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30화
기호를 바라보던 야안은 잠시 고민하며 그것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야안은 이 문양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마법으로는 깨울 수는 없다.’
그랬다. 이 문양을 깨우기 위해서는 마법 따위가 아닌 가장 고귀한 기운이라 할 수 있는 신성력이 필요로 했다.
다행히도 야안은 성자이기도 하였으니, 그 조건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성자의 존재가 이 심해의 끝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사실상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있는 야안이 아니었다면 이 퀘스트의 시작부터가 큰 시련의 시작이라 하겠다.
실로 SS+등급의 퀘스트 난이도라 할 만했다.
야안은 잠시 주신 아리스에게 기도를 보이다 곧 한 손을 올려 신성력을 주입하였다.
‘화아아악-’
엄청난 빛이 문양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빛이 얼마나 밝은지 신전의 어둠을 거두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야안이 신성력을 주입하면 할수록 문양을 시작으로 신전이 환한 빛으로 일러지고 있었는데, 지금의 반응을 보노라면 신전 전체가 그의 신성력으로 감싸져야 할 듯하다.
이러한 일을 해내려면 족히 고위 성자에 오른 이만이 가능할 터인데, 아직 그와 같은 자리에 올라서지 못한 야안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레벨이라는 시스템은 이번에도 그러한 그의 곤란한 점을 해결해 주었다.
여유 스탯으로 신력에 찍어 올리기 시작한 것인데, 스탯을 올리기 무섭게 일정 이상을 회복하는 그 시스템의 효능에 의해 그는 순조롭게 신전을 각성하는 일을 해내고 있었다.
‘우르르릉-’
놀랍게도 야안과 악마 베로나카의 접전에 부서진 부위가 복구되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복구되기 무섭게 여타의 신전 부위처럼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신전이 모두 각성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은 2타콤이라는 시간이 필요로 했는데, 그 짧다면 짧은 시간에 야안이 부여한 스탯은 200에 달했다.
그러니깐 신력에 40개의 스탯을 부여한 것인데, 이조차도 성자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으니 가능한 것이지 아니었다면 모든 스탯을 다 퍼부어도 성공하지 못할 뻔했다.
그렇게 신전이 각성하자 그 깊은 심해는 더 이상 어둠에 잠겨 있지 않았다.
마치 바다 밖 태양의 햇살 아래 있는 것처럼 바닷속은 환한 빛으로 잠겨졌는데, 그 빛의 중심에 있는 야안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과 달리 강렬한 빛이 아닌 대낮에 그늘 없이 태양 아래 있는 것과 비슷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르륵-’
그리고 그렇게 신전이 각성하게 되자 바다의 악마 베로나카가 있던 자리를 기점으로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심해에서도 가장 깊은 이곳 신전에서 다시 그 밑의 세상이 열리고 만 것인데, 야안은 물살을 가르며 그 문 앞까지 다가왔다.
‘이곳에 그들이 있단 말인가?’
그의 예리한 기척으로도 문 아래 세상에는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터라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마음을 굳혔다.
이미 신전을 각성하기까지 한 그가 달리 뒤돌아 볼 수도 없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입과 같은 그 문 속으로 그가 물살을 가르며 들어서자 그 열린 문은 천천히 닫혔다.
다시 어둠에 갇히게 되었던 야안이었지만, 주술로 주위를 밝힌 그는 저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섰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압력은 더욱더 심해져 가 만약 그가 ‘카라민주’를 펼치지 못했다면 그는 더 이상 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을 터였다.
대현자에 올라서지 않았다면 아예 가능치 않았을 일이었다.
그렇게 야안이 반나절을 내려갔고 마침내 그는 끝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처음 보는 생명체를 본 뜬 하나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모습이 피오인가?’
키는 삼 미르에 달하며 얼굴은 인간의 두 배 정도로 컸다.
팔은 네 개에 달했는데, 손가락 사이에는 물갈퀴가 자리했다.
다리 대신 두 개의 꼬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예전 그가 보았던 드래곤의 꼬리와 유사한 형태였다.
특이한 것은 첫 번째 오른손에는 오 미르에 달하는 창과 유사한 무기를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앞은 세 갈래로 갈라져 날카롭게 버려져 있었으며 그 창대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새겨진 상태였다.
창날의 반대편 끝에는 현자들이 쓰는 지팡이처럼 뭉퉁한 것이 기묘하였는데, 야안은 그 무기를 보는 순간 말문을 잃고 말았다.
[세이란의 유물.
등급 : SSS
본래 바다의 신 세이란의 전용 무기였다, 최초로 피오의 왕이 각성하면서 그에게 선물한 무기이다. 오직 세이란에게 인정받은 피오의 왕만이 이 유물을 지닐 수 있으며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다.
* 사마의 의의를 부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따로 이 창에 대한 설명이 아니어도 대장인의 칭호를 지닌 야안이었기에 이 무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기야 SSS 등급이라면 황금 드워프가 시작하고 그가 완성했던 프로메티아와 같은 등급의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메티아가 공격들을 무위로 돌리는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이란의 유물 또한 그 못지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마의 의의를 부정한다라.’
