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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16화 (316/385)

야안 316화

27. 에이션트 드래곤

‘언제나 저의 상식을 넘으시는군요.’

지난 1년간 중대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같은 신기를 만들어내어 나타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 놀라운 주술의 경지와 그 같은 신기를 얻으시다니. 이제 야안 님께서는 무위에서도 저를 뛰어넘으셨군요. 정말 경하드립니다.”

모든 힘을 반으로 줄여 버린다는 신기로 인해 더 이상의 대련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물론 그 같은 신기가 있다고 해도, 탈인의 경지에 올라선 리트담이 그의 모든 힘을 끌어 올린다면 야안은 검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하나, 그저 그간 서로의 성장을 알아보기 위한 인사와 같은 대련이었으니만큼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리트담에 야안 또한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리트담은 야안의 그 인사에 다시금 예를 보이고는 서둘러 야안을 대접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리트담 공작의 측근인 제른 자작은 근 몇 달 만에 리트담 공작으로부터 연락이 오자 놀라다, 귀빈을 모시니 준비를 하라는 말에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리트담 공작의 분신이었던 인형이 그 자취를 감추고, 저택의 중심에 리트담 공작과 야안이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미 급한 준비를 끝낸 제른 자작은 그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다가와 예를 보였다.

“신 제른 자작이 리트담 공작님과 귀빈을 뵙습니다.”

예를 보인 제른 자작은 고개를 들다 이내 리트담 공작이 데려온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리케하르산 공작 가의 정보부 부장으로서 활동하는 그인지라, 현재 제국에서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인물이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야안이 워낙 은밀하게 움직였던지라, 황제의 지금 같은 행보가 무슨 의미인지 그로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 이렇게 야안이 자신의 주군과 함께 나타나자 노련한 그답게 그는 곧 자신이 모르는 황제와의 밀담이 있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알아보아야겠다 생각한 제른 자작은 리케하르산 공작 가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꽃의 정원에 그들을 안내했다. 수많은 기이화초들이 지리한 이 정원은 공작부인인 푸른 들꽃이 직접 가꾸는 곳으로, 인간으로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장관이 자리했다.

노을이 지고 있는 터라, 마치 그림 같은 경치가 눈을 현혹시킨다. 야안 또한 잠시 감탄을 흘리다, 곧 익숙한 누군가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야안 님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저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공작부인답게 꾸며진 탓에 과거의 그때보다 더욱 화사한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에 리트담이 다가가 그녀를 반겼고, 야안은 그 둘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푸른 들꽃 님은 그간 더욱 아름다워지셨군요. 늦었지만 두 분의 결혼 축하드립니다.”

야안의 축하 인사에 푸른 들꽃과 리트담은 다시금 감사의 예를 보이며, 준비한 음식과 술이 자리한 차려진 탁자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 속에 자리한 짙은 꽃향기와 붉게 물든 노을 속의 그 아름다운 경치는 그 어떤 파티보다 돋보였다.

그간의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리트담은 야안의 그 놀라운 주술 성장의 비밀에 자이웅이 남긴 금빛 진주가 있었음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보아 자이웅 또한 말년에 탈인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짐작한 것이다. 과연 전설의 현자라 생각하던 그는, 만약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분이 자신이 추구하려는 주술의 절대적 경지에 올라섰으리라 생각했다.

야안은 리트담으로부터 그간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가 벌인 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종족과의 단단한 연합의 형성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이외 베론 제국과 연계하여 왕국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부분에서 감탄을 흘려야 했다.

리트담 공작 가의 도움으로 인해 이제 흔들림 없는 방어 체제를 완성하였다 했는데, 이미 이야기한 이종족들의 이주 또한 현재 70%이상 진행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야안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이제 암흑의 숲의 주인인 카시 종족과 대치한 상황이라 하는데, 현재의 전체적인 전력만을 본다면 카시 종족을 넘어섰지만 문제는 그들의 왕 샤콜을 대적할 자가 없었다.

이 절대자를 맞서기 위해서는 야안과 리트담 둘 중 하나가 움직여야 했는데, 리트담이 움직이기에는 셀리온 제국의 정세가 불안정한 터라 그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이제 야안이 나타났고, 셀리온 황제의 그 약조에 대해 들었던 만큼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야기가 한참 꽃이 필 무렵에야 시종장이 모용과 제크 경을 모셔 왔다.

제크 경은 셀리온 황제로부터 후작의 직위도 물린 채 황제의 호위 기사로 있다, 주군인 야안이 모습을 보이자 미련 없이 그를 따랐다.

그는 지난 보름간 모용과 함께 야안을 보좌했는데, 그 성정이 비슷하며 또한 그 실력도 대등한 터라 사사로이는 라이벌의 관계에 놓인 상태였다.

이미 여러 인연이 있는 제크 경과 달리 샤 대륙에서 연을 맺은 모용은 처음 만나는 자리라, 야안이 나서 서로에게 소개해 주었다.

모용은 실제로 그 놀라운 권세를 자랑하는 리케하르산 리트담 공작이 브라운 인이자 묘한 거부감을 받았다.

