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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60화 (260/385)

야안 260화

11. 하얀 불꽃

거대한 마나가 휘몰아쳤다.

조금 전 야안에 의해 열린 창가를 넘어 거센 폭풍 같은 마나는 어디선가부터 불어와 리트담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선 그 무시무시할 정도의 마나는 거대한 불길 속에 자리한 그의 머리와 심장을 가로지르며 들어섰고, 어느 순간 무언가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리트담의 머리에서 일순간 환한 빛이 일어나다니 이내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물론, 머리카락과 눈썹, 온몸에 나 있는 잔털을 넘어 그의 짙은 갈색 피부조차 그 불길 속에서 타올랐다.

어느새 그의 몸은 검은 재와 같이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야안이 자리한 넓은 방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남아 있던 와인은 어느새 말라 사라진 지 오래였고, 조금 전 앉았던 탁자와 걸상도 이미 그 미약한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다.

만약 야안이 마법과 주술을 펼쳐 그 불길을 막아서지 못했다면 이 방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인간의 형상을 한 검은 잿더미가 된 그것에서 일순간 환한 빛이 일렁이더니 이내 잿더미는 나풀거리며 그의 몸 아래로 떨어졌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난 그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조금은 더 어려진 듯했고, 몸에는 생기가 넘쳐났다.

마치 이제 태어난 아이처럼 몸 어디에도 상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달라진 것은 그의 기질이다. 조금 전의 그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기질은 마치 광활한 초원을 보는 듯했다.

끝없이 넓은 광활한 초원의 석양처럼 타오르는 기질이었다.

그릇은 한없이 넓어진 듯 그의 머릿속을 가슴속을 어지럽히던 번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특히 그의 육체는 주술에 최적화되어, 마치 동시에 몇 개의 주술을 펼친다고 해도 얼마든 견딜 수 있을 듯 보인다.

하지만 가장 변한 것은 바로 그의 뇌였다.

무의식을 임의로 의식으로 이끌어 올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지금까지와는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주술이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체내와 체외의 구분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면서 생기게 된 변화였다.

“하아~”

마치 세상에 나와 첫 숨을 내쉬듯이 그의 숨은 매우 깊고 경건한 것이었다. 천천히 눈을 뜨는 리트담은 잠시 스스로 관조하듯이 살피다 이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무서울 정도다. 이 같은 변화라니.’

단순히 위대한 주술사의 벽을 넘어선 것이 아니다. 그는 리트담의 저서를 만든 자신의 경지에 가깝게 도달하게 되었다.

위대한 주술사의 벽에서 다시금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마치 손가락만 한 작은 병에 산을 집어넣기라도 하듯이 그 자신은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해 버렸다.

한데 그 결과가 놀랍다.

깨져야 할 병은 깨지지 않았고, 병에 들어간 산은 마치 원래 있어야 했던 곳처럼 너무도 평안해 보였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 상대가 예전에 보았던 제국제일검이라 할지라도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용솟음치는 자신의 힘에도 그는 더 이상 선을 넘지 않았다. 그만큼 또한 그의 정신세계도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아! 이것을 어떻게…….”

그런 그는 순간 리트담의 저서가 사라졌음에 당혹한 눈빛을 보이며 야안을 바라보았지만, 야안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야안은 리트담에게 다가가 마치 제 일이 냥 마음 깊은 축하를 보였다.

“축하하네. 이렇게 기쁠 수가. 그것이 그 저서에 자리한 주술의 끝이었나 보군. 정말 놀랍네. 그 같은 힘이라니. 단순히 초인의 벽을 넘어선 것이 다시금 그를 넘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네.”

리트담은 야안의 그 모습에 가슴에 돌이 올린 듯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에게 말한 그의 말을 기억해내며 그의 갑갑함은 조금은 사라져갔다.

‘이 안배는 훗날 그대가 우리의 후예를 위해 채워줘야 할 것이네.’

그 말의 의미를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힘들겠지만, 자신의 경지를 그 자신이 나에게 내어준 그 지식과 지혜를 모두 수습할 수만 있다면 굳이 책의 형태를 하지 않아도 그에게 내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야안이 전장에서 보였던 또 다른 주술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그 주술의 위대함을 알았다.

당시에는 그 자신의 경지가 미천하여 그저 막연하게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이 경지에 올라 그 주술을 생각하노라면 그것이 얼마나 고차원적인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비록 모든 것을 보지 못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나 자신이 이룩하고 만들어낸 주술에 못지않은 주술임을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더구나 이 주술은 자신의 주술과 놀라울 정도로 상성이 맞아떨어졌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마치 같은 존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만약 그 주술과 자신의 주술을 온전히 합칠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주술은 없을 것이라는 그 자신의 생각이 틀리게 되는 것이다.

주술의 끝.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그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며 희열에 젖었다.

이내 리트담은 자신을 말없이 기다리는 야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괜찮다면 저에게 그 주술을 가르쳐주지 않겠습니까?”

야안은 리트담의 그 물음에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본래 그대에게 이 주술을 내어 주려 했으니 그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 말에 리트담은 크게 기뻐하다 이내 야안에게 사죄를 하였다.

