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24화
이 현자의 탑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역설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 그러했다.
바로 야안 그가 3년의 시간 동안 하나와 함께 했던 심상의 세계와 같은 형태가 바로 현자의 탑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현자의 탑은 오직 전설의 현자만이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또한 이 현자의 탑은 전대의 전설의 현자들의 심상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런 이유로 대현자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전대의 위대한 대현자 테무드는 이 현자의 탑에 들어설 수 없었다.
이 현자의 탑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아리스 님과 드래곤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아리스 님은 몰라도 죽음의 지배자의 수작에 드래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었던 탓이다.
이 때문에 현자의 탑은 근 만년이 시간을 넘어 주인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대현자에 올라설 수 있었던 야안은 아직 현자의 탑을 마주하지 못했다.
전설의 현자 비기너를 선택한 뒤 그 얻게 된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촉박하게 하나로부터 배워야 했던 이유도 없지 않았다.
모든 우주의 진리가 쓰인 곳이라 일컫기도 한 현자의 탑이기에 야안은 그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욕심이 일렀다.
“잠시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홀로 그리 중얼거리던 야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현자의 지팡이를 크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우우우웅-’
그러자 요란한 바람 소리가 크게 일며 공간이 갈라지며 하얀빛이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기운은 야안 그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그 옛날 고대 거인들의 퀘스트에서도 또한 황금 드워프들의 퀘스트를 가면서 겪은 태초의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처음 이 태초의 공간을 맞이하던 때와 달리 그는 거침이 없었다.
‘또각, 또각-’
곧 그 안에 거침없이 들어갔고, 이내 그 일그러진 공간은 그가 들어서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었다.
‘이곳은 변함이 없군.’
처음 이곳을 보았을 때 백색의 지옥을 상기하였는데, 지금 대현자가 되어 이곳을 방문하니 이곳만큼 현자에게 축복인 곳은 없었다.
삿된 존재에게 있어 이곳은 아가미가 없는 인간이 물속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느낌일 터였다.
하기야 그토록 불편하지 않았다면 이곳 태초의 공간은 이미 오래전 삿된 자들이 오래전에 집어삼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이곳에서 시작해 볼까?”
사실 어디에서나 똑같은 곳이라 상관없어 보였으나, 대현자에 오른 야안에게 있어 이곳은 조금씩 달라 보인 모양이다.
그는 이번에도 현자의 지팡이를 들어 보였는데, 붕괴 된 메시지 마법을 복원할 만큼 놀라운 경지에 이른 그도 이 마법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그는 곧 하나의 마법을 연창하기 시작하였다.
이 끝없이 넓고 높은 태초의 공간을 마치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소리가 일러진 것인데, 다만 야안이 내뱉고 있는 언어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형태의 것이었다.
그토록 생소한 야안의 언어는 다름 아닌 오직 전설의 현자만이 뱉을 수 있는 마법 룬의 언어였다.
뜻글자인 룬을 음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이 룬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끄집어낼 수 있다.
현재 야안이 하고 있는 행위는 그야말로 이적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초인이라 불리는 고위 현자 익스퍼트인 경우에도 그가 표현할 수 있는 룬의 조합은 128개가 고작이다. 물론 마법진을 이용한다면 그 두 배까지 해낼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야안은 그런 룬의 조합을 256개도 아닌 1,000개가 넘게 연창하며 조합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2,048개의 룬이 조합을 이룬 뒤에야 야안은 마법의 연창을 끝낼 수 있었는데, 이도 고대 시절 변형된 마법 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그 두배인 4,096개의 룬의 조합을 이루어야 했을 것이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방랑자가 바라노니 태초의 문은 열리어지어다.”
마지막 그의 말을 끝으로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태초의 공간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지가 붕괴되는 조짐이 보이더니 이내 야안의 앞을 기점으로 저 지평선 너머까지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웬만한 백작 가의 영지를 집어삼킬 만한 규모인지라 그것이 놀라운 가운데 그 무너진 땅 밑으로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황금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탑이었는데, 어떠한 재질로 이루어 진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현자의 탑은 빠르게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몇백 층을 넘어 저 끝에는 미세한 점으로 보일 따름이다.
무시무시한 현자의 탑을 그렇게 처음으로 보게 된 야안은 한동안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다 곧 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가오는 그의 걸음과 함께 탑은 하나의 문을 만들어내었다.
‘그르르릉-’
마치 거대한 성문을 상기시키는 문이었는데, 그것은 따로 조작을 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열리더니 오랜만의 방문자를 반기었다.
곧 그가 들어서자 문은 닫히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리던 야안은 이내 자신을 향해 비추는 하나의 빛줄기를 따라 걸어갔다.
빛줄기는 그를 이 탑의 중심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에 도착하기 무섭게 탑을 오를 수 있는 회오리 형태의 계단을 발견했다.
