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292화 (292/385)

야안 292화

20. 마인

아니, 어쩌면 반수 정도는 자신이 뒤처진다고 해야겠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자인가?’

마치 예전 한 차례 붙었던 제국 최고의 검이기도 한 밸론 공작의 검을 맞이하는 듯한 충격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겨우 이십 대로 보이는 외모를 본다면 적어도 오십 대쯤에 초인에 올라섰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것을 고안한다면 눈앞의 이자는 상상치 못한 검의 천재였다.

제국의 긴 역사에서도 이런 실력자는 한 손에 꼽을 만큼.

그랬다. 그는 이 새롭게 부상된 초인을 그렇게 평가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판단 착오였음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가 자랑하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패의 의념이 자리한 그의 검강은 야안의 검과 닿기 무섭게 그 하고자 하는 바의 목적을 잃고 말았다.

마치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시각을 잃고, 청각을 빼앗기는 듯이 말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자신의 검강으로 인해 생겨난 반발력은 그의 그 강건한 신체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육체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마치 제 몸의 통제를 잃어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 결국 발이 꼬였고, 손이 꼬여 버리게 되었다.

‘스팍-’

겨우 10타도 채 되지 않아, 제국이 자랑했던 초인 중 한 명의 목이 허공을 비산하였다.

“후작님!”

그를 따르는 중년의 기사는 순간적으로 지금 전장에 자리했음을 망각했을 정도로 정신을 잃어야 했고, 울분에 찬 검을 내질렀으나 그 또한 야안의 검에 심장이 부서지며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충정을 보이는 그의 죽음에 잠시 야안의 시선이 왔다, 이내 고개를 돌려 나아갔다.

‘크르르릉-’

그 자신이 일으킨 괴수들이 야안의 뜻을 따라 몸을 던지듯이 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곧 야안은 그 중심에서 수많은 기사와 기마병들을 갈라내며 이들의 진형을 사분오열하는 데 성공했다.

야안은 이제 머리를 잃어버려 이제 팔다리 따위만이 남은 그것을 카사족과 4만의 거인족에게 맡기고는 이내 황금 심장이 이끄는 거인들과 함께 겹겹이 쌓인 적의 군진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적진의 머리.

이 놀라운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 페르난도 대장군을 잡는 것이었다.

‘그만 잡으면 이 전쟁은 적은 무너진다.’

물론 적진에 페르난도 대장군 이외에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자리하나, 문제는 페르난도 대장군 같은 전권을 휘어잡지 못한 것에 있다.

야안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페르난도 대장군은 너무나 뛰어난 명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문제는 있다. 바로 그 자신의 뛰어난 능력에 취해 수하들을 믿지 않는다는 게 그의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지나친 재능이 독이 된 것인데, 사 황자 측에서도 이에 대한 폐해를 잘 알고 있지만, 그로서 얻어지는 군의 뛰어난 전력의 상승을 포기할 수 없어 놔두고 있었다.

물론 페르난도 대장군 또한 그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그에 조처를 했지만 역시나 그 성정을 바꾸기는 어려워 작은 전권만을 수하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야안은 그에 대해 아는바, 지금이 아니면 그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으로 여기었다.

확실히 이번 전쟁에서 짜인 전략을 보면서 상대측은 자신의 존재을 알지 못한다는 확신한 것인데, 이 때문에 본래의 계획에서 벗어나 포픈 후작을 빠르게 처리하였다.

이 기세를 살려 페르난도 대장군을 잡는다면 더 이상의 무의미한 살생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였다.

물론 그 과정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요도가 높은 페르난도 대장군답게 그의 위치는 마치 함정처럼 이어진 거미줄의 중심에 자리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상대가 다른 이었다면 오히려 그것은 페르난도 대장군에게 기회가 되어 한 명의 초인을 잡고 다시금 반전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불행히도 야안의 돌파력은 거인의 왕인 붉은 대지에 못지않았다.

‘스스스슥-’

마치 뱀이 혓바닥을 내밀 듯한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야안을 막아서던 모든 적병이 죽거나 전투불능이 되어 쓰러졌다.

그 상대가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장갑병이든 일말의 타이탄 부대든, 마법 병대이든 간에 그 누구도 야안이 이끄는 돌격대를 막는 이는 없었다.

야안이 정이 되어 찍으면 그에 생긴 빈틈 사이로 거인들이 치고 나아간다. 둑이 무너지듯 적병들은 갈라져 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페르난도 대장군은 서둘러 밀집병력의 형태를 구사하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야안의 빠른 돌파력에 채 갖추어지지도 못한 채 모이다 흩어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페르난도 대장군의 옆에 호위를 한 상급 익스퍼트 검사 둘과 상위 비기너 정령사 하나와, 고위 현자 비기너가 병력의 일부를 이끌고 야안을 상대하려 했지만, 이미 탄력을 받은 야안의 움직임을 멈추는데 그들로서는 큰 부족함이 자리했다.

차라리 야안 혼자였다면, 선을 그어놓은 능력의 제한에 그들이 저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야안과 함께하고 있는 거인들이었다.

야안이 중심이 되어 함께한 일 만에 달하는 거인들의 돌파력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신의 창을 보는 듯했다.

