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83화
18. 페어리
그 경지가 낮다면 그 괴리감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경지가 높아질수록 이 괴리감에 대한 영향은 더욱 커져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운이 닿아 초인의 벽을 넘어섰다고 해도 그것이 한계이다.
하니 어느 길을 걸어도 엘프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하이 엘프로서는 그 마법이든 정령이든 한 가지 길만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 야안이 추론한 것이 정답이었다.
이방인이라 해도 이 경우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여 직업을 현자로 잡은 이방인이 야안과도 같이 여러 가지 길을 겸하게 되면 그것은 망캐로의 지름길을 간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게임을 대하는 이방인의 태도는, 어떤 길이든 초인에 오른 뒤 더 이상 한계라 생각할 경우 그제야 빠른 전력의 상승을 위해 다른 길을 가는 게 정답이었다.
다행히 아리스가 이방인에게 각성 스탯이라는 것을 주었으니 그것을 이용한다면 어느 정도 다른 직업의 경지를 높일 수 있을 터이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사실 야안처럼 힘과 민첩뿐만 아니라 신력 정령력까지 같이 올리며 캐릭터를 키울 이방인이 어디 있겠는가?
오직 NPC이면서 이방인인 야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이 아리스의 세계는 현실이며 전부였으니.
여하튼 하이엘프인 경우만 그러한데 그에 더해 주술과 검, 그리고 신관의 길까지 가는 야안에게 있어 그 괴리감은 다른 이방인이었다면 애초 포기했을 게임일 터이다.
한데 다행히 그에게는 전설의 추종자라는 직업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전설의 추종자가 히든 직업인 이유가 이것에 있는 것이다.
본래라면 드래곤들이 그런 괴리감들을 막아주며 그를 수련시켜 전설의 현자로서의 완성을 도울 것인데 야안은 그 괴리감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 괴리감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으니 자연히 한쪽의 길의 경지가 오르면 다른 길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주술인 경우는 특이하게도 초인에 준한 경지에 들어서야 참오가 가능한 무의식을 기반으로 한지라, 이 때문에 야안이 살았던 시대의 샤 대륙의 융제국이 이 주술을 모아 연구하였다.
익히지 않다고 해도 수련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으니 그들이 진리의 길을 가면서도 주술을 연구하고 참오하는 것은 이런 연유가 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야안은 미숙한 전설의 현자를 선택하였고, 그 선택은 짧게 보면 모르나 길게 보면 옳은 선택이었다.
[미숙한 전설의 현자.
그대의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 이 직업은 전설의 현자로의 길을 걷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야안은 다른 선택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았다.
잠시 현혹되었지만, 결국 그 자신이 가야 할 길의 최종 장소는 이 전설의 현자였기 때문이다.
곧 칭호가 바뀌었고 야안의 정보창에도 변화가 생겼다.
[레벨 : 1,012
직업 : 미숙한 전설의 현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 제왕지기(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11,220
마나량 : 51,560
명성 : 7,200
힘 : 521(+40)
민첩 : 482(+40)
행운 : 454(+40)
지혜 : 478(+40)
신력 : 32 (+40)
마나 : 2,538(+40)
정령력 : 664 (+40)
각성의 스탯 : 0
분배되지 않은 스탯 : 12]
직업이 미숙한 전설의 현자로 바뀌면서 올 스탯이 20씩 올라서게 된 것인데, 정확히는 15가 상승된 것이 맞았다.
신력의 스탯을 올리는 데 다섯 배의 스탯이 필요하다 생각한다면 레벨로 따지면 165에 올라서야 가능한 일이다.
조금 전 소모된 주술력과 마나가 차올랐고, 육체의 힘 또한 변함을 크게 인지할 정도로 변모되었다.
단순히 이것을 본다면 그래도 각성의 스탯의 소모로는 아까운 면이 있으나, 야안은 직업이 미숙한 전설의 현자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를 느끼며 결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확신했다.
이전에는 마법과 검, 주술, 정령을 연계하여 펼칠 때 아무래도 너무 다른 길이라 이질적인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이질적인 면이 사라진 것 뿐만이 아니라, 마치 이 앞서 네 가지가 하나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 하나하나를 두고 본다면, 다른 것이 분명한데 거대한 하나의 곁가지로만 느껴지니 그것이 놀랍다.
‘이것이 전설의 현자가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하나하나의 경지에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지만, 그 전력 상승은 20%는 늘어난 것 같으니.
지금으로서는 한 번에 두 가지 힘을 펼치는 게 고작이지만, 앞으로 저마다의 길의 경지가 높아진다면, 네 가지의 힘을 한 번에 펼치는 게 가능할 터였다.
이것은 사실 대단한 이점이다. 검기에 마법을 응용해 그 힘의 증폭이나 그 성질이 변형할 수 있으며 마법에 검기를 부여할 수가 있다. 주술과 마법을 혼합하여 펼칠 수 있게 되는데 주술의 그 뛰어난 효율성이 마법에 적용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마법을 펼칠 때 쓰이는 마나의 소모를 크게 줄일 터이다.
