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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43화 (343/385)

야안 343화

언제나 다음 전투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죽음의 공포가 이곳 영지에 가득했다.

식량을 비롯한 지원이라도 제대로 되었다면 모를까? 벌써 3차례나 오크들의 습격에 지원물품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영지 내에서 벌써 불안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실제로 영지에서 물품을 풀지 못하면서 영지 내에 곡식값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뛰어오른 상태였다.

곡식만이 아니었다. 모든 물품이 부족하였는데, 이대로라면 강제로 영지민들의 재산을 강탈해야 할 지경이었다.

상인들이라도 움직였다면 모를까? 군대가 호위하는 물건마저 오크들에게 털리는 와중에 상인들이 이곳을 쳐다볼 리는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성에서 물건을 풀지 않은 이상 이곳 영지 내의 상황이 호전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지금의 영지 상황을 몇몇 주민과 제법 계급이 높은 병사의 기억을 읽어 들여 알게 된 사내는 낮은 한숨을 흘렸다.

“후~ 오크라.”

그의 시대에는 없었던 몬스터였고, 그것은 그가 겪은 격변의 시대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몬스터임을 이야기하는 것일 터였다.

이곳 영지에서 가장 높은 중앙 감시탑의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던 사내는 저 멀리 느껴지는 적의가 가득한 오크들이 어디에서 탄생한 자인지 알고는 고개를 저었다.

“긍지 높은 태양의 후예가 저렇게 타락하다니. 개탄(慨嘆)할 일이로구나.”

사내는 그리 말하며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오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다 어느새 져가는 석양의 그 붉은 노을 속에 조금씩 과거의 시간에 물들어져갔다.

영지에 나타난 사내는 검은 바위의 전설에서 나타난 자였으며 고대 시대 죽음의 지배자와의 전쟁을 몸써 겪은 자이기도 했다.

또한, 많은 희생이 있었다지만 결국 고대의 전쟁을 종식 시킨 대현자 테무드가 가장 존경한 이였으며, 그를 이끌었던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전쟁 초기에 잠시 활약하다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자이기도 했기에, 지금의 시대에 그에 대한 자료는 매우 희미했다.

그저 위대하고 현명한 자였으며 그 가진 힘은 대현자 테무드도 경탄(驚歎)할 이라는 글 한 줄만이 자리할 뿐이다.

하지만 야안 제국 이후 최근에 발견된 고서에는 그로 측정되는 이름이 한 줄 적혀 있었다.

<리트담.>

고대 마지막 왕국 이전에 존재했던 제국에 지체 높은 귀족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는데, 실제로 본 역사와 달리 야안을 만나게 된 리트담은 제국에 대공으로서 그 자리를 잡았었다.

한 때는 야안과 함께 리치왕 케르몬과 싸워 이겼던 위대한 자 리트담은 희대의 주술을 발동시켜 천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의 시대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 아이가 전쟁을 종식했구나.’

그가 말하는 아이는 다름 아닌 고대의 위대한 용사이자 영웅인 대현자 테무드를 말함인데, 그는 테무드를 만나기 이전부터 테무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야안으로부터 테무드가 고대 전쟁을 끝낼 자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리트담은 불의 현자 카르샤가 받아들인 제자 테무드를 보는 순간 그가 야안이 말한 자인을 깨달았다.

주술에서 지혜의 별이라 불리는 부분이 어릴 때부터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인데, 보통 현자들의 경우 그 구멍이 미세한 것에 비해 테무드는 초인의 그것 이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를 만난 것은 너에게 큰 행운이로구나.’

리트담이 테무드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었고, 그것은 결코 과한 말이 아니었다.

지혜의 별이라 불리는 부위는 각성한 초인이 아니면 그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도태되게 마련인데, 물론 지혜의 별이 활성화 된 테무드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리트담은 이미 야안의 주술과 자신의 주술을 합쳐 그 주술의 끝자락에 다가선 이였다.

주술의 특성상 당연히 인간의 신체를 관하는 그에게 있어 타인의 지혜의 별을 자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리트담의 도움 덕분인지 테무드는 경이적이게도 스물이 되었을 무렵 초인에 올라섰는데, 이는 엘프를 비롯한 여러 초인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하튼 테무드는 초인에 올라선 뒤 야안의 또 다른 스승이셨던 하이 엘프 하늘 산의 가르침이 담긴 책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갔다.

이 외에 고대 시대 그가 활약했던 전쟁 초기 리트담의 활약은 대단했다.

제국은 야안의 경고로 그 힘을 비축하였으나, 인간의 탐욕인지 아니면 죽음의 지배자의 술수인지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내분이 일어난 것인데, 당시 리트담이 아니었다면 제국의 힘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는 이 제국의 마지막 힘을 왕국에 연계하며 죽음의 지배자의 부활과 함께 새롭게 나타난 몬스터와 악마에 대항했다.

제국이 남긴 마지막 힘이 대단한 것도 있었지만 결국, 주술의 끝에 올라선 리트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당시 제국은 골렘에 대해 상당 부분 연구를 진행했다.

셀리온 황제가 보았을 때 골렘은 비록 그 비용 등에서 비싼 값을 하지만 매우 효율적이라 판단해서였다.

그 물자만 있다면 엄청난 강자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인데, 제국의 그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되자 결국 엄청난 물건을 인간들은 손에 넣고야 말았다.

