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33화
야안이 바다로 사라진 지 이십 일이 되던 날.
마치 태양이 바다에 떨어진 듯 바다에서 황금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는 그 가운데 있던 초중과 선원들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빛에 마주친 순간 지친 육신에 힘이 생겨났으며 그간의 그 쉼 없었던 전장 속에서 예민했던 그들의 감각은 어미의 품속에서 마냥 느슨하게 늘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몬스터들도 순한 양으로 변했는데, 실제로 그들을 공격하려던 모습을 버리고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기묘하고 신비로웠던 순간은 시간을 잃어버린 듯 일어났으며 그들이 정신을 들었을 때는 언제 왔는지 야안이 그들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잘 들 있었는가?”
야안의 등장에 놀란 초중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그런 초중의 모습에 야안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말을 이었다.
“바다의 악마는 사라졌네. 해양 몬스터들 또한 그의 뒤를 따를 것이네.”
바다의 악마가 죽었다는 말에 초중을 비롯한 선원들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 거대한 바다를 혼란케 한 존재의 죽음을 쉽사리 믿기 어려운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간 겪은 야안이 헛소리를 할 일이 없을 것이며, 또한 조금 전만 해도 일어났던 바다의 그 기적을 보았던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바다의 악마와 관련이 있음을 인지했다.
“해양 몬스터들이 사라진다는 말씀이십니까?”
초중의 물음에 야안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정확히는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네.”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야안에 초중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의문은 의미가 없다 판단한 것이다.
지겹고 힘겨웠던 그 의문 속에서 초중은 조용히 말문을 연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초중의 말에 야안이 답했다.
“제국으로. 야안 제국으로.”
주인의 입에서 주인 그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제국을 말함에 초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의 배는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옛 바쿠 왕국의 왕성이며 현재는 야안 제국의 서부를 총괄하는 한스 테일러 공작 가가 다스리는 테일러 영지는 엄청난 자금이 오가는 곳이다.
샤 대륙과의 활발한 교류로 인해 제국에 엄청난 물류를 책임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당연히 이곳 테일러 영지의 선창은 역대 최고 수준의 규모였고, 그로 인해 생겨난 시장의 규모 또한 엄청난 수준이었다.
수많은 배가 들어서고 있었는데, 200톤 급 이상을 자랑하는 거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나 한스 테일러 공작 가에서 직접 상단을 꾸려 이끌고 있는 2,000톤급 이상의 선단(船團)의 경우 특별했다.
이들이 테일러 영지의 수입 중 40%이상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으로, 초인인 한스 테일러가 만든 마법 물품으로 인해 배는 엄청난 쾌선을 자랑하기도 했다.
특히나 한스 테일러의 제자이며 테일러 상단의 총 책임자인 엘룬이 이끄는 마법 전단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배의 특성과 마법 전단을 하나로 합치면서 이들은 바다의 전투에 있어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해양 몬스터들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며, 엘룬에게 무적 제독이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던 지난날 카리엘 제국과의 전투는 긴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었다.
개량을 통해 한 층 강력해진 마법포도 마법포지만 엘룬 특유의 엄청난 암산력을 통해 각자의 선단에 맞게 방향과 거리를 전달하니 그 적중률은 90%를 자랑했다.
더구나 한스와 엘룬은 농노 출신이다 보니 그 신분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재능을 보고 인재들을 뽑았다.
당연히 만든 마법 전단의 현자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재능을 자랑한다.
한스와 엘룬의 안목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그 이유가 있었는데, 그들만이 아니라 야안 제국의 고위 현자들의 안목이 대다수 뛰어난 것으로 보아 이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력과 돈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테일러 가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선창에 언제나 그랬듯 수많은 배가 들어서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늦은 저녁 석양이 바다에 잠기려 할 때쯤 들어서는 한 척의 배는 특별했다.
다름 아닌 악마의 바다라고 불리는 지역을 가르며 온 배였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그 특별함을 아는 이들은 없었다.
배는 이곳 거선들에 비하면 큰 편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돈을 쓴 듯 그 내실 등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많은 전투를 한 듯 수리를 한 흔적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만을 보노라면 본래 상선이 아닌 전투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착각을 할 수 있을 모습이었다.
그렇게 선장에 도착한 그들은 한 명을 빼고는 샤 대륙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었으나, 이곳에서는 그리 주목받는 외모는 아니었다.
따로 샤 대륙 사람들을 위한 거리가 있을 정도로 많은 샤 대륙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또한 그 이상으로 방문이 잦았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임에도 한낮을 생각게 할 만큼 이곳 거리는 밝은 모습을 보였다.
테일러가에서 운영하는 마법 등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수천 개에 달하는 마법 등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 밝히고 있어 이곳에서만큼은 어둠에 대한 공포는 없을 듯 보였다.
어느 건물 안에서도 촛불 따위보다는 마법 등을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 외에도 테일러 가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마법 시제품 덕분에 이곳 생활 수준은 대단히 높아져 있었다.
