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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00화 (300/385)

야안 300화

23. 플로메티아

“저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끼던 리트담은 그 굳어진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하여 눈물을 보이는 푸른 들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그녀의 눈가를 손으로 훔치던 리트담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미소를 보이며 되묻는다.

“정말입니까? 그대도 정말 저와 같은 마음입니까?”

그런 리트담의 말에 푸른 들꽃은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아! 아리스시여.”

야안과 만나기 전의 자신의 기억에서의 자신은 혼인을 하지 않았다. 평생을 두어 주술을 공부하였으며, 유랑민족들을 보호하며 그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군대와 싸웠다.

말년에 이르러 결국 함루어라는 경이적인 주술을 만들게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리트담의 저서라는 놀라운 주술을 만들게 되었다.

그랬다. 그 자신의 삶은.

하지만 야안을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었고, 결국 평생을 사랑하여도 모자랄 여인까지 만나게 되었다.

이 벅찬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누가 무어라 할 것도 없이 리트담과 푸른 들꽃은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뜨겁고 달콤한 입맞춤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었고, 그 감정은 사늘해진 사막의 밤에도 식을 줄 몰랐다.

저 멀리서 두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던 그들은 저마다 입가에 차오르는 미소를 지워내지 못했다.

삶에 지쳐 연애 따위는 생각지 못한 수란은 그 자신도 저 같은 사랑을 하기 원함을 자각했으며, 야안은 지난 멜리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주었던 연애 시절을 상기했다.

검과 수련에 몰두하던 제크 경조차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으니 그만큼 그들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리트담과 푸른 들꽃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 날을 기점으로 다시 나흘이 더 흘러, 야안은 하나가 말했던 드워프 왕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은 수십 개에 달하는 거대한 봉우리가 자리하는 곳이었다. 음침한 기운이 풍겨지는 곳이기도 했는데, 지난 리치왕 케르몬이 풍기는 기운과 유사하면서 조금은 달랐다.

또한 마나의 농도가 끈적거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짙은 곳이기도 했다.

‘마치, 태초의 공간 그곳에서의 느낌과 유사하구나.’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야안은 곧 나침반이 가리키는 그 자리한 거대한 수십 개의 봉우리 중 하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끔찍한 기운이 자리한 터라, 수란은 답답하고 오싹한 느낌에 쉽게 걸음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타고 온 도롱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그들을 위해 리트담이 그들의 주위에 결계를 쳐 주었다.

한결 편해진 터라 푸른 들꽃은 리트담에게 수줍게 미소를 보이며 목례를 보였고, 리트담은 그런 그녀에 작게 미소를 보일 뿐이다.

하지만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은 갈수록 거칠어져 갔고, 위협하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기이할 정도로 강력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들로, 그 개체 수는 많지 않지만, 그들 중 둘, 셋을 겨우 제크 경이 상대할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초인이 아니라면 감히 이곳에 들어서기도 어려웠을 곳이 분명했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수란은 그들이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상키 어려운 비밀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유추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어떤 길잡이도 가지 못했던 길을 마치 아는 것처럼 이렇게 나아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리가 없었다.

또한 이들의 여정의 끝에는 중요한 것이 자리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는 이토록 강한 자들이 모여 큰 위험과 어려움이 자리한 길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 그녀는 더 이상 그것에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그 수장인 안이나 같이 한 자들의 심성이 곧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녀는 비밀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난 시간을 함께한 그들을 본 터라 그런 것에 걱정하지 않았다.

가까워 보였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그 길이 멀었는데 처음 입구에서 들어섰을 때부터 칠일을 더 부지런히 움직인 뒤에야 나침반이 가리켰던 어느 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우우웅-’

아니, 어느 한 곳이라 이야기하였지만 사실 아무런 특이함도 느끼지 못했던 곳이었다. 만약 공간의 주머니 속에 자리한 황금 드워프의 망치가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곳을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야안이 멈추어 서자 곧 나아가던 일행들도 함께 멈추었다. 도롱의 등에서 내린 야안에 리트담이 다가와 물었다.

“이곳입니까? 야안 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새 야안은 공간의 주머니에서 황금 드워프의 망치를 꺼내었는데, 대기를 찢어 버리듯이 울어 대던 그 망치는 야안의 손에 들리자 마치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 엄청난 소음에 귀를 막으며 고개를 숙이던 수란은 이내 그 소리가 줄어들자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수풀 너머로 다가가는 안이 자리했다.

마치 그만이 보이는 길이 있는 듯 그는 그 수풀 너머로 이리저리 걸음을 움직였는데, 곧 무언가를 발견한 듯 수풀의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놀랍군. 이런 곳이 있었다니!”