바로 제국이 다루고 있는 골렘의 상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탄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결국 성공한 것이다.

제국은 이 타이탄에게 드래곤만큼 강했다고 전해지는 신화시대의 종족 ‘테슬러’라는 이름을 붙였다.

테슬러는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상급 유저 정도만 되어도 사용이 가능한 보급형 테슬러인 X부터 익스퍼트에 올라선 자가 사용하는 고급형 테슬러인 K버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초인들이 다루는 테슬러 R버전이 있었다.

이 테슬러는 사용자가 탑승하는 형태의 것인데, 기존의 조종기를 이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갑옷을 입는 것처럼 착용을 하는 형태의 것이다.

물론, 사용자가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마정석을 통해 착용자는 그 무게를 느끼지 않는데, K버전 테슬러인 경우는 그 엄청난 피지컬 이외에도 그 사용자의 검기를 증폭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R버전인 경우는 아무리 제국이라고 해도 다섯 대를 넘지 못했는데, 이는 소드 마스터의 숫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테슬러에 투입되는 최상급 마정석이 부족해서였다.

여하튼 리트담은 이러한 테슬러를 주술을 이용해 새롭게 활용하기도 했는데, 사용자가 없음에도 이 테슬러들은 그 이상의 힘을 아무렇지 않게 뿜어내곤 했었다.

이 테슬러를 바탕으로 그는 어둠의 종족 중 하나였던 뱀파이어들과 전쟁을 벌였고, 결국 그 결과는 그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뱀파이어의 왕 라켄이 스스로 봉인하면서 리트담은 그를 잡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인간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어둠의 종족인 뱀파이어를 해치운 것은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이라 하겠다.

이후, 그는 바 대륙과 샤 대륙을 오가며 악마를 사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와중 하나가 야안에게 주려는 선물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리트담은 그 소식을 접하기 무섭게 하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하나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뛰어넘는 주술을 완성하고야 만 것이다.

‘아직 죽음의 지배자가 깨어나지 않았다. 늦지 않아 다행이구나.’

리트담은 주민과 병사를 통해 얻은 정보에서 바 대륙에 다섯 악마가 모습을 보였음을 알았다.

만약 야안을 만나는 것을 우선순위로 올리지 않았다면 그는 이 악마들의 처리를 위한 여정을 했을 터였다.

어느새 그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석양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밤이 찾아왔다.

리트담은 말없이 어둠 속의 무언가를 바라보더니 어느 시점에서 그는 어둠 속에 녹아 버리듯 사라져 버렸다.

“점점. 버티기 어려워지는군.”

7전장을 지키고 있는 7인의 강자 중 하나인 포프 백작은 고개를 크게 저었다.

전에도 수적으로도 전력 적으로 큰 열세이기는 했으나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무기와 전략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엘 제국에서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무기에 대한 이점을 잃어버렸고, 전략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마도 카이엘 제국에서 지원한 전략가가 저곳에 있겠지.’

야안 제국에서도 그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대비하고 있었으나 오크에게 지원된 전략가는 기본에 충실한 타입이었다.

변칙적인 요령을 보이지 않으며 충실히 기본적인 전략만을 짜는데, 병력의 우위가 확실한 경우 이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병력을 나누어 회전을 통해 언제나 전장의 앞에는 그 활력이 채워진 오크들만이 자리했기에, 인간들과는 달리 지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오크들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넘치는 병력 일부를 활용해 물자를 끊는 것에 집중하였으며, 또한 인간들의 역공에도 충실하게 그 뒤의 뒤를 노리기도 했다.

덕분에 역공을 노렸던 야안 제국에서는 번번이 이 역공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원시적인 형태의 것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오크들이 다룰 수 있는 형태의 공성무기를 할용하고 있었는데 워낙 힘이 좋은 오크들이다 보니 이 같은 원시적인 형태의 공성 무기라 해도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제국을 만들었던 것만큼 야안 제국의 병력이 워낙 기량이 뛰어났고, 그 준비를 철저히 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인지 웬만한 왕국이었다면 오래전에 오크들의 침략을 막지 못해 함몰되었을 터였다.

이런 실정이었으니, 포프 백작으로서는 자연 한숨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물자가 부족하면서 정말이지 영지민들에게 재산을 강탈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오게 된 터라, 그는 고민 끝에 이를 허락하려 하는 가운데 누군가 그의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가 포프 백작이 맞는가?”

나지막한 사내의 목소리가 그의 집무실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본래 있었던 자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타난 그에 포프 백작은 소름이 돋았다.

설사 상대가 초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거리 안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프 백작은 전장에서 반평생을 보낸 노장 중 노장.

그는 자신의 심정을 내색하지 않으며 무겁게 말을 꺼낸다.

“그대는 누구요?”

놀란 기색 없이 대담한 모습을 보이는 포프 백작에 나타난 사내 리트담은 감탄을 보였다.

“호오! 과연 이 위기에도 병사들이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군.”

그렇게 말하던 리트담은 고대의 예법에 따라 그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리트담 리케하르산이라고 하네. 자네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대의 시대에서 온 과거의 망령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고대의 시대에서 온 과거의 망령이라는 리트담의 소개에 그는 쉽사리 그 혼란스러움을 이겨내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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