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리오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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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더 자세히 둘러보니 용에게 껴안긴 여성들은 다 인간으로 보였다. 뾰족한 귀를 가진 것도 아니고, 체격이 유달리 크거나 작지도 않다.
가지런한 이목구비와 매력적인 몸매. 지금의 리오나보다도 더 선정적이고 대담한 의상. 한때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을 이들이 모두 열띤 표정으로 용에게 매달려 기쁨의 교성을 지르고 있다.
정말 사랑에 빠진 듯 뜨거운 눈으로 용을 바라보며 그들의 혀와 손길을 갈구한다. 지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풀린 눈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이도 있다. 다들 입 주변을 일그러트리고 마치 짐승처럼 쾌락을 갈구한다.
서로의 파트너를 바꾸거나 두 명 이상의 용을 상대하는 이도 있다. 다들 아무런 거부감 없이 웃으며 몸과 혀를 섞는다. 오히려 교태를 부리며 새로운 상대를 도발하는 이도 보인다. 저게 정말 일 년 전만 해도 남성이었던 자의 모습일까?
용과 인간과 종전 기념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 단지 여러 전리품을 마음껏 맛보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이 연회가 이차 삼차도 모자라 육 차까지 온 것도 이해가 된다.
뱀이 기어 다니는 것같이 음흉한 시선이 리오나의 얼굴과 엉덩이, 가슴에 꽂힌다. 다른 여자에게 키스를 하면서 곁눈질로 리오나를 바라보는 용까지 있다. 자신의 치욕적인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하복부가 더 욱신거린다.
몸에 받은 모든 자극을 성적인 쾌락으로 전환하는 장치라도 달린 것 같다. 용의 시선 하나, 등 뒤로 느껴지는 숨결 하나까지 리오나를 흥분시키고 고조시킨다.
“히얏! 아앙!”
용의 손이 이번에는 리오나의 가슴으로 향한다. 어차피 거칠 것이 없었다. 가슴골이 다 보이는 옷은 그런 침입을 막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접대용’ 메이드 복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게 아녔다. 평소에 입던 메이드 복처럼 그 목적과 용도가 확실한 옷이었다.
“시, 싫어! 이거 놔…!”
그래도 다른 이들의 그 충격적인 모습은 리오나의 이성을 되살렸다. 팔을 밀치고 몸을 흔든다. 어떻게든 용의 품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매일 밤 결코 저렇게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잠들었다. 이제는 다 허울밖에 남지 않았다 해도, 사람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과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흐흐. 시발년. 존나 꼴리게 하네.”
“으읍, 읍!”
용은 가스파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상스러운 말과 함께 다시 리오나의 입을 훔친다. 가슴에 찔러넣은 손도 멈추지 않는다. 천천히 주무르며 보드라운 살결과 생기로운 탄력을 즐기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세워 유두를 거세게 괴롭힌다.
손길 하나하나에서 여자를 다루는 게 능숙한 것이 느껴진다. 다른 이들처럼 리오나의 눈이 풀린다. 가랑이에서는 벌써 물이 줄줄 흐른다. 리오나의 정신이 아무리 고결하더라도 몸은 이미 썩고 타락해 주어지는 쾌락을 게걸스럽게 갈구한다.
입안으로 용의 타액이 흘러들어온다. 용의 타액에는 정액처럼 다량의 마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입을 맞대고 있으면 엄청난 만족감과 행복이 목을 타고 흐른다. 무의식적으로 혀와 혀를 얽고 만다.
초커의 보석과 용의 문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난다. 미리 짜여진 기계적 감정과 쾌락이 리오나를 지배한다.
“푸핫. 하아…. 하아앙….”
리오나는 다른 인간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뜨거운 눈으로 그 이름 모를 용을 바라본다. 각진 턱과 넓은 가슴판. 근육질의 팔이 그 눈에 비친다. 볼은 상기되고, 뜨겁고 옅은 한숨이 입에서 터져 나온다.
리오나의 생각 따위 아무 상관이 없다. 몸은 그저 미리 정해진 반응을 보일 뿐이다.
