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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71화 (271/385)

야안 271화

눈을 뜨니 리트담이 말없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야안은 그제야 자신이 경험한 것이 리트담 그가 지난 샤 대륙에서 큰 주술사에 올랐을 때의 경험임을 알았다.

그것을 인식했음에도 야안은 그 당시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한 탓에 한동안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꼈다. 이내 리트담이 야안에게 펼친 주술을 거두자 그제야 야안은 그와 자신의 기억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었다.

야안은 잠시 스스로 살펴보다 이내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스로 살폈고, 예전 리트담의 경험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자신도 큰 주술사의 경지에 올랐음을 깨달았다.

큰 주술사의 경지에 올라서니 예전 리트담이 도와주어야 가능한 주술들이 이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뿌옇게 어리던 진체의 술은 마치 맑은 시냇물 속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잠시 자신의 경지를 음미하다 눈을 뜨며 아직 자신을 지키고 있는 리트담에게 목례를 보였다.

“귀한 경험을 나눠주어 감사합니다.”

리트담은 그런 야안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본래 리트담의 저서였다면 더 귀한 경험을 얻었을 터 아직 제가 완전히 지식을 수습하지 못해 겨우 이 정도 밖에 하지 못했군요.”

아무래도 그것이 그의 마음의 짐이 된 것 같은지라 야안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처럼 마음이 확고한 자에게 무어라 말하여도 듣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큰 주술사의 경지에 올라선 뒤 야안은 리트담으로부터 그에 맞는 고차원의 주술을 가르침 받았다. 리트담은 그 스스로 재주도 뛰어나지만, 스승으로서도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에게 받은 경험과 지식의 전수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여하튼 그는 무언가를 가르치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더구나 야안 또한 그 머리와 재능이 뛰어나고 게으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격이라 리트담의 가르침을 무서울 정도로 따라잡았다.

이로 인해 야안은 큰 주술사의 경지를 빠르게 수습해 나갔다. 함루어에 대해 조금 더 앞서나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진정한 힘을 그제야 실감을 할 수 있었다.

함루어는 황가의 주술에 비해 그 무언가를 파괴하는 힘은 크지 않았으나, 대신 주술의 소모가 대단히 적었다.

황가의 주술이 3을 써 10을 얻는다면 함루어는 1을 써 10을 얻었다. 하니, 주술력이 부족해지는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 힘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야안에게 있어서 상당히 큰 힘이 될 것이다.

리트담은 야안을 가르치는 것을 별개로 그간 그 자신도 황가의 주술을 정립하고 해부하며 그 경지를 드높이고 있었다.

이제 황가의 주술에 한해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를 대부분 수습하게 되었는데, 재밌게도 이 주술로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에서 넘어서려면 더 이상 이것을 파고드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받은 지식과 경험을 먼저 수습해야만 했다.

이는 그에게 있어 함루어의 주술이 주인 이유와 함께 아직 다 수습 못한 지식과 경험을 모두 수습해야만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오 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제야 거인들이 도착하였다. 지난 백만이 넘는 몬스터 군단이 돌격하였을 때처럼 그들이 나타났을 때 지진이 난 듯 대지는 크게 뒤흔들렸다.

무려 10만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그중 대전사만 스물이 넘었고, 상급전사는 이천에 달했다.

이들을 이끄는 수장은 거인들의 왕 붉은 대지의 가장 어린 형제인 붉은 노을이었다. 다음 대의 왕으로 꼽힐 만큼 붉은 노을이 거인족 사이에서 유망한 자였다.

역시나 왕의 혈통이었기 때문인가?

올해로 이백 년 밖에 살지 않았음에도 그가 이룬 경지는 대단했다. 상급 전사를 넘어 벌써 대전사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대전사들 중에서도 그를 맞상대할 자가 몇 되지 않았으니 이대로 백 년이 지난다면 왕의 혈족에게 허락되는 위대한 전사에도 오를 수 있을 터였다.

붉은 노을은 왕의 혈족답게 다른 거인족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신장이 6미터에 달했고, 무게는 1.5톤에 달했다.

안개가 낀 듯한 그의 아득한 눈에서는 광채가 절로 일어났으며, 그 후계로서의 기세는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을 맞아 현재 임시로 드워프 연합의 수장을 맡은 갈라진 불꽃과 하이 엘프들을 맞이한 그는 왼손으로 머리를 두 번 치며 오른 어깨에 얼리고 스스로 소개했다.

“붉은 노을이라 하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붉은 노을이라는 말에 엘프들과 드워프들은 저마다 만족의 미소를 보였다. 붉은 노을의 위명은 이미 거인족 사이를 넘어 무로딘 산맥에 거주하는 이종족에게도 화제였으니.

이변이 없는 한 거인의 왕 붉은 대지가 가장 총애하는 만큼 다음 대의 왕이 될 후계자였으니 이를 본다면 이번 일을 거인들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10만의 거인전사라면 설사 백만이 넘는 몬스터 군단이라 할지라도 그 위세에 힘을 잃을 터였다.

하급 전사라 해도 둘이면 초급 익스퍼트 검사와 해볼 만했으니. 더구나 그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를 지니었으니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몬스터들이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거기에 도칸 급의 힘을 지닌 대전사가 스물이었고, 중급 익스퍼트 급의 힘을 지닌 상급 전사가 이천이다.

이것만 보아도 거인족이 무로딘 산맥의 패자라고 불리는 데 이의를 가지는 종족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강력한 힘을 지녔음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이들의 타고난 성품 덕분이다. 정의롭고 호쾌한 성격을 지닌 그들이기에 독존이 아닌 공존으로서의 삶을 즐기는 것이다.

