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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75화 (375/385)

야안 375화

잠깐의 담소가 그들 사이에 오가는 가운데 말없이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흔 아홉이 본래의 용건에 대해 말했다.

“전량(全量)이 필요합니다.”

전량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하나가 잠시 말문을 잃었다.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아흔 아홉은 그런 하나를 이해한다는 듯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칠각 전량이 필요합니다.”

칠각. 드래곤의 일곱 개 뿔 중 마지막 뿔을 말하는 것이며 드래곤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 유일하게 남겨놓은 유산이다.

드래곤의 수장은 이 칠각을 모아 후대에 내주는데, 이는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할 전설의 현자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고대 시절로 시간을 거슬러 올랐던 야안은 이 칠각에 의해 위기를 벗어나 위대한 주술사의 힘을 얻었다.

칠각은 달리 드래곤의 지혜가 담긴 진리의 열쇠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인데, 다만 준비되지 않는 자에게 이 칠각은 허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칠각이 길잡이의 운명을 받은 드래곤과 마주하면 놀라운 이적이 일어난다.

바로 이 칠각의 힘을 길잡이가 임의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이러한 힘은 전설의 현자를 탄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칠각이니 유산으로서 귀히 보관하게 마련인데, 다만 악마와의 대전에서 패전할 경우 회수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그 급이 낮은 것은 첫째이며, 제대로 된 죽음이 아니기에 봉인이 되어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추적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전 야안이 얻었던 칠각은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것이기도 했다.

만약을 위해 드래곤의 수장들은 이 칠각을 모아두기는 하나 전설의 현자의 성장에 필요한 칠각은 대략 전량의 반을 넘지 않았다.

그것도 지난 대의 전설의 현자 자이웅의 경우가 특이하였기에 그 정도로 소모된 것이지 보통은 그 반에 반 정도를 소비할 따름이다.

하니 자연 이 칠각은 세월이 흐를수록 크게 늘어나게 마련이었고, 지금에 이르러 존재하는 칠각의 수는 물경 452개에 이른다.

엄청난 양인 것인데, 아흔 아홉은 이 칠각을 절반도 아닌 전량이 필요하다 하니 하나로서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하나가 곧 눈을 뜨며 물었다.

“이 칠각은 전설의 현자를 위한 유산이니 전량이라 할지라도 내주는 것이 맞다. 하나 궁금하구나. 어째서 그 정도의 숫자의 칠각이 필요한지를 말이다.”

하나의 물음에 아흔 아홉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흔 아홉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하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사실 야안에게 필요한 칠각은 그리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대현자에 도달한 것은 물론 검에 있어서도 검의 종주에 올라선 야안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이제 진정한 전설의 현자가 되는데 있어 필요한 것은 정령의 왕 유피테르와의 각성과 주술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한데 주술의 끝인 탈인에 오르는데 필요한 것은 이미 리트담이 그에게 준 리트담의 서가 있음이니 실제 그에게 필요한 칠각은 고작 서넛 개 정도면 넘치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아흔 아홉이 전량을 요구한 것은 역시나 그를 감탄케 한 바다의 신 세이란이 남긴 힘 ‘젠’ 때문이다.

‘젠’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특이한 형태의 힘이었다.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성을 다룬다는 것 때문인지 인간인 야안에게 꼭 맞는 형태로 변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많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야안이 이 ‘젠’의 힘을 얻은 것은 대현자와 신관 이 두 가지를 그가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난이도의 학문인 것으로 아흔 아홉은 칠각의 전량이라고 해도 과연 야안이 이 힘을 온전히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믿을 것이 있다면 아리스의 큰 축복을 받은 이방인이라는 신분이 이적 그 하나였다.

하나는 아흔 아홉의 이야기를 듣고 두말할 것 없이 칠각의 전량을 내주었다. 이번 대의 죽음의 지배자는 지난대 전설의 현자 자이웅이 일으킨 뒤틀린 인과로 엄청난 힘을 키운 뒤였다.

더불어 자이웅은 후대를 위한 새로운 힘은커녕 주술을 제대로 개량하지도 못한 채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에 죽고 말았으니 하나로서는 이번 대의 전설의 현자가 과연 죽음의 지배자를 막을 수 있을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믿는 것이 있다면 야안이 이방인이라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존재가 가진 힘에 기댈 따름이다.

그런 가운데 ‘젠’이라는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힘을 발견하였으니 그로서는 아니, 기쁠 수 없었다.

그는 선뜻 칠각의 전량을 아흔 아홉에게 내어주었다. 그리고 야안에게 ‘젠’이라는 힘을 준 종족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힘을 지닌 자들이라 그는 크게 만족함을 보였다.

“바다의 종족이라. 블루 일족에게 일러 그들과 접촉하라 하여야겠군.”

블루 일족은 바다 아래 자리한 드래곤이었다. 샤 대륙에서는 수룡이라고도 부르는 데 그 모습은 여타 드래곤들과 달리 뱀처럼 긴 외형을 지니고 있다.

