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69화
‘휘이이익-’
그는 분신 중 하나에게 손을 펼쳤고, 곧 분신은 하얀 연기가 환하더니 곧 그의 몸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것으로 악마들과의 전투로 바닥을 쳤던 그의 주술력은 차오르기 시작했다. 반 이상을 차오른 것으로, 남은 분신을 마저 흡수한다면 모든 주술력을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하나 그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분신을 흡수하기보다는 그에게 다른 명령을 지시했다.
붉은 노을을 도우라는 것으로 분신도 여력이 없었으나, 그와 리치왕 리케몬의 전투를 방해하는 수하들을 떨칠 힘은 충분히 있었다.
리트담의 그 같은 선택은 본능과도 같았다.
대악마와의 전투에서 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그는 그렇게 분신에게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야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곧 그가 밟은 땅이 접히고 공간이 뒤집어지기 시작한다.
이종족들의 등장으로 상승의 기세를 보이는 전장과 달리 야안의 전투는 더없이 치열했다. 검의 종주에 올랐음에도 방어에만 치중해야 할 만큼 대악마가 뿌리는 그의 악의가 담긴 신성이 사나웠던 것인데, 플로메티아가 아니었다면 이 싸움은 오래전에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이제 125스탯만이 남았군.’
악마를 잡으며 올린 스탯들이 어느새 사라져 겨우 그 정도의 스탯만이 남았다. 125는 얼핏 많아 보이나 사실 그렇지 않다.
현재 대악마와의 전투에 가장 필요한 스탯인 신력을 25올리는 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이 중 최소 20의 신력 스탯은 없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이 신력 스탯을 희생하여 이적을 노려보려는 야안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니 그에게 여분의 신력 스탯은 5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안에 결단을 봐야만 했다.
하나 대악마는 마치 학습을 하듯 그의 전투 방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섭게 진화되어갔다.
그저 그 특유의 고주파로 일대 지역을 봉쇄하는 형식의 전투를 벗어나 일정 영역을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느닷없이 겁화와 같은 불길이 타오르는 가하면 갑자기 혹한의 추위가 찾아오기도 했다. 강기와 같은 수백 개의 가시가 야안의 전신을 노렸으며 종국에는 야안에게 엄청난 중력이 가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고작 10배였던 중력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 지금은 30배에 달했는데, 만약 야안이 주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그 중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찌부러져 터졌을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온전히 인지의 술에 전력해야 할 주술력이 분산되기 시작하자 이로 인해 그의 주술력이 가파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대악마가 다루는 중력이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바 그의 주술의 소모력은 더욱 커질 것인데, 문제는 스탯이 있어도 주술에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금 당장은 마법으로 주술에 보조를 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법이라 곧 그 한계점이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콰아아앙-’
그러한 그의 답답한 현 상황을 해결해주려는 듯 거짓말처럼 리트담이 그 둘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법칙을 뒤흔드는 리트담의 힘은 실로 놀라워 대악마의 신성마저 뒤틀어버렸는데, 덕분에 야안은 대악마의 집중되고 있는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늦어 죄송합니다.”
리트담은 그 말과 함께 야안을 향해 손을 튕겼고, 그로서 야안은 다시 그에게 집중되는 그 밀려오는 거대한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순히 그의 중력을 막은 것이 아니라 마치 비를 막는 우산처럼 그것을 비켜 흘리게 한 것으로, 법칙을 다루는 자 다운 주술이라 하겠다.
그렇게 너무도 간단히 대악마의 수작에서 벗어나게 하자 야안은 감탄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질이나 효율에서 차원이 다른 리트담의 주술이 대악마의 힘 앞에서도 이처럼 큰 묘용을 보일 줄 몰랐던 것이다.
하나 거기까지였다.
리트담의 주술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으나 그의 개입으로도 대악마로부터 그 승기를 잡지 못했다.
