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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55화 (355/385)

야안 355화

12. 테슬러

자이웅이 주술을 만들 때의 그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내기 위해서인데, 아무리 그라고 해도 애초 법칙을 다루는 것이라 처음에는 그 갈피조차도 잡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주술을 완성한 자답게 그는 최근 들어 그 인과의 법칙에 관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감을 잡기 시작했다.

“조금이지만 이해가 되는구나. 죽음의 지배자가 어떻게 인과의 법칙을 비틀고 또 비틀 수 있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을 잡게 되자 리트담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야 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죽음의 지배자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만 것이다.

리트담은 죽음의 지배자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리트담은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 당연한 법칙이 죽음의 지배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구나.”

애초에 죽음의 지배자는 인과의 법칙 따위에 연연할 수 없는 존재이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어야 함인데, 죽음의 지배자는 결과가 있고 그다음으로 원인이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깐 그의 힘은 역설(逆說)그 자체로, 결과가 뱉어지면 그 다음으로 원인들이 그 결과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리트담은 죽음의 지배자가 어떻게 악마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 같은 이유를 알게 되자 그제야 그는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악마를 만든다기보다는 존재케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세상이 악마를 받아들이면 이 악마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악마는 나타날 수 없게 된다.

세상의 그릇이 100이라는 숫자라고 가정할 때 죽음의 지배자는 세상의 종족들을 지워내는 것으로 그를 대신하여 악마를 존재케 한다.

애초 인과 따위는 상관치 않는 죽음의 지배자이니만큼 100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내용물에 미리 그 존재를 예약하는 것이다.

하기에 악마는 후대로 갈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의 공간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존재이기에 전설의 현자가 아무리 멸하여도 멸하지 않았다.

그저 긴 시간을 봉인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존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이 죽음의 지배자를 막아냈다는 것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인과의 법칙을 역으로 다루는 존재라니.

그 거대한 절망에 짓눌려 쉽사리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그는 인지의 주술마저 풀어 버렸다.

그저 저 노을이 져가는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그 노을이 절정에 이를 때쯤, 갑자기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공간이 환한 빛으로 일렁이더니 이내 갈라지며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인영은 넋을 놓고 있는 리트담을 향해 걸음을 나아간다.

“도대체 무엇이 그대를 그렇게 걱정케 하는 것이오.”

리트담에게 말을 한 이는 다름 아닌 야안이었고, 그는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리트담은 그제야 야안의 존재를 느끼고는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아! 주군이시여.”

놀라 예를 보이려는 리트담에 야안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고생이 많았나 보오. 이렇게 수척해지다니. 정말 수고하셨소.”

그렇게 그의 지난 시간을 치하하는데, 리트담은 그러한 야안의 모습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주군의 그 인자한 미소에서 리트담은 그 자신이 걱정하였던 모든 고민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 그래. 주군께서는 위대하시다.’

리트담 그가 이곳에서 편안하게 수련에 몰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그의 주군 야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는 역천의 탑 안에서 강화된 악마들을 멸하며, 결국에는 고위 신관에 올라 진실의 신전을 열고야 말았다.

그 유례없는 엄청난 신관들의 탄생을 예언하여 수많은 신전을 지어 악마들로부터 방어하고자 하기도 했다.

리트담 그였다면 악마들을 멸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야안만큼 빠른 시간에 끝을 낼 수 없었을 것이며, 역천의 탑을 모두 무너뜨렸다고 해도 진실의 신전을 열수는 없었을 터였다.

오직 이방인이며 유저라는 특성을 지닌 야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의 지배자가 인과를 무시하는 존재라면 주군께서는 세상의 법칙이 주는 제한을 벗어난 분이시다.’

이방인은 이 세상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분야에 그 재능이 정점에 달하였으며, 그와 함께 레벨이라는 시스템 특성이 그런 그의 성장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빠르게 끌어올렸다.

야안의 나이가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검, 주술에 있어 초인에 올랐을 뿐 아니라 마법을 완성하였으며 신관으로서도 그 끝에 다다랐다.

역대의 전설의 현자들 이상의 성장을 보인 것인데, 그를 이끄는 드래곤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주군은 역대의 전설의 현자님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봉인 따위가 아닌 죽음의 지배자를 영원히 멸하는 일.

리트담은 그것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느새 어둠이 찾아온 하늘 아래 리트담은 그 어떤 어둠도 다가오지 못할 빛을 앞에 두었다.

* * *

격변의 시대였다.

하루가 다르게 급하게 변해져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처음에는 혼란을 겪었으나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사람들 스스로 놀라워할 지경이었는데, 이는 이 격변의 시대의 흐름이 인간들에게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 모른다.

진실의 신전이 열리면서 탄생된 수많은 신관들은 수많은 이를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단순히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라 피폐한 정신적인 고통에서 그들을 해방시킨 것이다.

