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14화
지난 전쟁은 수많은 물자를 잡아먹었고, 수많은 물자를 삼켜 버렸으며 땅은 황폐해졌다.
하니, 엄청난 자금을 먹어치우는 군대의 규모를 줄여 이를 복구해야 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러나 리트담 공작 가문이 다스리는 리케하르산 영지는 이 상식을 벗어났다. 이종족들로 인해 그 복구가 끝이 난 상태인 것이다.
드워프와 엘프 정령사들의 도움으로 무너진 성은 복구되었고, 물의 종족 도론에 의해 수로 또한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대지 또한 엘프들과 현자들이 움직여 그 기운을 복구하고 있으니, 현 셀리온 제국에서 황성도시에 못지않게 부유한 곳이 이곳 리케하르산 영지라 하겠다.
이러한 실정이니 그들로서 지금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행태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에 충분한 일이었고, 황제의 측근들 또한 이 점에 대해 마땅찮아하며 그에게 경고의 암시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꺼려야 할 존재인 셀리온 황제는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그 같은 실태에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 같은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절로 고개를 젓곤 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전장 당시에 그가 보여준 그 놀라운 주술을 상기한다면 능히 그는 전쟁의 판도를 뒤집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제국의 초인들은 고작해야 다섯이었고, 그는 그중 가장 강한 천하제일인이었다. 그것도 격이 다른 천하제일인으로 그가 전장에서 보인 위용을 상기한 초인들은 자신들이 합공한다고 해도 감히 그 승산을 잡기 어렵다 이야기했다.
대적마가 필요했고, 자연히 그들은 한 존재를 떠올렸는데 바로 다른 대륙에서 건너 온 베론 야안이었다.
그가 보인 힘을 상기한다면, 리트담 공작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 판단한 것이다.
하나 문제는 그가 통일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 지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리트담과 그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있다.
만약 그가 황제의 힘이 되지 않고, 리트담 공작 밑으로 들어선다면 그보다 더 지독한 꼴이 어디 있을까?
다시 전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며, 제국의 미래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수많은 이들의 불안을 잠재울 오랜 여정을 끝낸 방랑자가 황성 도시에 들어서고 있었다.
전란으로 인해 들끓었던 도적들은 전쟁에 단련된 병사들에게 정리되어가고 있었으며, 반란을 야기하여 왕국을 꿈꾸는 세력들과의 전쟁 또한 몰아치는 초인들에 의해 그 끝을 달리고 있었다.
부패한 정적들을 정리하며 그 재산을 몰수해 항구도시가 재건한 뒤라 물자가 돌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일자리로 덕에 제국민들 또한 막막한 미래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그락, 다그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말을 탄 두 사내가 황성 도시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들이 타고 있는 말들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명마들이라 황성 도시를 지키는 경비병들은 그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움을 느꼈다.
역시나 그중 한 사내가 내놓은 신분패는 고위 귀족의 자제를 이야기하는지라, 경비병들은 어려움을 보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갔고, 다른 사내 또한 그 뒤를 따랐다.
“활기가 넘치는군요.”
오랜 전란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제국의 황성 도시의 거리는 화려했으며 또한 모용의 말처럼 활기가 넘쳤다.
황성 입구에서 보았던 수많은 상인 덕분에 만들어진 시장의 규모도 놀랍고, 높게 늘여진 건물들에 들어서고 나가는 행인들의 숫자도 놀랍다. 항구를 복구 개방하여 들어선 타 대륙의 신비로운 문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최근 샤 대륙에서 유행 중인 무인 마차 또한 볼 수 있었다.
전란의 시대에서 보았던 모습과 달리 밝은 모습이 자리한 제국민들을 이곳에 오는 내내 보았던 야안은 이곳 황성 도시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자리하자 절로 미소가 일어나 고개를 끄덕인다.
야안과 모용은 그로부터 한나절이 더 지나 해가 저물 때쯤에 가까운 여관을 잡았는데, 말을 볼 줄 아는 여관 주인은 그들이 타고 온 말이 얼마나 뛰어난 명마인지를 대번에 알고 직접 안내를 했다.
제국에서도 백작 가 이상 정도나 되어야 타고 다닐 명마인 것인데, 야안 일행이 타고 온 이 말들은 처음 보는 종이라 그 가치가 높았다.
희귀성을 본다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것이다.
‘도대체 이 같은 명마를 타고 온 저분들은 어떤 분이시지?’
절로 궁금증을 보이던 여관 주인이었는데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야안과 모용이 타고 온 이 말들은 사실 흔히 구경할 수 있는 짐마들을 사들여 야안이 개량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이웅의 안배를 통해 그의 주술을 얻게 된 야안이 보일 수 있게 된 신기로, 예전 자이한이 보였던 것을 한참 넘어선 수준의 주술인 것이다.
리트담이 예전 외형을 바꾸었을 때 보인 주술과 다른 형식의 주술이라 비교의 대상에 둘 수는 없겠지만, 그 효능에 있어서만큼은 그에 못지않아 보인다.
