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95화
21. 황금 드워프
지휘권이 있는 자들이라면 모를까? 겨우 세력을 구축한 지 십년이 갓 넘어 강제로 징집되어 전장에 내던져지게 되었으니 이들에게 충성을 바라는 것이 우스울 일.
어차피 같은 칼 밥을 먹는다면 더 좋은 조건에 올라서는 게 나았다. 어차피 제국에서 갈라진 한 핏줄이었으니.
이틀 동안 신병확보와 전시물품을 정리한 셀리온 공작은 일부의 병력과 이번에 포로에서 새로 받은 신병들을 남겨 전장을 정리하도록 지시한 후, 병력을 십만 씩 묶어 나누어 이제 빈 것이나 다름없는 사 황자 측의 세력을 먹어치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이틀을 쉬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었지만, 전쟁 승리로 포상금을 받은 군인들의 걸음은 한없이 가벼울 따름이다.
“아하하하.”
밝은 햇살 아래 나무에 기대어 걸터앉아 있던 사내의 입가에는 낭랑한 웃음이 끊어지질 않았다. 선량해 보이는 그의 얼굴과 그 맑은 웃음소리가 그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를 흠모하는 탑 내의 하녀들은 저마다 멀리서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탑 내의 다른 현자들 또한 그의 웃음에 절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랜만에 그의 밝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탑주 다운 인품과 실력을 갖춘 그의 밝은 모습은 절로 눈이 갔다.
하지만, 정작 그런 그의 겉모습과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뜻밖의 것이었다.
“절반의 성공이군. 그놈 때문인가?”
만 년 전 그 자신을 끈덕지게 귀찮게 만들었던 주술이라는 힘을 놀라울 정도로 진보시킨 자였다.
자신의 존재를 눈치챈 존재였고, 실상 다른 힘들처럼 그 주술이라는 힘의 극에 달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래 보았자 미래의 자신의 길을 막아설 귀찮은 벌레 같은 것에 불과했다. 변수가 사라지게 되었으니.
“녀석이 조금만 빨랐어도 알지 못할 뻔 했군.”
아주 짧은 순간 자신의 힘이 야안과 접촉하였고, 그는 그것으로 야안이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자신의 힘처럼 드래곤들이 만들어낸 시간 역행의 마법이 그에게 펼쳐진 것이었고, 그로 인해 야안이라는 이 존재가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이곳 시간대를 벗어나 자신의 본래 시간대로 가야 한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그 마법이 성공했는가 인데.’
실제 시간 역행의 마법은 그 모든 법칙을 뒤틀어 버리는 자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도대체 드래곤들이 어떤 짓을 했기에 이런 마법이 성공했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긁어 부스럼이었군. 가만두었으면 없어질 존재이건만.’
이 때문에 귀찮은 도마뱀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었지만, 그래도 야안이라는 존재감에 비해서는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계획을 몇 년 뒤로 미루어 주지. 시간을 거슬러온 이방인이여.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시게. 변하는 것은 없으니.’
그랬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 * *
‘위대한 원정.’
북부 연합의 지난 1년을 이야기하자면 그 말로 모든 것이 답변이 될 것이다.
4황자를 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시 군을 정비해 1황자 측 세력을 상대로 연달아 정복에 성공하였다.
당시 1황자 측의 상황이 내란으로 인해 좋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제국의 9대 초인 중 2명의 초인이 자리한 만큼 쉽사리 무너지기 어려운 강자 중의 강자이건만 이들은 연달아 성을 격파하더니 결국 1황자 측을 무너뜨리는 성공한 것이다.
결국 원수를 갚게 된 것인데, 지난 피눈물을 흘리며 주군의 죽음을 뒤로하며 물러서야 했던 1기사 단장이자 총기사단장인 존 크리스 경은 격정에 젖어 오열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바 대륙의 정세에 영향을 끼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에 질세라 남부 측에 자리한 말콤 공작 가가 원수라고 할 수 있는 밸론 공작 가의 세력을 꺾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그 세력의 삼 분의 이를 집어 삼키게 되었고, 남은 삼 분의 일은 이번에 견제를 해 주었던 마르탄 공작 가가 가져가게 되었다.
제국 제일의 검이자 초인인 밸론 공작이라 하지만, 결국 그도 인간이라 시간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지난 1년 전 말콤 공작 가와의 대전 이후 급격하게 노화가 진행되더니 결국 정복 전쟁에서 자신의 기량을 절반도 채 보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정신적 지주였던 그가 그처럼 무너지자 전쟁은 일방적이라고 할 만큼 급격히 무너져 내려갔다.
강력한 힘을 지닌 주군이 무너지자 내란이 일어난 것인데, 이들 내란의 주범은 대부분 기사들로 인해 별다른 이권을 가지지 못한 자들 때문이었다.
눈치를 보며 시늉만 보이던 마르탄 공작 가는 승기가 기울자 그제야 총 전력을 퍼부어 작게나마 그 이권을 가져가게 되었다.