이는 그 또한 샤 대륙의 황인이라, 브라운 인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자리 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 또한 초인의 반열에 오른 터라 그 홀로 전장을 책임지었던 리트담 공작의 소문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리트담 그에게서 자신은 감히 측정하지 못할 절대자의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이곳 제국에 터를 잡지 않고 샤 대륙에 터를 잡았다면 어쩌면 샤 대륙은 강력한 제국이 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나의 뿌리 깊은 편견마저 날려버리는 존재감이라니.’

모용은 왜 주인께서 리트담 공작 그에게 찬사를 보이는지 이로써 알 수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쏟아질 것 같은 별이 자리한 밤이 찾아왔다.

마법 등에 어둠을 물려서일까? 아니면 찾아온 반딧불에 환상 같은 정원의 아름다운 탓일까? 야안은 정원에서의 밤이 유독 짧게 지나간다고 느끼며 오랜만에 찾아온 이 여유를 즐겼다.

* * *

리케하르산 공작 가는 어느 때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간 공식 적인 자리를 자제하던 리트담 공작이 대외적으로 나서 물자의 안정을 찾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종족들과의 새로이 회합하여 몬스터들을 몰아내기 시작하는 등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흔들림 없는 안정을 찾아갔다.

한편으로 리케하르산 공작 가의 동북쪽에 자리한 항구를 크게 열어, 이종족 이주에 대한 일을 마무리 짓기 시작했는데, 이는 베론 제국의 도움이 컸다.

“이렇게 그대를 두고 가는구려. 미안하오.”

리트담의 그 말에 푸른 들꽃은 고개를 저으며 환한 미소를 보인다.

“일의 중함을 모르는 바가 아닌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부디 야안 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어주고 오셔요.”

그리 말하는 아내가 사랑스러워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리트담은 이내 뜨겁게 입을 맞추며 그 아쉬움을 달랜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별일 없기를 바라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 조심스러운 남편의 말에 푸른 들꽃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제가 먼저 해야 하는 말인데. 대공께서도 부디 몸 성히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가리다.”

더 이상 흔들림 없이 몸을 돌린 그가 손을 휘젓자 그의 분신이 그의 옆에 모습을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면 너무도 똑같은 분신으로 인해 그가 원래 쌍둥이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상급 익스퍼트 검객에 비해 조금은 모자란 힘을 지닌 인형이었으나, 이는 전투용이 아닌 대외적인 눈속임용에 치중한 탓이 컸다.

실제 이 인형의 사고의 흐름은 그와 90% 가까이 유사하여 일을 처리하는 데 무리가 없었고, 스스로 능력을 벗어나면 리트담에게 그 의식을 공유하는 능력 또한 갖추었다.

이를 본다면 과연 탈인의 경지에 오른 그가 아니고서는 창조하기 불가능한 인형이라 하겠다.

‘스르륵-’

이내 그의 몸이 땅속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마치 그 일괄의 과정을 모른다면 여타의 변화가 없어 보인다.

리트담을 닮은 인형은 푸른 들꽃에 예를 보이고는 그 주인이 해야 할 일을 처리하기 위해 곧 문을 나섰다.

인형이 문을 나선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푸른 들꽃은 걸음을 옮겨 테라스로 나섰다. 드워프 장인이 공을 들인 화려한 테라스는 눈을 현혹할 만한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그녀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동북쪽에 자리한 곳을 향해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였을 뿐이다.

‘아리스 님의 가호가 그에게 깃들기를.’

본래의 계획이 어긋난 지금 그저 기댈 곳은 주신 아리스 님뿐이었다.

주술로 공간을 접어 목적지로 달리던 리트담의 외형 또한 어느새 변형되어 있었다. 인간이 아닌 엘프로 그 모습을 변형한 것인데, 단순히 외형뿐만이 아니라 그 기도 자체 또한 바뀌어 있었다.

육식을 하는 인간 특유의 냄새도 지워져 버렸으며, 눈빛도 어딘가 무미건조한 엘프의 눈과 유사했다.

입고 있는 외투와 짐 이외 모든 것이 바뀐 것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걸음걸이를 비롯한 여러 행동의 특성도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저택에서 나선지 한나절이 되어서야 그는 자신의 목적지인 유겐 항구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셀리온 제국에서도 가장 큰 항구인 이곳은 이종족들이 40% 이상이 모여 거대한 항구 도시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런 특색을 지닌 항구 도시답게 이곳 항구 도시를 맡은 유겐 자작은 하프 엘프로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현자이기도 했다.

유겐 항구는 엘프들과 드워프, 거인족들이 함께 공사한 거대한 렉스퍼트라는 항구가 자리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항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리트담 공작 가에서 만든 그 크기가 일만 톤에 달하는 배 스물 척과 전쟁 때 쓰였던 비행선을 개조한 배들 일백 척이 정착한 상태였다. 또한, 보름 전에 들어온 베론 제국의 팔천 톤에 달하는 배들 칠십 척이 정착되어 있었다.

그 이외 크고 작은 배들이 몇백 척에 달했는데 이 모든 배가 정착하고도 항구에는 자리의 여유가 있었다.

현재 이곳 항구에서는 출발 준비로 유독 바쁜 일정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번 출정에 책임자인 전쟁 영웅이기도 한 황금 심장은 베론 제국의 책임자인 멀머던 종족의 후작인 켈란과 출정 시간을 언제로 할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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