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73화
타 대륙의 등장은 여러모로 인간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당시 마치 종말의 날을 이야기하는 듯한 기상변화에 인해 야안 제국은 모든 경제활동이 중단되고 비상 1급으로 전환되었다.
제국의 큰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자이한과 한스 등의 초인들은 물론 모든 제국의 병사들이 전쟁 대기로 돌입했다.
그간 준비했던 수많은 경계마법진이 활성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현자들은 각자 현자의 탑에 대기해 경계마법진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해석해나갔다.
그랬다.
야안도 그를 모시는 탈인 리트담도 없는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해나갔다.
초인의 수에 맞추어 타이탄X들이 모두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들에게 그나마 행운이었다.
하지만 일은 그들의 예상과 달리 괴상하게만 흘러가기 시작했다.
분명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천지재변이 세상에 내려왔으나, 그것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지는 기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이적이 세상에 벌어졌다.
찬란한 황금빛이 세상을 뒤덮는가 싶더니 이내 그 빛이 사라졌을 때에 라 대륙의 재앙과 같았던 야루스 산맥 또한 그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한스는 이 또한 죽음의 지배자가 보이는 저주가 아닌가? 싶었으나 그것이 아님을 파견된 조사원들에 의해서 알게 되었다.
마치 본래 그런 곳이었다는 듯 기름진 토양이 자리한 거대한 평야가 그곳에 자리했으니 말이다.
야루스 산맥이 사리진 자리에 생겨난 이 거대한 평야는 실로 아름다웠다. 인간의 발길이 끊어지며 태고의 숲을 보는 듯한 그 거대한 숲은 비롯해 고대 시절 라 대륙을 가르던 젖줄과도 같은 강에 수많은 생명체가 찬란한 생명력을 보였다.
그 외에도 고대 문명의 유산들이 곳곳에 널려 잘 보관되어 있었으니 그야말로 지금의 인류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다.
하나 정작 가장 놀라운 일들은 역시나 야안이 제국에 복귀한 뒤의 일일 것이다.
놀랍게도 야안은 홀로 나타나지 않았다. 리트담과 더불어 수많은 이종족을 이끌고 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문헌 속 그림으로 남아 있던 엘프와 드워프는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모롤타족과 카사 족 외 태양의 종족까지 나타나자 그들로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그러한 것보다 한스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은 바로 야안의 외형이었다.
마치 찬란한 시기를 지나 쇠락의 시기에 도달한 듯 홀로 세월을 맞이한 스승의 그 충격적인 모습은 그에게 상상을 불허하는 끔찍한 일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한스에 의해 뒤늦게 야안의 그 같은 변화를 눈치챈 자이한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이 걱정 어린 눈길로 다가왔고, 이에 야안은 난처한 미소를 보이며 볼을 긁적였다.
리트담에 의해 그나마 이 정도로 복구했음에도 저처럼 놀라니 만약 팔순 노인의 모습으로 야안이 돌아왔다면 그들은 대성통곡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수하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그들을 더 자극했다.
울컥해 하는 그들의 모습에 같은 왕을 모시게 된 이종족들은 저마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나같이 귀하지 않은 이가 없어 보이건만 인간들에게 보기 힘든 순수함이 이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소소하다면 소소할 이러저러한 일들을 지나 제국은 이종족이라는 커다란 힘을 지닌 아군을 손에 얻게 되었다.
대변혁 이후 야안 제국은 진화라고 해도 무방할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는 야루스 산맥 아래 놀랍도록 잘 보관된 고대 문명의 유산들과 함께 이종족들의 합류가 이룬 성과이기도 했다.
야안 왕국이 제국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 발전은 실로 놀랍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에 필요한 무력 부분에 치중된 것으로 감히 고대 문명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무력에 있어서는 타이탄과 인공 마정석의 등장으로 앞설지 모르나 다양한 방향성에 내재된 그 수많은 정치 문화 등에서 고대 문명은 한참이나 앞서 있던 것이다.
이러한 고대 문명은 실로 야안 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최초로 모든 지성체를 통일한 제국에게는 그 지붕을 지탱할 수많은 기둥이 필요로 하던 차 나타났으니, 아니 기쁠 수 없었다.
문명은 단 한 분야만을 끌어 올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분야에 있어 골고루 끌어올리지 않으면 그 한계가 결국 들어오게 마련인데 실제로 야안 제국은 최근 들어 그러한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시정이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 고대 문명은 이 한계를 돌파할 계기가 되 줄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변화의 지점 속에서 이종족들은 그 변화의 물결을 더욱 거세게 흔들어 놓았다. 하이 엘프의 등장으로 세계는 무려 1,000년 만에 세계수를 맞이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정령사들이 새롭게 개화되었다.
또한 인간과 차원이 다른 손재주를 지닌 드워프들의 합류는 실로 거대한 혁신의 바람을 불러 놓았다.
여러 필요한 생활물품에도 큰 혁명을 일으켰지만, 무엇보다 한계점에 도달했던 타이탄의 개발에 큰 혁신을 가한 것이다.