마치 한계를 모르는 존재처럼 대악마는 리트담의 주술마저 감당하더니 그 진화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가장 큰 이득이라면 대상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면서 야안은 전보다는 신력의 소모가 감소한 것이었다.
리트담은 자신의 개입으로도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지 않았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 또한 무언가를 노리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주술을 무수히 꺼내놓기에 바빴다.
그렇게 새로운 대국의 대치가 이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대악마의 그물은 촘촘해져 갔다.
거대한 그물을 상대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좋은 강력한 힘으로 그물을 찢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안 된다면 차선으로 거대한 미끼를 던져 허탕을 치게 하는 방법이다.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 것인데, 리트담은 홀로는 그 역할을 할 수 없다 판단했다. 그가 직감한 것처럼 또 하나의 존재가 필요했고, 다행히 이 전장에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거인의 왕 붉은 노을이 그 존재로 그가 이 전투에 개입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이 대국은 새롭게 판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역할을 할 붉은 노을은 다행히 전장에서 무서울 정도의 상승세를 보였다.
하이 엘프 푸른 하늘의 가세와 리트담이 그에게 보낸 분신이 제 역할을 하면서 온전히 리치왕 케르몬을 상대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신 악마로 다신 태어난 리치왕 케르몬은 다루는 군단의 영향력은 줄었지만, 그 개인의 파괴 능력은 크게 상승하였다.
능히 기존의 신 악마를 뛰어넘는 전력을 지닌 자인 것인데, 그럼에도 그는 붉은 노을을 어찌하지 못했다.
반신의 후예답게 붉은 노을은 천부적으로 악마들과 천적의 관계였고, 그것은 마법을 다루는 존재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패왕의 육체만 있을 때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괴물이었건만, 별의 눈을 지닌 지금 더 이상 파괴만을 바라보는 저급한 마법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우드드득, 쾅-’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붉은 노을의 거대한 주먹이 그를 직격했다. 죽음의 망토 대신 그의 주위를 감싸는 오색찬란한 빛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한 것인데, 일반적인 물리적 힘이라면 통하지 않을 테지만 그의 주먹에 실린 그 붉은 신성의 기운은 능히 그것을 가능케 했다.
‘콰아앙. 콰아앙. 파드드득-’
그의 일격이 가해질 때마다 마치 오래된 녹이 떨어져 나가듯 모습을 보여댔다. 리치왕 케르몬은 그러한 붉은 노을에 오만가지의 마법들을 펼치며 발악을 하였으나, 그의 별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콰아앙. 카아아악-’
결국 그를 보호하던 빛이 찢겨 벗겨졌고, 그의 주먹이 그를 직격했다. 동시에 리치왕 케르몬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파괴의 권능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파괴력을 지닌 그의 주먹을 감당치 못해 전신이 박살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붉은 노을의 두 주먹이 비명을 지르는 리치왕 케르몬을 칠 때마다 그의 육체의 일부가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결국 열 번을 넘지 못하고 리치왕 케르몬의 육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늦지 않은 듯하니 다행이도다.”
붉은 노을은 저 멀리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원이 다른 전장을 바라보며 그리 말하더니 곧 몸을 포탄처럼 튕겨 날아올랐다.
‘쿠아아아앙-’
대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그의 뒤를 따랐고, 곧 그의 거대한 어깨가 대악마의 지근에 닿았다.
‘우우우웅-’
아쉽게도 대악마가 펼친 방어막에 막혀 그는 더 나아가지 못했으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워낙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직격한 것으로 그 보호막 안에 자리한 대악마 마저 뒤흔들리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야안과 리트담은 한숨 돌릴 여유를 얻게 되었다. 특히나 리트담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이제부터 내가 얻은 주술의 정수를 보여주마!”
리트담은 그 말과 함께 간신히 서 있는 남은 분신에게 손을 펼쳤다. 분신이 소모한 힘이 컸던 터라 처음 분신과 달리 주술력의 회복은 많지 않았는데, 그러한 주술력의 양은 그에게 상관없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그 분신에게 나누어준 자신의 존재의 의의였고, 그것을 확보한 지금 그는 이제 전과는 차원이 다른 주술을 펼치는 게 가능했다.
