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리오나 (3)
* * *
검고 흰 정통적인 메이드 복을 입은 한 여성이 방으로 들어온다. 검고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고, 차분하고 성숙한 얼굴을 가진 미인이다. 여성치고는 키가 크다.
걸음걸이는 얌전해서 작은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옅은 미소를 지어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긴다. 놀랍도록 흰 피부와 끝이 뾰족한 귀를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도대체 무슨 종족인지 감도 가질 않는다.
한 손에는 그녀가 입은 것과 똑같은 메이드 복을 들고 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얼굴을 상기시키고 작게 콧노래를 부른다. 침대 옆까지 오고서야 입을 연다.
"어서 일어나세요, 리오나. 주인님께서 오늘 안에 메이드로서의 기초교육을 끝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레온하르트다! 그것보다 메이드로서의 교육이라니! 누가 미쳤다고 그런 교육을 받을 것 같나!?"
"그런 몸으로 레온하르트라니 웃기지도 않네요. 당신의 소유주 되시는 주인님께서 정한 이름입니다.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곧 해가 집니다."
메이드는 표정 하나 일그러뜨리지 않고 담담히 레온하르트를 비꼰다.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버리고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레온하르트가 근위대장이던 시절엔 상상도 못 할 하녀의 무례한 행동에 거친 말이 나간다.
"애초에 천한 하녀 주제에 어딜…!"
짜악!
날카로운 고통이 뺨을 찌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살면서 뺨을 맞은 건 처음이다. 메이드는 여전히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리오나를 내려다본다.
아프다.칼에 베인 적도 있고, 말에서 떨어져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종류가 다르다. 고통을 견디기엔 이 새 피부는 너무 얇고 투명하다. 무엇보다.
"히익…!"
메이드가 살짝 손을 올리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몸이 바뀌면서 고통에 대한 내성도 초기화된 건지,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인지. 고통보다 그에 대한 공포를 더 견디기 어렵다.
"전 아일라. 위계로 보나 기수로 보나 당신보다 선배입니다. 부하들이 주인님의 부대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벌써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이 성의 규칙에 맞게 말과 행동을 가리세요."
메이드는 여전히 싱긋 미소지은 채 군대에서나 할 법한 말을 한다. 왕가의 몇몇을 제외하면 남의 위에만 서 봤던 리오나에게는 단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천한 것. 누, 누가 그딴 협박에…."
짝!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리오나의 팔에도 얕은 멍이 들었다. 아일라는 폭력을 휘두르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저와 다른 메이드는 선배님. 주인님은 언제 어디서나 예의를 갖춰 주인님이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
리오나는 얼이 빠져있다.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대답은?"
"네, 네엣! 선배님!"
아일라의 손이 다시 올라가자 허겁지겁 대답하고 벌떡 일어선다. 리오나의 가슴이 술렁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은 비참해져만 간다. 그래도 아픈 건 싫었다.
"좋아요. 주인님께서 우리 아가씨가 궁금한 게 많으시다고, 그러셨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 거죠? 딱 세 개만 답해 줄게요"
리오나의 목 안이 간질간질하다. 가스파르한테는 악악 소리를 질렀으면서 그 하녀한테는 몇 대 맞았다고 설설 기고 있다. 다음부턴 무슨 태도로 가스파르를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고래고래 외친 긍지란 건 도대체 뭐였는지 회의가 든다.
"혹시 제 부하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요?"
일단 가스파르가 답해 주지 않은 질문을 한다.
"아직 주인님의 부대에 붙잡혀 있겠죠. 모두 멀쩡하니 걱정하지 말아요. 분류가 끝나면 대부분 학교로 보내질 거에요."
일단 목숨에 지장은 없는 것 같다. 순진하게 믿어도 될까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다. 믿고 편해지는 편이 나았다.
"그 학교란 건 대체…?"
"학교는 학교에요. 완전 기숙사제에 시설까지 빵빵. 착한 용 선생님들이 여성으로서의 예절과 마법을 가르쳐주시는 곳이죠. 때가 되면 다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리오나와 핀 말고도 모두 여성이 된 건 확실해 보인다. 리오나와 그들을 분리한 것도 그 학교란 곳에서 허튼짓을 못 하게 하려는 속셈이겠지. 가스파르 말대로 좀 더 근본적인 걸 물어보자.
"주인님께선 왜 남자를 여자로 바뀌고 학교 같은 곳으로 보내는 거죠?"
