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06화
상단과의 여정은 따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루했다.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는 만큼 홀로 움직이는 것에 비해 그 속도가 느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간 중간 사막의 공포라는 대형 몬스터들이 모습을 보였지만, 볼란과 모용이 자리한 만큼 별다른 피해도 보지 않았다.
상단의 사람들은 이 몬스터들을 상대하던 볼란의 저력에 질려버렸는데, 이는 그 체구에서 믿어지지 않는 신력은 둘째라 치더라도 모용 못지않은 빠른 움직임과 그 단단한 방어능력에서였다.
상급 익스퍼트의 자리한 검기가 아니라면 그의 방어를 뚫을 수 없을 것 같았으니, 그 지치지 않는 체력을 보아 예상하건대 정말로 그 홀로 모용을 포함한 자신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안은 모용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예도라는 무기를 쓰는 것을 보면서 이 예도가 생각보다 실전적인 무기임을 알 수 있었다.
검에 못지않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데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도의 이점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안은 이 예도를 통해서 뇌전검법 사초식인 즐거움의 의념을 검에 담는 계기를 잡을 수 있었다.
위대한 대장인이기도 한 그는 예도의 그 쓰임을 알게 되면서 이 예도를 고안한 자의 당시의 고민과 생각들을 짐작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예도를 다루는 정보가 부족하였기에, 야안은 사막을 넘어서 류 왕국에 도착하기 전날 밤, 모용과 검을 나누었다.
모용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그의 예리한 감으로 야안이 뛰어난 경지에 올라선 자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다만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면 설마 야안이 검의 길을 가는 자인 줄 몰랐던 것에 있다.
체구가 건장한 면은 있었지만, 그간의 그의 말투나 태도로 보아 현자 쪽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예상을 비웃듯 야안이 검집에서 검을 빼내자 모용은 숨통이 조이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무엇이라 할까?
너무도 아득한 높이에 자리한 험한 산에 올라가야 할 자의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어 버리는 그 위대한 경지를 육감을 맞이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야안은 그런 그의 상태를 뒤늦게 파악하여 스스로 기세를 줄였고, 그제야 모용은 깊은 한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기회가 언제 오겠는가?’
자신의 생에 이 같은 절대자와 검을 나누어 볼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모용은 이 기회를 준 하늘에 감사를 올리며 곧 그의 기도가 변모하더니 이내 야안의 주위를 그의 예도가 휘감기 시작했다.
모용의 검은 마치 태풍에 흔들리는 버드나무를 보는 듯했다. 굳건한 소나무조차 뿌리째 뽑아버리는 그 태풍 속에서도 이리저리 유연하게 흔들리며 쓰러지지 않는 버드나무처럼 그의 예도는 극에 달한 부드러움이 자리한다. 그저 강하기만 한 도의 쓰임으로는 예도의 무기를 뽑아낼 수 없으며, 그것은 변과 쾌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위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동화하는 그의 검을 상대하기란 그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리는 검강이 아니고서는 어려움이 커 보였다.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검이었으나, 이미 검에 의념을 싣는 고차원적인 뇌전검법을 다루는 야안에게 있어 검강이 아니어도 그것을 상대하기란 어려움이 없었다.
실제 야안의 검에서 일어난 검기는 모용이 일으키는 검기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의 검을 받아넘기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과연!’
1초식인 기쁨과 4초식인 즐거움은 유사한 듯 보이나 사실 큰 차이가 자리한다.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다. 그에 반해 즐거움은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쁜 마음이나 느낌을 말한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주위의 환경에 거슬림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예도의 쓰임이 그러하다.
하니 야안이 예도를 통해 즐거움의 의념을 깨달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래전, 누군가 이 예도를 제작한 자는 이 같은 의념을 깨닫게 되어 만들었을 것이다.
모용은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 대련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대련이 길어질수록 그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만약 그가 검강을 일으켜 자신을 제압했다면 이토록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검에 그런 강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오히려 변화나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서는 간단한 요체만으로 자신을 제압하고 있었다.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심장 소리 너머에 자리한 그의 검은 어느 순간 자신의 검을 닮아가더니 이내 그것을 넘어서고 말았다.
젊은 날, 예도를 처음 쥐고 그 쓰임에 흠뻑 빠진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대련은 대련이 아니게 되었다.
모용이 각성의 시기를 맞이하자, 야안이 검으로 그가 가야 할 길을 이끌게 된 것인데 마치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다시 가을이 와 겨울이 되는 것처럼 야안의 가르침은 매끄럽기 그지없었고, 그것을 따라가는 모용 또한 거침이 없었다.
어느 순간 모여드는 강줄기가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모용은 어느 순간 검을 놓았고 이내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시기가 왔구나.’
눈을 반쯤 가라앉은 그의 동공에서 맑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의 중심으로 회오리치듯이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른 시기의 깨달음이라 그의 마나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야안은 서둘러 그를 중심으로 마나집약진을 펼쳐 그 부족함을 채워 주었다.
