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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96화 (296/385)

야안 296화

마치 환각에 잠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하나라 하네. 넷의 숨결을 찾아오기는 했네만 확인 차 묻네. 그대가 넷과 연을 맺은 인간이 맞는가?”

하나라는 말에 야안은 그가 계급이 가장 높은 페어리 종족이 아닌가 싶어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난 페어리 종족의 넷 님과 연을 맺은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야안의 대답에 하나는 그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흘린다.

“헐헐. 맞게 찾아온 것 같군.”

그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야안에게 내 주었는데 그의 손에 꼭 맞는 작은 망치였다. 한데 야안의 손에 들어가자 그것은 몇 배로 커지다니 드워프들이 다루는 큰 망치로 그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야안은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 망치를 쥐는 순간 이 망치가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곧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정보창이 모습을 보인다.

[황금 드워프의 망치

등급 : A

하이 드워프인 황금 드워프들의 분신과도 같은 물건이다. 대대로 그들 대장인의 숨결이 자리한 물건으로, 전설을 만드는 문에 도전할 자격을 가지게 한다.

* 단, 대장인의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만 그 도전 자격을 준다.

* 그대 도전할 것인가? 그렇다면 샤 대륙의 이제 사라진 드워프 왕의 무덤으로 가 이 드워프의 망치로 내려 쳐라.]

“드워프의 왕의 무덤이라니.”

야안의 그 중얼거림에 하나는 그 긴 눈썹을 까닥이며 말한다.

“호오~ 아리스 님의 기이한 축복을 받는 자라고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이 망치의 내력을 알다니. 그것참 신기한 일이로고.”

하나의 말에 그제야 망치에서 눈길을 돌린 야안이 사과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기물에 눈이 멀었군요.”

“헐헐. 사과는 필요 없네. 어차피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으니. 크흠~괜찮다면 지난 넷이 먹었다는 술을 좀 구할 수 있겠는가?”

헛기침을 하며 말하는 하나에 야안은 미소를 보이며 품속의 공간 주머니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어 그에게 내주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의 손에 들어가자 와인은 그의 손에 맞는 크기로 줄어들었고, 그는 미소를 보이며 와인의 마개를 열었다.

‘뽁-’

마개를 열자마자 터져 나오는 와인의 그 짙은 향에 그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벌컥벌컥 마셔대는데 와인의 삼 분의 일을 마실 때쯤에서야 수염에 묻은 와인을 손으로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좋군. 넷의 말이 맞았네. 아주 좋은 술이야.”

“만족하신다니 기쁘군요.”

하나는 그저 와인을 들어 야안에게 미소를 보이더니 다시금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자신이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대의 전설의 현자는 사람이 좋군. 지난번 전설의 현자이신 자이웅 님께서는 너무 거칠고 삭막해 말을 붙이기 어려웠건만.

음~ 지난 우리 페어리들은 자네의 이야기를 들은 넷에 의해 모여, 깨어날 시기에 오신 드래곤을 깨우는 의식을 치렀지. 가장 나이를 드신 분 중 한 분이시라 시간이 제법 걸리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분들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든든하시지.

하지만, 역시 너무 나이가 드셔서 그런 것인가? 무리하게 깨어난 탓에 다시금 잠이 들어서야 하셨네. 물론 자네가 돌아가기 전에 볼 수 있을 것이네. 그러기 위해 잠에 드신다고 하셨으니. 그분께서는 잠에 듯기 전 넷의 기억을 살펴보시고, 하늘을 살피시더니 이내 이 망치를 내 주어 그대에게 전해 달라 하더군.”

야안은 드래곤이 깨어나셨고 자신이 본래의 시대로 돌아가기 전에 볼 것이라는 그 말에 안도를 표했다.

죽음의 지배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드래곤이 자리해 주신다면, 이종족들의 멸망과 라 대륙의 비극적 일들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안이 그 생각에 빠질 때쯤, 유피테르가 야안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등장에 하나는 입에 자리한 와인병을 떼어내며 내려놓더니 유피테르에게 예를 보인다.

“정령의 왕께서 계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하나입니다. 기억하시는지요?”

그런 하나의 말에 유피테르는 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군. 본좌는 그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도다. 실제 이렇게 모습을 보인 것은 그대들 페어리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여 나타난 것이었으니.”

유피테르의 그 말에 하나는 몹시도 애석하다는 얼굴빛을 보인다.

“그렇군요. 기쁜 나머지 보고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제 생에 다시 정령의 왕을 만날지는 몰랐던지라.”

그는 잠시 그렇게 말하며 아쉬움을 달래더니 말을 이었다.

“저희 페어리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본래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 이유는 저희가 드래곤의 념에서 탄생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잠이 드신 드래곤께서 세상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종족이지요.”

야안은 유피테르의 물음에 그 또한 궁금하여 귀를 기울이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보이는 하나에 경악 어린 눈빛을 보였다.

