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84화
지난 그가 일으키던 열다섯 마리 괴수들의 힘이 초입에 들어선 중급 익스퍼트 검사였다면, 지금은 절정의 기력이 자리한 중급 익스퍼트 검사의 힘을 보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괴수의 특성상 중형 이하의 몬스터들에게는 도살하는 것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데다 야안이 그들과 어울려 적절하게 진형을 변형하여 그 힘을 배로 끌어올리니 그야말로 학살이라 하여도 무방할 일방적인 전투가 계속되었다.
주술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마나로 펼치는 마법은 야안에게 큰 무기가 되었다. 검과 정령을 같이 펼치게 되면서 검기만으로도 검사 못지않은 살상력을 보이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야안은 그야말로 밤낮을 쉬지 않고 검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간 중간 리젠으로 상처를 회복하며, 스탯을 이용하여 체력과 마나, 정령력, 주술력을 채워 올리며 싸우는 야안은 마치 신화시대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은 채 나흘이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야안의 손에 목숨을 잃은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60만이 넘었다. 현재 이곳 몬스터들의 숫자가 7~800만에 달하니 그야말로 홀로 십 분의 일 가까이 지워버린 것이다.
초대형 몬스터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으나 이들 또한 무인식의 술을 펼치는 야안에 허망하게 그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무인식의 술을 파악할 수 있는 초인의 경지에 달하는 초대형 몬스터들의 숫자는 이 수많은 몬스터 중에서도 몇 되지 않은데다, 설사 야안이 만났다고 할지라도 무인식의 술로 인해 몬스터 장벽을 뛰어넘어 그 몬스터만 상대하면 될 일이니 야안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벨카는 갑자기 나타난 이 폭군에 의해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말로 단 일개의 존재 때문에 그나마 방어선을 갖춘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믿고 싶지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자신은 물론 자신의 적수인 붉은 대지라 해도 그 같은 위용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곧, 그로 인해 무너진 방어선을 뚫고 동으로 서로 적들이 감싸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폭군이 동으로 거인들이 서로는 연합 종족들이 몰려드니 그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벨카는 죽음의 위기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천년을 살아온 그의 처세술은 회피를 선택했다.
워낙 강력한 진형을 갖춘 동, 서로는 답이 보이지 않으니, 폭군이 자리한 뒤로 도망치기로 결심을 굳힌 것이다.
혹시나 만날 폭군의 미끼가 될 최정예 몬스터 군단을 둔 채 그는 뒤로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틀이 더 지나, 다시 만난 몬스터 군단의 마지막 남은 몬스터들의 목을 취한 야안은 신성 마법과 마법으로 다친 상처를 치료하다 경계를 보이던 유피테르로부터 강력한 몬스터 부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초인 급의 몬스터가 셋에 초대형 몬스터가 다섯, 그 외 강력한 힘을 보이는 대형 몬스터가 오천인 부대였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마치 붉은 노을과도 겨룰만한 힘을 지닌 몬스터가 그들을 이끄는 게 아닌가?
‘이자가 벨카로구나. 도주를 하는 것인가?’
워낙 교활한 구석이 있다고 하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세히는 모르나 지금쯤이면 동, 서로 이곳을 압박할 것이니, 살려고 한다면 지금 도주하는 것이 맞다.
“나로서는 좋은 일이로군.”
이 정도의 몬스터라면 적지 않은 경험치를 줄 것이 분명하니 야안으로서는 반가울 뿐이다.
분명 벨카라는 적은 강했다. 하지만 그간 야안은 실전을 통해 미숙한 전설의 현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전력이 더 상승하게 되었으니 그를 잡아내는 확률은 상당히 높았다.
야안은 도주하기 바쁜 벨카가 초인 급의 몬스터들이 포함된 이 막강한 전력과 같이 움직이는 이유가, 자신을 만났을 때 이를 미끼로 벗어나려 한 것임을 알았기에 그에 맞추어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술과 마법으로 무수한 함정을 만들어 진형을 어지럽히고, 유피테르에게 열다섯 마리의 괴수들을 맡긴 뒤, 그 자신은 무인식의 술로 몬스터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력을 다해 초인 몬스터 급 하나를 격살한 후 바로 도망치는 벨카를 잡을 생각이었다.
‘카아아악!’
모든 것을 다 때려 부수며 움직이던 몬스터 대군의 선두에서 그 비명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연쇄적으로 뒤로 갈수록 그 비명이 요란해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밟던 땅이 푹 꺼지며 단단한 돌창에 몸이 꿰이기도 했으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갑자기 거대한 바위들이 모습을 보여 그 충격에 머리가 터져나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함정을 계기로 갑자기 땅에서 바위가 솟아 올라오거나 땅이 물렁거리며 그들을 삼키는 등의 일들이 연쇄적으로 후미 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순식간에 몬스터 대열의 절반 이상이 무너진 것인데 그때를 기점으로 어디선가 하얀 번개가 그들의 중심으로 떨어지더니 이내 수십여 개의 뇌전의 가닥으로 나뉘었고, 몬스터들은 그 뇌전과 부딪힌 순간 검게 타 버려졌다.
몸을 쪼개어 몬스터들을 제거하던 유피테르는 어느 한 초대형 몬스터의 앞에서 그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이 기이한 정령체에 살벌한 기세를 보이던 초대형몬스터가 엄청난 힘을 터뜨리며 노렸으나, 이미 상위 정령 마스터의 정령보다 지성이 뛰어난 그에게 그 같은 투박한 공격이 통할 리 만무할 일이다.
