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01화
‘그는 정말 긴 시간을 희생하고 있구나. 그 어느 존재가 이 긴 시간을 존재할 것이며 또한 희생할 것인가?’
드래곤이라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는 그에게 크나큰 빚을 지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야안은 왠지 그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이 세계에 들어선지 어느새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이곳에 있게 된 것인데 수련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 이유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황금 드워프의 유산이 있는 세계가 멀었던 이유도 있었다.
태초의 공간이 끝이 없다고 하더니, 단순히 평지만을 달려 이런 시간이 허비되었음을 생각한다면 그간 야안이 지난 길은 라 대륙을 가로질렀던 넓이라 보아도 무방할 터였다.
그래도 야안은 조급함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여유 있는 식량은 둘째라 하더라도, 그간 이곳에서의 수련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검과 마법을, 주술과 마법을 함께 수련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인데. 이로 인해 현자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 태초의 공간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또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비유하자면 집을 짓기 위한 모든 자재가 충만한 곳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밖의 세상이었다면 감히 시도도 하지 못했을 마법들과 주술들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것 덕분에 야안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아무리 야안이라 해도 하늘 산 같은 좋은 스승 밑에서 수련을 해 내간다 할지라도 4~5년은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었기에 그것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야안은 비록 태초의 세상에 자신이 왔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에게 자리한 시간 마법은 한정되었던 터라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그에게는 지금 이 고대 시대에서의 시간은 매우 값지고 귀중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이 더 노력할수록 자신의 시대에 거대한 영향이 일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이미 그것은 각오한 바였다.
신과도 같은 능력을 지닌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는데 모든 것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음을 야안은 잘 알고 있었다.
대충이나마 깨달은 바를 수습한 야안은 그때부터 전력을 다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보름이 지났을 때서야, 드워프의 유적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니, 실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야안은 초감각에 의해 그곳이 어딘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긴가?”
허공의 어느 한 곳을 바라보던 야안이 손을 휘저어 그곳을 향해 마법을 펼치자, 강력한 반발력이 일어나더니 이내 어린아이 하나가 겨우 들어갈 공간이 허공에 모습을 보였다.
상당한 높이였지만, 토네를 펼쳐 그 공간을 향해 한걸음에 뛰어오른 야안은 곧 거대한 압력을 느끼다 이내 주위가 암흑에 잠기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틈새를 비집어 들어가는 것으로, 그 충격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으나 예전 거인 때와는 달리 야안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허공의 어디에선가 툭 내뱉어진 그는 아직 자리한 토네 마법의 영향으로 가볍게 대지에 내려앉았다.
“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벌써 만년이 지났을 유적들이 지금까지 보존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유적들의 파괴된 모습에서 당시 얼마나 거대한 전쟁이 있었는지를 짐작한 터라 야안은 탄식을 터뜨렸다.
재질을 알기 어려운 합금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단 한 번의 무시무시한 힘에 저 지평선 너머까지 갈라진 것을 보며, 그 상대가 지난 자신이 만난 리치왕 케르몬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자라는 것을 안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감히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자였다.
지난 연합 종족들 때처럼 리트담과 붉은 대지가 함께 한다고 해도 감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스스로 물어보았으나 그 대답은 부정으로만 이루어졌다.
그 같은 전쟁이 있었음에도 대장인의 칭호를 단 야안이 놀라워할 정도의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당시의 황금 드워프들의 성세를 알 수 있다.
‘하이 드워프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들이었구나.’
보는 눈이 높아지고, 대장인으로서 더욱 견고해지게 된 야안은 그 부서진 유적의 거리 사이에 발을 옮겨 나가며 감탄에 감탄을 흘린다.
하지만 하루의 시간이 지나 야안은 단순히 이곳의 유적에서 빼앗겼던 눈길이 주위로 움직여졌다.
이곳의 세상은 지난 회색밖에 없었던 거인 족들의 세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거대한 전쟁으로 인해 크게 파손되었음에도, 여전히 이곳 세상은 붉은빛과 어두운 푸른빛으로 인해 밤낮으로 구분이 되었으며, 세상의 모든 것에 그 빛이 자리했다.
나무는 더없이 푸르름을 잃지 않았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강물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도 놀라운 것은 처음 보는 수많은 동물이었는데, 야안은 그 동물들이 지난 만 년 전에 멸종된 동물들이 아닌가 싶었다.
완벽한 하나의 세계로 구축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일이라 그것이 놀랍다.
“당시 누가 이들을 도와 이 세계를 구축한 것일까?”
마지막 전설의 현자였던 자이웅 님께서 이들을 도왔던 것일까? 아니면 그 이전에 누군가가 함께 한 것인가?
어쩌면 드래곤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하이 드워프인 만큼 특별한 능력이 있어 만들 수 있었을지도.