정령과 검의 조합은 어떠한가? 검기에 유피테르의 의지가 녹아들 것이니 그야말로 검강 못지않은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것인가?
훗날 검강에 유피테르의 의지가 녹아드는 게 가능해진다면 지난 로블랑이 올랐던 검에 크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 *
각성의 스탯으로 인해 직업이 미숙한 전설의 현자로 진화하게 된 야안은 그날 이후 레벨을 올리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스탯의 중요성을 알기는 했지만 사실 그간 야안은 스탯을 올리는 데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스탯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그 스탯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 게 더 중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한데 이 각성의 스탯의 등장으로 그 생각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수련의 시간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이 축복의 혜택이 얼마나 득이 되는 것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상대할 자들은 리치왕 케르몬 같은 그 무시무시한 권능과 힘을 지닌 악마들이였다.
이번에는 이종족 연합과 붉은 노을의 각성 그리고 리트담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같이하여 이겨냈다지만, 다음에도 이 같은 동료들을 만나 악마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그 악마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악마를 홀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강해져야 한다.’
그랬다. 강해져야 했다. 이번 전쟁에서 야안은 적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수준인지 알게 되었다.
이에 마음은 절로 촉박해 졌지만 그렇다 하여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야안은 마음을 비우며 현재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그는 마침 이종족 연합의 전쟁을 상기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승기를 잡은 데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이곳 성에 자리하려 했으나 그러기에 이 기회가 아까웠다.
다행히 그에게는 하늘 산이 내어준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위시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 물품이 자리했고, 그것을 이용한다면 혹시나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마법 물품은 100일에 단 한 번 펼치는 제약이 자리하기에 그는 만약을 위해 리치왕 케르몬의 등장에도 함부로 쓰지 못했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리치왕 케르몬이었고, 이것을 이용해 하늘 산에 가 도움을 청하기로 어려웠다.
하늘 산에게 이 소식을 알린다면 반드시 그가 나설 것인데, 이미 죽음을 기다리는 하늘 산의 노쇠한 몸이 이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것은 바 대륙을 안정시키려는 야안의 계획이 전반적으로 크게 어렵게 되어 버린다.
아니, 그 이전에 벌써 두 번이나 스승을 눈앞에서 잃은 야안으로서는 다시 스승의 죽음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한 연유로 결국 마지막을 기약하면 아직 쓰이지 않은 것인데, 기이하게도 이번 기회에 용이하게 쓰일 수 있게 되었다.
푸른 풀과 리트담은 야안의 그 같은 사정을 듣고 걱정하지 말라 이야기하며 그의 의견을 밀어주었고, 그렇게 연합전선을 떠난 야안은 이틀 만에 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스로 회복 마법과 진체의 술로 몸을 안정시키며 밤낮을 달린 끝에 열흘의 거리를 이틀로 줄인 것이다.
야안의 등장에 놀란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놀람도 잠시 삭막한 전장을 앞두고 있음에도 붉은 노을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야안의 등장을 반기였다.
비록 푸른 잎에게서 야안이 회복하였고 곧 전장에 도착한다는 것을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그 위대한 전투를 하였던 그가 이처럼 회복하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눈앞에 나타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예상한 시간을 뛰어넘은 야안의 등장은 놀라운 일이었다.
붉은 노을이 큰 미소를 입가에 번지며 이마를 두 번 치고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위대한 친우여 그대를 진심으로 환영한 바이다.”
그의 말에 야안 또한 그의 예법을 따라 이마를 두 번 치고 가슴에 올렸다.
“위대한 전사께서 이 치열한 전장에서도 무사하신 듯하니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그 말에 붉은 노을은 그 거대한 손으로 크게 가슴을 치며 웃음을 흘린다.
이후 많은 이들과 덕담이 자리한 인사를 나눈 야안은 곧 그들로부터 앞으로 진행될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야안은 그에 맞추어 몬스터들을 사냥하기로 이야기를 맞추었다.
이미 미숙한 전설의 현자로 직업이 진화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더욱 효율적인 몬스터들의 숨을 끊을 수 있게 된 그였다.
그곳에서 반나절의 휴식을 취한 야안은 이들에 앞서 먼저 이야기한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안은 그 이동 과정에서 퀘스트를 하나 받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벨카와 그 세력을 멸하는 퀘스트였다.
확실히 거인 족이 고전하였을 만큼 이 퀘스트 또한 그 난이도가 낮지 않았다. 등급은 AAA+로 지난 연합전선을 지키는 퀘스트에 비해 두 단계가 높은 퀘스트였다.
‘마침 잘 되었군.’
다른 때와 달리 레벨업을 중시하는 만큼 야안은 이 퀘스트를 크게 반겼다. 더구나 이것은 전장에서도 큰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으니 기꺼운 일이다.
그렇게 동남쪽으로 움직이던 야안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전과는 달리 스탯을 크게 아끼려 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크게 레벨을 올리려 한 것이 그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주술이 마법과 함께 펼쳐지게 되자 그의 주술의 위력은 한 층 더 강력한 힘을 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