"지배하는 입장에선 남자 따위보다 여자가 훨씬 가치 있으니까요.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고. 손끝도 야무지고, 알까지 밸 수 있죠. 허튼 생각도 별로 안 하고요. 애초에 그만한 힘도 없겠지만."
표현이 참 저렴하다. 이 성 사람들은 얼굴값을 하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병이라도 있나? 어쨌든 용과 인간 여성 사이에 번식이 가능하다면 많은 게 납득이 간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그게 가능한진 몰라도 침략의 이유가 되기엔 충분하다. 그러자 문득 궁금해진다.
"설마 선배님도 원랜 남자…?"
"자! 질문 세 개 이미 끝났답니다. 메이드 기초교육 시작할게요~."
갑자기 말을 얼버무린다. 태도로 보아 아무래도 확실해 보인다. 리오나의 마음속 무언가가 식었다.
"그럼 일단 그 거적부터 벗어요."
지금 리오나는 구멍 뚫린 흰 천을 그저 걸치기만 한 상태다. 계속 기절해 있었으니 뭘 입히려고 해도 제대로 입힐 수도 없었을 거다. 아일라가 방구석에서 전신거울을 가져오는 동안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부끄러움보단 공포가 더 강했다.
"어머."
아일라가 작게 감탄한다. 부드러운 지방이 몸 끝마다 살짝 덮여 여성스러운 곡선을 그렸다. 흉이나 잔털 하나 없는 깨끗한 몸에선 달콤한 향이 옅게 떠돌았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유방 끝에는 연분홍색 작은 꽃봉오리가 피었다. 엉덩이에 살짝 손을 대자 놀라울 정도로 탱탱했다. 몸의 어느 곳을 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리오나도 멍하니 거울을 바라봤다. 바뀐 자신의 몸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다. 지나친 여색에 빠진 적이 없어 그렇게 많은 여성의 나체를 본 건 아니지만, 분명 지금까지 본 여성 중 가장 아름다웠다.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이 간다. 남자였을 땐 느끼지 못한 무게감과 볼륨감.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고무공처럼 확실한 반발로 손가락을 밀어낸다. 아일라의 존재도 잊은채 손을 봉우리의 끝으로 이끈다.
흠칫! 가슴속부터 콕콕 찌르는 듯한 쾌감이 뭉근하게 퍼진다. 자신이 소녀임을 어쩔 수 없이 알려주는 그 쾌락은 따스하고 편안해서 도저히 손을 멈출 수 없다.
거울 속 소녀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쾌락으로 일그러뜨렸다. 양 뺨은 옅게 붉어졌다. 앵두같이 새빨간 입술 사이로 단 한숨이 흘러나온다. 마치 예술작품 같은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란 걸 깨닫자 그녀의 손이 더욱더 빨라진다.
여성의 향기가 코 끝에서 일렁인다. 리오나 자신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그건 새로운 몸에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발작 같은 행위였다.
"리오나…당신…."
리오나가 묘한 흥분을 느끼며 거울에 집중하고 있을 때, 어느샌가 아일라가 다가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당황해 발버둥을 치며 품속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일라는 급기야 리오나의 머리에 코를 박고 깊은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위험하다.
"후아아아…. 어쩜 정수리 냄새까지도 이렇게 향긋할까…. 잠깐 가만히 있으세요, 리오나. 옷 치수를 재야 하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리오나가 소리를 지른다.
"옷이 이미 저기 있는데 치수는 무슨 치수! 선배님 잠깐…히얏!"
아일라의 손이 거침없이 리오나의 급소와 젖꼭지를 훑는다. 아일라는 익숙한 듯 리오나가 가장 느끼는 곳을 찾아 집중적으로 괴롭힌다.
쾌락에 다리 힘이 풀린 리오나가 제 몸을 아일라에게 기댄다. 한숨과 신음을 같이 내뱉으며 헐떡인다. 왜인지 아일라의 숨도 가빠진다.
"걱정 마요, 리오나. 전 이 성의 교육 담당. 얼마나 많은 메이드를 여성으로 이끌었는지 아시면 놀랄걸요? 그저 몸을 맡기세요. 잠깐이면 되니까!"
전혀 안심되지 않는 소리를 태연히 한다. 어떻게든 뿌리치려 몸을 비틀고 손발을 휘적여 보지만 어림도 없다. 이 무력한 몸이 원망스럽다. 아일라의 얼굴이 다가온다.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심장이 다시 두근거린다.
