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80화
마치 코앞에 대형몬스터가 존재하는 듯한 살의가 그들의 몸을 마비시킨 것으로 이때를 위해 만든 대피처로 안내하던 안내원들이 서둘러 비상 보호 마법을 일으킨다.
하나 여전히 그 짙은 살기에 노출된 시민들은 쉽사리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피오오오!’
그때 황도에 자리한 12개의 신전에서 강렬한 빛이 하늘로 쏟아 올랐다.
마치 이런 날을 위해 준비하였다는 듯이 엄청난 신력의 발현이 발현된 것으로, 곧 그것은 주신 아리스를 뜻하는 ‘첼니’의 꽃 모양을 그려댔다.
고위 신관이나 팔라딘의 칭호를 받은 성기사만이 허락받는 힘 신성 마법 ‘아이기스’가 대단위로 펼쳐진 것이다.
비록 그 위력은 본래의 아이기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황도를 보호할 수 있는 대단위의 마법이라는 점에서 이는 놀라운 이적이나 다름없었다.
야안이 진실의 신전에서 가져온 그 수많은 성물을 통해 신관들이 그간 모아둔 신력이 발휘되면서 펼쳐진 마법인 것인데, 주신 아리스의 힘의 발현에 시민들은 더 이상 악마의 힘에 현혹되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을 차리고 대피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지 못한 인간들의 비장의 한 수에도 악마들의 난색을 표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번잡스러워졌을 뿐이다. 제대로 된 위력을 지닌 아이기스가 아닌 만큼 결국 두드리면 열릴 일이었고, 이 황도를 시작으로 죽음의 지배자의 진정한 대륙 정벌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사실을 초인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 신성 마법은 지금 펼쳐져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우선적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제국에서 그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 펼쳐졌고, 덕분에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신 악마들에 맞서 제국과 드래곤이 부딪혔다.
‘쿠구구궁, 우우우웅-’
‘화르르륵, 쿠카카카캉-’
마치 세상의 모든 천지재변이 이곳에 모여든 것처럼 황도는 엄청난 힘의 폭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만약 ‘아이기스’가 펼쳐지지 않았다면 황도는 이 힘에 휩쓸려 멀쩡한 건물들을 찾기가 어려웠을지 모를 정도였다.
부단장 존을 필두로 성기사단들은 자신들의 전용 타이탄인 타이탄 J를 타고 악마들을 상대로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성기사의 힘은 사마의 존재들을 상대로 배 이상의 위력을 보이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인데, 그런 그들이 타이탄의 도움을 받고 또한 이날을 위해 만든 검진으로 악마를 상대하니 능히 그들의 합격진을 악마들이 넘지 못했다.
수많은 황성의 기사들이 성기사단과 하나가 되어 방패가 되고 드래곤 다섯이 그들의 뒷받침했으며, 초인들이 그들의 가운데 비수가 되어 그들을 상대하자 놀랍게도 처음 악마들의 힘에 어느 정도 맞설 전력을 보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악마들이 황성과 황도를 인질로 그들을 끌어내니 결국 이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 악마들의 힘이 지금까지 그들이 만난 악마들을 상회했기 때문으로, 비록 대악마와 싸웠던 이들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신 악마들의 힘은 전율 그 자체였다.
숱한 이들이 죽어나갔다.
기사든 병졸이든 하나씩 황도를 보호하는 마법들이 하나씩 깨져나가면서 그들의 힘 앞에서 감히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쿠가가가가강-’
어느새 그 죽어나가는 숫자가 일만을 넘어갔을 때 드래곤 다섯이 하늘에서 추락했다.
악마들의 협공을 이기지 못해 결국 추락한 것으로, 그 전투력만 따지면 하나 못지않은 다섯의 추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피 안개 속에 흔들리는 건물의 잔재가 절망으로 이루어진 이불이 되어 다섯을 뒤덮었다. 그만큼 홀로 악마들의 전격을 막아섰던 다섯의 상태는 절망 그 자체였다.
찬란한 네 쌍의 날개 중 한 쌍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으며 남은 한 쌍조차 구멍이 나 이제 제대로 그 특성을 살리지 못할 터였다.
모든 용언을 발현케 했던 심장에는 악마들의 저주가 중첩이 되어 그의 마력을 뒤틀어 방해했으며 육신의 곳곳은 피로 얼룩져 블러드 드래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되어 버렸다.
다섯의 추락은 그때까지도 모든 전력을 갈아 올리던 이들의 전의를 꺾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이끌고 지휘하던 한스조차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절로 떠올렸으니 다른 이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성기사단의 세력이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악마들 또한 숱한 악마들을 절망케 했던 성기사의 치명적인 공격 마법 바란탄의 존재를 알아서이다.
하니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붙어 싸우려는 것을 악마들이 꺼린 결과 성기사단들의 자연 이 같은 전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절망이 떠오르던 그 순간 요란한 강기의 힘이 그들의 중심에 있던 한 사내에게서 일어났다.
“나의 마지막 명이겠구나. 부디 말하건대 최후의 일인까지 물러서지 마라. 저들에게 제국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존재임을 각인시키도록 하라. 영광스러운 야안 제국이어 영원할 지어다!”
실로 두려움 따위는 한 점 느낄 수 없는 기백이 넘치는 일갈로. 이 기백을 보인 이는 제국의 지존 황제 베론 아론이었다.
