만들게 한 그대라면 어쩌면 저 이외 그 주술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 말하는지라 잠시 야안을 바라보던 리트담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집었다.
그리고, 책장을 펼치게 되었고, 그는 과연 야안이 생각한 것처럼 그 기괴한 그림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그림을 볼 때마다 무언가 머릿속이 내지르는 느낌을 받았고, 심장이 크게 울어댔다.
어느 순간 마지막 장이 되었고, 그는 그 마지막의 그림을 살피던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는 착각에 빠지더니 이내 눈에서 광채가 일어났다.
그의 그 광채에 책이 반응하는 듯 크게 진동을 하니, 그를 바라보던 야안은 그 신비로운 순간에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리트담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거대한 산이었고, 하늘마저 찢어버리는 기운을 지닌 산이었다. 그 어떤 존재도 버티지 못하는 그 위대한 산에 리트담은 묵묵히 오르고 있었다.
대지는 흙도 눈도 아닌 무언가였고, 하늘은 기괴한 오색 구름만이 자리를 할 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걷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리트담은 본능적으로 이 산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한참을 올라가 결국 그 산의 꼭대기 오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한 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리트담은 그 사내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그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심정은 그 사내도 같았는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그대는…….나로군.”
“그대는 나이시군요.”
동시에 같이 말을 하자 산꼭대기에 자리한 리트담은 그를 잠시 살피다 이내 껄껄 웃음을 흘렸다.
“그랬군. 인과를 거스르는 그 위대한 분 덕분에 이런 재밌는 일이 생겼구나. 누가 알았겠는가? 이 주술이 사장되는 것을 우려해 후계를 위해 만든 이 주술이 설마 과거의 나를 가르치는 길이 되었을 줄이야.”
그렇게 말하던 그는 이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리트담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 안배는 훗날 그대가 우리의 후예를 위해 채워줘야 할 것이네.”
그렇게 담백하게 말하던 그는 이내 입자 단위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곧 그 거대한 산 또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리트담을 향해 몰아치니 리트담은 그 아찔한 신비로운 힘에 넋을 잃었다.
수많은 지식이, 지혜가 그를 충만케 했고, 이로 인해 거대한 깨달음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길이 그의 몸을 삼켰다.
야안은 그 모습이 바로 초인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깨닫고, 즉시 마법을 펼쳐 주위의 모든 소리를 지워냈다.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미 겪어보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