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26화
그 과정에서 야안의 주군이었던 마크 자작은 죽었으나, 그의 마지막은 편안했을 터였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복수를 해내고야 말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이한은 야안의 아들 중 둘째인 로뎅을 야안 왕국의 왕으로 세웠다.
로뎅은 자이한의 딸인 아리와 혼인을 맺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하나같이 이 먼 에쿠 왕국에서 이야기될 정도로 그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처럼 기쁜 소식이 있는 반면 또한 세월이 주는 슬픔 또한 있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겠구나.’
본래 야안과 그의 양부모의 나이 차이는 조손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그의 양부모가 살아 있을 확률은 미약했다.
농노였던 시절 야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그 뜨겁고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았던 어머니 마리, 체통을 지키려 무뚝뚝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음을 열고 그 어느 아버지보다 자신을 아꼈던 아버지 베론 가한, 이 두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며 야안은 그날 한참을 울어댔다.
다시,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설마 그때의 그 안녕이라는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만약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끝내지 못했을 텐데.’
야안은 그러면서도 마리와 가한이 얼마나 자신을 걱정했을지 생각에 그저 가슴에서 올라오는 그 울컥거리는 무언가에 오랫동안 두 눈을 허공에 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 술이 나왔고, 귀여운 여급에 눈인사를 보이던 그는 이내 천천히 잔을 따라 술을 들이켰다.
마치 부모님에게 그 술을 바치듯이.
앞서의 것이 야안 그와 개인적인 관련이 있는 이야기였다면 다음은 세계의 정세와 연관이 깊었다.
현재 야안이 알아낸 것 중 하나는 바로 역사가 조금이지만 틀어졌다는 것에 있다.
본래라면 야루스 산맥이 되어 버린 라의 대륙이 그중 일부가 뚝 떨어져 나와 바의 대륙 북쪽에 거대한 섬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섬을 따로 죽음의 섬이라고도 하는데, 그 섬 주위에 거대한 소용돌이와 암석에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그 어떤 마법도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리는 터라 하늘을 통해 날아갈 수도 없었다.
‘죽음의 지배자 그가 남긴 흔적이던가?’
아마도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면서 벌인 일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 야안은 낮은 한숨을 흘려야 했다.
‘가봐야 할 곳이군.’
야안이 공간이동의 좌표가 틀린 이유가 이 때문인지라 그는 근처 도시로 가 바뀐 좌표를 새로 얻어 습득해야 했다.
이러한 일 외에 그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이미 세계에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죽음의 지배자의 영향력이 세계 곳곳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이라면 생각보다 그 시기가 자신의 예상보다 뒤로 미루어졌다는 것인데, 이 또한 그가 과거로 갔던 일과 관계가 있을 터였다.
현재 죽음의 지배자로 인해 세계의 몬스터들은 지난날의 몬스터들과 그 격이 달라져 버렸다.
예전 잘 무장된 노련한 병사 한 명이면 충분히 오크 두, 세 마리를 처리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한 마리를 처리하는 것도 버거웠다.
전사 오크도 아닌 흔한 오크 한 마리가 그 정도였으니, 오크들의 세력은 크게 강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20년 전 오크들로 인해 망한 왕국이 세 곳이나 되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숱한 대형 괴물들이 등장하였으며, 하늘에는 와이번이라 불리는 괴조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파장이 큰 것은 파란토와 같은 악마라 불리는 존재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다섯으로 무슨 이유 때문인지 처음 자리를 잡기 위해 주위 모든 생명체를 지워낸 것 이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야안은 이들 악마가 무슨 일 때문에 이러한 것인지 대충 감이 잡힌 상태였다.
‘아마도 죽음의 지배자의 부활과 관련이 깊겠지.’
어쩌면 전대의 전설의 현자 자이웅이 행한 그 인과의 그물을 벗어날 새로운 편법을 만들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유는 그들과 마주해 보아야 알 것이다.
지금의 그라면 악마를 홀로 상대할 수 있었다.
거인의 왕과 리트담과 함께 한 뒤에야 겨우 불사왕 케르몬을 주살할 수 있었던 때의 그와는 달랐다.
대현자에 올랐다는 그런 것을 의미한다.
그 경지가 위대한 종족인 드래곤을 뛰어넘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드래곤이 상대했던 악마를 홀로 주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마법만이 아닌 검과 주술도 초인의 경지에 오른 이였으며 유피테르라는 정령과 함께하며 마지막으로 역대 전설의 현자 중 유일하게 신력을 지닌 이였다.
지난 날, 불사왕 케르몬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성 마법 바란토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를 본다면 이 신성 마법은 그에게 큰 무기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물론 불사왕 케르몬의 경우처럼 엄청난 세력의 군단이 만들어진다면 그를 받칠 세력이 필요한 일인데, 지금 그가 아는 정보 속에 그러한 집단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악마를 잡는다.’
