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308화 (308/385)

야안 308화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터라 답답해하는 자신에게 쟌 단장은 그것이 너의 가장 큰 재능이다. 라 말하며 위로했지만, 오히려 그런 말을 들을 때며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실상 야안이 완성한 곡들 또한 겨우겨우 그런 음들을 다 넣어 본래의 연주와 차이 없는 연주를 완성한 것들이었다.

쟌 단장이 아닌 단원들은 저마다 제멋대로 곡을 해석하는 야안의 연주를 오래 듣지 못했다. 그들이 삼류 악단이지만 음악에 대한 해석은 작곡가의 의지를 무시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테크닉이 부족한 야안으로서는 그런 미흡한 모습은 오히려 눈에 띄어 그들로서는 야안이 마치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왜 저런 아이를 끼고 감싸는 것이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그 의문은 모든 단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연히 야안과 그들의 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소 닭 보는듯한 것이 이들의 관계였다.

시간이 흘러 쟌 단장의 생일이 되었다.

그날은 야안이 겪었던 그 어떤 날보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날이었다. 폭설로 잠시 들른 마을은 이미 눈에 파묻힌 상태였으며, 그들이 임시로 친 천막들 또한 눈에 묻혀 섣불리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이 되어 눈이 어느 정도 녹아든다면 그제야 천막을 나설 수 있으리라.

‘콜록, 콜록-’

이른 아침이건만 눈에 뒤덮인 짙은 어둠이 자리한 천막에 쟌 단장의 기침 소리가 희미한 화로의 불빛과 함께 일렁거린다.

야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변한 혹독한 날씨에 밤새워 뒤척이며 괴로움을 보이던 쟌 단장의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그의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했다.

쟌 단장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과 1년에 한 번 즐기시는 밀주는 다른 천막에 자리해 어제 먹다 남은 음식만이 생일상의 전부였다.

퍼석한 음식들을 데워 식단을 차린 야안은 아직도 요란히 기침을 내뱉는 쟌 단장에게 가져갔다.

“콜록. 콜록. 너도 먹지 그러더냐. 나는 입맛이 없구나.”

실제로 그는 쉽사리 음식을 넘기기 어려운 듯하는 모습이라 야안은 처연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퍽퍽하시면 이 물이라도 함께 하시며 드세요.”

천막 너머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을 모아 녹여 끓인 물을 건네는 야안에 쟌 단장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착한 아이를 두고 어찌 눈을 감을꼬?’

촉촉한 눈빛으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야안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오늘 숨을 거두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 어린 야안이 그저 안쓰러웠다.

‘이 아이의 기초를 다져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자신의 실력과 정성이 너무 모자랐던 모양이다. 예전 그 귀한 인연으로 귀가 밝아 야안의 재능을 알아보았던 것으로도 다행이라 해야겠지만.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것이니.

“고맙다.”

희미하게 웃음을 보이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야안이 건넨 물 잔을 받아들인다. 윤기가 없는 검은 색 털에 긴 주둥이를 지닌 그는 혀를 날름거리며 야안이 건넨 물과 함께 억지로 식사를 했다.

생에 마지막 식사라고 보기에 너무도 조촐한 것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최고의 식사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제자가 준비한 이처럼 마음이 담긴 음식이라니.

식사를 끝내고 식기를 치우기에 바쁜 야안의 뒷모습을 보던 그는 야안을 불러들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침상의 한 곳을 내어주며 자리에 앉기를 원하던 그는 연주를 청했다.

야안은 조금은 긴장한 모습을 보이며 말한다.

“희망가를 준비했어요.”

그 말에 쟌 단장은 입가에 긴 호선을 그리며 끄덕인다.

“기대되는구나.”

쟌 단장의 그 말에 야안의 얼굴에 자리한 그 하얀 털이 살짝 경직되다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삐리리릭-’

첫 음은 불안 불안한 음을 내었다. 상념이 많아 그랬던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몰두하더니 이내 천막 내에 희망의 찬송가로 가득 찼다.

많은 연습을 한 듯 곡조는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쟌 단장은 야안이 이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알았던 터라 잠시 눈가가 시큰거리다 이내 연주에 빠져들었다.

야안의 연주는 위대한 그와 같았다.

오래전, 그러니깐 전전대의 단장의 손에 이끌려 다니던 어린 악사였던 그는 여타의 종족들에게 핍박받는 텐산 종족 중에서 유일하게 그들로부터 찬양을 받는 위대한 연주가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의 연주는 대단했다.

어린 자신이 예전에 떼어냈던 악보도 그의 손에 가면 새롭게 해석되어 큰 감명을 일으켰다. 그것은 신세계였다. 그가 슬픔에 대해 연주하면 듣는 이들의 마음이 울적해졌으며, 그가 사랑에 대해 연주하면 모두가 사랑에 대해 추억하거나 그에 빠져들었다.

