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29화
4. 바다의 신전
‘쿠오오오-’
심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렁거린다.
결국, 그 엄청난 압력에서도 멀쩡한 신전마저 일부가 파괴되더니 이내 베로카나를 날려 버렸다.
웬만한 존재라면 그 힘의 소용돌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지만 역시나 죽음의 지배자가 직접 손을 댄 악마답게 베로카나는 별다른 치명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자…….]
악마들이 현자라 취급하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죽음의 지배자를 잡기 위해 탄생한 최초의 현자 전설의 현자인 것인데, 베로카나는 조금 전의 공격을 통해서 그가 완성된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죽여주지.]
만약 물 밖이었다면 베로카나는 야안의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바다는 베로카나의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주인인 죽음의 지배자의 숙적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는 엄청난 업적을 세우는 것이니 탐욕스러운 악마인 베로카나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자신의 공격에 별다른 피해가 없는 베로카나였으나 야안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애초 베로카나를 이곳 신전에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행했던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의 신전의 봉인을 풀어야 하는 그로서는 이곳이 그와 악마 베로카나의 전투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나저나 확실히 바닷속이라 그런지 저항이 엄청나군.’
마치 검 끝에 추를 매달아 놓은 듯 할 정도인데, 실제로 전설의 검이 아니었다면 조금 전 그 엄청난 그의 검세에 검은 금이 가거나 부러졌을지 모른다.
‘위대한 주술사에 올라서지 않았다면 곤란할 뻔했구나.’
마법이라고 해도 그 부담을 줄이기 어려우나 주술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상당한 주술력이 소모되는 것으로 자제를 하였으나, 그의 목적을 앞에 둔 그로서 더 이상 자제를 할 필요가 없었다.
‘휘오오오옥-’
엄청난 베로카나의 공세를 아슬아슬하게 흘려내며, 야안은 준비한 주술을 펼쳤다.
바로 바다와 동화되는 주술을 펼친 것인데, 이는 예전 자이한이 보인 인지의 술을 다른 형태로 응용한 것이었다.
‘우우우웅-’
기묘한 울림과 함께 주술이 성공하자 수세로 몰리던 야안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물론 아직 물의 저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의 발목을 잡았던 물의 압력에서 벗어난 것이다.
당연히 베로카나의 공격들은 건곤대나위에 의해 흐트러지기 시작했으며, 그의 강기에서는 대현자 급의 마법들이 결합 되어 펼쳐졌다.
야안의 세 배에 달하는 베로카나의 육체와 그의 악마적인 물의 마법들은 이 깊은 심해를 완전히 진탕으로 만들어 놓기 충분했으나, 그 엄청난 공세에도 야안은 흔들림이 없었다.
비록 물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술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검은 베로카나의 날카로운 공격들을 막아서기에 충분했으며 마법은 버프가 된 베로카나의 물의 마법에 밀림이 없었다.
아니, 대현자 답게 오히려 앞서는 부분들이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마법들을 토해내기 시작하였으니 아무리 베로카나의 특성이 잘 살릴 수 있는 바다라고 해도 그가 따라갈 수 있을 리 없었다.
‘확실히 악마는 악마구나.’
대현자에 올라서면서 그는 악마를 홀로도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것은 틀리지 않았으며, 점차 승기를 잡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인간의 상식으로 펼쳐질 수 없는 악마의 공세 때문으로, 만약 대현자에 오르지 않았다면 악마의 마법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 큰 곤경에 빠졌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만약 그가 상대하는 악마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면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터였다.
전투는 오랜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악마는 마치 터져 버리기 시작한 활화산처럼 끝없는 힘과 마력을 뿜어대었으며, 야안 또한 그간 쌓아올린 전력으로 이를 상대하고 있었으나 인간이라는 육신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도 그가 쌓아올려 놓았던 스탯이 그런 그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어느새 만 하루가 지났고, 이제 그를 지탱하던 스탯들도 상당 부분 깎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만약 이곳이 바닷속이 아니었다면 작은 나라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려 버렸을 것이다.
초기에 야안이 그를 신전에서 멀리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이 기이한 재질로 만들어진 신전은 이제 가루가 되었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악마 베로카나가 지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심해 속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그의 무시무시한 육체 또한 야안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수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만약 야안이 레벨이라는 시스템의 보정을 받지 못했다면 악마 베로카나를 지금처럼 몰아붙이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지금이라면 끝낼 수 있겠군.’
다섯 개의 스탯을 힘에 투자해 체력을 회복한 야안은 크게 강기를 펼쳐 그를 멀리 날려 버리더니, 곧 자세를 바로잡았다.
바로 심연의 일검을 펼칠 준비를 한 것인데,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전 불사왕 케르몬을 잡는 데 결정적인 공을 보였던 바란탄을 일으켰다.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 야안의 생각처럼 바란탄은 펼쳐지는 것이 가능했다.