“저 때문에 그 책을 잃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본래는 야안 님에게 가야 할 것인데 염치도 없이 제가 받게 되었습니다.”

야안은 사죄를 하는 리트담에게 손을 내저었다.

“본래 주인에게 돌아간 것 뿐입니다. 중한 책임이 있는 리트담 님께서 그처럼 큰 힘을 얻었다는 것이 저에게 너무 기쁠 따름입니다.”

한 점 거짓도 없는 야안의 그 마음 씀씀이에 리트담은 다시금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릇이 다르다.’

일반인과 생각하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런 위대한 자를 만났다는 것에 대해 가슴이 절로 벅차올랐다.

리트담은 애써 그 벅찬 가슴을 가라앉히며 야안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 두 주술을 합칠 수만 있다면 감히 말하건대 주술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야안은 리트담의 그 말에 잠시 말문을 잃었다.

주술의 끝이라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령이라면 정령의 왕인 유피테르가, 마법이라면 대현자의 경지가 끝일 것이고, 검이라면 제2대 전설의 현자인 로블랑이 이룬 것일 마지막일 터였다.

하지만 로블랑이 만든 뒤 외면 받았고, 자이웅이 다시 그 기반을 만들어낸 주술이라면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또 멀었다.

주술 제국이 멸망하면서 다시금 주술의 수준도 원시적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리트담이라는 걸출한 천재가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금 제국의 수준까지 올렸지만 그래도 주술의 끝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못해도 크게 번성의 과정에서 수많은 인재와 천재들이 이를 갈고 닦아야 볼 수 있는 것일 터인데.

그 과정을 뛰어넘어 주술의 끝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야안이라해도 말문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리하여 그 주술의 경지를 그 자신이 오를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할 방도가 생길지 모른다.’

막연했던 어둠에 작은 빛이 일어나는 것 같은 탓에 야안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 * *

야안과 리트담은 그곳 호하스 영지에서 나흘의 축제 동안 머물다 그들의 짙은 아쉬움 담긴 배웅을 뒤로하며 떠나게 되었다.

본래 야안과 리트담이 가고자 하는 곳은 이곳 호하스 영지에서 남쪽으로 열흘을 더 가야 나오는 말콤 공작 가였다.

호하스 자작이 충성을 맹세하는 곳이기도 했다.

당대의 말콤 공작의 야망은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이 무너져 내렸을 때 그의 위치는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에 있었으니 제국이 무너졌을 때의 당시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제국은 그의 차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니 지금 자리한 오대 세력 중에 그가 자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후계의 문제인데, 지난 전쟁에서 다음 대의 후계자가 죽게 되면서 그 내부 사정이 복잡해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후계로 지목받은 대공자 이외에 21명의 자식이 있었고, 그중 그 능력이 어울리는 이는 네 사람이나 되었다.

누구를 골라도 되지만, 또한 달리 말하면 누구를 골라도 전의 모습처럼 되기 어려움이 컸다.

만약 말콤 공작이 후계를 잃었다는 충격에 휘말리지 않고 빠른 시일 안에 그들 중 하나를 뽑았다면 그래도 안정을 찾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때가 지나버려 내부에서는 파벌을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대로 분열이 되고 만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말콤 공작은 곰곰이 생각하다 결국 이 쌓여가는 감정을 밖으로 풀어내기로 했다. 지난 전쟁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많은 것을 손해 보게 되어 안으로 힘을 모아야 할 시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콤 공작 가의 힘이 다시금 전쟁을 일으킬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는 지난 자신의 후계자를 빼앗아갔던 밸론 공작이었다.

밸론 공작은 지난날 2황자를 치고 그들의 세력을 잡아먹은 세력이기도 했다. 제국제일검인 밸론 공작이 이끄는 일백에 달하는 핏빛의 기사단의 악명은 대단했다. 적진을 가로질러 진영을 그대로 파괴하는데 그 엄청난 돌격력을 막기 위해서는 일만의 중갑병이 자리한다 해도 어려울 일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밸론 공작이 이끄는 이들과 부딪히는 것은 5대 세력의 어디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그들을 상대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진형에도 불의 상위 익스퍼트 정령사인 아리하키스 초인이 자리했으며, 그가 이끄는 불타는 날개라면 제압을 하지 못해도 그들을 붙잡고 늘어질 수 있었으니.

아리하키스 후작은 말콤 공작의 장인이었기에 전장에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진형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에 말콤 공작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곧 전쟁이 선포되었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 준비가 시작되었다.

아직 난세의 초기였기에 예와 도는 사라지지 않았기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급작스러운 기습 따위가 아닌 장소와 시일을 정해 전쟁을 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설사 패전을 할지라도 핵심인물을 살릴 수가 있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말콤 공작의 발언에 4개 군단으로 나누어진 각 진형은 그들마다 효율보다는 극강의 조합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전략을 꾸리기 시작했다.

중립에 자리한 아리하키스 후작이 밸론 공작을 막아내기로 했으니, 이들로는 거침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한동안 잔잔했던 바 대륙에 다시금 거대한 전쟁이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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