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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77화 (377/385)

야안 377화

하여 그는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 리트담의 서에 담았고, 야안은 그로 인해 그의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되었다.

리케하르산 리트담.

그의 일생의 굴곡은 도무지 한 사람의 것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굴곡졌다. 결국 그는 그 어린 나이에 타 대륙을 넘어 수많은 역경을 넘은 끝에 자신이 원하는 힘을 얻고야 말았다.

위대한 주술사에 오른 것이다.

이후 본래의 역사였다면 리트담은 그 자신이 원하는 복수를 행하고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큰 일조를 한 뒤 속세의 뒤로 물러났겠지만, 야안이 겪은 그의 일생은 본래의 역사의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꾸로 올라 과거로 온 야안에 의해 뒤틀린 역사를 지닌 이야기를 야안은 겪고 있었다.

재밌게도 리트담이 된 야안은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만났다.

물론 이야기 속의 야안은 본래의 야안과는 차이가 있었다. 리트담의 서에서 나오는 야안은 리트담이 바라보는 야안의 모습이었기 때문으로, 그 이야기 속에서의 야안을 야안 그 자신이 자각했다면 그는 스스로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하였을지 모른다.

그만큼 리트담의 서에서 그가 만난 야안은 고귀한 성자이면 또한 다시없을 현자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리트담은 야안을 만남으로서 그저 분노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했던 과거의 자신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너무도 큰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감당하며 나아가는 야안을 보니 그가 짊어진 짐 따위가 너무도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산이 아무리 높다고 하지만 결국 하늘 아래 있는 것이듯 그는 하늘을 보자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 판단했다.

물론 그가 가문의 복수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자신의 가치관에서 그 첫 번째가 복수가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그는 야안으로부터 터무니없는 귀한 리트담의 서를 받게 되었고, 그로서 그는 자신의 경지를 훌쩍 뛰어 넘어섰다.

이후 그는 야안의 고귀한 인품에 반해 그를 주공으로 모셨고, 이후 그는 실로 엄청나다 할 수밖에 없는 모험들을 해나갔다.

숱한 이종족들을 만났으며, 그러한 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 초석을 세우기도 했다.

홀로는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악마와 그가 이끄는 몬스터들과 싸우기도 했는데, 그러한 가운데에 그가 매번 느낀 것은 주공의 그 고결한 영혼이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영혼과 함께한다는 것에 야안은 행복해하였다.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주공과 함께 하기에 그는 그저 모든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여인은 사랑에 목숨을 걸고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목숨을 건다는 옛 현인들의 말이 절로 이해가 될 정도였다.

하나 그러한 그의 행복의 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드래곤을 만나러 간다는 주공의 뒷모습이 설마 마지막일 줄 야안은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 않았을 것인데.’

대공인 그가 떠맡아야 할 것이 있었기에 결국 따라갈 수 없었던 그였지만, 만약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는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고귀한 영혼이 가고자 하는 길에 그의 하찮은 욕심이 흠을 남길 수 없으니 야안은 그 안타까움을 그저 속으로 삭일 따름이다.

이후 그는 주공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벌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제국을 침공하는 악마들과 싸웠던 것인데, 다만 황실이 악마에게 잠식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 그에게는 한이 되었다.

제국에 드높은 충성이 있었다기보다는 주공과 같이 세웠던 제국의 몰락이 그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터이다.

이후 그는 훗날 이 문명의 마지막에서 결국 인간을 지키고만 위대한 영웅 대현자 테무드를 만나 그를 이끌었다.

본래 역사보다 앞당겨 악마들이 등장한 터라 테무드가 그 싹을 틔우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인데 그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탈인의 경지에 오른 그의 주술은 참으로 위대해 테무드가 대현자에 오르기까지 그는 잘 버텨주었다.

대륙을 오가며 죽음의 지배자가 일으킨 마의 세력들과 싸워나가던 야안은 그 옛날 주공과 만났던 하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힘에 있어 자신이 있었으나 막상 하나를 보게 되자 그 자신이 사라졌다. 그 옛날 그가 상대한 리치왕 케르몬도 그에 비할 바가 아님을 안 것으로, 다만 주술의 특성상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그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드래곤의 수장 하나로부터 야안은 다시금 운명이 뒤바뀌게 되었다. 그저 대현자 테무드와 함께 고대 문명을 조금이라도 살려보려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 후 야안은 자신이 이룬 공부를 주공에게 전해주기 위해 이 리트담의 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후두둑-’

리트담의 서가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냈으니 이제 사라지겠다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리트담의 서가 사라져갈수록 초점이 없던 야안의 눈에 생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백색의 광채(光彩)가 터져 나왔는데, 그 찬란한 광채에 그를 지켜보던 아흔 아홉이 놀라 몸을 물렸다.

단순히 그 현상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로서 일어나는 야안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블랙 일족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아흔 아홉이라 하지만, 그 말이 가장 약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비교적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길잡이의 운명을 타고난 만큼 그의 나이에서 얻을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한데 그런 그가 놀라 몸을 물릴 정도였으니 그것만 보아도 야안에게서 일어나는 기운이 얼마나 심상치 않은 것임을 알 수 있을 터이다.