물 밖에서는 여타의 드래곤들보다 약하나, 대신 물속에서는 엄청난 기량을 발휘하여 대대로 죽음의 지배자가 바다에 수작을 부리는 것을 막아섰다.

지난 대의 전쟁에서 많은 숫자가 줄어들어 이번 대의 전쟁에 걱정이 많았는데 바다의 종족이라는 놀라운 이들이 나타났으니 하나로서는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야안은 그 외에도 지난 대의 하나가 불문율을 어기면서 대륙에 이종족들이 새로 탄생되었음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라, 샤 대륙이 통일하였으며 그들이 지닌 전력에 대해 세세히 알려 주었다.

하나는 이방인들을 제외하더라도 생각보다 인간들의 전력이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터라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야안의 말에 과장이 없다면, 초인이 다루는 타이탄X 2기면 능히 드래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참으로 좋도다. 이처럼 기쁠 수 없구나.”

하나는 그렇게 기뻐하며 곧 드래곤의 사절을 그대의 제국에게 보내겠다고 이야기했다. 본격적으로 교류를 통해 제국의 힘을 살찌우겠다는 것으로 야안은 하나의 그 결정에 반기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와의 만남을 뒤로 야안은 아흔 아홉과 함께 제국으로 복귀했다.

“스승님. 언제 오신 것입니까?”

실로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스승의 기운에 놀란 한스가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반겼다. 이제 중후함이 느껴지는 제국을 책임지는 거인이 된 한스의 모습에 야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모님께서 이러한 심정이 아니었나 싶군.’

워낙 어릴 때 제자로 들였던 탓인지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저 한스가 귀엽고 마냥 어려 보인 터라 야안은 그것이 재밌어, 잠시 미소를 짓더니 곧 그가 놀랄 소식을 전해 주었다.

같이 온 사내 아흔 아홉을 소개해 준 것으로, 안 그래도 그가 심상치 않다 생각하던 한스는 곧 그가 전설 속 문헌에서 다루던 드래곤임을 알자 돌이 된 듯 굳어버리고 말았다.

현자의 길을 가는 그이니만큼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과의 만남은 그에게 있어 남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놀랄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곧 드래곤 수장이신 하나로부터 사절단이 올 것이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하였지만 자네가 수정할 것이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도움 받거라.”

야안의 말에 한스의 눈이 크게 동그랗게 뜨여졌다. 드래곤의 흔적에 타 대륙에 모습을 보였던 스승이 드래곤과 함께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이제 이들 드래곤들과 협력의 관계가 되었다고 하니 제법 냉철하다는 평을 받는 그라고 해도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야안은 그러한 한스의 모습에 껄껄 웃더니 곧 어린 시절의 그때의 그에게 그랬듯 그의 등을 토닥이고는 황궁 안으로 들어섰다.

야안이 제국에 돌아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아흔 아홉과 함께 수련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비울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니 그전에 지인들의 얼굴을 보고자 한 것인데 그런 그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야안이 황성에 들어서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인영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그와 밀접한 관계가 지닌 자들로 그중에는 당연히 그의 두 아들도 있었다. 곧 연회가 벌어졌고, 그때쯤 소식을 들은 이종족들의 수장들도 그를 찾아왔다.

리트담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모습을 보였는데, 그 모습이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애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나, 주술력이 고갈된 데다 곳곳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크게 지쳤음을 알았던 것이다.

야안이 그랬던 것처럼 대악마와의 전쟁에서 그 또한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다만 그 정도가 야안보다 컸던 모양이다.

광인(狂人)의 그것과도 같은 기운을 풍기며 그 자신이 만든 작은 공간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만약 야안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기에 앞서 시간을 내어 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 결코 그 공간에서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야안은 리트담의 그 귀기(鬼氣)가 어린 눈빛을 보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언제나 같은 태도로 그를 맞이한 것으로, 그런 주공의 모습에 리트담은 잠시 눈빛이 흔들리다 곧 다시 귀기의 눈빛으로 돌아갔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야안의 태도였지만 사실 야안이기에 그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기도 했다.

그만큼 리트담이 풍기는 기운이 사납고 흉악하였기 때문으로, 실제로 연회장에 수많은 초인이 있었지만, 그것을 쉬이 감당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마치 리트담이 악마에 기생을 당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일 정도로 흉악한 기세인데 이종족들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닌 붉은 노을조차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니 초인들이 쉬이 그를 가까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리트담은 이 같은 자신의 상태를 알기에 일부로 연회의 마지막 날에 왔는지도 모른다. 그의 평소 성정을 보건대 주공을 위한 연회가 망치기를 그는 대단히 꺼려했을 테니 말이다.

야안은 다시 귀기 어린 눈빛으로 돌아간 리트담에 야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를 행하려는 것을 알고 있는바, 야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조건 믿어주는 것인데, 리트담은 자신의 상태에 아무런 것도 묻지 않고 그를 격려하는 야안에 다시금 눈이 흔들리고 말았다.

연회의 마지막 날은 화려하게 끝이 났다.

불의 종족 카사족들이 보인 재주로 그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불꽃놀이를 보았기 때문인데, 덕분에 이별의 아쉬움이 어느 정도 가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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