아직 악마가 잠잠한 것을 본다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끝나지 않음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서둘러 이들 중 한 축이라도 무너뜨리는 것이 옳을 일일 것이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다섯 악마 중 하나가 그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악마는 바다에 있었으며, 이 악마로 인해 바 대륙과 샤 대륙 사이를 오가던 항해가 크게 뒤틀어져 버렸다.
예전이었다면 두 달이면 항해할 수 있었던 거리가, 최소 2배에서 3배 이상이 걸리고 만 것이다.
자연 두 대륙 사이를 오가던 물품들의 가격이 크게 폭등한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은 바다의 중심이라고도 불리는 카르미안이 지역에 난데없이 거대 해양 몬스터들이 나타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예전에도 바다에 몬스터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같은 거대 해양 몬스터들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최소 호도칸 급 이상의 해양 몬스터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데, 어떤 해양 몬스터들의 경우 초인들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있기도 했다.
애초 인간들은 물 속에 살 수 없어 배라는 존재를 만들어 움직이니만큼 해양 몬스터들에게 별다른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카르미안 지역이 이렇게 된 이 현상에서 악마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누구도 이곳에서 악마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악마가 아니라면 이 해양에서 그러한 현상이 벌어질 리 없다 판단한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악마와 마주하며 싸운 경험이 있는 야안 또한 사람들의 그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바다의 악마라.’
카르미안 해양이라는 이름 대신 죽음의 바다라는 이름이 친숙한 이곳에 갈 결심이 선 야안이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야안은 선박장 근처를 맴돌았다.
여관 주인에게 이곳에 정착한 배들의 주인들을 만나고 싶다 이야기하니, 선박장 주위에 소리치고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른 때라면 이곳 여관이나 술집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었겠지만, 현재 이들은 지난 날 태풍으로 인해 흠집이 난 배를 수리하기 바빴다.
야안은 이들 중 자신을 그곳 죽음의 바다로 데려갈 배를 찾고자 했다.
카르미안 해양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데다 악마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의 정보를 좀 더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역시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전에 그들은 버럭 화를 낼 따름이다.
괜히 카르미안 해양이 죽음의 바다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20년간 해양을 정복하는 데 성공한 배는 한 대도 없었으며 그 근처를 스쳐 간 배 중 살아남은 배는 겨우 5%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국가 레벨에서 움직인 이천 톤 급 이상의 배 중에서 성공한 사례였고, 최소 천 톤 급 이상이 아니면 감히 가까이 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한 곳을 겨우 이백 톤 급짜리 배들이 있는 곳에서 요구한 것이니 이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만약 야안 특유의 고귀한 분위기를 보이지 않았다면, 재수 없다고 그를 흠뻑 패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거 시작부터 난행이로군.”
생각한 것보다 죽음의 바다라는 곳에 뱃사람들이 자리한 인식은 무시무시한 곳인 듯했다.
그렇게 지난 이틀 동안 그곳에서 배를 구하고자 했던 야안은 오늘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펍’을 마시며 긴 한숨을 쉬는 가운데 누군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앞에 앉았다.
“후~ 나도 한 잔 사줄 수 있겠소.”
걸걸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는데, 그 목소리만큼이나 그 외모도 크고 털털한 사내였다.
야안은 그를 보고 다소 놀란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그가 주술을 익힌 자이기 때문이다.
바 대륙 사람이 주술을 익힌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기 때문이라 놀란 가운데 곧 뱃사람답게 피부가 검게 물들어 있어 잘 판단하지 못했지만 이내 그가 샤 대륙인과 혼혈인임을 안 야안은 어쩐지 반갑기도 해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마침 그 주위를 지나치던 여급은 눈치를 보다 야안이 술과 안주를 더 내와 달라 하자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야안의 태도에 이 거구의 뱃사람도 껄껄거리며 웃음을 흘려댔다.
“이거 고맙군. 정말 사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오.”
야안은 그의 말에 미소를 짓더니 손을 들어 불을 일으키었다. 마법이 아닌 주술로 일으킨 것인데, 이에 그 거구의 뱃사람도 야안이 놀란 것 이상으로 놀라 눈을 부릅떴다.
“어…….어?”
설마 이곳에서 주술사를 만날 줄은 예상 못한 터라 놀란 그는 한참이나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의 말문이 연 것은 여급이 술과 안주를 가져온 뒤에였고, 그는 술이 나오자마자 단번에 비워버리더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설마 이곳에서 대 주술사를 만날 줄 몰랐습니다.”
처음과 달리 공손한 태도였는데, 이는 전혀 주술의 흔적을 보지 못한 터라 야안이 그가 짐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주술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 주술사급이라 생각한 것인데, 이는 야안의 젊은 외모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상식적으로도 야안의 나이에 위대한 주술사에 오른 자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야안은 그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없어 그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듯한데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사내는 잠시 어려운 태도를 겨우 털어버리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 주술사님께서 죽음의 바다로 가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조건만 된다면 저희가 대 주술사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본래라면 아쉬울 것 없는 태도로 야안과 긴 협상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했으나 야안이 대 주술사라는 사실에 그는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