인간의 틀을 한참이나 벗어난 그 놀라운 생각의 전환과 상상을 넘어서는 터무니없는 손재주가 불가능 같았던 이론들을 이루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타이탄들의 효율성이 몇 배나 끌어 올려지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초인들이 다루는 타이탄X의 아쉬운 점들을 모두 보강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동물과의 교감에 엄청난 능력을 지닌 모롤타족과 불 자체라 보아도 다르지 않은 카사족, 물의 종족이라 불리는 멀머던족이 합류하면서 제국은 큰 인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이 외 제국은 인공 마정석을 이용해 아낌없이 풀어 가장 전투적인 종족이라 할 수 있는 태양의 종족에 맞는 타이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오크 종족들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는 태양의 종족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야수적 전투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 자체로 뛰어난 자들이었지만 이런 그들이 그에 맞는 타이탄을 공급받게 되자 대부분 도칸 이상의 전력을 지닌 괴물이 되었다.
특히나 태양의 종족의 수장의 경우 제국이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오크 칸 이상의 전력을 보여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거인족의 경우는 그리 인간들의 문명에 큰 교점이 없었다.
드워프들만이 다룰 수 있는 금속 물질 로탐 정도가 다인 것인데,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거인족은 인간들이 가장 가까이하는 종족이었다.
무시무시한 외모와 달리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순수함도 그 이유 중 하나겠지만, 무엇보다 인간들의 삶에 타이탄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그들을 친숙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이 같은 환영을 받은 적이 없던 거인족으로서는 그런 인간들의 반응에 처음에는 다소 놀란 눈빛을 보였으나 이내 그들의 호의를 즐겼다.
뒤늦게 인간들은 타 대륙을 발견했다.
고대와는 달리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던 이유로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다, 멀머던 족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타 대륙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모습을 보인 타 대륙은 본래 이곳이 야루스 산맥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풍부한 물자와 비옥한 토지를 자랑했다.
다른 대륙과 달리 몬스터들조차 쉽사리 발견되지 않아 인간들의 이주에 큰 힘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하여 이 타 대륙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단들은 거침없이 타 대륙을 질주했는데, 그렇게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지 나흘이 되던 때 제국의 황성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드래곤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바로 오래된 문헌에서 보이던 조율자들의 흔적을 찾은 것으로 이 일은 지난 대악마와의 전투를 바탕으로 자신의 무력을 새롭게 점검하던 야안마저 불러들였다.
그는 곧 현자의 탑을 통해 조사단이 알려준 좌표로 공간을 뛰어넘었고, 그들이 알려준 흔적이 틀림없음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분들께서 깨어나셨구나.”
예상과 달리 잠잠한 터라 비틀어진 인과 이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일까? 걱정했던 야안은 그제야 안도를 보일 수 있었다.
이후 그는 그 흔적을 바탕으로 드래곤들의 움직임을 예측해나가며 조사단과는 별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요란한 모닥불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야안은 잡은 짐승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신선도가 높은 막 잡은 고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느새 손질이 끝이 난 야안은 주술로 간단히 훈제를 한 뒤 이후 모닥불에 그을여 고기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젊은 육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법 대식가였던 야안은 장정 서넛이 먹을 고기를 홀로 먹어치우는 것 정도는 끄떡없었다.
“벌써 칠일이 흘렀는가?”
결국 모든 고기를 먹어치우고 가져온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던 야안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하루나 이틀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처음 생각과 달리 마법의 종주답게 생각보다 드래곤들이 남긴 흔적은 대현자인 그로서도 찾기 어려움이 많았다.
인간과는 달리 대다수의 마법을 심장에 저장한 마나로 다루는 드래곤들은 그 마나 흔적이 매우 희미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도 공친 탓에 이렇게 숲 속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그의 실망을 알기라도 하듯 그의 기감에 누군가가 들어섰다.
‘부스슥, 부스슥-’
수풀을 해치고 야안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인데, 야안이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곧 수풀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맞게 찾아온 것 같군.”
나타난 이는 인간이었고, 샤 대륙의 사람들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지닌 자였다.
그리고 그를 맞이한 야안은 다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야안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위대한 인간들을 봐왔지만 그에 비할 만한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세가 인간의 그것을 한참이나 상회하였기 때문인데, 하여 야안은 혹시 그가 악마인가 생각했으나 그런 그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듯 그가 빙긋이 웃음을 흘리며 말을 꺼냈다.
“덕분에 욕 받네. 설마 이 대륙에 있을 줄이야. 반갑네. 나는 아흔 아홉이라 하네.”
야안은 자신을 소개하는 그에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가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눈앞의 사내는 인간이 아닌 그가 그토록 찾았던 드래곤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숫자로 부르는 이는 드래곤밖에 없으니 말이다.
야안은 하나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드래곤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과 함께 인사를 하였다.
“조율자시군요. 저는 야안이라고 합니다.”
대번에 자신을 드래곤이라 파악하는 야안에 그 사내는 참으로 재밌다는 듯 미소를 흘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번 대의 전설의 현자는 참으로 통찰력이 뛰어나군. 정말 자네 같은 자의 길잡이가 된 것이 나로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네.”
하며 그는 자신을 새로 소개했다. 그 자신은 블랙 일족의 후예로 하나로부터 야안의 길잡이라는 숙명을 받아 새로 태어났다고 한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현재 하나를 비롯해 수많은 드래곤이 죽음의 지배자가 남긴 또 다른 저주를 해체하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드래곤들을 일깨우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