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리오나 (4)
* * *
메이드를 위한 작은 휴게실. 나무 의자 모서리에 걸린 흰 팬티 한 장이 나풀나풀 흔들린다. 화장 거울 구석엔 간이침대에 누워 작게 몸을 떠는 리오나의 모습이 비친다. 낡고 투박한 휴게실에 시큼한 냄새가 퍼진다. 이내 그 몸의 떨림이 멈춘다.
"또 저질렀따아…."
리오나는 아일라와의 첫날밤을 떠올리며 하는 자위에 푹 빠져버렸다. 아일라는 그날 이후로 필요 이상으로 리오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중하는 건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사무적인 대화만 몇 번 나눴을 뿐 첫날처럼 진득한 몸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리오나 쪽에서 먼저 말을 건네기에는 꽤 부끄러웠다. 지위상으로도 그림이 묘해서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가스파르도 성 안에서는 항상 리오나를 대동하고 다니면서도 별달리 손을 대진 않았다. 벌써 두 달째 남의 손을 느끼지 못했다. 몸이 바뀌자마자 그런 강렬한 경험을 한 리오나로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안 그래도 새 몸은 날이 갈수록 민감해지고 쾌락을 갈구한다.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으려 해도 언제나 마음보다 육체의 욕망이 앞섰다.
리오나는 이 새로운 육체를 통제할 방법을 몰랐다. 이렇게 일하다 틈만 나면 주인과 선배 몰래 자위에 몰두했다. 일단 여자인 아일라와의 정사를 떠올리는 것이니 자신은 아직 남자인 채라며 정신적인 자위도 잊지 않았다.
"아이고…. 일단 치워야지."
메이드 모두가 쓰는 휴게실이다. 그런 곳에서 조심성도 없이 자위해버린 자신에게 질린다. 그래도 뒷정리는 해야 한다.
주인이나 선배들이나 이미 눈치는 채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직접 증거가 들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오나가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쾅!
"주인이 돌아왔는데 배웅도 하지 않다니. 아직도 교육이 부족한가. 리오나."
휴게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문 앞에는 가스파르가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서 있다. 리오나는 너무 놀라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간이침대에서 일어서려는 엉거주춤한 자세,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리는 애액, 문이 열리며 일으킨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팬티까지.
리오나가 조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명백했다. 자위에 정신이 팔려 곧 가스파르가 성에 돌아온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반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주인을 바라본다. 가스파르는 그다지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휴게실에 충만한 여성의 냄새에 표정을 약간 찡그린다.
"정말 때와 장소도 가리질 못하는군. 발정이 났다면 말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주, 주인님. 이건…!"
필사적으로 변명할 거리를 찾아봐도 상황이 너무 뻔했다. 리오나가 눈알을 굴리며 우물쭈물할 동안 가스파르는 성큼성큼 다가온다. 어?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쪽"
갑자기 입술을 훔쳤다. 키 차이 때문에 몸을 반쯤 숙인 채, 리오나를 살짝 끌어안고 하는 키스. 아니, 뽀뽀였다.
"@$%*##!!!"
생각지도 못한 주인의 행동에 리오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진다. 뭐지? 두 달 동안 손도 대지 않더니 갑자기? 뭣보다 키스도 아니고 어린애 같은 뽀뽀? 잠깐, 나 남자랑 뽀뽀한 거야?! 리오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스파르는 뭔가 재수 없게 미소짓고 있다. 화를 내려고 가스파르를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연다.
"읍. 으읍! 응!"
리오나의 입이 열리자마자 가스파르의 입에 다시 틀어막혔다. 가스파르의 손은 어느새 리오나의 허리에 둘려있었다. 가스파르는 서서 곰 인형을 안는 것처럼 가볍게 리오나를 끌어안았다. 이번엔 혀가 거침없이 들어온다. 앞선 뽀뽀는 그저 탐색전이라는 듯 리오나의 입안을 거칠게 헤집는다. 기품있는 홍차의 향기가 난다. 반항의 표시로 혀로 혀를 아무리 밀어내봐도 거리낌이 없다.
리오나의 머릿속에서 여성 특유의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리오나가 남자였을 때도 이런 식으로 엎어뜨린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레온하르트는그렇게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리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그날마음에 드는 여성을 이끌고 파티장 뒤편으로 사라지면, 그를 부러워하는 귀족 남정네들은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자신의 품속에서 얼굴을 붉히던 수많은 여성들을 기억한다. 그런데 레온하르트가 아니라 그 여성들에게서 지금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아니야. 자신은 원래 남자다. 남자와 남자가 관계를 가진다니 언어도단이다. 두근거리는 가슴과 상기되는 두 뺨은 애써 무시했다.
그나마 자유로운 두 팔로 가스파르의 등을 퍽퍽 때려본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닥에서 살짝 뜬 두 발을 이리저리 흔들어 본다.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 몸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있을까 궁금할 정도다. 짜증이 나서 있는 힘껏 가스파르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제서야 가스파르는 키스를 마쳤다.
"우리 말괄량이 아가씨께선 또 뭐가 불만이실까?"
"당장 비켜 이 변태야! 호모! 게이 용! 난 그런 취민 없거든! 이거 내려!"