과연 전설의 현자 야안의 장자다운 용맹이라 그곳에 남은 자들은 절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하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면 충분히 홀로 물러설 수 있건만 오히려 자신이 앞서 나가 저 같은 결심을 보이니 절로 두려움 따위가 그들을 어찌하지 못했다.
황제의 일갈에 한스는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을 일깨웠고, 그것은 다른 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최후의 결사단들은 악마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숫자는 이제 겨우 일천에 불과했고, 더 이상 그들은 방어가 아닌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수십에 달하는 악마들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결심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그들 악마들의 수장 불과 얼음의 악마 켄달조차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그들에게 있어 유희 같았던 일이 이제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으니 처음으로 그들의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사라졌다.
결사단의 첫 번째 죽음은 챈들러의 수하이자 또한 그의 직전 제자 유제현이었다. 비록 초인은 아니지만, 그 실력을 인정받아 황실을 수호하는 수호단의 부단장의 자리에 올랐던 이로 그는 타고난 기질이 챈들러와 같았다.
피는 잇지 않았으나 마치 하늘이 그의 아들을 따로 숨겼다가 보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날만큼 그는 챈들러와 유사한 성격과 사고를 지녔다.
당연히 유제현이 가장 존경하는 이는 제국의 초석을 다진 야안도 황실의 주인 황제도 아닌 그의 스승 챈들러였다.
그는 자신의 스승처럼 생활하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그는 수도하는 신관과 같이 검을 다루었다.
다만 타고난 재능이 대단치 않아 그것이 안타까웠으나, 그도 야안이 현자의 탑을 개방하면서 그 부족함을 채워 이르기에 이르렀다.
자이한의 도움을 받아 이제 초인의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였지만, 아쉽게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듯 비극 속에서 그는 장렬히 전사했다.
“으아아아악!”
괴물의 그것과도 같은 괴성이 챈들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후손을 남기는 것조차 사치라 생각하며 오직 검만을 다루던 챈들러가 우연히 거두었던 아이였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혈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은 애정이 일어났던 아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펜을 잡아야 할 녀석이건만, 그저 자신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에 맞지도 않은 검을 들었던 아이는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터무니없는 애정을 자신에게 보였던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
타고난 성격이 그러해 그런 낯간지러운 말 따위를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었건만.
그에 눈에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검이 변하기 시작했다. 절제. 그의 인생을 논한다면 그 한 단어로 줄일 수 있을 그가 처음으로 절제라는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대신 가슴에서 일어난 감정이 극에 이르렀고 그것이 그가 밟지 못했던 마지막 반 발자국을 나아가게 했다.
‘우우우웅-’
기세가 바뀌고 검이 바뀌었다. 동시에 그 또한 다른 인물이 되었다. 분노에 찬 미친 악귀가 된 것으로 악귀가 다루는 검은 실로 흉물스러웠다.
그 악의와 끔찍한 형태를 지닌 악마보다도 더 흉물스러운…….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에게 검을 휘두른 것이다.
‘스걱, 툭-’
제자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그에 웃음을 짓던 악마들 중 하나가 그를 노리다 거짓말처럼 거두어졌다.
아무리 검의 종주에 올라선 것이라 해도 상대가 신 악마인 만큼 본래라면 그처럼 쉽사리 악마를 잡을 수 없겠지만, 전쟁에 있어 방심은 언제나 크게 마련이었다.
악마 하나의 수급을 거둔 챈들러는 그때부터 악귀의 검 그 자체가 되어 그들에게 뛰어들었다.
덕분에 악마들 중 넷이나 그에게 붙어야 했는데, 본래라면 둘이어도 버거웠을 그였지만 오직 적의 죽음만을 바라는 그의 공격에 악마들은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자신의 수급이 떨어져야 그를 죽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니 굳이 악마들로서는 무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챈들러의 각성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악마 하나가 죽어나간 것은 기쁜 일이지만 아직도 저편에 있는 악마들의 숫자는 서른하고 세 마리나 되었으니 말이다.
하나 애초 살아남을 것을 각오하지 않고 그저 이들의 수를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만큼 이들은 불나방처럼 타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숫자가 일천에서 일백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짧았다. 겨우 숨 몇 번 고르는 시간에 벌어졌던 일인데, 그 같은 난전에 악마들은 난색을 표현했다.
분명 죽어나가는 것은 인간들이건만 물러서는 것은 악마들이다.
이상한 그림이었지만 이것이 현실이었고, 그로 인해 일백에서 주춤하던 그들의 숫자는 결국 조금씩 깎여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그런 현상에도 그들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검이 부러지면 주먹으로, 팔이 없으며 다리로, 머리로 이빨로도 어떻게든 덤벼들었다.
절망이 짙어졌고 해가 기울어질 때쯤 모두의 마나가 바닥을 쳤다.
그 마나가 끝없을 듯한 초인들도 메마른 사막에 침을 모으는 수준의 마나 밖에 없었으니 다른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 결사단을 이끌고 위대한 야안 제국의 황제다운 모습을 보인 아론은 끝을 앞두고 과거의 어린 시절의 떠올렸다.
철이 채 들기도 전에 사라졌던 시절. 그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돌아서는 뒷모습이었다.
마치 산맥을 연상케 했던 그 크고 드넓었던 아버지의 등은 그저 어릴 때 신기했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신기하다는 감정은 애절함과 경탄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