거리는 깨끗했으며, 정비된 수로에서 물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불을 지피는 것도 따로 나무 따위를 통해서가 아닌 마법 물품으로 쉽사리 얻어낼 수 있었는데, 덕분에 화재 사고가 줄어들었으며, 적잖게 소모되었던 목재 따위의 원자재도 그 숫자가 줄어든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이 야안의 첫째 아들인 아론 마크 공작과 위대한 주술가인 대공 자이한의 합작품인 인공 마정석 덕분이었다.
물론 마정석에 비한다면 그 저장된 마나의 수준은 하급 마정석보다 못한 편이지만, 대신 만드는 비용이 대단히 싼 편이었다.
바 대륙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메카’라는 금속을 가공하는 것으로, 주술과 마법을 거쳐 만드는 것으로 다른 왕국이나 제국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에 가공되는 양은 몇 십톤에 달하는데, 이를 잘게 쪼개어 그 종류에 맞게 마법 물품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예전에는 귀족들이나 부호들만이 쓰던 마법 물품들을 일반인들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돈이 들어오니 자연 마법 물품 사업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했는데, 최근에는 말없이 달리는 철마차 마저 만들어내고 있었다.
말이 이끄는 것이 아닌 만큼 철마차는 예비 마정석만 있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당연히도 이 철마차는 혁명적인 상품이 되었다.
야안 제국은 이 철마차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면서 엄청난 자금을 퍼부었다.
야안 제국의 곳곳을 가로지르는 초대형 철마차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철마차들이 다닐 길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그런 야안 제국의 판단은 멋지게 맞아 떨어졌다.
초대형 철 마차의 등장으로 물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예전에는 마차나 배로 옮겨야 했던 불편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하루아침이면 제국 어디에서도 이 물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당연히 제국 전체적으로 물류가 안정되었으며, 중간에서 그 물류 운송비를 크게 떼먹던 악덕 상인들은 사라졌다.
칠일이면 제국의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철마차가 등장하면서 많은 관광객이 이를 이용하고자 모여들기도 했는데,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길거리에서는 마차보다는 철 마차가 흔했는데, 야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대현자인만큼 철 마차의 원리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작동 방식이 대단히 간결하다는 것에서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고대 시대에도 타이탄이라는 전투 머신이 있었던 만큼 철 마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는 훨씬 복잡한 모양이었다.
당연히도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아 먼 산행에서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말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이 철 마차의 경우 그 구조가 단순한 만큼 고장이 나려야 날 수가 없었다.
평소 기름칠만 잘 해주고 마정석만 제때 잘 갈아 준다면 그 만약의 경우도 사라질 정도이다.
철마차를 위한 전용 도로가 생겨날 정도라 야안은 그 광경을 보다 이내 주위에 널린 다른 마법 제품에서도 절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초중으로부터 야안 제국이 마법 물품들이 넘쳐 나고 있는 마법 제국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들은 것과 본 것의 차이는 날 수밖에 없었다.
자금이라면 부족함이 없는 야안이었기에, 그들은 이곳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잡았다.
귀태 어린 야안의 모습을 본 여관에서 특별한 분들을 위해 마련한 귀빈실을 내놓았는데, 초중과 선원들은 평소에는 꿈도 못 꿀 호사에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야안은 그들과 가벼운 식사와 술을 마신 뒤 여관을 빠져나왔다.
그의 제자 한스 테일러가 만든 영지를 좀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것이 어설펐던 마크 영지의 총관 시절 야안 그의 첫 제자인 한스는 여러 가지로 애정이 가는 존재이다.
야안과 나이가 많이 차이 나지 않았지만, 한스는 언제나 야안을 아버지처럼 어려워하면서도 공경했다.
그런 한스에 야안 또한 아들을 대하듯이 그를 이끌었는데, 이 때문에 한스가 야안을 향한 애정과 관심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야안 또한 마찬가지로 사실상 한스가 아니었다면 야안이 그처럼 자유롭게 대륙을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훌륭하게 성장하였구나.’
마크 영지에서 야안 그 자신이 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 이곳 테일러 영지에 존재하고 있었다.
운수 산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업의 구성이 성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자유로운 사상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심었다는 것이 그는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만약 그가 눈앞에 있다면 정말로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크게 칭찬을 하고 싶을 정도이다.
늦은 시간에도 홀로 돌아다니는 여인들이 있을 정도로 치안이 좋다는 것에 야안은 크게 반기는 가운데 그는 쉽사리 발견한 마법 상점에 들어섰다.
마법 상점은 그가 처음 방문했던 그때와 달리 그 턱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
부호들이 아닌 그저 일반인들 또한 이곳에서 무언가를 사려 하는 모습들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혁신적인 마법 물품들이 많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초소형 시계를 비롯하여 생존 물품 패키지 따위도 있었을 정도인데 이 외에도 관리소에서 허락한 이들에 한해서 공격 마법 물품들 또한 구매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