사마의 의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악마가 다시는 부활할 수 없게 애초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사마의 존재와는 상극인 무기인 것인데, 과연 신화시대에 존재한 신의 무기다운 위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세이란의 유물을 들고 있는 이 동상은 생전의 피오의 왕을 본뜬 것인가?’
그리 생각이 드니 절로 달리 보여 가만히 마주한 가운데 그러한 야안과 동상의 눈이 마주쳤고, 이내 야안은 아득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예전의 그였다면 꼼짝없이 정신을 잃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현자에 오른 그답게 그는 저항할 수 있었는데, 그도 잠시 이내 그 동상에서 나오는 힘에 몸을 맡겼다.
곧 그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그의 앞에 있는 동상처럼 모습이 변했다.
“으으음. 이곳은.”
잠시 의식이 끊겼다 이내 정신을 차렸을 때 야안이 본 것은 엄청난 형태로 발전된 초고대도시였다.
초문명을 이룬 고대 시대에서나 볼 법한 엄청난 건축물들이 줄을 지어져 있었으며,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지만 물 속에서도 숨을 쉬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내 야안은 이것이 현실 속 세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심상의 세계.”
하나의 심상의 세계와 유사한 곳이었는데, 다른 것이라면 그곳이 오직 하나의 심상의 세계에 유지된 곳이라면 이곳은 수많은 개체의 심상이 하나로 이어져 만들어진 곳이라는 점이었다.
‘엄청난 곳이로군.’
마치 그 고대 시대에 보았던 베론 제국의 중심지인 황성 도시를 보는 듯하다.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만 해도 1억은 되어 보이는데, 그들은 인간이 이룬 문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형태의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의 중간 중간에 자리한 홀로 비추어진 영상매체에는 인간으로 치면 여자로 보이는 피오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가끔 피오들은 길을 가다 그 영상들을 보기 위해 멈추어 서기도 했었다.
“참 기묘한 곳이로고.”
이상한 배낭 같은 것을 등에 매고 있는 피오들이 있는 곳에 다가간 야안이 홀로 중얼거리는데, 그러한 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피오는 없었다.
오직 화면 속에 있는 피오들을 보며 열광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 뭐라 피오들만의 언어로 소리치는데, 그것도 잠시 심상의 세계가 연결된 야안은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게 되었다.
“우와! 이번에 컴백한 베롱 장난 아니다. 차트 갱신하겠는데.”
“특히 미나는 선이 달라. 꼬리 봤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베롱. 베롱. 오직 베롱만이 있을 뿐이다.”
야안은 그들의 대화에서 잠시 혼란을 겪었지만 이내 그들이 왜 이곳에 머물러 저들을 바라보는지 대략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저 화면 속에 있는 여인들을 사모하는 것인가 보군.’
어쩐지 야안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그들의 문화였지만, 다른 것이 틀리지 않음을 잘 알기에 야안이었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며 기다렸다.
곧 화면 속의 영상이 다른 영상으로 바뀌자 그곳에 자리하던 피오들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움을 보이었고, 그제야 야안이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였다.
“저기 괜찮다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중한 야안의 말에 피오들은 그제야 야안이 있음을 알고 고개를 돌리다 이내 깜짝 놀랐다는 모습을 보이며 크게 흩어졌다.
“씨발! 뭐야. 이건.”
“뭐 저렇게 괴상하게 생겼어.”
야안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그들에 야안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인데, 그제야 피오들은 조금은 진정한 태도를 보이더니 그중 덩치가 큰 피오 한 명이 다가와 말한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오직 피오만이 있는 이곳 심상의 세계에 다른 종족이 들어섰으니 그 피오의 물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야안은 그러한 피오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 이내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신성력을 일으키며 답했다.
“아리스 님을 따르는 이입니다.”
주신 아리스가 탄생시킨 바다의 신 세이란의 자식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피오들이었으니 아리스 님의 신성력이라면 답이 될 것으로 판단해 말한 것인데, 역시나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오! 씨발. 성자님이다. 실제로는 처음 본다.”
“이거 내가 느낀 거 거짓말이 아니지?”
“그런데 성자님들이 저렇게 생겼나?”
“몰라, 여하튼 아리스 님을 따르는 자라면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겠지.”
그들은 놀라며 그리 말하더니 이내 야안에게 다가와 공손히 인사를 보였다.
이들 피오들에게도 성자의 존재는 대단히 고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야안은 그들로부터 공경의 인사를 받은 뒤 잠시 생각하다 피오의 왕을 만나고자 이야기하였다.
피오의 왕을 만나고 싶다는 야안의 말에 피오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처음 야안에게 말을 건넨 피오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확실히 다른 존재이긴 한 가 봅니다. 피오의 왕께서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야안은 이해 안 된다는 눈빛을 보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나라가 유지가 되는 것입니까?”
야안의 그 말에 그들은 10년에 한 번씩 뽑는 피오의 대표자 방식을 이야기해주며 야안을 놀라게 했는데, 아마도 그들에게 느껴지는 그 자유스러운 느낌은 이러한 사상 속에서 생겨난 것 때문임을 야안은 깨달았다.
베론 제국에서도 그러한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은 왕이라는 직함이 자리했다.
하니 민주주의 형태의 대표자 방식은 야안에게 매우 낯설고 혁명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만큼 문명이 발달하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