가까이 주신 아리스의 뜻을 전하는 종이 있으니 무엇에 의지하고 싶은 인간들로서는 당연히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실의 신전이 열린 지 3년.

그동안 나타난 신관들의 숫자는 실로 엄청났다. 2,000명에 달한 것인데, 단순히 수치로 따진다면 100배나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숫자가 많아지면서 그들 사이에서 유독 그 이름을 알리는 존재가 나타나고 있었다.

처절하기까지 한 희생 속에서 새로운 고위 신관이 탄생이 되기도 하였으며, 지난달에는 성기사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야안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성기사인 것으로, 그 검술은 초급 익스퍼트에 불과하였으나 성기사의 특성 답게 웬만한 초인 못지않은 힘을 발휘했다.

신관과 달리 공격에 치중한 성기사는 역시나 사마의 존재에 한해서 초인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성기사의 이름은 존.

떠돌이 용병 출신으로 본래는 전쟁 농노였다 야안 제국이 세워지면서 평민으로 승격한 이였다.

타고난 칼 다루는 솜씨로 제법 이름을 떨치던 존이었으니 용병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의 주인은 실로 보기 드문 아리스의 신도였는데, 그 때문인지 존 또한 자연스럽게 신도로서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용병임에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는 용병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전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았다.

어떤 이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어리석다 평하는 이가 많았으며, 그의 지인들은 그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였으나 그는 말없이 미소로 답할 뿐이다.

검의 수련과 봉사 그 두 가지의 길을 나아가는 존은 지난 달. 큰일을 겪고 말았다.

바로, 정리되어 가고 있는 오크들이 그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의 마을을 습격한 것인데, 당시 마을에 칼을 다루는 병력은 그를 포함해 일백이 채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오크들의 숫자는 일천이 넘었으며, 그중에는 그도 상대하기 어려운 호후도칸 급의 오크도 있었다.

상행을 돕기 위해 온 용병인 그는 외지인이었고, 도망을 친다고 해도 누구도 비난할 수 있는 이가 없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익스퍼트에 오른 그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전력이라 할 수 있었으니, 그가 도망을 치는 순간 이 마을은 지옥을 맛보아야 할 터였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그는 싸우기로 결심을 내렸다.

어린 시절부터 전쟁을 해 온 그답게 그는 마을 사람들을 통합하여 오크들과 싸웠다.

가장 위험한 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는데, 그러한 그의 희생 때문일까?

처음 오크들을 상대하는 것에 크게 겁을 먹었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그 뜨거운 희생에 더 이상 오크의 살기에 겁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용감히 싸워댔으나 애초 전력면에서 크게 우세에 있는 오크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전투가 일어난 지 나흘째 되는 날 존은 생사를 판결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쿠구구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을의 목책이 무너지려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아련하게 들려온다.

존은 흐릿해 져가는 눈빛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겁에 질린 모습을 바라보며 한탄을 금치 못했다.

‘왜 나는 이리도 약한 존재이던가? 아! 아리스 님이시여. 바라고 바라옵니다.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빌고 또 빌었다.

평생 그렇게 주신 아리스에게 이렇게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던 그였으나, 마지막 생을 앞둔 지금 그의 영혼은 저 하늘까지 닿을 만큼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을 알아 들은 것인가?

이적이 일어났다. 상처 입은 그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으로, 그 환한 빛이 사라졌을 때 어느새 그의 상처는 사라진 상태였다.

각성.

일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성기사로 각성하고 말았다.

‘콰아아아앙-’

결국 뚫려 버리고만 목책에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겁에 질렸다.

이제 죽었구나, 라는 생각만이 그들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일더니 오크들은 그 바람에 맞이하기 무섭게 생을 마감했다.

검기도 무엇도 아닌 것으로 사람들은 그것이 위협적이다기보다는 기이하게도 편안함을 가졌다.

그리고 이후 일어난 일은 엄청난 것이었다.

1,000에 달하는 오크들이 성기사로 부활한 존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사라졌는데, 설사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그처럼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검에서 검기와 함께 일어난 바람이 닿기 무섭게 오크들이 주검을 맞이하였기 때문인데, 호후도칸 마저 그 바람에 휩쓸려 사그라지고 말았을 정도였다.

당연히 이 일로 존은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 지식인들은 그가 성기사로 각성하였음을 인지하였다.

그렇게 성기사로 각성하였지만,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지기는 하였다.

수련과 봉사에 좀 더 더 깊이 파고들었으니 말이다. 다른 신관들과 달리 아리스 님의 말을 전하기보다는 그는 말없이 몸으로 그것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것이 사람들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

그날도 다른 때처럼 최전방에서 몬스터들을 정리하여 번 돈으로 아낌없이 사람들을 도왔던 존은 언제나 그랬듯이 허름한 여관의 뒷터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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