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94화
‘크르르릉-’
야안을 태운 요란한 몸놀림을 보이는 강철의 괴수가 저 멀리서 돌격하는 적진의 기사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엄청난 무게를 지닌 녀석답게 한 번 대지를 박찰 때면 바위가 떨어진 듯 거대한 진동을 대지에 울리며 대지를 어지럽혔다.
이내 육안으로 상대의 얼굴이 보일 때쯤 야안의 검에서 수십 개의 검기가 터져 나갔고, 곧 야안의 검에서 희뿌연 검강이 일어서더니 가장 앞서 달리던 프로센을 향해 내려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두 힘이 부딪히자 일순간 주위에 자리한 모든 것들이 뒤로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기이한 형태로 변한 기사들은 그래도 스스로 마나를 일으켜 수십여 걸음을 물러서는 것으로 그 힘을 흘릴 수 있었지만, 그 이외에 가장 앞서 있던 일천의 기마병들은 말과 함께 뒤로 나뒹구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로 인해 일순간 기마병들의 질주가 멈추어지자, 그들을 막기 위해 회군한 여섯 기사단 중 1기사단을 제외한 다섯 기사단이 잠시 그 힘에 주춤하다 이내 이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강하다. 내가 상대했던 인간 중에서 가장 까다로울지도. 하지만……. 그것이 다구나.’
그랬다. 그것이 다이다. 죽음의 지배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상대는 단순히 검으로 겨루어 본다 했을 때 백중지세라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놀라운 검을 지녔으나 그것은 야안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인가? 그자는.’
차라리 파란토나 리치왕 케르몬 같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악마였다면 차라리 맘이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비록 검에 실린 검강의 힘은 자신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화려하게 타올랐고, 그 민첩한 움직임도 놀라우나 그 기교는 떨어졌다.
건곤대나이를 펼친다면 충분히 막아설 수 있는 상대라는 말이었다.
‘키기기기긱-’
기이한 소리를 내며 마치 순간적으로 몸이 여러 개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야안을 노리는 프로센의 상태를 보던 야안은 꾸욱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인간이 아니군.’
무엇이라 해야 할까? 악마도 인간도 아닌 저자를. 굳이 표현한다면 마인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그의 상태는 이미 살아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그의 몸속에 자리한 죽음의 지배자의 기운이 핵이 되어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를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야안의 초감각은 그것이 마치 무슨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한지라, 여러 빈틈이 보였음에도 쉽사리 결정타를 입히지 못했다.
그런 야안의 생각과 달리,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이들의 격전은 전장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넋을 빼놓았다.
두 검강의 구가 펼쳐지었고, 거대한 검붉은 기운이 작지만 찬란한 희뿌연 기운을 집어삼키는 것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그 모습은 살아생전 다시 보기 힘든 전투였으니.
적진의 기이한 힘을 뿌리는 기사단을 정리하던 7기사단의 단장 켈 경은 저 무시무시한 전투를 보며 큰 감탄사를 흘렸다.
“놀랍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나 저 같은 힘을 지닌 황자도 놀랍거니와, 그런 힘을 상대로 저토록 효율적으로 상대하시는 야안 경의 검을 보노라면 마치 변화의 끝을 보는 것 같도다. 진정 저것이 검으로 일으키는 변화란 말인가?”
그의 말처럼 마치 강의 극에 오른 검과 변에 극에 다한 검이 부딪히는 듯했다. 하니, 그 오묘한 접점에 검을 잡은 자라면 시선을 떼어내기 힘들 것은 당연한 일이다.
‘휘이이잉-’
마치 태풍처럼 몰아치는 저 시간이 흘러 어느새 파고들었던 기마병들이 모두 제압되고 기이한 기운을 풍기던 기사들 또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셀리온 공작은 야안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에, 이번의 승부를 접점으로 이 전쟁을 끝내고자 병력을 지휘하기 시작했고, 곧 주군이 적진의 중심에 자리한 그들로서는 지휘 통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해 끝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트담 또한 그런 그들을 거들며 도왔으나 그의 기감은 전장의 중심에서 큰 접점을 벌이는 야안과 프로센에 가 있었다.
아니, 그를 중심으로 크게 살펴보고 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나타나라. 꼬리를 잡아주마.”
백 년이 지나 자신이 상대해야 할 자를 미리 보는 것은 훗날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전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꼬리를 숨기고 있는 죽음의 지배자였지만, 리트담은 포기를 모른 채 인식의 주술을 통해 무의식을 크게 각성시켜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야안과 프로센은 마치 끝없는 체력과 마나를 지닌 것처럼 한나절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그 위세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프로센의 경우 오히려 그 흉흉한 기세는 더욱 강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를 상대하는 야안의 입장에서 그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야안에게도 스탯이라는 것이 그를 이대로 계속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오늘로 이 거대한 전쟁의 종점을 찍으려는 셀리온 공작의 의도를 알았던지라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미심쩍은 무언가 때문에 망설이던 야안은 본격적으로 프로센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카가가강-’
과연 야안이 본격적으로 프로센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그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프로센의 검에 자리한 그 검붉은 검강은 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번번이 헛된 땅만을 긁어 댈 뿐이었고, 야안은 그렇게 조금씩 그의 그런 검강의 구에 침입하기 시작했다.