‘탁, 탁-’
그의 두 손이 현란하게 바뀌며 주술력을 증폭하는 진을 펼쳤다. 그리고 곧 그가 조금 전 소리쳤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주술이 이곳 대기에 펼쳐졌다.
그렇게 펼쳐진 주술의 힘은 놀라웠다. 대악마의 신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정확히는 그가 지닌 신성을 엉뚱한 곳으로 흩뜨려 쓰이게 한 것으로, 이는 대악마의 존재의 의의에 손을 대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신성을 지닌 악신의 존재의 의의에 손을 댄 엄청난 주술인 만큼 리트담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이 주술을 펼치기 위해 무려 인지의 술을 130:1까지 끌어올려야 했는데, 이로써 이 순간만큼은 인간의 탈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해도 무방했다.
리트담이 그처럼 신성을 약화시키자 대악마의 방어막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던 붉은 노을이 그 방어막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마치 남은 모든 것을 여기에 쏟아 붇겠다는 듯 그의 일격 일격은 단순하면서도 차원이 다른 고결함이 자리했다.
영혼의 힘마저 쏟아버리는 붉은 노을에 진격 앞에 흐트러진 신성에 당황하는 대악마의 방어막이 무수히 무너졌다.
그렇게 두 영웅의 희생 속에서 잠잠했던 야안이 어둠을 가르는 고요한 새벽의 빛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스 님이시여.’
야안은 이제 딱 100남은 스탯을 바라보며 마지막 기도를 보였다.
과연 이 스탯으로 이적을 발휘한 뒤 자신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야안은 의문이었다. 하나 그 커다란 모험을 말하는 불확실성 앞에 야안은 이적을 발휘했다.
다름 아닌 아다마스(adamas)를 펼치려 마음먹은 것이다.
아다마스는 팔라딘의 전용 신성 마법이며 또한 일생에 단 한 번 펼칠 수밖에 없는 가장 고귀한 힘이기도 했다.
주신 아리스의 힘을 잠깐이나 현신하는 절대적인 힘으로, 일시적으로 모든 영향에서 벗어나 무적의 상태가 된다.
본래 이것은 위기를 벗어날 방어의 그것이었으나, 야안은 이것을 변형하여 공격의 형태로 바꿀 생각이었다.
본래라면 가능치 않은 일이지만 검의 종주에 오른 그와 그 절대적 힘을 감당할 전설의 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주신 아리스의 힘을 다루는 것이니만큼 그 부작용은 심상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야안은 이를 위해 신력을 20 수치나 남겨두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그 역할을 할지 야안은 자신 없었다.
곧 그가 움직였고, 절대 신성 마법 아다마스가 그의 손에 펼쳐졌다.
‘화아아아아악-’
거대한 절대적인 힘이 그의 손에 일어났고, 순간 모든 것이 멈추었다. 아리스의 힘이 현신하면서 세상의 모든 법칙이 뒤로 물러나며 생긴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단 하나였다.
바로 그 힘을 현신케 한 야안으로 그는 마치 거북이처럼 느리게 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역시나 신성을 지닌 악신답게 대악마는 그 속에서 그 커다란 눈을 굴리며 다가오는 야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것도 행하지 못했다.
붉은 노을의 모든 진력이 담긴 주먹이 그의 마지막 방어막을 부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리트담이 그의 신성을 흩뜨리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다가오는 야안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테지만 본래 그의 신성에 절반도 안 되는 신성으로는 그는 어찌할 수 없었다.
‘푸우욱-’
그렇게 절대 마법이 깃든 전설의 검이 마치 젤리를 가르는 나이프처럼 그의 몸을 갈랐고, 그것으로 그는 거짓말 같은 끝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