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91화
사 황자 측이 자랑하는 타이탄 부대나 되어야 이들을 저지할까? 방패병 따위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간 성장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야안은 지난 두 달가량을 그 스스로 연구한 것을 실험하기 위해 에렌 산맥에서 몬스터들을 베어냈다.
그 과정에서 두 달 동안 상당한 레벨 업을 하게 된 것인데, 현재 그의 레벨은 지난 1642 레벨에서 240의 레벨을 올려 현재 1,882레벨에 자리해 있다.
중간에 에렌 산맥을 지배하던 초대형 몬스터의 영역을 지워버린 것이 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스탯을 소모하여 현재 잔여 스탯의 수는 592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1,999레벨까지 117정도의 레벨만이 남았을 뿐이니, 이번 전쟁이 끝이 날 때쯤이면 다시 그 2,000레벨을 가기 위한 자리에 위치할 터였다.
지난 야안이 거두어들인 현재 그의 옆에서 말을 몰고 있는 제크 기사 또한 지난 반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큰 성장을 거두었는데, 이는 야안의 가르침 덕분도 있지만 리트담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자이한이 드래곤 산맥에 가기 전 거두었던 두 제자에게 펼친 체질의 개선과 같은 것을 제크에게 펼친 덕분이다.
아니, 실상 비교를 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리트담이 그에게 펼친 것은 특별했다.
환골탈태는 아니지만, 노화로 생긴 신체의 불균형과 전장에서 입은 상처 따위를 바로 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뇌의 무의식 부분을 건드려 야안이 말한 좋지 않은 버릇들을 고쳐 준 것이다.
실제로 그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6~7년의 세월이 걸리게 마련이며 그렇다고 완벽하게 바꿀 수 없는 일들을 단 한 번의 주술로 바꾸었으니, 탈인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상급 익스퍼트 초입에 자리하던 제크 경은 야안의 가르침을 빠른 속도로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학습 능률이 최고조에 있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제크 경이 다루는 검법은 북부 지방에서도 이름 높은 하야크 27식으로, 북부 지방 특유의 사나운 면이 자리한 검법이었다.
거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살기가 짙은 검법인데, 검법 자체는 뛰어나나 제크 경과 이 검법은 상성이 맞지 않는다.
제크 경 특유의 그 절제된 고지식한 이성과 마치 야수적인 광폭함을 요구하는 하야크 27식은 그 기질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뛰어난 검법인 것은 사실이었고 또한 제크 경의 뛰어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복수를 위해 생사를 도외시하는 전투의 경험 속에서 그는 상급 익스퍼트라는 뛰어난 경지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야안은 이 점에 대해 잘 아는바. 하야크 27식을 그가 혼란이 없을 정도로 그의 기질에 맞춰 변형시켜 주었다.
변형이라 하지만 그것은 실상 기초부터 새로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는 일로, 어떤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그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현자로서도 초인에 올라선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크 경은 조금은 변형된 하야크 27식이 놀라울 정도로 자신에게 맞음을 수련하면 할수록 느끼고 있었다.
그는 새로 모시게 된 주군의 위대함을 그 누구 못지않게 알고 있다. 야안이 그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그에게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인데 제크 경은 자신과는 그 스케일 자체가 차원이 다른 주군에 감탄과 탄식을 함께 흘린다.
그토록 위대한 자를 주군으로 모신 것에 감탄을, 그에 비해 자신의 보잘것없는 능력에 탄식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았다.
초인의 벽을 넘어서겠다. 그 일념 하나에 그는 생활의 모든 것을 검을 수련하는 데 맞추었다. 다행히 주군의 아군이신 리트담의 도움과 그 자신보다 더 자신을 파악하는 주군의 가르침은 그런 그를 무리 없이 이끌어주었다.
그 과정은 마치 막힘없는 도도한 강물과도 같았고, 그렇게 지금의 그는 현재 북부 연합의 기사 중에서도 그의 검을 막는 이는 이제 몇 되지 않았다.
고작 6개월 정도의 변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그에 자만은커녕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도 길 것을 알기에.
하지만 워낙 성정이 이성적이고 침착하여 다급함에 일을 그르치지도 않으니 가르치는 야안으로서도 큰 재미가 있는 제자이자 수하였다.
‘쿠구구궁. 쿵. 쿵-’
사신을 통해 전장으로 정해진 드넓은 평원에 두 세력의 군대가 마주한다.
상식적으로 사황자 측으로서는 침공을 받는 입장으로 성 안에서 지키는 것이 좋으나, 200만이 넘는 병력을 고스란히 담을 성은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되면 그들의 강점인 십만의 기마부대와 타이탄 부대를 살릴 수도 없다.
그 병력의 숫자만을 따져보아도 그들이 우세하니 긴 시간이 걸릴 수성 전에 투자하여 훗날을 도모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보다 단시일에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 전쟁은 져서도 안 되고 이긴다 할지라도 그 시일이 길어져서도 안 된다. 빠르게 몰아붙여 승리해야만 다른 육대 세력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비수는 남겨야 했다.
