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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09화 (309/385)

야안 309화

‘어떻게 이런 음악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연주도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고 야안은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쟌 단장의 그 힘찬 피리 소리에 비교할 바가 되지 않건만, 그 낮은 음색에도 가슴을 울리는 이것은 무엇일까?

연주가 절정에 들어서면서 야안은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지막 음조를 끝내며 천천히 거친 숨소리와 함께 피리를 놓던 쟌 단장은 그런 야안의 모습에 처연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꺼냈다.

“하아……. 하아. 다행이구나. 너에게 알려줄 수 있어서.”

거친 숨을 흘리는 그에 야안은 박수를 치다 다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의 그 정정한 모습이 거짓말 같이 갑자기 안색이 좋지 않으니 어린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야안에 그는 힘없이 침상 아래에 숨겨 둔 책자를 꺼내어 내어 주며 말했다.

“나의 하아 하아. 이 마지막 연주가 초석이 되었다면. 그랬다면…….하아. 하아. 이것이 네가 가야……. 할 위대한 음악…….”

숨이 거칠게 차올라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그에 야안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른 때와 다름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머리가 아찔해 졌고, 그 크고 맑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얼떨결에 받아든 이름 없는 낡은 책자 위로 그의 눈물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제 잘 보이지도 않는 흐릿한 눈 속에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가 울고 있음을. 이별에 슬퍼하고 있음을 알던 쟌 단장은 어렵게 손을 올려 야안의 볼을 매만졌다.

“미, 미안하구나. 하아. 하아. 사랑한단다.”

쟌 단장의 그 말에 야안은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다. 격정에 뒤흔들리던 그는 오랫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던 단어를 결국 내뱉고 말았다.

“아, 아……. 아버지. 훌쩍. 훌쩍. 아버지.”

엉엉거리며 더 이상 쟌 단장이 아닌 아버지를 말하는 야안에 쟌 단장은 이제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 미소를 머금는다.

“하아. 하아. 너는……진작에 그렇게…….하아 말했어도 됐단다.”

야안의 그 말이 평생을 살아오며 받은 그 어떤 행운과 선물보다 값진 것이라는 듯 그는 죽음 속에서도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쟌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마지막 숨을 거칠게 흘러 뱉고 말았다. 한기가 자리한 어두운 천막 안에 아버지를 찾는 어린아이의 울음만이 천막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타다닥. 타닥-’

가까운 야산의 어디에 장작불과 함께 타들어 가는 그를 바라보던 야안의 퉁퉁 부은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일렁거리며 흘러나온다.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아.’

장을 치르고 있는 지금도 야안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처럼 장을 치르는 것은 테산 종족에게 드문 일이었다. 본래라면, 텐산 종족은 죽으면 길가에 아무렇게 버려지고 가지만, 야안은 쟌 단장의 재물들을 단원들에게 내어주며 그를 장을 해주기를 부탁했고, 오랜 시간 같이 한 덕분인지 이들은 귀찮고 번거롭지만, 그의 뜻을 받아 주었다.

이제 중심이 사라진 이 작은 악단은 이리저리 떠돌다 제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중 가장 하는 일이 없는 야안이 먼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니, 쟌 단장이 남긴 재물은 야안에게 큰 가치가 있었지만 야안은 아무래도 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아버지였다.

자신에게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가르쳐 준 것에 비한다면 그런 재물 따위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치른 야안은, 그 타고 남은 잿더미 속에서, 아버지의 남은 유골을 거두어 품속에 챙겼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 마을에 들렀던 악단은 둘로 나뉘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시금 내리는 눈은 저 멀리 사라진 작은 자취를 지워낸다.

블란이라는 대도시에 떠돌이 한 명이 들어섰다.

블란은 오래전, 쟈칼들의 위대한 왕 차인 야안이 세운 세 번째 대도시 중 하나로, 여러 종족이 오가는 발달된 무역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예전 야만인이나 다름없었다는 기록을 상기하기 어려울 만큼 쟈칼의 문화는 어느 종족 못지않게 크게 발달되어 있었는데 특히 장인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장인은 물론 타고난 용감한 성정에 뛰어난 용사들도 많아 그 치안도 뛰어났고, 일찍 성인으로 자라는 터라 나라에서 인력이 부족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숙달 되는 데에 다른 종족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지만, 앞서의 이점은 그런 것을 상회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블란의 중심가에 세워진 오래된 석고조각품을 바라보던 이방인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는다.

마치 감명을 받은 모습으로 보였다.

“이분이 위대한 왕 차인.”

이곳에 오면서 들은 그의 위대한 삶을 들었던 터라 야안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같은 위인과 같은 이름이라니.’

이제 18살이 되어 성인이 된 야안의 몰골은 다른 텐산들에 비해 상당히 점잖은 편이었지만, 워낙 텐산 종족의 인식이 좋지 않은 터라 이곳에 들어서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현재 그는 그의 아버지 쟌의 유언에 따라 위대한 자가 만들었다는 대륙의 저 끝에 자리한 마을로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그의 여정은 매우 고된 것이었다.

