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79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지?’
하나는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황을 무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뒤틀린 인과가 다시 돌아온 지 정확히 10년이 되던 차. 악마들이 하나둘씩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막힌 둑이 터지듯 세상 곳곳에서 쉼 없이 모습을 보이는 악마들은 문헌에서 보던 것 이상의 공포로 대륙을 어지럽혔다.
일부는 불사의 군단과도 같은 괴이한 괴수 군단이나 혹은 마인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당연히 그 위험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하나 생각했던 것보다 제국이 그들로부터 입은 피해는 대단치 않았다.
이미 대륙을 통일한 야안 제국이 전력으로 드래곤과 협력체계를 두었던 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그 외에도 이날을 위해 준비한 타이탄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초인들이 탑승한 타이탄 X들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그보다 숙련된 병사들에게 지급된 타이탄 S들의 활약은 실로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숙련된 병사들의 수준은 대부분 상급 유저로 이들이 타이탄 S에 탑승하여 발휘되는 위력은 초급 익스퍼트를 상회했다.
타고난 감각을 지닌 자들은 중급 익스퍼트에 못지않은 전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병사들의 숫자가 100만에 달했으니 악마들이 부리는 군단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나 야안의 첫 번째 기사이며 제국의 몇 안 되는 공작인 챈들러의 경우 이 전쟁에서 놀라운 전공을 세웠다.
단신으로 황성을 향해 질주하는 악마를 상대하여 그를 베어냈던 것으로, 아무리 타이탄 X가 드래곤에 의해 개량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가 소드마스터라는 굴레를 벗어난 것으로, 실제로 그는 예전 야안이 내린 가르침을 주신 아리스의 그것처럼 따라 이루어낸 기적 같은 성과이기도 했다.
검의 종주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보다 반 발자국 뒤에 올라선 경지인 것으로, 당연히 타이탄 X까지 탑승한 그가 악마 하나를 처리하지 못할 리 없었다.
챈들러는 본래 묵묵한 성정을 지닌 자라 자신에 이룬 것에 대해 자랑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를 가까이하는 이들도 그의 진정한 진면목을 알지 못했을 정도이니 절로 돌거인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니만큼 그가 그러한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만약 야안이 있었다면 이 일이 있기 전에 그런 그의 성과를 알고 크게 축하해 주었겠지만 아쉽게도 야안이 없었으니 뒤늦게 챈들러의 그 같은 성취에 축하의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죽음의 지배자의 술수는 그간의 준비에 모두 막혀 그 시작부터 꼬여지니 인간들은 환호를 보였으나, 정작 드래곤의 수장 하나는 이에 대해 큰 의문을 보였다.
죽음의 지배자가 이처럼 어설픈 술수를 부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이를 말하지 않는 것은 추측만으로 이 달아오르는 열기에 찬물을 부을 수 없는 탓이다.
죽음의 지배자와의 전쟁은 상상을 넘어서는 긴 시간과 전력들이 필요할 터, 그 시작부터 마음이 꺾여서는 일도 안 되는 법임을 알아서이다.
하나의 그 같은 우려 속에서도 전쟁은 지속적으로 승리를 이루어나갔다.
바다에서는 마침내 모습을 보인 바다의 왕 파란이 피오들이 악마와 악마들이 이끄는 몬스터들로 연승해 나갔으며, 하늘에서는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 지금 육 해 공에 이르러 압도적인 전력이 악마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때쯤 되자 하나도 의심을 반쯤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방심은 가장 멀리해야 하는 일임을 말하듯 그렇게 승기를 잡았다 생각이 드는 순간 악마들의 피 안개에 가려졌던 두려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국의 황성은 연일 일어지는 승리의 소식에 들뜬 모습이 가득했다.
야안과 드래곤의 경고에 두려움을 보였던 죽음의 지배자의 세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허. 태상황(太上皇 : 황제의 아버지)께서 너무 지나친 걱정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겨우 이런 세력에 그처럼 두려움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황성의 내정을 담당하는 고위관직의 사내의 말에 대다수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무서운 경고를 주었던 터라 제국은 모든 재력과 인적 자원을 짜내어 군에 투자하였다.
덕분에 초인의 숫자만 오십을 넘었으며, 기사들의 숫자는 일만을 넘겼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타이탄의 성능을 끌어올리려는 개량 연구가 끊이지 않고 있을 정도인데, 만약 이 어마어마한 전력이 다른 곳에 쓰였다면 제국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풍성한 결과를 내놓았을 것이다.
하니 일부의 신하들은 생각보다 못한 상대에 제국이 너무 비대한 군을 가졌다 하여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놓고 하지 못했는데, 이는 제국의 총리대신인 한스가 엄중한 모습으로 그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야안의 제자이며 또한 그의 신자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야안에 대한 믿음이 완고한 한스 앞에 감히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자신의 목숨으로 끝이 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한스는 드래곤 하나가 의심한 것처럼 그 또한 결코 나태함을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의 말씀한 것이 틀리지 않다면 지금은 그저 간보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그는 그런 의심을 하는 것과 동시에 스승의 경고에 따라 자신들이 군에 모든 전력을 퍼부은 것이 잘한 이라 생각했다.