품 안에 안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주인이고 뭐고 없다. 마치 오랜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꼴 보기가 싫다.
그에 반해 가스파르는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온화한 미소로 능숙하게 메이드복을 벗긴다. 리오나가 아무리 꿈틀거려봐도 저항할 수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발정이 난 암캐처럼 자위하지 않았나? 그 바뀐 여자의 몸으로 말이야."
"그래도 너랑 하고 싶진 않거든! 이거 내리라니까!"
허리 뒤로 묶인 리본이 풀리고 등 뒤부터 옷이 벗겨진다. 물리적인 반항은 이제 거의 포기했다. 휴게실에서 뛰쳐나갈 수만 있다면 상황을 모면하지 않을까. 아무리 가스파르여도 자기 성 복도에서 메이드를 강간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반쯤 헐벗은 모습을 선배님들이 보았을 때의 뒷감당이 두려워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이 성에 이성이라곤 나 말곤 없지. 날 생각하며 자위한 게 아닌가?"
"그건…."
리오나는 분명 가스파르가 아니라 아일라와의 정사를 떠올리며 자위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좀 그랬다. 일단 아일라와의 관계는 비밀이기도 하고.
리오나가 얼버무리자 가스파르는 멋대로 긍정의 표시로 받아들인 것 같다, 벌써 리오나의 메이드복 상의를 다 벗겼다.
"아니 정말 너랑 하고 싶은 마음 따윈 일도 없다니깐! 하앙!"
가스파르의 손이 리오나의 가슴과 하복부로 향한다. 민감한 여체는 작은 자극에도 확실한 쾌락 신호를 보내온다. 이대로 흘러가면 꼼짝없이 처녀가 따일 판이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벌써 용의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느냐. 몸이 뜨거워 견딜 수 없을 텐데."
"용의 문장?"
가스파르가 리오나의 하복부를 가리킨다. 거기엔 작은 하트모양 타투가 그려져있었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런 타투는 없었다. 리오나는 첫날밤에 본 아일라의 나체를 떠올린다. 아일라의 하복부에도 타투가 있었다. 하트를 중심으로 용의 비늘과 뿔을 형상화한 문양이 수 놓인 타투였다.
"네 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물론 여자가 된 건 맞지만, 아직 용의 씨를 배기엔 부족하지. 네가 마음까지 완전히 여자가 되었을 때, 그 문양은 완성돼. 그땐 너도 어엿한 용의 그릇이야."
섬찟한 소리를 무슨 사랑 고백이라도 된다는 양 귓전에 속삭인다. 별 변태 같은 문신을 다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었나. 아일라는 역시 남자였구나. 그렇다면 다른 선배들도 다 남자였겠지. 리오나는 동질감을 느껴야 할지, 더 큰 외로움을 느껴야 할지 고민했다.
"아무튼! 지금 난 그럴 맘 없다고! 꺄앗!"
가스파르의 손이 이번엔 사타구니로 향했다. 이미 빳빳하게 발기한 클리토리스는 표면이 거친 남자의 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날카로운 쾌락에 몸을 움츠렸다.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
"듣고 있다네. 멋대로 말을 끊는건 그쪽 아닌가."
"그러니까, 흐응…. 잠깐만…, 앙! 그 손을…, 햣!"
클리토리스를 집요하게 괴롭혀진다. 천천히 유방을 주무르는 손길도 흥분을 고조시킨다. 달아오른 리오나의 몸은 가스파르의 손짓 하나하나를 순도 높은 쾌락 신호로 바꾸어 뇌로 쏟아 낸다.몸 주인의 의사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 꽉 쥔 두 손으로 콩콩콩콩 가스파르의 가슴팍을 때린다.
몇 분이나 그러고 있었을까.
"하하. 이것 참."
가스파르의 손이 멈췄다. 리오나의 어린아이와 같은 저항이 통했다. 가스파르는 여전히 얼굴과 손을 가스파르의 가슴팍에 처박고 있는 리오나의 얼굴을 살짝 들여다봤다. 아직도 분한 듯, 그 눈 밑에 옥구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알았네, 알았어.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흥!"
리오나는 잽싸게 눈물을 훔치고 허세를 부린다. 아일라가 자초지종을 봤다면 주인님 앞에서 무슨 태도냐며 곤장을 들었을 테다.
리오나가 흘러내린 메이드복 상의를 집고 옷무새를 가다듬으려 하자, 가스파르는 리오나의 왼손을 잡고 자신의 사타구니 쪽으로 이끌었다.
"이제 와서 무슨 짓이야!"
"그래도 내 메이드라면 이걸 진정시키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손하고 입만 써도 돼."
한눈에 봐도 리오나의 팔뚝만 한 남성기가 꿈틀거렸다. 바지 너머로도 온기가 전해질 정도로 뜨겁다. 리오나의 가슴이 왜인지 다시 두근거린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어지럽다.
정조의 위협이 가신지 얼마 안 돼서인가,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란 미친 생각이 든다. 하복부의 하트 문양이 분홍색으로 그윽하게 빛난다.
"아, 알았다니깐. 정말…."
리오나는 메이드복 치마만 입은 채 휴게실 바닥에 W자로 앉았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린다. 그 앞에 가스파르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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