"이렇게 귀엽고 인형 같은 아이를 데려오시다니! 역시 주인님은 취향도 고결하셔. 잠깐 이쪽 봐요. 그래. 응."
"햣! 응. 츄웃… 읍…. 하아…."
입술이 맞닿고 혀가 뒤섞인다. 아일라는 잠시 리오나의 혀를 빨더니 자신의 혀를 깊숙이 집어넣어 입안을 맛보듯 헤집는다. 마치 따스한 봄날 화창한 꽃밭에 누운 듯 싱그럽고 은은한 향기가 입을 통해 코끝에 맴돈다.
아직 마음만은 남자인 리오나는 아름다운 여성과의 열렬한 키스에 성적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있어야 할 기관에 가지 못한 피는 아쉬운 마음에 유두와 클리토리스를 빳빳이 발기시켰다. 얼굴이 뜨겁고 정신이 몽롱하다. 이렇게 행복한 키스는 또 처음이다.
"하앙! 아!"
아일라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발기한 유두와 클리토리스를 손끝으로 집고 구슬 굴리듯 가지고 논다. 어떤 때에는 세게 집고, 어떤 때에는 아주 살짝 집어 애를 태운다. 그 와중에도 계속 혀로 리오나의 잇몸과 혀를 쿡쿡 찌르며 자극한다. 여자아이와 한 두번 놀아 본 솜씨가 아니다.
아일라는 사냥감을 쫓는 맹수처럼 리오나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다. 표정 하나, 몸짓 하나, 신음 하나가 또 나중에 둘도 없는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오나는 아일라의 손짓 하나하나에 귀엽게 몸을 틀고, 혀가 뒤섞일 때마다 행복해 미칠 것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런 진수성찬은 매일 오지 않는다.
"푸하. 어때요? 갈 것 같아요? 갈 것 같죠? 남의 손으론 처음이죠? 괜찮아요. 그 첫날보다도 더 좋을 테니까."
그러면서 집게손가락 끝마디로 클리토리스를 누르고 빙글빙글 문댄다. 유두도 꼬집듯 세게 집는다. 실제로 첫날의 쾌락은 그 양이 압도적이었을 뿐 폭력적이고 조잡했다.
지금의 쾌락은 강렬하지만 섬세하고, 강압적이지만 따스했다. 마치 부모에게 안기거나 손에 이끌려 따라가는 기분이지 억지로 쾌락을 쏟아내는 기분이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리오나가 정신이 없어 아일라의 인중을 늘어트린 게걸스러운 표정을 보지 못해서이지만.
"선배님. 저…저!"
절정이 가까워져 오자 리오나가 애달프게 아일라를 부른다. 한창일 나이에 거의 1년 동안 여자를 만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특별히 민감한 이 새 육체 때문일까. 어쨌든 리오나는 벌써 아일라에게 푹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래요. 자. 츗…."
아일라는 유두를 자극하던 손을 뻗어 리오나와 손깍지를 끼곤 다시 입과 입을 맞댄다. 확실한 안정감과 행복감을 주어 더 깊은 절정에 달하게 할 셈이다. 아직 여자의 절정에 익숙하지 않은 리오나는 불쌍할 정도로 아일라의 손을 꼬옥 잡아 온다. 아일라가 적극적으로 키스하지 않자, 조르는 듯 몇 번 입술을 부딪치고 서툴게 혀를 찔러 본다.
아일라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지고 준비된 성찬에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던 손은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 질 입구와 소음순까지 자극하고, 입으로 입을 모두 덮어 작은 신음 하나도 모조리 먹어 치운다.
"……!"
"……♡."
리오나는 신음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절정했다. 몸이 가늘게 떨리고, 대리석 바닥은 흥건하게 젖었다. 남성의 절정과는 다르게 여성의 절정은 내릴 곳이 없었다. 아일라의 품속에서 입술과 입술을 이은 채로 끝나지 않는 행복에 취했다.
몇 분이고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간신히 행복의 열차에서 내린 리오나를 아일라가 따스하게 쓰다듬었다. 모든 걸 잊고 이 행복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리오나는 이대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일라는 벌써 기진맥진한 리오나를 이끌어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자신도 메이드복을 한 올, 한 올 벗었다. 알몸이 되자마자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바로 리오나를 덮쳤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주인님께는 비밀이에요?"
그날 리오나가 메이드로서의 기초교육을 끝낸 건 달이 거의 완전히 진 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