그때만큼은 그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전쟁이 일어난 곳에 그가 모습을 보이어 평화에 대해 연주하면 그 치열했던 전쟁은 소강의 상태에 빠져들 정도였으니,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위대한 그였지만, 그도 동족들을 바꾸어놓지 못했다.

어긋난 자유에 대한 갈망에 빠진 어리석은 자신의 동족들을 바꾸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다.

여타의 종족들처럼 나라를 만들고, 질서를 유지해 자유에 대한 그 책임을 묻는 진실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으나 오랜 시간을 길든 그들을 바꾸어놓기란 그라 해도 무리였다.

그는 오랜 세월을 떠돌다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만든 최초의 텐산 종족의 마을을 만들었고, 죽기 전 그는 비석을 세워 그곳에 하나의 악보를 남겼다.

그리고 유언을 남긴다.

‘누군가, 이 악보를 연주한다면 그때 우리 텐산 종족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유에 대해 노래할 수 있게 되리라. 그는 우리 텐산 종족의 최초의 왕이 될 것이며 모든 종족이 그를 길이길이 추앙하리라.’

그렇게 5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쉽게도 그 악보를 연주한 이는 없었다. 아니, 악보를 연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텐산 종족인만큼 여러 뛰어난 연주가들이 자리했으니 비록 어렵다고는 하나 그 연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악보를 연주한 뒤에 그가 말한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른 명이 넘는 연주가들이 그 연주를 완곡했지만, 저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진부함만을 안겨 주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듣고 최악의 자장가라 부를 정도로 악평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말년에 노망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런 말이 나왔을 정도로 어느새 그 전설은 시간과 함께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쟌 단장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이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의 그의 연주로 음악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지만, 워낙 천성이 게을러 그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하고 말았다.

그렇게 여타의 텐산 종족들처럼 술과 도박을 즐기며 허망한 세월을 보내던 그는 마치 신이 그에게 다시 기회를 내 주기라도 하듯 야안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불쌍한 아이를 하나 구제할 생각으로 데려왔던 아이였다. 차가운 땅바닥에 내팽개쳐 있음에도 기운차게 울어대던 아기가 유난히 그의 마음을 잡아당겼다.

다가가 그 작은 아기를 안아 들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더니 방실거리며 웃음을 내보였고, 그는 그 첫 대면에서 가슴이 찌리릭 울리는 충격을 받게 되었다.

어린 아기라 손이 많이 갔지만, 그래도 유순한 성격이라 키우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얼마나 귀여웠던지.

시간이 지나 우연히 홀로 연주를 해대는 모습에 이 아이가 악사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렇게 가르친 지 얼마 안 가 이 아이의 연주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아직 그 기술이 부족해 연주의 묘미를 살리지 못했지만, 그는 알았던 것이다. 지난 어린 시절 위대한 그의 연주와 아이의 연주가 겹치는 것을.

아직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 아이가 이대로 큰다면 그 위대한 음악가처럼 모든 이들의 추앙을 받으리라.

‘이 아이만이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야안의 연주였지만 그 연주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자리했다. 실제 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그는 예전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처럼 마음이 한없이 평안해지고, 그 불편한 몸 또한 마음을 따라 움직였다.

희망가의 그 제목처럼 죽음을 앞둔 그의 마음에는 생의 어떤 순간보다 찬란하게 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연주 때문인지 아니면 야안을 믿는 그의 마음 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사히 완곡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혹시나 연주에 정신이 팔려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 했건만, 다행히 연습했던 것처럼 완곡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속으로 크게 기뻐하는 데 그런 그를 쟌 단장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깨운다.

“아주 잘했다. 정말 많은 노력을 했었겠구나.”

야안의 그 한 마디의 칭찬에 긴 하얀 귀가 붉게 물들어졌다. 기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현이었다.

부끄러워하는 야안의 그 모습에 쟌 단장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안심이 된 것이다.

‘나의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제 자신이 떠나도 야안은 그 자신이 바라던 길을 꿋꿋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이 곡을 통해 그는 알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회광반조인가? 그 뼛속까지 애이던 추위가 조금은 더디게 느껴졌다. 잔기침도 줄어들었으며 젊은 시절을 상기할 만큼 그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힘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 했던 피리를 꺼내 들었다. 야안은 이번 겨울을 맞아 처음으로 쟌 단장의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을 보자 기뻐하다, 그가 피리를 꺼내 들자 눈빛을 반짝이며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 야안의 모습에 그는 기꺼워하며 말했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이란다. 지금이라면…… 그래.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평소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그의 표정과 음성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쟌 단장의 피리 소리를 듣는다는 것에 기뻐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다. 호흡을 가다듬던 쟌 단장은 그렇게 야안의 기대 속에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삐이익-’

코 흘리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열정을 안겨 주었던 위대한 그의 음악을 떠올리며 그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시작했다.

“아!”

야안은 쟌 단장이 피리를 불기 시작하면서 절로 감탄사를 짓고 말았다. 그의 가슴이 크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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