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67화
14. 연합전선
‘쾅. 쿵쾅-’
그 수가 모두 삼천에 달하는 그 색이 타이탄들이 서로의 힘을 겨루며 부딪히고 있었다. 1톤에 달하는 타이탄들이 날아가거나 무너질 때마다 돌이 튀고 땅이 패었다.
투박한 두 팔에 자리한 둔중병기는 적의 방패에 막혔고, 그 진동은 대기를 어지럽혔다. 강철의 주먹이 날아갔지만, 잠시 몸이 움찔한 것이 다일 뿐이다.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며 죽이기 위해 악을 품었다.
마정석이 부서지거나 타이탄 안에 조종사가 죽기 전까지는 결코 타이탄들은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한쪽에서 타이탄들이 거대한 장관을 보였을 때, 하늘에서도 무시무시한 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척의 거대한 비행선에 자리한 현자들이 대마법들을 펼쳤으며 화살이 날아가며 노쇠가 당겨지기도 했다.
벌써 8척의 비행선이 추락해 거대한 분화구를 만들었으며, 이 분화구를 피해 수십만이 넘는 병사들이 살아남기 악을 썼다.
창대가 낭창거리며 허공을 찔렀고, 방패가 적의 공격에 찌그러졌으며, 그 사이로 마법무기를 든 마법 병단이 적지를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았건만 벌써 죽어나간 이들이 7만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야말로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투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 어느 쪽도 승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바다를 넘고 전우의 시체를 밟으며 살기 위해 악의를 가슴에 품은 이들의 모습은 절정에 다다른 광기의 집합이었다.
그 붉게 물든 피 안개 속에서 마치 다른 존재들인 것처럼 부딪힌 자들이 존재했다.
일백에 달하는 피 안개 속에 동화 된 기사와 그들의 가장 선두에서 패왕의 기운을 풍기는 자의 검에서는 이글거리는 검강이 얼룩져 있다.
그에 대항하여 70여 명의 정령사들은 그들 못지않은 붉은 불꽃을 이글거리며 기사들을 상대했다.
수백 개의 작은 불꽃들이 집요하게 기사들의 눈을 현혹하고 그들을 괴롭혔으며, 그들이 지지하던 대지는 어느새 붉게 익어갔다.
그리고 그런 정령사들의 가장 선두에 불꽃의 거인과 동화된 한 존재가 패왕의 검을 상대했다.
‘쾅. 콰가가강.’
한 번 부딪힐 때마다 마치 땅이 무너지는 듯한 괴음이 울려 퍼졌다. 그 둘 근처에 자리한 자 중 강자 아닌 자가 없었지만, 저마다 그들이 일으키는 기운의 파편도 감당하기 어려워 절로 뒤를 물러서야 했다.
그랬다.
그것은 난세의 전쟁이었고, 전쟁 속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이제 지겨운 일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지겨운 일상 속에서 천년을 잠들어 있던 악의가 이 전쟁을 통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가난한 농노의 아들로 태어난 자였다.
얼굴도 보지 못한 두 명의 형들이 굶어 죽은 뒤 태어난 이이기도 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그는 살기 위해 빠르게 세상을 깨우쳐야 했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9살이 되던 해 그가 있던 영지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만약 난세가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영지에서 구횰미라도 내려 주었을 건만. 영지는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 빼앗아 가기 위해 안달이었다.
결국 그가 있었던 곳은 지옥으로 변했다.
부모 자식이 서로 잡아먹지 안달이었고, 그 마을에 들어선 여행객들은 뼈도 못 추리고 그 자취를 감추었다.
아직 어리고 힘이 없었던 그는 살기 위해 도망을 쳐야 했다.
도망을 치는 것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보잘것없는 몸을 지닌 그에게는 매우 힘겨운 일이었지만 그는 겨우 영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었다. 그는 퍽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가축만도 못한 인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예 중에서 가장 하급하고 힘들다는 일노가 된 것이다. 농노는 그나마 주인의 재산으로서 인정하여 어느 정도 대우라도 해주지, 일노는 말 그대로 최하급이라 잠시의 일에 쓰이는 용도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일회용 같은 인생이었다. 짧은 시간에 강력한 일을 요구하였고, 죽으면 길에서 버려 버린다.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인생인 것이다.
그렇게 그는 비참한 일노가 되었지만 그런 그 지독한 인생도 그의 살고자 하는 열망을 꺾지 못했다. 결국, 그는 3년을 내리 버텨내었다.
그 3년의 세월을 버티고 버텨 일노 중에서 고참이 되었던 그는 조금은 인생이 편안해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결코 그를 쉽게 두지 않았다.
어느 한 영지에서 강제 징집을 당한 그는 창 한 자루 손에 쥔 채 전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이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적군의 창날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겁에 질린 아군의 창날이 그의 심장이 관통되면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허탈함에 그는 강대한 악의를 마지막에 남겼다.
‘모두 파멸하라.’
그 강대한 악의를 기다렸다는 바 대륙 깊은 곳에 잠든 무언가가 영혼이 떠나간 그의 육체를 차지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지나가는 듯 관통된 심장은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렇게 부활한 그는 조금 전과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니, 외형 자체만을 본다면 같았지만, 그가 풍기는 기운은 결코 노예 생활이나 하던 자의 것이 아니었다.