‘설마 드래곤의 념에서 만들어진 존재라니?’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건가? 확실히 그렇다면 지난 죽음의 지배자의 그 기이한 법칙의 힘을 파악했던 리트담이 이들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지금 넘어지면 닿을 거리에 자리한, 보고 있어도 없는 것 같은 그의 존재감에 대한 것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탄생케 하시는 데 큰 도움을 주신 것이 유피테르 님이시지요. 정령의 왕이신 그대께서는 저희에게 정령체와 유사한 존재감을 부여하셨습니다. 지금 유피테르 님께서 저희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계약자의 능력에 따라 기억이 봉인이 되신 만큼 유피테르 님이 보이신 힘은 마지막 봉인이 풀려야 가능한 일이시니.”

유피테르는 그 자신이 이들 종족을 만드는데 함께 하였다는 이야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이해가 된다는 듯한 모습이다.

“어쩐지,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더니.”

야안은 그런 하나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지다 물었다.

“지난 넷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페어리 종족이 백스물하나에 달한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그 말씀은 드래곤들께서도 백스물한 분이 자리하신 것입니까?”

페어리는 야안의 그 말에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하네. 그분들의 탄생과 함께 우리들 또한 탄생하고, 그분들의 죽음과 함께 우리도 죽음을 함께 하지.

우리의 이름은 그분들과 같네.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하나이며 가장 나이가 적은 분의 이름이 백스물하나이지.

이번에 깨어나신 분은 둘이시네. 그분은 자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네.”

자신의 예상이 맞자 혹시나 했던 야안은 눈앞의 페어리 종족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드래곤과 함께 하는 생명체라니. 하기야 확실히 그런 종족이 아니었다면, 하이 엘프에게 깨달음을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 더불어 왜 하나나 넷이 유피테르를 봄에 그토록 경의를 표하는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그 자신에게 존재의 의의를 만들어 준 이가 그였으니 그들에게 있어 유피테르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일 터였다.

와인을 결국 비우고만 그는 병을 내려놓고는 이제 갈 시간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웠네.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황금 드워프이자 드워프의 왕이셨던 그의 무덤으로 안내할 물건을 내어 주겠네.”

하며, 품속에서 나침반을 꺼내어 야안에게 건네어 주었다. 한데, 드워프 왕의 무덤에 가는 물건이라는 것이 거짓이 아닌 듯 나침반의 시침은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위치를 바꾸어도 계속 한 곳을 유지하는 터라, 야안은 이 나침반의 시침의 방향을 따라가면 드워프 왕의 무덤을 찾아갈 수 있음을 짐작했다.

하나는 야안이 그 물건의 쓰임을 아는 듯하자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유피테르에게 다시금 경의를 보이더니 이내 점차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곳에서 모습을 보였을 때처럼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은 채 그렇게 사그라지듯이 사라진 모습을 바라보던 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생겼군.”

둘이라는 드래곤께서 다시 잠들기 전 자신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은 지금의 자신에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마침, 시기적으로 여유가 자리하였으니 잠시 제국을 벗어나도 될 터. 더구나 그에게는 하늘 산이 그에게 내어준 공간을 넘어서는 위시 마법 물품이 있지 않은가?

모든 조건이 갖추어 졌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야안은 오랫동안 한 곳에서 정체했던 곳을 떠나 다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리트담은 야안이 샤 대륙으로 여정을 떠난다는 이야기에 그제야 굳게 닫힌 방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갑자기 떠나신다니요?”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묻는 그에 야안은 손을 저어 안심시켰다. 그리고 지난날 찾아온 페어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리트담은 페어리의 그 믿어지지 않는 정체에 왜 자신이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야안이 왜 샤 대륙으로 여정을 떠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잊힌 드워프의 왕의 무덤이라.

전설을 만드는 문에 도전한다니.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궁리하였으나 실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리트담은 작게 머리를 흔들더니 말한다.

“정말 야안 님과 함께하면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군요. 괜찮다면 저 또한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직 야안을 위대한 주술사로 올라서게 할 주술은 완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시간이 더 걸려도 야안과 같이 여정을 하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미 셀리온 공작에게 이야기를 끝낸 것은 물론, 현재 그가 꾸준히 가르치고 있는 제크 경은 물론 비상사태 시 연락을 위해 엘프들 중 중급 현자 마스터인 푸른 들꽃과 함께 가게 되었다.

이 푸른 들꽃은 그 생김새가 엘프보다는 인간에 가까웠는데, 실제 그녀의 어머니는 하프 엘프였다.

그 외모가 인간과 비슷한데다 엘프 특유의 이질감이 없이 청조한 아름다움이 자리하니 인간 중 그녀에게 반한 이들이 아니었다.

만약 야안이 대공들조차 어려워하는 위치가 아니었다면, 그녀와의 여정에 여러 귀족의 반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푸른 들꽃은 진실로 아름다웠다.

금빛 물결 같은 머리카락과 어린 아기 같은 하얗고 깨끗한 피부,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그녀의 눈은 맑고 고왔으며, 샤 대륙에서 빚은 도자기와 같은 그녀의 풍성한 몸매는 뭇 사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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