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98화
22. 황금 망치
“아니, 여인으로서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리트담 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라 야안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리트담의 태도로 보아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여인으로서 마음에 담고 있을 줄이야.
지난 그의 태도를 보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였건만.
야안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 거린다.
“리나 말대로 나는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없군.”
그녀를 기억할 때면 언제나 밝게 웃는 모습만이 떠오르게 되는 터라 야안은 잠시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젖다 고개를 돌려 제크 경에게 물었다.
“한데, 자네는 혼약을 하지 않을 것인가? 자네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 하는 말이네.”
제크 경은 주군이 자신의 혼약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숙여 말했다.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가정은 후에도 꾸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주군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야안은 제크 경에 그 말에 미안한 기색이 완연했으나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의 성정을 아는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리트담은 말없이 바다의 짙은 내음을 마시는 푸른 들꽃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아름다운 밤바다가 그 모습을 보였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친다고 해도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것이 여인을 좋아한다는 마음인가?’
처음 그녀를 본 순간 자신이 올린 수양이 거짓인 마냥 무너져 내렸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온몸이 뻑뻑하게 굳어졌으며 그 감정은 요동쳤다.
얼마나 다스리기 어려웠던지, 자신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굳어져 갔다. 소설 속에서나 보던 사랑 타령은 자신과 연이 없는 것인 줄 알았건만.
믿어지지 않는다.
그 자신의 시선을 이처럼 빼앗는 존재가 있을 줄은.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랬다. 그 자신은 그런 감정에 놀아날 때가 아니었다.
그 자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저 옆에서 한 팔을 거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야안과 함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1타(1분) 1콤(1초)이 아까운 시점이다.
‘언제 내가 이런 감정놀음에 빠져들었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자신의 감정을 뒤로 숨겼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임을 알 것처럼.
하지만, 오히려 그 감정은 뒤로 밀수록 깊어졌고, 어느 순간 자신은 열병에 빠져 버렸다. 예전에 읽은 사랑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길거리 시인들의 노래는 그의 가슴을 울리었다.
만약 그가 무의식을 넘나드는 탈인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구애를 하던 다른 귀족들처럼 그 또한 그 같은 태도를 보였을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 가던 그는 이내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천천히 손을 내렸다.
“정말 아름답군요. 숲 속의 밤도 아름답지만, 밤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아름다움이 자리하네요.”
“그렇습니까?”
존재의 의의를 낮추었지만, 이미 탈인의 경지에 올라 주술을 꿰뚫는 그의 눈에는 그녀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아름다운 음악이 연회장 너머로 울리는 갑판에 그렇게 한 쌍의 남녀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행복에 젖어들었다.
* * *
이 시대의 샤 대륙은 총 여섯 왕국으로 나뉘었다.
그중 가장 넓은 대지를 소유한 류 왕국은 그 넓은 대지와 달리 강대국은 아니었다. 류 왕국이 차지한 대지의 절반 이상이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샤 대륙에서도 악명 높은 몬스터 거식처가 두 곳이나 자리했다. 그중 하나는 절망의 숲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류 왕국과 이웃한 거대한 사막이었다.
이 사막은 달리 상인에게 있어 기회의 길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 사막을 건널 수만 있다면 어려운 뱃길로 보름은 돌아가야 할 거리를 단 며칠 만에 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며칠 만에 오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야기하였듯이 몬스터 거식처 중 악명이 높은 곳이라, 웬만한 상행 준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더구나 그 변화무쌍한 기후 변화는 어떠한가? 오히려 몬스터들보다 더 고난이 이 기후였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단번에 돈방석에 앉는 것이 가능하다. 사막을 넘어서는 것만으로도 물가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올라서게 되니.
그러하기에 누구나 그 위험을 알지만, 인생의 한 방을 노리려는 이들로 인해 지금도 이곳을 넘어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나가 준 나침반을 따라 여정을 움직이던 야안 일행은 류 왕국에서 동남쪽 끝에 자리한 지 영지에 도착하였다.
지 영지는 대귀족인 지 백작이 다스리는 곳으로 사막 몬스터 침공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고 할 만큼 상당히 견고하여 놀라운 방어 능력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치안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는데,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낭인이라고 불리는 용병들이 날카로운 검을 차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낭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다른 대륙의 용병들과 달리 큰 무리를 지어 다니기보다는 개인이나 작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선호했는데, 대신 그만큼 개인의 무력이 용병들보다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재밌게도 이 시대의 샤 대륙은 야안이 살았던 샤 대륙과 달리 마법보다는 검을 중시하고 있었다.
물론 낭인들 중에서도 하급 소드 유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숫자는 아주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상급 소드 유저나 혹은 이곳의 기사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무사들 못지않은 실력을 지닌 익스퍼트 급의 낭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검은 대부분 고위 무리인 사량발천근이나 이화접목은 물론 야안조차 생각지 못한 다양한 무리가 자리했다.