‘투욱, 카아아악-’
자잘한 상처들이 프로센을 어지럽히다, 결국, 왼쪽 어깨가 떨어져 내렸고 프로센은 고통에 괴음을 터뜨린다.
이미 사람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그의 모습은 흉측한 몬스터들조차 귀여워 보일 정도이다.
그런 괴기한 그를 향해 야안의 검은 조금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른 검격을 보이며 그의 검강의 구를 갈라 넘어 프로센의 왼쪽 무릎을 끊어내더니, 결국 검을 쥔 오른손을 잘라내었고 마지막으로 그의 심장을 갈랐다.
야안의 검강에 자리한 뇌전의 기운 때문에 프로센의 전신은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대륙을 크게 호령하던 한 군주의 죽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괴이한 형태의 죽음이었다.
“끝인가?”
한 걸음 크게 물러나 그를 살펴보던 야안이 중얼거린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에 자신이 예민했던 것인 걸까? 생각하는데, 저 뒤에서 거대한 주술의 힘이 일어나더니 야안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동시에, 기괴한 무언가가 야안의 머리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다 이내 주술에 튕겨 지나갔다.
그제야, 야안은 무언가가 자신을 습격하였음을 깨달았고, 재빨리 주술과 마법을 펼쳐 뒤로 크게 물러났다.
‘도대체 무엇인가?’
그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탈인의 경지에 오른 리트담은 무언가 그 낌새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난 리치왕 케르담 때 못지않은 대주술들이 그의 손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자면 심각한 상황인 듯 보였다.
만약 이 자리에 위대한 주술사에 올라선 자가 있었다면 리트담의 주술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알 것이다.
지금 그가 보이고 있는 주술은 인식의 차단 따위가 아닌 공간의 차원을 틀어 버리는 주술이었으니.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얇은 차원의 벽을 생성하여 그것의 침입을 막아서는 것인데, 그 힘은 절대에 가까운 방어력을 보인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호흡 한 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그 놀라운 주술을 스무 번이나 펼치던 리트담은 그 일을 세 번을 더 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겨우 막을 수 있었군. 도대체가 이것은.”
전장을 주시하지 않았다면 결코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죽음의 지배자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가 하고자 한 바는 막아 낼 수 있었다.
“무엇이었습니까?”
야안의 물음에 잠시 그 기이한 것에 대해 생각에 잠기던 리트담이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해 주었다.
“야안 님께서 그것을 느끼지 못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십니다. 저 또한 신경을 곧 두 세우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니 말입니다.
정확히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우나 굳이 이야기하자면 마치 그것은 힘이나 기운 그런 것과는 다른 일종의 그런 힘의 근본을 보는 듯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을 이루는 법칙의 틈을 파고들어 틀어버리는 그런 것 같았는데. 그것이 야안 님을 집어삼키려 하더군요. 조금만 늦었다면 천추의 한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트담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야안이 그것에 당했다면 그에게 큰 고난이 자리했을 것임을 말이다.
야안 또한 리트담의 그 말에 역시나 죽음의 지배자다운 수라 생각하며, 그 아찔했던 순간을 상기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죽음의 지배자에 의해 당했을 뻔했군요. 무언가 미심쩍다 느낌이 들었지만, 설마 이런 것일 줄이야.”
리트담은 야안의 그 말에 그저 미소를 크게 보이며 말했다.
“무사하신 듯해 다행입니다.”
그 스스로보다 자신을 생각한 것 같은 그에 감명한 야안은 목례를 보이며 감사를 표했고, 리트담은 그런 야안의 예가 부담스럽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의 수급을 거두시지요. 그것이면 이 전쟁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으실 것입니다.”
그 말에 공감한 듯 야안은 프로센의 수급을 거두어들이어 사황자가 죽었음을 알렸다.
그에 마지막까지 항쟁하던 적진은 그 사기를 잃어버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이 거대한 전쟁은 결국 하루가 지나기 전에 끝이 날 수 있었다.
대승리였다.
전쟁 이전 그 어느 세력도 생각지 못했던 승리를 일구어낸 것인데, 확실히 그 결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포로의 숫자만도 백만이 넘었으며 그 못지않게 엄청난 양의 전비 물품을 가지게 되었다. 그뿐이던가? 많은 인재 또한 북부 연합의 수장인 셀리온 공작 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실제로 사 황자 측에 크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페르난도 대장군이라는 걸출한 인물 때문으로 그 능력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끝까지 항쟁한 이들이 자리했으나, 이미 많은 이들이 이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터라 그 숫자는 크지 않았다.
포로들에게 여러 조건을 약속하여 그들 중 대다수를 병력으로 충원한 셀리온 공작 가의 병력은 이제 이백만하고도 육십만이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이번에 받아들인 포로들은 생각보다 북부 연합 측의 지원 물품이 난세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자 오히려 다행이다 생각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