죄악을 심판하는 바란탄 답게 그 불꽃은 이 깊은 심해에서도 일으켜진 것이다.
그렇게 물속에 불이 일어나는 이색적인 모습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단 한 호흡에 그 준비를 마친 야안은 이내 나아가기 시작했고, 악마 베로카나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몸을 뒤로 날리며 남은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려 야안에게 퍼부어대었다.
그야말로 산이 앞에 있다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마법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인데, 그러한 그의 공세에도 야안이 나아가고자 하는 바는 막지 못했다.
결국, 야안은 그의 지척까지 다가왔으며 베로카나가 야안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전신이 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투명한 거대한 불꽃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는데,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그의 모습은 바다의 악마라 불리는 그의 최후라 보기에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었다.
‘이제 끝났구나.’
심연의 일격을 펼친 부담감이 그의 전신을 압박하는 가운데 야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피테르의 도움 없이 악마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 이상 이제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진 것이다.
‘그나저나 유피테르는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군.’
시간을 뛰어넘어 이 세상으로 돌아와 부활한 지금까지 유피테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피테르와의 끈이 연결된 야안은 그가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았으나, 그 이상의 정보는 얻지 못했다.
다만 그의 직감 상 이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 뿐이다.
‘만약 유피테르가 있었다면 이 악마를 상대로 이렇게 힘겹지는 않았겠지.’
악마에 치명적인 힘을 지닌 유피테르였기에 지금처럼 고전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여하튼 그렇게 악마 베로니카를 잡은 경험치와 SS급 퀘스트답게 성공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치는 엄청난 양이었다.
[레벨 : 3,244
직업 : 전설의 현자 비기너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 제왕지기, 영혼의 악사 (위대한 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298,400
마나량 : 204,500
명성 : 12,000
힘 :1,432(+60)
민첩:1,556(+60)
행운 : 1,710(+60)
지혜 : 2,690(+60)
신력 : 60 (+60)
마나 : 10,165(+60)
정령력 : 1,680 (+60)
각성의 스탯 : 0
분배되지 않은 스탯 : 430]
그가 이 바다에 들어오기 전 그의 레벨이 3,000이었으니, 244라는 레벨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이곳에 오는 과정에서 무수히 잡은 해양 몬스터들을 잡아낸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올린 레벨의 힘은 엄청난 형태였다.
덕분에 잡기 위해 소모된 스탯을 상당수 복구하게 되었던 터라 야안은 이를 반기는 모습을 보이었다.
잠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던 야안은 몸을 돌렸다.
* * *
그 본래의 목적이었던 바다의 악마 베로카나를 잡은 야안은 곧 이곳에서 얻은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신전으로 돌아왔다.
의도적으로 베로카나를 신전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싸웠던 터라 신전으로 돌아오는데 제법 긴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다행히 신전은 그 엄청난 전투의 영향에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실로 놀라운 재질인 것인데, 역시나 전설의 시대 이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유지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 터라 위대한 대장인의 칭호를 착용하면서 살피기 시작했고, 야안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놀랍군. 이건.’
부서진 잔재물을 들어 살핀 야안은 이것이 모종의 힘과 결합 된 금속의 어떠한 형태임을 알았다.
거인족의 부산물인 로템과 비슷한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본 것인데, 바다의 종족 피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그는 확신했다.
‘이것으로 무기를 만든다면.’
아마 엄청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대장인의 칭호를 든 그답게 이 금속의 성질을 바로 알아보았는데, 어떤 금속과 합금하느냐에 따라 마나의 전도율이 최고 70% 이상 올릴 수도 있을 것이며, 로템과 같이 제련한다면 엄청난 형태의 저항력을 지닌 방호구가 만들어질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제련 방법이 까다로워 인간 중에서 그 제련을 성공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드워프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면 이것으로 엄청난 무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죽음의 지배자가 이끄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미 사라진 종족에게 계속 미련을 가질 수 없는 노릇이다.
잠시 과거의 인연들을 떠올리던 야안은 이내 머리를 저어댔고, 곧 그 부서진 재질들을 모아 인벤토리에 챙겨 두었다.
이후 그는 이 거대한 신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술을 펼쳐 오감을 크게 확장시켜 살펴보기 시작한 것인데, 퀘스트 등급이 SS+인만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전이 워낙 넓어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곳을 모두 뒤지기에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 소모될 터였다.
그렇게 주술의 도움으로 한나절 만에 이곳 신전 일대를 모두 돌아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위대한 주술사에 올라서면서 확장된 그의 감각 덕분에 그는 그의 뇌리를 자극하는 한 곳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베로카나가 있었던 그 신전의 중심지였는데, 다만 그가 바라보던 밑이 아닌 신전의 가장 꼭대기 부위라는 것이 달랐다.
곧 물살을 가르며 꼭대기 올라선 그는 그곳에서 아리스 님을 뜻하는 기호와 더불어 특이한 기호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이 봉인과 관계가 있음을 그는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