사실 결과를 놓고 보면 압도적이지만, 만약 앞서 이러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그 피해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결과를 보였을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나라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초인들이 무수히 죽어나갔을 것이며, 병사들은 악마들이 이끄는 군대에 짓밟혀 그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백성들은 고통에 허덕였을 것이니 결국 승리를 하였다고 해도 승리를 한 것이 아닐 터였다.
제국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그답게 그는 그러한 흐름을 매우 잘 바라보고 있었고, 하여 일부 자신 몰래 비난을 놓는 대신들에 혀를 찼다.
“어리석은 자들. 지금의 승리가 얼마나 어렵게 이룬 것인 줄도 모르고.”
모든 것이 그의 스승 야안이 뿌리를 잘 내려주었기에 이러한 과실을 얻은 것이다. 만약 야안이 인공 마나석을 만들지 않았거나 혹은 제국을 통일에 이르는데 협조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니, 그 모든 것을 제외하더라도 드래곤이라는 협력자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고대 문명이 그러했듯 제국은 아주 힘겨운 전쟁을 이어나갔을 터였다.
그랬다. 모든 것이 야안의 공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절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좀 더 빠르게 이끌어 갔을 뿐이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죽음의 지배자가 이것으로 물러날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나 그는 어리석은 소인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힘으로 누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긴 시간을 두고 제국의 기량을 보여야 하는 지금 이들마저 다독여 데려가야 했다.
‘키이이잉-’
한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다 순간 황성을 뒤덮는 날카로운 비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확히는 그 소리보다 그 소리와 함께 나타난 기운에 놀란 것으로, 놀랍게도 그것은 악마의 그것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라 대륙은 야안의 주도 아래 신전들이 지어졌고, 그 신전들은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에 의해 성스러운 결계를 이루었다.
대륙을 뒤덮는 결계였고, 이에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에 의해 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악마들은 감히 그 결계 사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덕분에 인간들은 이 결계를 성벽으로 삼아 악마와 그들이 이끄는 군단을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지금 그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장 많은 숫자의 인간과 중요 기관이 있는 황도는 그 결계의 중심이라 아무리 강력한 악마라고 해도 쉬이 다가오지 못했건만, 놀랍게도 이곳에 하나도 아닌 수십에 달하는 악마들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차아앙-’
위기감을 느낀 한스는 동시에 자신의 타이탄X를 불러 들여 탑승했다. 현자 전용으로 만들어진 타이탄X는 소드마스터의 타이탄X에 비해 그 덩치가 두 배에 달했는데, 이는 방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곧 한스는 자신의 타이탄X와 함께 황성의 밖으로 나섰다.
‘쿠구구궁-’
요란한 불길이 세상을 뒤덮었다. 다행히 한스만 이 같은 기운을 느낀 것이 아닌 듯 만약을 위해 만들어 두었던 결계가 발동하여 몇 차례 악마들의 힘을 막아섰지만, 곧 수십에 달하는 악마들의 힘에 결계는 허무할 만큼 무너졌다.
하나 그것으로도 결계는 자신의 몫을 해내었다.
성 기사단의 부단장 존이 황성에 남아 있는 성 기사들을 이끌고 나타났으며, 황성을 지키는 수백의 수호단이 타이탄을 이끌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제국의 황제 베론 아론 또한 그를 위해 만들어진 타이탄 X를 이끌고 몸소 일어났으며 그 외에도 챈들러를 비롯한 세 명의 초인들도 악마와 대적하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놀라운 전력이 모여든 것인데, 그럼에도 그들 중 누구도 이에 낙관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나타난 악마가 서른 마리가 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그 나타난 악마들의 수준 때문이었다.
홀로 악마를 베어낸 챈들러조차 그 악마 중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황성에 설치된 모든 방어막과 신전들의 힘을 이용한다고 해도 버티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쿠오오오-’
하나 그런 그들의 낙담함을 지워내기라도 하듯이 황성을 수호하는 드래곤이 뒤늦게 모습을 보였다.
드래곤 일족 중 가장 강력한 투지를 자랑하는 레드 일족의 수장 다섯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의 말이 맞았군.”
다섯은 하나의 말에 처음에는 너무 비관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결국 그의 경고가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게 되자 고개를 저었다.
가장 최악이라 생각되는 시나리오가 결국 이루어졌으니, 이제 그가 할 일은 하나가 전력을 이끌고 올 때까지 버티는 것 이외에는 없음이다.
하나 그것이 쉽지가 않다.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기 위해 대륙 곳곳으로 전력이 분산된 것이 문제로 도움이 되는 정도의 전력이 확보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의 고민을 아는지 악마 중에서도 유난히 덩치가 큰 반은 얼음이고 반은 불인 악마가 소리쳤다.
‘과연 너희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괴기스러운 음성에 걸맞은 거대한 목소리에 실린 힘이 황도를 뒤흔들었다. 시민들은 황도를 모두 태워버릴 듯한 엄청난 불길에 놀라 달아나다 그 목소리에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