이종족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이는 하나의 축복과도 같았다.

드워프들이 이들이 거주할 곳을 이미 만들어 둔 덕분에 10만에 달하는 거인족들은 어려움 없이 편히 자리를 잡고 쉴 수 있었다.

거주할 곳이라고는 하지만 종족의 특성상 다른 이종족처럼 튼튼한 집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거대한 몸을 움직이는데 거추장스럽지 않은 공간이면 족했다. 거기에 평평한 대지이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거인들이 자리를 잡자, 기다렸다는 듯이 드워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로탐 금속과 그들이 즐기는 정제된 구리와 잡철들을 교환하였는데,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 어려움 없이 일은 진행되었다.

드워프들은 이날을 위해 엘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의 광산을 두 개 만들어 둔 뒤라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거래를 마칠 수 있었다.

로탐 금속은 10만에 달하는 거인들이라 해도 많이 생성되지 않는 물질이라, 생각보다 그 양은 적어 겨우 20톤밖에 양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는 이미 알고 있는 일이라 드워프 중 불만을 품는 자들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교환을 할 때, 하이엘프들과 갈라진 불길을 비롯한 대족장들은 엘프들이 알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물론 세세한 부분은 카사 종족과 모롤타 종족이 함께해야겠지만 그 가장 선두에서 몬스터들을 타파할 거인족이 도착한 이상 큰 부분은 미리 잡아두는 것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에 대한 대화가 깊어질 때쯤 야안과 리트담이 모습을 보였다.

수련을 위해 잠시 마을을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가다듬던 그들은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를 본 그곳에 자리한 붉은 노을과 그의 최측근인 대전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야안과 리트담에 대해 이미 하이엘프와 드워프 대족장들에게 잠시 들은 바가 있었으니 그들이 이룬 그 위대한 경지에 대해 놀라워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충격에 빠진 것은 바로 야안에게 자리한 거인의 인장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거인의 인장의 주인이 바로 붉은 노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는 인장을 누구에게 부여한 적이 없었다.

한데 그 자신의 인장을 인간이 가졌으니 그것이 이해되지 않을 일이다.

하이엘프들과 드워프들은 야안의 정체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그런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이들도 이야기하지 못한 것은 분명 야안의 과거가 사실이기는 하나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언가 증명할 만한 것을 보여주어야 이해를 할 터인데, 괜히 섣불리 말을 꺼내어 이 위대한 자를 오해할 상황을 줄 수 있으니 그들로서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맞는 일이다.

붉은 노을은 지금의 모순된 상황에 눈빛을 크게 발하며 물었다.

“이해되지 않도다. 어째서 그대가 나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말하는 붉은 노을과 달리 야안은 감회가 새로웠다. 벌써 10년이 넘은 그 위대한 왕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되자 절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압도적인 힘을 보이며 뱀파이어 수장을 해 치운 그는 자신에게 주먹을 내밀며 친우로서의 예를 보였다.

또한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베푼 축복으로 인해 그는 파란토를 잡을 수 있었다.

만약 그의 안배가 아니었다면 파란토를 잡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야안은 그 떨리는 가슴을 뒤로하며 붉은 노을의 물음에 답하였다.

“저는 10여 년 전 그대에게서 이 인장을 받았으며, 그대는 저를 친우로서 대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자면 긴 시간이 필요하나 이를 들으시면 그제야 붉은 노을께서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음~ 이 모순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시간이 무엇이 문제이던가?”

회의를 하던 중이었지만,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음을 그제야 알게 된 드워프 족장들과 하이엘프는 뒤로 물러나 야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잠시 후, 야안의 이야기가 끝나자 붉은 노을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자리한 대전사들은 저마다 이 놀라운 존재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한참을 야안에게 감탄을 하던 붉은 노을은 이내 웃음을 흘리며 그 자신의 좌측 끝에 자리한 대전사를 보며 말했다.

“황금 심장이여. 그대는 정말 뛰어난 후손을 두었군. 그대의 다섯 자식의 이야기는 얼마나 위대한가?”

그 말에 야안은 그제야 자신의 가장 첫 번째 거인 친우이던 황금 주먹의 아버지가 그임을 알고 거인의 예법을 따라 그를 보며 이마 부위를 두 번 치며 가슴을 툭 쳤다.

황금 심장은 자신의 자식들이 그처럼 위대한 의지를 보였다는 것에 기뻐하였다. 위대한 후손을 두었다는 것은 거인들에게 있어 그만큼 명예를 드높일 일이 몇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천한 저의 후예가 붉은 노을 님을 잘 보필한 것 같이 기쁠 따름입니다.”

그의 말에 붉은 노을은 입가에 큰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이내 죽음의 지배자라는 그 놀라운 존재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 굳건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야안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는 이마를 두 번 치고는 주먹을 내밀었다.

“확실히 그대는 본 좌가 친우의 예로 다룰 만한 존재이다.”

야안은 그가 내미는 주먹에 마치 과거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의 거대한 주먹에 주먹을 부딪쳤다.

붉은 노을은 그런 그에 기쁜 듯 크게 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우리 거인들 또한 그대의 계획을 함께할 것을 왕께 고하리라. 그날이 온다면 우리 거인족은 그대가 말한 것처럼 대지를 뒤흔들며 달릴 것이며, 다시 모습을 보인 저주받은 종족들을 상대로 가장 앞장설 것이다.”

우렁찬 그의 말에 야안은 절로 그들이 대지를 박차며 저주받은 종족을 상대하는 것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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