감탄사를 흘리는 야안에 리트담이 다가와 그의 곁에 서 보았으나 그 어떤 것도 그의 눈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요?”

묻는 리트담에 야안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리트담 님이시라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야안은 어느 한 곳을 지정하여 가리켰고 리트담은 곧 무의식을 크게 활성화하여 그곳을 살펴보았다.

“아! 이것은 도대체…….”

리트담 또한 야안처럼 놀람을 보였다. 야안이 가리킨 그곳에서 무저갱의 그것과 같은 끝없는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주위 일대가 이런 이유가 이곳과 관련이 깊군요. 아니, 이곳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지.”

리트담의 유추에 야안은 긍정을 하며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이곳은 위대한 하이 드워프인 황금 드워프들이 그들의 왕 황금 망치와 함께 태초의 공간을 조각하여 만든 곳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본 것이 틀리지 않다면 지난 만 년 전의 전쟁에서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로 인해 그 공간의 일부가 부서지면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 같군요.”

야안의 말에 모르는 바가 있어 리트담이 궁금증을 보이며 물었다.

“태초의 공간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곳은, 아리스 님께서 세상을 만들 때 기본이 되었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예전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낸 본 바가 있었는데, 지금 느끼는 것처럼 마나의 농도가 짙으며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세상이었습니다.”

야안은 그렇게 말을 꺼내며 지난 황금 주먹에게서 들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리트담은 야안의 말이 길어질수록 감탄사를 크게 늘려갔는데, 특히 그 태초의 공간에서 시간이 달라졌다는 점에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펼치는 인지의 능력과는 그 차원이 다른 설명할 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임의로 세상을 만들다니.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하지만, 실제 그곳에서 파생된 유적들을 밟고 있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나께서 황금 망치를 든 자만이 들어설 수 있다고 하시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이 망치를 든 뒤부터 저는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리트담은 야안의 말에 고개를 숙여 목례를 표했다. 어느새 다가온 제크 경이 그의 옆에서 예를 보였고, 그 뒤로 푸른 들꽃 또한 같은 예를 취했다.

수란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안의 말에 혼란을 보였지만, 그가 그 세상 너머로 간다는 것을 알고는 이별의 인사를 함께하였다.

야안은 그들의 모습에 자신 또한 웃음을 흘리며 인사하고는 곧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천천히 걸어나가던 야안은 정확히 아홉 걸음이 되었을 무렵 야안은 순간 그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허깨비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리트담이 야안의 기척을 찾기 위해 집중했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야안은 위대한 황금 드워프 왕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게 되었다.

* * *

아홉 걸음이 넘어서면서 그 문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나타난 곳은 야안의 생각과는 다른 곳이었다. 예전 오랜 시간을 보내었던 태초의 공간에 들어선 것이다.

예상외의 일이라 야안은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무언가를 상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파손이 심했던가?”

본래대로였다면 황금 드워프들이 만든 그 유적에 도착해야 했겠지만,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가 생각보다 강했던 모양이었다.

정작 그곳으로 향하는 문이라 생각되는 곳이 이처럼 파생되었을 줄이야.

만약 이 일이 처음이었다면 당황하였겠지만, 이미 한 차례 겪었던 바가 있어 야안은 별달리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보다 나은 점이라면 이 황금 드워프의 망치가 있다는 것이겠지.’

다행히 망치는 드워프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의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다만 그 거리가 상당히 멀어 야안이 전력을 향해 달려간다 해도 그 기약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다행히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밖의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장점이 자리한 터라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잘되었군.”

이 기회를 통해 이곳에서 야안을 수련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마나가 풍부했고, 주위에 아무런 것도 없었으며 대지는 검강으로도 흠이 나지 않을 정도다.

공간의 주머니에 충분한 식량도 자리한 터라, 폐관수련을 하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보아야 했다.

야안은 천천히 그곳으로의 여정을 나아가며, 이론적으로 이해되나 실제로 행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자리한 것에 대해 수련하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는데 유피테르가 그 모습을 보인다.

“태초의 공간이라. 기억에는 안 나지만 정말 그립다는 감정의 잔재가 자리하군.”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표정을 보이는 유피테르에 야안이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그립다니?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야안의 물음에 유피테르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나도 모르네. 다만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과 가까운 느낌이 드네. 정령계에 있었을 때의 그 느낌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 답하는 터라 야안은 궁금증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노니 듯 움직이는 유피테르를 보며 새삼 존경의 감정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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