여비를 벌기 위해 중간 중간 들린 마을에서 고된 일들을 해야만 했고, 그 고된 일상에서도 야안은 아버지가 그를 위해 남긴 악보들을 살펴보며 그 실력을 갈고 닦았다.

덕분에 텐산 종족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의 열정은 뜨거웠다. 그리고 그 뜨거운 열정만큼 그의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한 상태였다.

자신의 머리를 반쯤 삼킨 모자를 벗은 야안은 그것을 거리의 한 곳에 내려놓고는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아 피리를 꺼내 들었다.

몇몇 이들이 그를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저마다 각기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대도시인만큼 텐산. 저 문제 많은 떠돌이들이 여비를 벌기 위해 길거리 연주를 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시끄러운 도시를 가로질러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주위의 이들은 저마다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던 이들도 그 음악에 빠져들었고, 감수성이 풍부한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는 것에 찌들어 바쁜 일상을 보내던 이들도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전의 여유를 찾았으며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웃고 울며 그 피리 소리에 빠져들었다.

피리 소리는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났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떼어 모여든 이들로 광장에는 많은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랬다. 예전 쟌이 야안에게 들려주었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재능이 그 고된 시간을 걸쳐 꽃피워진 것이다.

조금 전의 그 시끌시끌했던 주위는 겨울의 어느 깊은 밤을 상기할 만큼 고요했다. 야안은 저마다 그 격정에 휘말린 대중들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더니 이내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왕의 귀환.>

그 곡은 예전, 어느 유명한 작곡가가 위대한 왕 차인 야안의 일대기에 깊은 감명을 받아 쓴 곡이었다.

이 왕의 귀환은 최소 20명의 인원이 이루어져야 묘미를 살릴 수 있는 합주곡이다. 하지만 합주곡의 의미를 무색하게 할만큼 야안은 피리 하나만으로도 이 음악의 풍미를 가득 채웠다.

광장에 모인 쟈칼들 사이에 자리한 타 종족들은 연주가 계속 진행되면서 저마다 가슴에 차오르는 무언가에 눈시울이 붉히고 말았다. 야안의 피리 소리에 상행과 삶 속의 치열함에 하나, 둘씩 잊어버린 정의를 찾았기 때문이다.

타 종족들에게도 그런 감명을 주었으니 정작 위대한 왕의 후손이었던 쟈칼들에게 있어 어떠한 감성을 느끼게 하였겠는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구전으로 들었고, 커서는 역사 속에서 이를 더 배웠으며 차인 야안이 만든 문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쟈칼 종족의 자부심을 키우던 그들이었기에 이 왕의 귀환의 곡은 그들의 심장을 거친 야생마 마냥 뛰게 했다.

오래전, 차인 야안을 왕으로 모시며 드넓은 벌판을 누비며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한 이야기가 자리한 부분에서 어린 계집아이나,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은이조차 용맹했던 전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연주는 밝고 경쾌한 부분으로 접어든다. 결국 위대한 종족 전쟁을 끝내고 쟈칼들을 하나로 통일하게 되면서 세워진 최초의 왕국은 놀라운 문명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힘이 없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그들을 보호받게 되었고, 무력 이외에도 더 중하다는 것이 있음을 쟈칼들은 인식하게 되었다.

연주는 천천히 지루하고 또한 슬픈 음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을 만들고 이끌었던 위대한 왕 차인 야안은 그 넉넉함 속에 자리한 평화에서 쟈칼들의 인식 속에 사라져 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그 현상에 안타까워하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에 이 위대한 왕은 그저 미소를 보일 뿐.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위대한 문명을 이룩하던 그들 왕국에 앙숙이었던 히나타 종족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악명 높은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그들에 쟈칼들은 저마다 공포와 혼란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때 그 위기 속에서 백성들로부터 잊혀져가던 위대한 왕 차인 야안이 빛을 발했다.

노구를 이끌고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과 함께 그들의 정복 전쟁을 막아서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웅장한 연주 소리는 차인 야안의 행보를 상기하게 했다.

결국 자신의 오랜 수하들의 희생을 끝으로 적의 수장을 잡은 그는 많은 피해를 예상했던 전장을 그렇게 끝낼 수 있었다. 이로써 백성들은 다시 평화를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 무리한 전장의 전술 운용으로 인해 위대한 왕 차인 야안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의 죽음에 만백성이 눈물로 땅을 적셨고, 하늘은 그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마지막에 끝에서야 백성들은 자신의 왕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어느새 연주는 끝이 났다.

왕의 귀환의 연주가 끝이 난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대도시의 사람들답게 저마다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지금의 이 여운을 차마 떨치기 어려웠다.

‘짝짝짝-’

누군가의 박수 소리와 함께 곧 광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침묵만이 자리했던 그곳은 그렇게 텐산 종족의 이 이름 모를 음악가에 찬사가 끊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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