지난 셀리온 공작 가의 침공을 끝으로 제국의 모든 계승자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그들은 저마다 황제를 표방하였고, 이로써 시대는 삼국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겨우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힘든 정세의 변화였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셀리온 제국의 입장에서는 크게 반길 수밖에 없다. 야안과 리트담이라는 숨겨진 거대한 힘의 저력이 자리하였으니, 어느 쪽을 치든 크게 그 승기를 잡아 볼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통일 이후였다.
현재 셀리온 제국은 지난 제국의 50%에 달하는 영역을 먹어 치우며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으나 그 내부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갑자기 3배에 달할 정도로 넓혀진 영토와 열 배가 넘게 늘어난 인구들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토 곳곳에 자리한 반군을 토벌하여야 했고, 난세로 인해 부서진 성을 복구하고 끊긴 길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는 큰 자금이 필요로 했다.
길은 인간으로 치면 피와도 같아 이것이 제대로 흘러가야지 상업은 물론 치안 또한 성해지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쟁으로 인해 농토가 망가지면서 부족해진 식량은 이미 야안이 가져온 파래를 개량한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러 가지로 개선된 파래 개량의 비율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그 맛이 나쁘지 않아 인기가 높았다.
이것은 본래 군수 물품으로도 쓰이고 있었는데, 사실 이 파래 덕분에 지난 1황자를 칠 수 있게 되었다고 과언은 아니었다.
군수 물품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식량인데, 이 파래는 그 양은 물론이고 매우 건조한 형태라 그 보존성이 뛰어나 당시 날이 무더울 때에 생기는 여러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개량한 것이라 해도 그 부피가 현저하게 줄어 20:1 정도에 불과하니, 군수 물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식량이 그처럼 줄어들면 그만큼 공간 마법이 자리한 마법 상자의 활용을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또한 굳이 그것이 아니어도 마법 주머니 하나면 레인저 부대의 식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작전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파래는 성장이 빠르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면 콩과 함께라면 3모작이 가능한 곡식이라 이 곡식으로 많은 인심을 얻고 있었다.
엄격한 군의 관리로 도적들과 몬스터들에게 보호하고 있는지라, 난세에 지쳐 지도자들을 기피하던 화전민들도 점차 돌아오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그 하나하나가 인간으로서는 만나기 힘든 장인들이라 그들이 수장이 되어 복구에 나서기 시작하자 그 속도 놀라울 정도이다.
더구나 정령을 다루는 수많은 엘프들이 함께 하기 시작하자 지금 파손된 길의 70% 이상이 복구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 연합전선에서 성을 짓기 위해 맞춰 보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지금도 베론 제국의 큰 물자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길과 성이 복구되자 현재는 상행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던 물가도 점차 안정적으로 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확장을 주춤거리고 있었으나, 지금의 모습을 보노라면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정복 전쟁을 할 최소한의 기반은 다질 것으로 보였다.
지난 일 년.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야안은 크게 진보하였다.
검과 마법을 함께 다루는 데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 큰 어려움이 필요치 않게 되었으며, 드디어 위대한 주술사를 코앞에 둘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현재 리트담은 야안을 위한 주술을 준비 중이었는데, 지난 리트담의 서와 유사한 것을 준비하느라 그는 벌써 보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리트담의 서는 지난 리트담이 필생의 공을 들여 만든 것이기도 했으며, 또한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검은 이제 뇌전검법의 사식인 즐거움을 다루고 있었는데, 실제 입문의 수준이라 아직 가야 할 길은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새로운 의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소드 마스터들이 다루는 의념이 많아야 둘이며, 보통 하나의 의념을 파고드는 것으로 벅차다는 것을 안다면 야안의 이 같은 성장은 그야말로 괴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또한 직업인 미숙한 전설의 현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인데, 네 가지의 힘의 이질감이 사라지면서 그는 더 높고, 더 깊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 생긴 일이었다.
지금 그의 레벨은 1999(76%)에 달해져 있었는데, 이는 그만큼 그가 지났던 길이 피로 넘쳐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정복 전쟁이 시작될 때마다 생기는 퀘스트로 인한 경험치를 환산 받은 것도 적지 않았다.
다만 정령술에 관해서는 아직 큰 변화는 없어 아쉬움이 자리했으나, 워낙 그 계약을 한 정령의 존재가 특별한 터라 아무리 야안이라 해도 성장에는 큰 어려움이 자리했다.
그날도 야안은 수련 속에 파묻혀 있을 때였다.
북부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동맹을 맺은 객장의 신분인지라, 셀리온 제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었기에 지난 고위 귀족의 누군가 쓰던 저택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본래의 이곳 주인은 야안 못지않은 노력파인 듯 연무장 곳곳에 손때가 자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덕분에 쾌적한 공간에서 수련을 할 수 있었는데, 그날도 다르지 않게 수련으로 날을 새는 것 같았으나 변화가 생겼다.
야안과 멀지 않은 연무장의 한 곳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작은 크기의 한 인영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지라, 야안은 뒤늦게 그 존재를 깨달아 물었다.
“페어리 종족이시군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넷과 유사한 모습을 가지었지만, 조금은 달랐다. 그 눈의 크기나 수염의 길이는 더 크고 길었으며 체격은 좀 더 왜소하였다.
이마에 자리한 눈은 지난 하늘 산 님을 보는 듯 매우 깊고 맑았는데, 그 존재감은 넷처럼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