그런 고위 무리들이 다수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영지 내에 호족의 세력을 인정해 주면서 그 같은 일이 가능해졌다.
본래 이것은 타 대륙의 영지에서 기사들이나 그에 준하는 신하에게 내리는 장원과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되었고, 그것이 다양한 검의 무리를 만들게 된 배경이 되었다.
자신의 시대에서는 사막화되어 버린 대지에 왕국들을 세운 샤 대륙은 그만큼 상대해야 할 몬스터들이 많았다.
야안의 시대에 자리한 융 제국의 크기는 샤 대륙의 겨우 20%에 불과했고, 지금의 여섯 왕국 중 두 곳을 합친 것보다 모자람이 자리했다.
이어진 산맥이 많았으며 또한 정기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크게 영지를 위협하는 몬스터들이 자리해 그 움직임은 예측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여 영주만이 아니라, 그 영주 아래 자리한 호족에게도 그 자치권을 내주었는데, 이로 인해 생겨난 것이 문파라는 개념이었다.
문파는 뛰어난 재질이 있는 자들을 모아 호족들처럼 만들어진 단체로 이들은 영지나 왕국에서 여러 가지로 권리나 지원을 받다, 어려움이 처할 때 그 자신의 문파의 구성원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내어준다.
그들 중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는 관리로 나아가 무사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보통은 자신의 문파의 영역에 자리한 영지민들을 보호하거나 그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 데 힘을 쓴다.
그런 문파의 조사들은 보통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이 많았고, 그들이 만든 무리를 이들 문파가 대를 이어가면서 더욱 고차원적인 무리로 발전시켜 나가거나, 거기서 새로운 무리를 만들기도 했다.
자연히 검사에 특화된 마나 심법도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중에는 야안이 현재 가지고 있는 뇌전 심법 못지않은 심법도 없지 않았다. 현재 이곳 샤 대륙에 자리한 칠대 초인이 지닌 심법들이 그것인데, 칠대 초인 중 문파의 출신이 다섯이나 된다는 것을 보면 이름 있는 대문파들의 위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대륙에 이름 높은 대문파들 같은 경우에는 그 나라의 왕도 함부로 다루지 못할 만큼 그 명성과 힘이 자리했다.
그만큼 검을 중시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곳에 현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실질적으로 짧은 시간에 큰 무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마법보다는 검이 나았던 탓에 그 숫자가 많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역시나 문명의 절정을 달렸던 고대 시대답게 야안의 시대의 현자들보다 그 숫자는 물론 그 질도 뛰어났다.
이 시대에도 유랑 민족들은 브라운 인이라 멸시받았고, 저 사막 너머에 자리한 곳에서 떠돌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역시나 이 시대에도 주술이 크게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리트담이 말하기를 자신이 떠날 때쯤 저 멀리 사막에 끝자락에 위대한 주술사에 오른 이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며 말하기를 지금쯤이면 대부족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 하였다.
실제 리트담은 바 대륙으로 오기 전 그를 만나 가르침을 얻으려 했으나, 유랑민족의 특성상 정확히 그 위치를 알기도 어려워 시간이 많이 소비될 것 같아 만나지 못했었다.
지 영지에서 고급 여관을 잡은 그들은 그곳의 여관의 직원으로부터 자신들이 가야 할 사막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공률은 5%도 채 안 됩니다. 하지만, 성공한 대가가 워낙 크니 많은 이가 이 사막행을 가고 있지요. 이 사막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사방이 모래뿐이니 길을 찾는 데 답이 없는데, 이 때문에 별을 따라 길을 찾는 길잡이들이 자리합니다. 이 길잡이들은 보통 한 번 성공할 때마다 그 몸값이 배로 뛴다고 하더군요.
음. 그 이외에도 낮과 밤의 일교차가 워낙 큰 데다, 무시무시한 사막의 몬스터들 이외에도 강한 독을 가지고 있는 벌레들이 많아 제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세한 것은 이와 관련된 책자들이 많으니 원하시면 제가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오.”
그리 말하며 은화 하나를 건네어 주자 여관 직원은 크게 몸을 숙이며 감사하다 말하더니 물러섰다.
야안은 직원에게 잘 물어보았다 생각할 때, 제크 경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길잡이 하나를 고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군께서 가지신 나침반이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다, 아무래도 이곳의 지리와 특성을 아는 이가 함께 한다면 여러모로 불편함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크 경의 말에 야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단련에 단련을 통해 이런 환경에 연연하지 않는 자신들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역시나 푸른 들꽃인 경우는 그 경우가 달랐다.
아무래도 엘프들이 사는 곳과 상극이라 할 수 있는 환경이 자리한 사막은 불편한 것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