또한 주술을 펼쳐 주위에 벽을 감싸 그가 청청한 상태에서 혹시나 깨어나는 것을 막았다.
‘각성의 순간을 보는 것은 처음이군.’
이미 두 차례 각성을 하게 된 자신이었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보자 묘하면서도 엄숙한 느낌이 자리했다.
저 멀리서 야안과 모용의 대련을 훔쳐보던 낭인들은 모용이 갑자기 검을 놓고, 가부좌를 틀어 앉자 직감적으로 그에게 각성의 시기가 왔음을 짐작했다.
대문파 소속이 아닌, 낭인으로서 초인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근 100년 만의 일이라, 그들은 저마다 마음의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 각성의 시기를 잘 넘기기만 한다면 낭인왕이 그 모습을 보일 것이니. 낭인들로서는 그 구심점이 된 존재를 찾게 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부디 이 벽을 넘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들은 야안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이 호위하는 상인들에게 뒤로 물러서기를 이야기했고, 그들도 잘은 모르지만 중대한 일이 있음을 짐작하고는 그 의견을 따랐다.
모용이 눈을 뜬 것은 무더운 사막이 가장 더울 시기인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였다. 꼬박 한나절하고도 반나절의 시기를 보낸 것이다.
무사히 벽을 넘어선 것인데, 모용은 그 깨달음의 여운을 감미 하는 듯 잠시 눈을 감다 이내 야안을 발견하고는 크게 절을 올렸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닿으며 손은 그 머리 위에 올리는 샤 대륙의 예법 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군신 사이나 사제간에서나 간혹 쓰이는 것이었다.
야안은 그 예법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몰랐으나, 그 자세나 그의 경건한 눈빛을 보건데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 서둘러 다가가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그대에게 이런 예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야안의 그 같은 만류에도 모용은 예를 잃지 않은 채 경건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야안 님께서 무어라 하셔도 제가 야안 님에게 받은 이 은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70평생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검을 익혔습니다. 가진 미천한 재능으로 시기와 질투 속에서 인간에게 불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 검의 일가에 올라섰으나 마음을 잡지 못해 결국 이 나이 이때까지 떠돌게 되었습니다.
한데, 오늘 대인을 만나 이처럼 기연을 가지게 되었으니 어찌 예를 취하지 않으리까?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겠습니까? 염치없이 스승님으로 모시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부디 대인의 옆에서 부려주신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야안은 그런 모용의 말에 곤란함을 보이었다. 의도한 바가 아닌 그저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인데 이처럼 크게 생각하니 그로서는 낯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야안이 샤 대륙의 습성을 몰랐기에 하는 생각이었다.
샤 대륙은 호족들의 세력이 번성해지면서 타 대륙들에 비해 그 은원관계가 확실했다. 그러하다 보니 자연히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데, 특히나 뛰어난 검의 묘리와 같은 것에는 더욱 그러한 면이 자리했다.
상당히 폐쇄적이라, 수장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제자에게도 그 초식이나 묘리를 가르칠 수 없었다. 또한, 제자가 아닌 이가 자신의 문파의 것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추살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한 실정이었으니, 야안이 모용에게 베푼 가르침은 모용에게 있어 그 상식을 넘어서는 형태의 은혜였다.
그에게 초인으로서 올라설 수 있는 단서를 준 것으로 모자라, 그를 이끌어 천추의 한이 될 지도 모를 일을 배제하게 했으니 모용이 야안을 그처럼 크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초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서 그제야 야안의 그 놀라운 경지를 엿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 깊이 모시는데 꺼림은 없었다.
야안은 잠시 고민하다 그의 바람을 허락했고, 그는 그제야 크게 웃음을 흘리며 세 번 절을 더 올렸다.
모용의 일로 인해 늦은 저녁에서야 류 왕국의 성문을 넘어서게 된 그들이었다.
근 넉 달 만에 사막행을 성공적으로 끝낸 상단이 들어서자, 그들을 맞이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다수가 상인들로, 그들은 저마다 그들에게 여러 편의를 보여주며 친분을 쌓으려 했고, 상단주인 배춘만은 그들 중 가장 큰 거상에게 약간의 물건을 팔아 치워 지난 자신들의 기반을 되찾았다.
그가 원래 있었던 저택은 그 방 개수만 이백이 넘는 곳으로 아홉 개의 거대한 창고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야안은 저택의 방 중에 귀한 손님을 모실 때 쓰이는 방에 안내를 받았고, 모용은 그의 옆방에 머물렀다.
낭인들은 후한 삯을 받고 물러났으며, 100년 만에 낭인왕이 모습을 보였음을 다른 낭인들로부터 그 말을 전했고, 그렇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모용에 대한 소문이 도시 전체에 떠돌기 시작했다.
야안은 그곳에서 머물며 배춘만이 가져온, 바 대륙의 정세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 셀리온 제국의 안정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져 가고 있었다.
그에는 새로운 리케하르산의 공작 가의 리트담 공작의 힘이 자리한 것인데, 그가 모습을 보이기 무섭게 그 대륙을 어지럽히던 난세의 잔재들이 사라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