수많은 예측 속에서도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이 세상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거인들이 만들었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세상이라, 야안은 열흘을 더 움직인 뒤에야 황금 드워프의 망치가 가리키는 어느 한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흘의 거리였지만, 그 지난 전쟁의 여파는 이곳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마치 천재지변에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하기야 이런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곳의 경계가 무너져 본래의 세상에 그같이 영향을 미치게 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망치는 그를 거대한 문화 유적들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붉은빛이 감도는 합금으로 만들어낸 문에 안내했다.
그 합금으로 이루어진 문이 바로 황금 망치의 무덤임을 짐각한 야안은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한 황금 드워프의 망치를 들어 그곳을 향해 내려쳤다.
‘콰아아앙-’
마치 대마법이 터지 듯 거대한 울림이 일어나더니 붉은빛이 감도는 문이 조각조각 나기 시작하더니 곧 그 입구가 열렸다.
망치는 그 무덤의 입구가 열리자 다시 야안을 이끌고 어디론가 안내하기 시작했다.
무덤의 안에 야안이 발을 내디딘 순간 짙은 푸른빛이 일렁이며 어두운 지하를 밝혀나갔다. 지하는 드워프의 왕의 무덤답게 웅장한 크기를 자랑했다.
입구에서부터 자리한 조각품들이나 아무렇지 않게 벽에 조각된 모습은 지난 황금 드워프의 유적으로 그 안목이 높아진 야안도 감탄하게 했다.
그렇게 자신을 안내하는 망치는 모두 스물 아홉 군데의 방을 지나쳐 마지막 서른 번째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는데, 정작 그 망치가 가리킨 곳은 보잘것없는 흔한 잡철 따위로 만든 철궤였다.
그랬다. 분명 그것은 흔해 빠진 잡철을 뭉쳐 만든 철궤에 불과했다. 외진 시골의 대장간에서나 만들 법한 그런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이 보잘것없는 철궤가 자리한 곳에 의해 그 철궤가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다.
밖에서라면 그저 지나치고 말 것이지만, 주위에 아무렇게나 늘어진 물건들마저 장인들의 혼이 느껴지는지는 곳에 이런 철궤라니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이라면 이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구나 망치가 가리키는 곳이 이곳이지 않은가?
야안은 그 철궤 앞에 앉아 대장인의 칭호를 활성화 시키며 그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으리라 판단해서였다.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고 다시 한나절이 지나 어두운 푸른빛이 세상을 감돌 때쯤. 그 철궤를 살피던 야안의 입에서 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 발상을 한 것인가?”
지금의 자신으로도 겨우 짐작만 할 뿐이다. 이것을 본 것 자체가 대장장이로서 영광이며 또한 자신의 경지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놀라운 솜씨이기도 했다.
그랬다. 잡철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철궤라 생각한 이것은 그 잡철을 쓰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위대한 유물인 것이다.
그것의 가치를 깨닫자 비로소 이 철궤와 관련된 하나의 정보창이 야안의 눈을 어지럽히며 그 모습을 보였다.
[위대한 황금 드워프 왕 황금 망치의 유물.
등급 : S+
이 철궤는 지난 모든 황금 드워프들과 왕들이 대를 거듭해가며 만들어낸 미완성된 유물이다. 지난 만 년 전 죽음의 지배자는 이 유물의 위험성을 알았기에 그것을 지우고자 했고, 결국 이 유물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미완성으로서 남게 되었다.
* 이 유물은 황금 드워프들이 거대한 불꽃이 만든 전설의 검을 넘어서기 위해 만들기 시작하였다.
* 전설의 현자를 위한 물건이기도 하다.
* 이 유물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농축된 황금 드워프들의 비법이 사라진 지금 지난 거대한 불꽃이 이룬 경지에 올라서야 만이 이 유물의 완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그대는 도전할 것인가? 도전하는 그대에게 이곳에 이 유물을 완성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앞선 정보로 인해 야안은 이 철궤가 제 생각을 뛰어넘는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전설의 대장장이인 거대한 불꽃이 드래곤의 영혼을 기반으로 만들어 낸 전설의 검을 넘어서려 한 물건이라.
그런 발상을 하였다는 것 자체부터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앞서 거론했듯, 이 철궤가 잡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있다. 아니, 실상, 그 잡철이 보인 변화가 놀라운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야안이 잡철로 보았던 이 금속들이 어떤 원리로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이 철궤 안에 내재된 금속의 성질을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야안은 알아챘다.
그것이 지금은 사라진 황금 드워프들의 비법들이라 생각한 야안은 크게 감탄했는데, 이도 야안이 대장인이라는 위대한 경지에 자리하였기에 파악했던 일이었다.
어째서, 황금 드워프의 망치가 위대한 대장장이의 경지에 올라서지 않으면 그 자격이 되지 않는지 라는 말을 야안은 이 철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가치를 모르는 이에게 귀한 보석도 한낱 돌멩이 따위에 불과할 뿐이라.”
옛 고서에서 본 그 조언이 이처럼 마음에 와 닿을 줄이야.
잠시 철궤를 바라보던 야안은 이내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야안의 고민은 실제 이 위대한 황금 드워프 왕 황금 망치의 유물의 정보창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같이 모습을 보인 하나의 퀘스트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