십여 개에 달하는 인의 벽을 넘어섰음에도, 그들의 사상자 숫자가 일천도 되지 않은 것을 상기한다면 이들의 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이 상급 익스퍼트 검사 하나를 베었으며, 그 야안의 뒤를 바짝 따라붙던 황금 심장이 남은 검사 하나를 맡았다.

이후 상위 비기너 정령사를 뒤에서 함께 해온 상급 전사 다섯이 그들을 막아내었다.

그제야 이들의 전력이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것임을 파악한 적측의 현자는 뒤로 몸을 빼내 페르난도 대장군을 호위하려 했지만, 이도 야안이 발끝으로 내어 찬 적군의 검에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늘이 버리신 건가?”

가슴 깊이 올라서는 울분에 그는 토해내듯 외쳤다.

마법을 캐스팅하는 중요한 시점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인데, 실상 이는 그보다 고차원적인 현자의 경지에 오른 야안이 꿰뚫어 보았기라는 것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

‘스팍-’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채 그의 목을 친 야안은 그들이 데려온 병사들의 질린 표정을 무심히 바라보며 검을 움직였고, 곧 그들 중 책임자들로 보이는 병사들이 죽음을 맞이하자 자연히 신병과도 다름없는 병사들은 기가 질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을 터주게 되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야안은 더 이상 이들을 베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넘어 이제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페르난도 대장군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쿵, 쾅. 쾅.’

지상에 엄청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면, 저 하늘 위에서도 그 못지않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백에 달하는 최소 오천 톤이 넘는 비행선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그 무시무시한 화력을 뽐내는 비행선이 아닌 붉은 망토를 너울거리는 리트담이었다.

그가 손을 흔들 때면 자신의 수천 배에 달하는 배들이 조각조각이 났으며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 불길이 비행선을 휘젓기도 했다.

그뿐이던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조가 강철로 이루어진 비행선들을 때려 부수었으며, 그가 어느 비행선에 올라서 발을 구를 때면 엄청난 진공음이 비행선 안을 울리어 탑승한 이들의 귀를 마비시키곤 했다.

비행선의 질과 숫자를 놓고 보아도 우세한 면이 있건만, 리트담이 이렇게 활약을 보이자 전쟁이 시작 된 지 1타콤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적진에서 잃고만 비행선의 숫자만 해도 70여 척이 넘었다.

그에 반해 아군 측은 단 6척밖에 잃지 않았으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하늘을 제패하게 되는 것은 북부 연합 측이 될 것이다.

그랬다.

하늘을 지배한다는 것은 앞으로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니, 이 전쟁을 잡았다고 이야기해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야안의 등장에 페르난도 대장군의 지휘력이 크게 떨어진 만큼, 그 위기는 마치 도미노 현상을 보는 듯 가파르게 이어져갔다.

‘카가가강, 쿵 쿵-’

그래도 조금 전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듯 어느새 수천의 인의 벽이 쌓여 페르난도가 물러서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를 잡으면 완전히 승기를 잡는 것이 어렵게 잡은 기회를 이렇게 놓칠 수 없는 노릇이다. 야안은 어느새 상급 익스퍼트 검사를 잡고 따라온 황금 심장에게 지시를 내렸고, 곧 황금 심장은 목숨을 도외시하며 세 가닥으로 나뉘어져 포위하더니 힘으로 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거인족 수백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페르난도 대장군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 목숨 값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거인들의 그 희생으로 인해 틈을 잡을 수 있었던 야안은 자신들을 저지하는 십여 명의 현자들의 공격을 그대로 가르며 나아갔고, 그토록 원했던 목적을 취할 수 있었다.

‘차아악-’

그의 수급을 취하게 된 것인데, 야안은 수급을 취하기 무섭게 아직도 인간들을 밀어붙이는 거인들을 이끌고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번의 일로 이천에 달하는 거인들의 피해가 자리했지만, 야안이 쥔 수급의 존재감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한 바이다.

* * *

“내,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정말.”

사 황자 프로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 황자의 위치에서 당당히 육대 세력 중 하나를 일궈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 전장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외숙부이며,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이였다. 아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은 어머니와 무심한 아버지를 대신했던 부모이자 스승이셨던 그가 죽었다고 하자 눈앞이 컴컴했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끝이었다. 답은 보이지 않는다.

일세를 풍미한 천재 중 천재라 불리던 페르난도 대장군이 직접 가르친 만큼 프로센 또한 군주로서 부족함이 없었으나, 문제는 그가 페르난도 대장군에게 평소 크게 의지하였다는 점에 있다.

또한 그로 인해 인재들을 제대로 대우를 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하였으니, 그가 이처럼 크게 상실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 신하가 그에게 전력을 최대한 유지해 뒤로 물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이제 어디를 간단 말인가?

그가 죽었을 때부터 전쟁은 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제 자신의 세력은 갈기갈기 찢길 일만 남았다.

‘복수…….’

복수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웃음만이 나올 뿐이다.

그때였다. 혼자밖에 없는 그의 처소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 것은.

“복수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차악-’

검에 뛰어난 재능이 자리한 프로센답게 일순간에 허리에 찬 그의 검이 뽑힘과 동시에 검기가 날아갔지만, 마치 기름종이가 불에 타듯 대상에 부딪히기 무섭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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