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54화
술을 좋아하는 야안을 위해 황성에서 특별히 준비한 아주 귀한 포도주였으나, 아무리 포도주가 귀하다고 해도 성수 앞에서는 그 가치는 길가의 하잘것없는 모래알갱이만도 못했다.
‘사아아악-’
야안은 ‘젠’을 펼쳐 신전의 한쪽에 큰 웅덩이를 팠다. 삽이 아닌 검으로 판 것이었지만, 소드마스터 답게 그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거인의 삽이 퍼 올라가는 듯했다.
‘신성력을 이용하여 그런 것인가? 생각보다 잘 파지는군.’
손으로 접촉하여 보았을 때는 쉽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이곳 세상의 법칙은 괴상한 형태였다.
여하튼 충분한 형태의 웅덩이를 다 파기 무섭게 야안은 포도주 100통을 꺼내었다.
‘차아아악-’
달콤하기 그지없는 포도주의 짙은 향이 주위를 가득 채워댔다.
“아, 이거 그래도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군.”
야안은 피식 웃으며 그리 말하더니 곧 포도주를 몇 모금 마시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100통이나 되는 포도주가 다 부어지자 마치 동화에서나 볼 법한 술이 뿜어져 나오는 샘이 만들어는 듯했다.
이후 야안은 다시 100통의 오크통으로 성수를 담기 시작했는데, 만약 ‘젠’이라는 힘을 펼치지 못했다면 한나절이라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100통에 달하는 성수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계산을 해보자면 오크 한 통에서 나오는 포도주 300병이 나오는데, 성수의 경우 그 반의 반 정도의 양이니 1,200병으로 계산할 수 있다.
거기에 성수는 희석을 시켜야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고, 그 희석의 비율이 786 :1이니 계산하자면 943,200병에 달하는 성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오크통이 100통이니 94,320,000에 달하는 성수를 얻게 된다.
단순히 금화로 치자면 바 대륙을 통일한 야안 제국의 1년 치 예산을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가치인 것으로,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사실 그 이상의 가치라 할 수 있었다.
이외 야안은 챙길 수 있는 모든 성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의 인벤토리가 가득 채워질 때쯤, 그 넓은 신전에 구비된 물품들이 상당수 없어진 상태였다. 물론 그럼에도 하나의 영지를 상기할 정도로 워낙 넓고 큰 신전인 터라 그 비율로 따진다면 일부를 비웠을 뿐이다.
그렇게 엄청난 양의 성물과 성수를 챙겨 낸 뒤에야 야안은 신전의 가장 중심지로 걸음을 옮겼다.
이 진실의 신전에 대해 알아본 것은 없었으나 그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당연했다. 고위 신관에 올라서는 순간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전의 중심은 커다란 돔 형식이였으며, 그 중심에는 주신 아리스를 상징하는 동그란 기호에 여덟 개의 선이 대칭적으로 그어져 있었다.
‘이곳이구나.’
야안은 그 기호의 아래에 자리 잡은 우주의 일부가 그려져 있는 듯한 커다란 구에 다가갔다.
“이건!”
처음 멀리서 보았을 때와 달리 다가가 자세히 그것을 살펴본 야안은 크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다른 이유가 아닌 커다란 구는 사실 그려진 것이 아닌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현자에 오르면서 대자연과 소통하는 야안이었기에 이것이 흉내 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잠시 오랫동안 이를 살펴보다 마침내 이 구에 자리한 우주가 무엇을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 이것은 현재의 우주를 의미한다. 정말 놀랍군.’
거리라는 변수로 인해 인간이 바라보는 별은 그 별의 과거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은 과거를 동시에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인데, 그러한 과거의 별의 흐름을 유추해서 현재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이 구에 그려진 우주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의미했다. 거리라는 변수가 사라지면서 현재의 우주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인데, 이 말은 달리 말하자면 앞 서의 예처럼 미래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음을 말함이다.
“정말 놀랍구나.”
물론 야안 또한 현자의 탑을 통한다면 이러한 일을 훔쳐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야안의 세상에서 인위적으로 펼쳤다면 그 인과의 법칙에 의해 오히려 좋지 못한 형태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하니 당연히 기피해야 할 일이지만, 이 세상은 달랐다. 애초 법칙이 다른 세상이니만큼 이곳에서만큼은 그러한 인과의 법칙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었다.
이는 대현자에 오른 야안이었기에 얻을 수 있는 혜택이기도 했다.
하기야 설마 누가 이 진실의 신전에 신관이 아닌 대현자에 이른 자가 방문할 것이라 예상하였겠는가?
우주의 일부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야안이 이 구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었다.
큼직한 몇 개의 그림만을 보았을 뿐이다.
죽음의 지배자의 온전한 부활과 더불어 드래곤들의 부활이 이루어졌으며, 이외에 바다의 종족의 피오의 본격적인 활동이 자리했다.
‘성공했구나.’
야안은 이 내용에서 자이웅이 일그러뜨린 인과의 그물을 자신이 결국 복구하는 데 성공했음을 알았다.