밑에서는 도저히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구조인데, 야안은 그 위를 바라보다 곧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심상의 세계와 유사한 곳이로군.’
그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이라 신기하다 생각한 가운데 그의 시선에 따라 어둠에 잠겨 있던 탑 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걷어진 그곳에는 수많은 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략 보아도 백 개가 넘는 방이 보였는데, 야안은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서기 무섭게 현자의 탑이 그에게 각 방의 정보를 전해 준 것인데, 지금의 그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방들은 수련의 방인 것으로, 초급 현자 마스터까지의 모든 법칙과 지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 방은 오직 전설의 현자만이 열 수 있으며 그가 허락한 인간들만이 그곳을 쓸 수 있었다.
라블랑카스가 이 같은 방을 만든 이유는 최초의 인간인 자신과 달리 혼돈의 존재인 인간들이 너무도 나약하였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문제는 그 가능성을 틔우기에 쓰이는 시간과 노력이었다. 어떤 한 가지에 특화된 다른 종족과는 다른 것인데, 이 때문에 인간은 그 수많은 종족 중에서 가장 나약했다.
‘만약 인간의 가능성을 틔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죽음의 지배와의 전투에서 그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만든 것이 이 수련의 방이었다.
전설의 현자를 안내하는 운명을 지닌 드래곤들의 가르침과 유사한 형태를 만든 것인데, 이 수련의 방 덕분에 라블랑카스의 다음 대인 2대 전설의 현자 로블랑은 죽음의 지배자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다음 대 3대 전설의 현자 자이웅은 애초 너무도 늦게 발견되었고, 결국 이 수련의 방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자이웅의 시대에서 죽음의 지배자의 세력에 크게 밀렸던 것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아마 저 위에는 이와 유사한 수련의 방들이 자리를 잡고 있겠지.’
역대 전설의 현자들의 심상이 그대로 반영된 곳이라 하였으니, 단순히 마법만이 아니라 검, 정령, 주술에 관련된 방 또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터였다.
‘나에게는 잘 된 일이로구나.’
하나로부터 그 자신을 안내할 드래곤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들었던 그로서는 그 스스로 검과 정령, 주술을 그가 이룬 대현자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다행히 검은 이미 초인에 오른 지 오래였다. 오래전 자신도 모르게 보았던 심연의 일검의 작은 조각에서 단서를 얻어 결국에 아리스의 축복에 의해 심연의 일검을 펼칠 수 있게 되었는데, 만약 그것을 온전히 얻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로서 그는 2대 전설의 현자였던 로블랑이 이룬 경지 검의 종주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술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겨우 죽음의 지배자를 억지로 봉인한 자이웅이었지만, 그 또한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든 주술의 끝을 보지 못했고, 주술은 미완성의 길로 남겨졌다.
아마 이곳 현자의 탑에 있을 주술에 대한 수련의 방 또한 그럴 것으로 야안은 예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야안은 시간을 뛰어넘어 리트담의 저서의 본인이었던 리트담을 만나는 기연을 얻게 되었다.
그로 인해 결국 주술까지 초인의 경지에 올라서게 되었으며 또한 그 주술의 완성의 단계를 앞에 둔 리트담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는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이웅이 남긴 그가 이룬 주술들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이외 이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정령술에 대해서 야안은 이곳 현자의 탑에서 그 완성을 볼 생각이었다.
뇌전의 정령 유피테르는 애초 다른 정령들과는 격이 다른 터라 이를 마스터하는 것은 아무리 야안이라고 해도 어려움이 컸다.
그러한 시점에 이 수련의 방은 그에게 있어 대단히 반가운 것이었다.
잠시 탑의 일 층을 둘러 보던 야안은 이내 다음 층을 오르기 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곧 그가 계단을 오르자 일 층은 다시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다.
‘차아아악. 차아악-’
요란한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을 토해내었다.
이맘때면 적지 않은 비를 이끌 태풍이 다시 올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이곳 일대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혹시나 배가 태풍에 이끌려갈까 싶어 방파제에 묶는 것은 물론 모든 배를 연계하여 서로 묶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이들 바다의 사람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신속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여댔다.
결국, 태풍이 오기 전 모든 점검을 마친 그들은 비에 홀딱 젖은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곧 다칠 태풍에 대비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휘이잉-’
곧 거대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엄청난 물보라가 방파제를 집어삼키다 뱉기를 반복한다.
이에 배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고 깨지기를 반복했는데, 바닷가에 이른 태풍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그 피해는 미비한 것이었다.
하늘이 내린 재난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 집집이 불빛마저 죽인 채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가운데 그 태풍의 영향권이 가장 심한 방파제 쪽에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에 순간 그 주위 일대가 진공 상태로 변하면서 태풍의 모든 힘을 튕겨냈는데, 그 현상이 사라진 것은 그 일그러진 공간에서 한 인영이 나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