다음 날이 되어 다시 황성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야안과 모용에게 정체 모를 이들이 다가왔다.
모두 넷으로 보기 드문 수준의 기사들이었다. 그중 대표로 보이는 이는 상급 익스퍼트에 달해 있었는데, 야안도 아는 이였다.
예전 전쟁에 나서기 전 제 4기사단을 이끌던 아세란 백작으로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가와 예를 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며 서신을 건네는 데 잠시 야안의 곁에 있던 모용을 살펴보다 이내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리고 말았다.
제국의 초인에게서 느꼈던 그 아득한 벽을 그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 놀랑 말문이 막히는 가운데 야안이 서신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간 황제 폐화께서 걱정이 많으셨군요.”
미소를 보이며 하는 야안의 말에 아세란 백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로 볼 때 최소 야안이 황제의 적은 아님을 인지한 것이다.
“덕분에 번거로운 절차는 겪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아,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며 앞장서며 호위하는 그들에 야안과 모용은 별다른 잡음 없이 황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수하로부터 야안이 적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바를 미리 보고받았음에도 셀리온 황제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한 모습인데,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리 준비한 밀실로 걸음을 옮겼다.
독대를 하겠다는 황제의 뜻에 신하들은 우려의 모습을 보였다. 만약 야안이 다른 뜻을 품었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그런 것이지만 그는 그런 그들의 청을 물리며 기어이 독대를 고집했다.
밀실이라지만 황성의 귀빈실 못지않은 화려한 방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야안과 대면하게 되었는데, 야안은 황제인 그에게 절을 올려 예를 보였고 셀리온 황제는 그런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미소를 보였다. 마치 친우를 맞이하는 그 태도에 야안 또한 절로 마음이 일어 미소를 보인다.
“이제 그 대의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소?”
셀리온 황제의 그 말에 야안은 감탄을 보인다. 그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면 대외적으로 보인 리트담 공작에 대한 무관심이 이해되는 바이다. 또한 지금 이처럼 야안을 밀실에 데려온 이유도 알 수 있다.
야안은 다시금 예를 보여 옷 가짐을 바로 한 뒤 말을 꺼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지난 그 험난한 전란의 시대도 앞으로 제가 할 이야기에 비할 바가 아니니.”
그렇게 야안은 그 전설보다 더 전설 같은 거짓말보다 더 거짓 같은 숨겨진 진실과 비극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고, 강철의 심장을 지닌 셀리온은 그 아찔한 충격적인 진실에 눈빛이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야안에게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의 손끝이 잘게 떨린다.
타고나기를 강철의 심장을 지닌 셀리온이었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그 거대한 스케일에 허우적거려야 했다.
믿기 싫은 일이었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이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번뇌가 그의 머릿속을 뜨겁게 헤집고 다녔고, 야안은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라 한발 물러서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범인이었다면 야안이 그 어떤 증거를 내놓아도 부정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던져 그 치열한 싸움 끝에 승리해 제국을 건설했건만.
이제와 보니 모래 위에 세워진 것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하니 어찌 그것을 받아들일까?
하나, 셀리온은 범인이 아니었다. 애초 범인이었다면 야안과 베론 제국이 그에게 협력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철의 심장을 지닌 셀리온은 결국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난세는 아직 시작도 안 된 것이었군.”
초췌한 얼굴로 담담히 그리 말하던 그의 눈가는 젖어 흐릿해진 야안을 향해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야안이 놀라 만류하려 했지만 그 또한 실례라 어찌하지 못하는데 셀리온이 야안에게 세 번 목례를 취하며 무겁게 말을 꺼냈다.
“개인으로서 또한 셀리온 제국의 황제로서 위대한 현자님의 그 숭고한 희생에 약소하게나마 감사의 예를 보입니다.”
“아! 황제 폐하께서는 바 대륙의 모든 인간을 대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만 예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의 말에 더 놀라 다가가 손을 잡고 일으키니 셀리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에 젖어서인가 눈에 빛을 발하던 셀리온이 조용히 말을 한다.
“지난 리트담 공작의 의도에 저는 현자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도 의심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현자님의 그 위대한 계획에 앞서 작은 힘을 보탤 수가 있다는 것이 그저 반갑고 기쁠 따름입니다.”
야안은 그리 말하는 셀리온 황제에 감사의 예를 보이었고, 그런 그의 예에 셀리온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 손을 저었다.
자신이 제국의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하나, 야안은 인간만이 아닌 모든 종족을 막론하고 살아 숨 쉬는 이들을 위해 아리스 님께서 내려주신 구세주였다.
죽음의 지배자라는 그 막강한 존재를 막아설 용사이며, 세상에 남겨진 마지막 희망이다. 그런 고귀한 존재의 예를 어찌 받을 것인가?
잠시 이 점에 대해 실랑이를 보이던 그들은 이후 그 비극의 날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긴 토론을 시작했다.
제국은 지난 황제가 보인 행보로 인해 한바탕 시끄러웠다.
애초 건국했을 때부터 미루어 두었던 일을 행한 것인데, 바로 불필요한 군대의 해체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