‘콰가강-’
오히려 강렬한 뇌전을 반격 맞이하게 되었고, 이에 몬스터는 상당한 항마력을 가졌음에도 이 힘을 이기지 못해 비명만을 고래고래 질러 대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것을 기점으로 야안이 만들어낸 열다섯 마리의 괴수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미 유피테르는 여러 차례 이 괴수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기에, 그는 매우 효율적으로 괴수들을 다루었는데, 이들 괴수들의 연합공격에 대형몬스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야안은 그런 유피테르의 모습에 잠시 감탄을 하다, 마치 날듯이 앞으로 쏘아 나가기 시작했다.
무인식의 주술을 펼친 터라 몬스터들은 더 이상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야안은 이제 넷 남은 초대형 몬스터의 목을 검강을 펼쳐 빼앗고는 뇌전검법 1초식을 펼쳐 자신의 동장에 당황한 초인급 몬스터 하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고, 기습의 묘미가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제대로 붙었다면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를 처리한 야안은 소비된 마나와 힘과 민첩, 주술에 1씩 올리며 그대로 앞으로 쭈욱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를 파악한 벨카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 힘에 맞지 않는 뛰어난 생존 본능을 지닌 것인데, 하기야 그렇지 않다면 1,000년이나 그 삶을 살아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붉은 대지조차 잡지 못한 움직임을 지닌 벨카였지만 그 상대가 야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축지술에 바람의 술과 토네를 섞어 펼치는 야안을 떨쳐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도망치는 노루를 노리는 화살과도 같은 형국이었고, 곧 이 노루는 화살에 꿰뚫리게 되었다.
‘키이이이익-’
그 추진력을 그대로 살린 채 야안의 검강에 맞이하게 된 것이니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신장과 500톤이 넘는 무게, 네 개의 머리를 지닌 벨카라 할지라도 그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교활한 만큼 생각의 전환이 빨라 이내 벨카는 그 비명을 지르기 무섭게 야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네 개의 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용암을 보는 듯한 불길은 순식간에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어내었고, 몸속에 숨겨져 있던 십여 개의 손들이 튀어나와 야안을 노렸으며 마법과 비슷한 형태의 원리가 거대한 돌개바람을 만들어내며 노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그의 영역에 자리한 모든 것이 불타고 부서지며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인데, 야안은 그 재난과 같은 공격의 중심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마법과 주술이 함께하며 돌개바람을 지워내었고,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내는 십여 개의 손은 야안의 건곤대나이에 오히려 서로 얽거나 상처내기 바빴다.
용암 또한 이미 바람의 술로 자신을 보호한 데다 그전에 카라진을 펼친 야안을 다치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벨카는 그 힘도 대단하나 이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연계에서 그 전투력이 크게 상승되어 지금까지 위기의 순간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인데, 야안은 그보다 더 다양한 힘을 다루며 그 연계나 기교는 훨씬 고차원적이었으니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벨카에게 다행인 점은 강력한 항마력과 재질이 그의 육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워낙 크고 거대한지라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야안의 검강도 쉽사리 큰 이득을 취하기 어려웠다.
몇 번의 접전에서 도저히 야안에게 상대하지 못함을 깨닫자 벨카로서는 공격보다는 최대한 방어의 형태로 시간을 끌기 바빴다.
유피테르와 야안이 일으킨 괴수들이 아무리 뛰어난 전술로 그들의 진형을 어지럽힌다고 해도 결국, 그 혼란이 수습되면 유피테르와 괴수들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하니 다시 부하들과 함께 야안을 몰아붙이다 그 틈을 살려 도망치면 아무리 야안이라 해도 그를 잡기에 어려움이 크다.
아무리 야안이 그보다 빠른 재간을 가졌다 해도, 1,00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았던 만큼 이곳의 진형은 그가 훤히 꿰뚫고 있는지라 작정하고 도망친다면 잡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놓칠 수 있는 확률도 낮지 않아, 야안은 서둘러 결론을 내야 함을 깨달았고 곧 더욱 적극적으로 검을 다루었다.
마나와 체력의 소모를 스탯으로 채워내며 극상에 달한 뇌전검법들을 쉼 없이 펼쳐 목 하나와 아홉 개의 팔을 잘라내어 버린 것인데, 그제야 숨 몇 번 고를 여유가 생긴 야안은 곧 뇌전의 정화의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고통에 힘겨워하던 벨카는 갑자기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마나의 변동에 깜짝 놀라 그 근원지를 살피다 이내 그것이 자신이 상대한 폭군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리치왕 케르몬 마저 끝을 내게 한 그 거대한 힘에 두려움을 품은 벨카는 온몸에서 피를 뿌려 대며 도주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준비를 마친 야안의 검에 벗어날 수 없었다.
심연의 일격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고, 곧 야안의 신체가 그 크게 벌어진 공간을 뛰어넘더니 벨카의 몸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쿠구궁. 쿠궁. 쿵. 쿵-’
남은 세 개의 목과 팔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의 거대한 육체 또한 마치 천신의 검에 베인 듯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놀라운 것은 그 거대한 신체가 쪼개졌음에도 그 속에 자리한 내장들과 피가 대지에 쏟아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강렬한 뇌전에 그대로 타 버리거나 증발해 버린 것인데 그 때문인지 주위는 피 안개로 붉게 물들어 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