‘투둑. 투둑-’

그리고 그런 엄청난 기운의 폭풍 속에서 야안의 몸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 재구성의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다. 리트담에 의해 되돌아왔던 육체에 다시 노화가 진행되던 것으로, 순식간에 그는 팔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는 걱정스러울 모습이었지만 사실 이는 리트담의 주술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리트담의 주술을 밀어내니 당연히 리트담의 주술이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후 야안은 변태 과정을 거친 나비처럼 찬란한 불길 속에 타오르더니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착용하던 옷들은 그 과정에서 타올라 한낱 먼지조차 남기지 못했는데, 만약 그 자리에 아흔 아홉이 아닌 초인이 있었다면 감히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일어난 기운이 남달랐던 것으로, 리트담과 비교해도 그의 경우는 특별했다. 역시나 이미 두 길의 끝을 올랐던 자였기에 그가 이룩한 탈인의 경지는 리트담의 그것보다 그 색이 달랐다.

아마도 리트담의 사상과 더불어 그의 사상 또한 함께 어우러지다 보니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그 외에도 그가 검의 종주에 올랐다는 것이 큰 차이일 터였다.

검의 종주에 올랐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발전할 수 없는 육체의 극의에 올랐음을 이야기한다.

하니 주술은 마법과 달리 몸으로 그 기운을 견디고 행하는 것으로, 그 육체의 정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리트담이 소드마스터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육체를 지닌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니 자연 단순히 주술력의 양으로만 본다면 야안은 리트담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화아아악-’

곧 마지막 그 찬란한 불꽃 속에서 야안이 모습을 보였다.

새롭게 환골탈태를 한 모양인 듯 육체가 재구성된 야안은 더 이상 팔순의 노인이 아니었다. 새롭게 원기(元氣)가 일어나 젊어진 것인데, 다만 워낙 쇠락한 상태였던 터라 그 모습은 가장 기운이 강하는 20대의 모습은 아니었다.

불혹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의 그것이 된 것인데, 활기가 크게 일어난 모습은 아니었지만 대신 중후한 무거움이 그에게 자리했다.

아흔 아홉은 마치 우주의 재탄생을 보는 듯한 야안의 그 환골탈태의 과정에 연신 감탄을 하다 곧 야안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자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야안은 눈을 뜨기 무섭게 아흔 아홉의 얼굴을 봐야 했다. 평소 근엄한 모습과 달리 흥분 어린 기색을 보이는 아흔 아홉의 모습은 마치 신기한 광경을 본 동네 어린아이의 그 모습이라 야안은 억지로 웃음을 속으로 삭였다.

그런 야안의 속내를 모르는 아흔 아홉은 감탄을 토해냈다.

“정말이지 자네.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아흔 아홉은 그 말을 끝으로 여러 가지를 시시콜콜하게 물었는데 야안은 어려움 없이 그의 질문에 답해 주며 새로 옷을 꺼내 입다 이내 시장기를 느꼈는지 인벤토리에서 음식을 꺼냈다.

음식을 꺼내는 그의 모습에 그제야 아흔 아홉은 질문을 멈추었다.

“그래, 배가 고플만 하지. 벌써 열흘이나 음식을 먹지 못했으니 말이야.”

야안은 아흔 아홉이 말한 열흘이라는 날짜에 놀라다 곧 수긍했다. 다른 삶도 아닌 리트담의 수십 년의 생을 통째로 살았다.

그의 인생보다 배는 더 긴 인생을 살았던 것인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열흘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야안은 빵, 치즈를 꺼내어 손에서 일어난 불꽃으로 그것을 노릇노릇 굽더니, 이내 그것과 아주 잘 어울리는 포도주를 한 병 꺼내었다.

단출한 식사였으나, 오랜 허기가 최상의 맛을 이끌어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던 야안은 그제야 자신이 이룬 주술의 궁극의 경지 탈인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그의 모습은 대단히 이질적이다.

그 대단한 경지에 이룩하였음에도 마치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니 말이다. 하니 어찌 보면 야안과는 맞지 않는 오만함을 그가 보였다 생각할 수 있다.

하나 그것은 오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도 큰 것을 얻은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그래, 나는 터무니없는 힘을 얻었다.’

검과 마법을 완성한 자가 주술에서도 그와 같은 완성을 이룩하였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서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그에게 있어 대부분 검과 마법을 보조하는 것에 쓰였던 주술이 처음으로 주가 되었던 것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컸다.

그리고 야안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입증하려는 듯 검을 잡았다.

주술이 주가 되어 펼치려는 자가 검을 잡은 것이나 그것이 어색하지 않다. 아흔 아홉은 야안이 말하지 않았으나 그가 이번에 얻은 힘을 드디어 선보이려 함에 큰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이며 몸을 물렸다.

지금의 야안은 유피테르를 제외한다면 역대 전설의 현자 중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경지에 오른 것이니 길잡이인 것을 떠나 조율자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마치 석상처럼 멈추어져 있던 야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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