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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77화 (277/385)

야안 277화

진형을 파괴하기 위해 한없이 피어오르던 그의 불길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그 또한 전장의 저 너머에서 엘프들의 마법과 정령이 저들이 덮은 어둠의 망토에 의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기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한다면 최대한 이 리치들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최선임을 그는 깨달았다.

그의 지휘에 따라 그를 따르던 카사족들 또한 진형을 방어대형으로 바꾸었다.

가장 앞선 자가 불길로 방패가 되었으며 뒤에 자리한 이들이 불사군단을 물리칠 창이 되었다.

방패가 되는 자들이 상처를 당하면 뒤로 물러나 창이 되었으며 창이 된 자가 앞으로 나아가 방패가 되었다.

그렇게 지겹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의 전투는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바로 저 멀리 전장의 중심에 자리한 거인의 수장인 붉은 노을이 각성하기 전까지.

‘이것은!’

아톤은 눈앞에 자신을 노리는 리치들이 있음에도 순간 저 멀리 황금빛을 발하며 모습을 보이는 기운에 눈을 돌려야 했다.

그것은 결코 낯설지 않은 기운의 형태이다.

예전 부족의 일로 거인의 왕을 찾아갔을 때 붉은 대지에게 느꼈던 그 위대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기운이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 치열한 전투에서 순간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화아아악-’

거대한 기의 폭풍이 몇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밀려 날아왔다. 그는 그 기운에 자리한 익숙한 향기를 느끼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 거인족에 위대한 천재가 나타났다 하여 다음 대에 큰 기대를 걸고 하더니. 과연 그것이 틀림이 아님을 알겠구나.”

설마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붉은 노을이 벌써 위대한 전사로 각성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기운에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아톤을 막아서던, 리치들이 진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이려 이번에는 아톤이 거대한 불길을 보이며 그들을 막았다.

“어딜! 너희는 나의 차지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그의 마나와 정령력이 다시금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카사족의 진형도 점차 그 형태가 바뀌어져갔다.

붉은 노을의 각성과 동시에 불사의 군대로 기울던 전장의 분위기가 단번에 뒤바뀌었다.

분노. 회한……. 아니, 그것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거인족의 새롭게 모습을 보인 위대한 전사는 그간의 울분을 터뜨리듯이 맹렬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신장은 각성으로 7미터에 다 달았고, 무게는 2톤으로 늘어났다. 또한 붉은빛을 발하던 그의 외형은 예전 야안이 만났을 때처럼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각성의 순간을 넘어서자마자 크게 하늘 위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주먹이 보인 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위대한 전사로 각성하면서 가지게 되는. 오직 왕의 혈족에게만 허락되는 투기 발현의 권능이 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거인의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핵이 그 투기에 반응하였다. 핵은 크게 오버하며 돌기 시작했고, 지쳐 있던 전사들은 120%에 달하는 기량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쾅. 쾅. 콰과강-’

앞서의 권능은 서막에 불과했다.

진정한 놀라움은 바로 붉은 노을이 각성하면서 얻은 힘이다. 황금 주먹을 감싸는 반경 4미터에 달하는 그것을 감히 막아서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의 휘두름에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죽음의 기사도 산산조각으로 날아갔고, 거인들의 전진을 막아서던 어보미들 또한 마치 잘게 찢어진 종잇조각이 되어 대기에 흩날렸다.

그렇게 위대한 전사로 각성한 붉은 노을로 인해 멈추었던 거인의 진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뒤늦게 엘프들을 견제하던 상위 현자 비기너의 리치들 열다섯이나 붉은 노을을 막아섰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거인들에게 일천의 현자들이 가지 않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마치 죽음의 망토를 쓴 자신들 만큼이나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니, 리치들과 거인들은 그야말로 상극의 관계에 자리했다.

마치 활을 쏘는 듯 길게 뒤로 몸을 휘어지던 붉은 노을은 순간 앞으로 튕기듯이 날아갔고, 그는 이내 거대한 마법들을 펼쳐대는 리치들 코앞에 나타나 그들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아니, 깨부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야말로 그의 주먹이 리치들을 관통할 때마다, 리치들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일격에 자리한 그 거대한 힘을 이기지 못해 가장 깊숙이 숨겨진 죽음의 베슬마저 깨어졌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자신에게 붙은 열다섯의 리치들을 박살을 내어 버린 그는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드는 어보미들과 스케렐톤들을 쳐부수기 시작했고, 곧 상급 전사들을 도와 그들을 상대하던 이천의 죽음의 기사들을 쳐부수던 대전사들 또한 거인 전사들을 이끌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붉은 노을의 각성으로 승기를 찾은 그들과는 달리 야안과 리치왕 케르몬의 전투는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악몽에 갇힌 듯 반복된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리치왕 케르몬은 듣도보도 못한 하나같이 기이하고 강력한 힘을 보였고, 야안은 검강을 극에 달하게 형성하고, 대마법을 펼치어 건곤대나이의 묘용을 극의에 달하게 뽑아내었다.