그런 그들의 태도는 셀리온 공작 측으로서는 크게 반길 일이었다. 이 점을 노리고 여러 가지로 사전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되니 참모진으로서도 얼떨떨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하기야 야안과 리트담이라는 걸출한 자가 있음을 모르는, 그저 베론 제국의 지원과 이종족의 연합의 결성으로만 아는 그들로서는 이 결정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리트담과 야안은 자신의 모든 전력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초인 정도의 능력을 보일 것인데, 이는 그만큼 다른 육대 세력의 연합을 막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한 손이 열손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라 결정한 일이었다. 베론 제국이 돕고 이종족 연합이 함께한다지만, 사 황자 측 세력을 넘어선다고 평가받는 세력이 한두 곳이던가?
물론 그렇다고 할지라도 초인 두 명이 더 추가된다는 것으로도 큰 전력의 상승이 일어난다.
사 황자 측에 자리한 스물도 채 되지 않는 상급 익스퍼트 급 중 절반 이상이 이들에 묶여야 할 상황이니.
이번 전쟁이 끝이 나면 대륙은 야안과 리트담의 두 절대자의 이름에 주목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5만에 달하는 거인족 부대의 수장은 예전 야안이 처음 만난 황금 주먹의 아버지인 황금 심장이었다.
본래는 붉은 노을이 함께 하려 했으나, 그는 현재 속성으로 붉은 대지에게서 위대한 전사의 힘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와 함께 붉은 노을의 또 다른 형제인 붉은 영광이 붉은 대지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붉은 노을이 바 대륙을 벗어나 라 대륙에 정착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를 따르는 십만의 전사들과 함께 야안을 따라 왕국의 건설에 힘을 실기로 한 것으로, 현재 그들 중 절반이 이번 전쟁에 투입되었다.
황금 심장은 지난 그가 보았던 황금 주먹의 아버지다운 뛰어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고, 야안이 원하는 바를 놀라울 정도로 포착하는 눈치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로서 몇 번의 모의 전투에서 거인족의 돌파능력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라움에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엄청난 돈이 들어간 마법무기로 무장한 십만의 기마병들이라 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둥, 둥, 둥-’
전장을 고조시키는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셀리온 공작 가의 진형은 넷으로 나뉘었다.
약속한 대로 날개라 할 수 있는 양쪽 끝은 모롤타 종족과 태양 종족이 자리를 차지했고, 후미에는 드워프 부대들과 엘프 정령사 부대가 자리했으며, 물을 다스리는 도론 종족은 리트담을 선두로 후방에 위치를 잡아 비행선으로 변모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야안을 선두로 카사 종족과 거인족이 중앙을 맡았고, 곧 북소리가 절정에 오를 때쯤 그들은 모든 것을 지워버릴 듯한 큰 위세를 뽐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를 지닌 야안의 괴수들은 그 무게에서 만들어지기 힘든 몸놀림을 보이었는데, 이는 야안이 바람의 술과 토네를 섞어 새로운 체제의 주술을 만들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족 연합군이 움직이기 무섭게 인간들도 그 뒤를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만이 넘는 정예병들이 진열을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자 대지는 무너질 듯 요란스러운 진동을 일으킨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으며 장비 부딪히는 소리가 하늘 저 끝까지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맞아 사 황자 측에서도 이백만에 달하는 거대한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명장이라 할까? 페르난도 대장군은 그 명성에 맞게 그 엄청난 병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효율적으로 나누어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 명령 통제 지휘능력이 극에 달해 있었는데, 이 같은 일을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난세의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최정예병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간단한 소통으로도 지휘관의 뜻을 알아듣고 움직이며, 신병들을 그간 쌓아놓은 노련함으로 다루니 이 같은 모습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여 그에 오는 압박감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마치 전장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물의 입 안을 보는 듯했다. 포픈 후작이 이끄는 기사단과 기마병이 혀가 되었고, 군단 하나하나가 이빨이 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는데 그런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셀리온 공작 측의 병력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곧 그 거대한 두 세력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쾅 쾅.’
가장 먼저 부딪힌 병력은 역시나 야안이 이끄는 중군의 돌격부대와 포픈 후작 기사단과 기마병이었다.
이 포픈 후작의 병력 가장 선두에는 기사단이 아닌 이천에 달하는 타이탄 부대가 자리했는데, 그것은 거인들의 돌파력을 약화시키려는 조치였다.
그리고 생각대로 거인들은 타이탄 부대를 찢어내는 과정에서 그 돌격의 힘이 약화되었고, 그를 노린 포픈 후작이 스스로 창이 되어 기사단과 함께 중앙을 돌파하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야안의 존재가 문제였다.
야안은 검에 검강을 일으켜 돌격하는 포픈 후작을 맞이했고, 동시에 야안과 같이 한 괴수들은 그 뒤에 다가오는 기사단을 덮쳤다.
순간 기사단이 타는 말들이 놀라 주춤거리며 진열이 파도치듯이 흔들린다.
“강하군!”
단 일격을 나누었을 뿐이었지만 포픈 후작은 야안의 검이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님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