그 외에 세계는 죽음의 지배자의 부활 이전 큰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까지 본 야안이었는데, 다만 그 위기가 무엇인지 야안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역시나 그 또한 악마들의 부활 때문일까?’
어쩌면 드래곤들의 부활을 앞두기 전에 고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야안이었다.
‘여기까지.’
야안은 그 이상의 미래의 내용들을 볼 수 있었으나 더 이상은 오히려 미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직감이 들어 그만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그리 생각하며 크게 고개를 내젓다 곧 그 구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단순히 내민 것으로 끝이 아닌 신력을 끌어 올린 그는 그 구 안으로 천천히 손을 넣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겨우 어른 머리통만 한 구 안에 야안의 몸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그 구 안으로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잠시 후 신전 전체가 푸른 빛을 띄우기 시작했는데, 그 푸른 빛에 깃든 신성력은 감히 상상을 초월할 수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성력의 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쯤 어느 순간의 기점으로 그 기운은 구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회오리치듯 엄청난 신성력의 폭풍이 불어대는데, 그 폭풍이 잠잠했을 때에는 구 또한 점차 흐려지더니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대륙 곳곳에서 이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간 좋지 못했던 소식들만이 두 대륙을 강타하였건만, 이번의 이 이적에 사람들은 희망을 되찾았다.
그만큼 이번에 벌어진 이적은 놀랍고 경이적인 것이었다.
바로 대륙 곳곳에서 신관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인데, 현재 파악된 숫자만 해도 500명이 넘어선 상태였다.
두 대륙을 합쳐도 그 숫자가 겨우 20명에 달했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몇 십배나 늘어난 것인데, 놀라운 것은 그 신관들의 숫자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신관에 올라설 수 있는 기준이 낮아지면서 생긴 변화였다.
그 외에 변화가 있다면 기준이 낮아지면서 기존의 신관들의 성장한 것인데, 그로 인해 고위 신관이 세 명이나 탄생이 되었다.
야안처럼 팔라딘이 아닌 전통 형태의 고위 신관인 것인데, 그들의 탄생의 소식에 전 대륙은 그 놀람에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이러한 현 상황속에서 야안 제국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이번에 각성한 신관들을 파악하며 그들을 제국 소속으로 끌어들였다.
아리스의 종인 신관을 밑에서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니, 협력을 구한 것으로 대부분의 신관들은 야안 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욕심에 의해 끌어들인 것이 아닌 앞으로 벌어진 거대한 전쟁을 앞두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것이니 사실 신관들로서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의 신관들은 자칫 권력에 휩쓸릴 수 있음을 우려하며 야안 제국의 권유를 거절하였는데, 이에 제국에서도 달리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다.
현재 야안 제국이 끌어들인 신관들의 숫자는 모두 386명이었는데, 제국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 현 대륙 곳곳에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앞으로 올 그 거대한 부정의 존재들과의 싸움을 앞둔 지금 이렇게 만들어진 신전은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서였다.
그 규모가 클수록 그러한 힘이 크게 발휘되는 신전의 특성상 제국은 빡빡할 정도의 자금을 운용하며 최대한 큰 신전을 지어내고 있었다.
이들이 신전을 짓는 위치는 가볍게 보면 아무렇게나 자리를 정해 짓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현재 짓고 있는 신전의 위치는 야안이 대륙을 조사한 끝에 직접 정한 곳이었다.
‘신전들로 거대한 방어막을 만든다.’
타 종족으로 인해 인간들이 크게 성세하지 않은 과거에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했다. 멀지 않은 고대만 보아도 인간의 숫자는 많이 잡아도 7분의 1정도가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종족들이 사라지면서 인간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신관들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났다.
야안은 이러한 사정을 짐작하였고, 그 신관의 숫자가 적어도 300명 이상이 나온다면 신전을 짓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타난 결과는 야안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신관의 숫자였다.
현재도 늘어나는 추세였으니. 자금만 허락된다면 야안의 예상보다 더욱 견고한 방어막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야안 제국의 황성의 남쪽 별관은 본래 귀한 손님들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폐쇄된 상태였다.
단순히 폐쇄된 것이 아니라 그 중심으로 1키로미르에 달할 정도로 접근을 금지하였는데, 실제로 접근을 하려고 해도 접근을 할 수 없었다.
단단한 방어막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는 초인이라고 해도 쉽사리 깰 수 없는 방어막이기도 했다.
애초 이 방어막을 펼친 이가 야안이었기 때문인데, 대현자가 펼친 초마법답게 검강 같은 파괴적인 힘이 아니면 부서뜨리기 어려웠다.
그러한 방어막을 1키로미르에 달할 정도로 펼친 것이다.
아무리 마정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믿기 힘든 마법인 것인데, 이 때문에 현자들은 이 믿기지 않는 기사에 멀리서 그것을 보고 가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 차단한 것인지 많은 이들은 궁금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본래 이 방어막은 다른 이들이 오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그 안에 벌어진 만약의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펼쳐진 것에 중점을 둔 마법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그 공간의 중심에는 리트담 그가 있었다.
현재 리트담은 수련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