저 한편에서 천지를 뒤엎는 두 초인조차도 그의 숨겨진 기운 앞에서는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육체는 너무도 미약했다. 12살의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빈약한 어린 꼬맹이 육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살피더니 이내 전장에 자리한 수많은 죽음에 손을 뻗었고, 곧 그 죽음 속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흘러나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천천히 그것들은 그의 몸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육체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손을 뻗었던 앙상한 뼈만 보이는 팔뚝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가슴 배. 목, 다리까지 뻗어 가더니 결국 그의 육체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12세에 불과했던 그의 작은 육체는 어느새 시간을 뛰어넘어 20살의 청년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보잘것없었던 그의 육신에 지닌 옷이 사라지고 저 멀리 자리한 현자들과 비슷한 옷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렇게 비참했던 12살 농노의 모습은 사라지고 강대한 기세를 은은히 풍기는 현자가 그 모습을 대신했다.
아주 짧은 사이에 믿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변모한 그였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해. 이 세상에 나 말고 또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있어.’
지금 가진 힘은 보잘것없었지만, 그것은 전쟁이 계속되는 한 얼마든지 강대해질 수 있었다. 하니 지금 보잘것없다 하여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 밝음과 희망과 생명에 반하여 나타난 죽지 않는 존재였으니. 죽음에 대해 고통에 대해 절망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그는 그 죽지 않는 존재의 한 파편에 불과했지만. 그 의지와 하나이기도 하니 그라고 해도 크게 다를 바는 아니었다.
그는 그런 존재였고, 걱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침이 없는 전지전능함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지금 그는 세상에 나타나 전설의 현자를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당혹스러움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이외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질적인 존재 때문이다.
그것은 전설의 현자만큼이나 당혹스러웠으며 자신의 존재가 탄생 된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공포의 한 자락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점차 강해지는 그 이질적인 존재의 존재감을 느낀 그는 그가 자신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나마 세상에 속하기라도 하는 존재이지만, 그 존재는 원래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랬다. 이 존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어야 한다.
태초부터 변화만 있을 뿐, 감하거나 더해진 것은 없었다. 한데 이상이 생겼다. 우주를 자체로 보았을 때 아주 티끌도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분명 더해진 것이다.
‘어떻게 이 세상에 자리할 수 있는가? 아리스 그의 뜻인가?’
존재는 문득 어딘가에 있을 아리스를 바라보듯 고개를 추어올렸다.
잠시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귀찮게 자신의 주위를 어지럽히는 병사들에 고개를 내리며 덧없는 생명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천 년 전 악귀라 불리던 존재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야안과 리트담이 검은 불꽃 부족에 온 지도 벌써 나흘의 시간이 지났다.
겨우 나흘의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이곳에 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야안은 검은 불꽃의 수장 갈라진 불길과 장로들에게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을 소개하였으며 그로서 그들 또한 그 위대한 뜻을 함께하게 되었다.
검은 불꽃 부족 또한, 바 대륙의 이종족의 연합에 일부이나 거주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장로이자 위대한 장인인 화려한 불 속을 필두로 일천에 달하는 드워프가 이번 거주에 동참하였다.
저마다 전선에서는 뛰어난 전사였고, 망치를 잡으면 인간세상에서 볼 수 없는 뛰어난
장인들이었다.
하니 이들의 합류는 단순히 전력의 상승으로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종족 연합의 큰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무기는 물론이며 그들을 지킬 성을 줄 것이고, 수많은 문화를 통합하는 데 큰 힘이 될 터였다.
이 외에도 큰일은 많았다. 바로 몬스터들의 대이동에 대책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합전선의 등장이 그것이다.
무로딘 산맥은 이종족들에게 있어 중요한 산맥이었다.
이 거대하고 험난한 산맥으로 인해 인간들이 만든 제국은 더 이상 확장을 생각지 못하게 한 천혜의 요소였으며, 다음으로 여러 이종족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터전이 되기도 했다.
많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여 광산을 찾는 드워프들에게서는 없으면 안 될 존재였고, 세계수의 충분한 자양분이 있는 곳이기에 엘프들을 하나로 모으게 하는 구심점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금속을 먹고 살아가는 거인족들에게도 필요했고, 이 무로딘 산맥을 크게 가로지르는 도도한 물살이 자리한 바로티만 강은 많은 문명을 낳게 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무로딘 산맥이기도 했고, 이 산맥의 뒤에 자리한 거대한 평원을 지켜주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하니 몬스터들로 산맥이 위기에 처하니 당연히 이종족들 사이에서도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주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보다 몬스터들의 대이동이 날이 갈수로 거세어지자, 결국 연합전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더 이상 몬스터들이 무로딘 산맥을 헤집지 못하게 전선을 만들어 밀고 올라가자는 이야기인데, 이 연합전선에 다섯 이종족이 찬성을 보였다.
가장 강대한 세력의 거인족들을 필두로 엘프 연합이 그를 따랐고 뒤이어 불의 종족인 카사 연합이 함께 하였다. 드워프 또한 그 뒤를 이었고, 마지막으로 반인반수인 모롤타 종족이 그를 따랐다.
반인반수인 모롤타 종족은 그 지능은 인간보다 약간 떨어지나 평균 신장이 2미터에 달하는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야수 같은 감각을 지닌 종족이기도 했다.
전투 시에 이들은 야수의 날카롭고 거대한 발톱을 일으키고, 피부가 두꺼워지며 그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야성적으로 변모한다.
무로딘 산맥과 연결된 대평원에서 하나의 거대한 동맹체로서 존재하는데, 그 숫자가 천만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