마치 예전 야안이 드래곤을 상대하였을 때도 그랬으나, 지금은 그보다 더 치열하였다. 당시의 드래곤은 이성을 잃어 본능적으로 펼치는 마법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저 리치왕 케르몬이 보이는 마법은 이성의 극에 달한 마치 마법으로 생명체를 파괴하는 데 극의에 오른 자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의 정신마법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뇌전의 정화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그 틈 속을 파고들어 무수한 환상을 일으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만약 야안이 유피테르 권능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았다면 그는 순식간에 그 정신 마법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가까스럽게 정신을 차리며 이내 살아 있는 불길들이 그를 잡아먹듯이 덤비거나 시독이 그의 호흡을 가리기도 했다.

다행히 리트담의 도움으로 큰 주술사에 오른 것이 그 위험을 막아주었다. 진체의 술로 독을 걸러 몸 밖으로 털어 버렸고, 물의 주술로 불길을 막아섰다.

물론 이 같은 전투로 인해 그는 무서운 속도로 스탯이 소모되어간 것은 사실이다. 아니, 스탯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야안은 차가운 바닥에 주검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아끼고 아꼈지만 벌써 스탯은 반 이상이 소모되었다.

자잘한 부상들은 신성 마법으로 회복하고 있어 그나마 그 정도의 소모만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모두 소모하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려면 야안만한 실력자가 못해도 셋은 되어야 승기를 노려볼 입장이 될 것이니 현재 그가 버티고 있는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일이다.

그랬다. 기적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아리스의 가호인지 그 한 번의 승기를 노려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아! 드디어.”

그 전장의 뒤에서 힘을 숨기며 전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주술을 펼치던 리트담은 단 한 번의 폭발력을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내에 하늘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붉은 노을은 각성하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아무리 냉철하게 생각해도 무리였다. 모든 주술력을 펼쳐도 그 한 번의 기회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그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계산하였지만, 매번 답은 허무한 그의 죽음과 전쟁의 패망뿐이었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 붉은 노을의 각성이라는 변수로 인해 희망이 생겼다.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졌군.”

눈앞을 어지럽히는 어보미와 스케렐톤들, 그리고 저 멀리에서 거대 스케렐톤과 싸우는 강철의 괴물들과 성을 침공하는 리치들.

그 모든 것을 앞에 두고 참고 인내했던 그는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어지자 숨겨둔 본신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함루어를 읊으며 강한 의지를 끌어내던 그의 손에 희뿌연 무언가가 일어서기 시작했고, 그는 손을 앞으로 내밀며 뿌렸다.

반짝반짝 거리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그 결과가 보인 것은 무시무시했다.

‘콰가가강-’

그 반짝반짝 거리는 것이 부딪히는 순간 어보미든 스케렐톤이든 강한 충격과 함께 모든 것이 흩어져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것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바람에 휘날리며 느긋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리치들은 마법을 펼치며 막아서려 했지만, 그들의 그 강력한 마법도 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일으키며 마법조차 분해하듯이 날리던 그것은 리트담이 뻗은 손을 크게 펼치자 사방팔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부딪히는 모든 것이 흩어졌다. 그것은 그 상대가 마법이든 리치든, 나무든 바위든 간에 존재의 의의를 잃고 그 모습을 감추고 만 것이다.

그것은 리트담이 말년에야 완성한 주술로, 거대한 의지로 존재의 의지를 지워버리는 주술이었다.

그야말로 하늘을 거스르는 주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존재의 의의를 지워버리는 것이 있을 줄은.

그것은 권능이라 보아도 무방할 일이다.

넓게 펼쳐지는 그 반짝이는 것에 성을 압박하던 강력한 불사군단 수백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그가 손을 휘저을 때면 저 멀리서 마법을 준비하던 리치들이 스스로 공격하는 꼴을 만들었으며, 발로 크게 대지를 디딜 때면 주위 50미터에 자리한 스케렐톤과 어보미들은 강력한 중력에 뭉개져 가루가 되고 만다.

입에서 가볍게 부는 휘파람은 거대한 파장의 회오리가 되어 전장을 꿰뚫었으며 그의 손가락이 튕길 때마다 거대한 불길이 대지를 갈랐다.

그 엄청난 고온은 마치 카사족의 수장 아톤에 못지않다. 그야말로 그 불길 앞에 잿더미가 되어 사그라졌다.

어느새 그의 몸은 나아가, 주위의 모든 것을 깨부수는 그 지지부진 했던 강철의 괴물과 거대 스케렐톤의 전장까지 가 있었다.

“하찮은 것들.”

그 한마디와 함께 손을 모아 무언가 털어버리는 듯 손짓을 하자, 가장 가까이 있던 거대 스케렐톤이 요란한 악령의 비명과 함께 폭삭 가라앉았다.

수백 배에 달하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인데, 워낙 리치왕 케르몬이 준 권능과 힘이 대단해 회복을 반복하고 있지만, 결국 수 초가 지나지 않아 먼지로 바스러지며 대지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두 번의 손짓으로 그 거대 스케렐톤을 정리할 때쯤. 그의 뒤를 노린 검은 지옥의 불꽃이 거대한 뱀처럼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그 크기가 20미터에 달하는 스치는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그것은 리치왕 케르몬이 그에게 펼친 대마법이었으나, 그는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함루어를 중얼거리며 자신의 근처까지 온 그것을 크게 손으로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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