어디선가 달고 진한 향기가 난다. 징벌실에서 맡았던 그 향기다. 그것보다 한 열 배는 진하다. 어느샌가 연회장 전체가 그 향기에 뒤덮여 있다.
행위는 점점 가속된다. 용이 중지를 리오나의 항문에 세웠다. 팬티는 이미 반쯤 걷어져 있다. 전신에 오싹오싹한 오한이 달린다. 그 두껍고 거친 손가락이 그대로 리오나를 침입한다.
쯔붓.
“오, 오옥.”
리오나가 기성을 발한다. 몸을 빳빳이 세우고 부르르 몸을 떤다.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그 미지의 쾌감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손가락은 더 깊숙이 들어온다.
움찔움찔. 저절로 엉덩이가 들린다. 남의 눈에는 리오나가 만져달라고, 쑤셔달라고 엉덩이를 내밀며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이 저절로 움직여 그 용의 팔을 붙잡는다. 용에게 최대한 매달려 간신히 몸을 세운다. 행위를 즐기는 다른 이들과 리오나 사이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은 왕복하며 리오나가 가장 느끼는 곳을 찾는다. 팬티 전체가 이미 흠뻑 젖어 애액이 다리를 타고 바닥까지 흐른다.
“와, 가스파르 새끼. 주워도 이런 년을 줍네.”
용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천천히 손가락을 리오나에게서 빼낸다. 질척하고 음란한 소리가 주위에 퍼진다.
맞아, 가스파르. 가스파르도 이 연회장 안에 있겠지. 그리고 이 용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년이랑 놀아나고 있을 테다.
다시 또 가슴이 조여온다. 때때로 리오나를 사로잡는 이 정체 모를 감각. 가스파르를 생각하기만 하면 이성과 감정이 뒤섞이고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 녀석이 매일 밤 상대하는 메이드를 갈아 치우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흐윽….”
슬프다. 왜 슬픈지도 모르겠다. 억눌려있던 감정이 다시 폭주한다.
아냐, 가스파르는 이런 짓 안 해.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기 때문에 절대 이런 짓 안 해.
껴안더라도 내가 아프거나 불편할까 봐 힘을 조절하고, 언제나 빙긋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줘. 내가 싫다면 키스조차 강제로 하려 하지 않는단 말이야.
가스파르의 따스한 손길, 상냥한 말투, 짜증이 나면서도 어딘가 바보 같은 그 태도까지 무엇 하나 이 용과 같은 게 없다. 그걸 느끼면 느낄수록 감정은 벅차오르고 가슴이 아파져 온다.
가스파르는. 가스파르는….
이름 모를 용은 힘으로 리오나를 테이블에 엎어트린다.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게손가락으로 팬티를 완전히 걷어내는 게 느껴진다. 어떤 뜨겁고 단단한 물체가 허벅지를 기어오른다.
안 돼. 그것만은 절대 안 돼.
리오나의 마음이 몸의 착각을 바로잡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리오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일생에서 가장 크고 높은 소리를 내질렀다. 날카로운 비명이 시끌벅적한 연회장을 찢어발긴다.
각자의 정사에 집중하던 이들이 모두 일제히 리오나를 바라본다. 그 용도 당황한 건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달렸다. 흘러내리는 옷매무새를 붙잡고 연회장의 밖으로 아무튼 달렸다. 가스파르가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선배 메이드들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거기서 그대로 있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연회장에서 꽤 멀어지고 말았다. 지친 몸을 복도 벽에 기댄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는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팬티를 고쳐 입는다.
머리가 식어간다. 연회장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단순한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다들 다시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을까? 그 용은 또 다른 메이드에게 손을 뻗고 있겠지.
아일라 선배가 알면 뭐라고 할까? 미나 선배는 또 소리를 지를까? 화장까지 해준 마야 선배는 지금 어디에 있지?
가스파르는, 가스파르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들었다면 지금 나를 찾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술이나 마시고 있을까? 애초에 그 연회장에 있기나 했나?
또다시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온다. 시끌벅적했던 연회장과 다르게 이 복도는 너무나 조용하다. 대체 얼마나 달려온 건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텅 빈 복도에 고요함과 리오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내 방에 혼자 틀어박혀야 하나. 지금도 선배 메이드들은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을 텐데. 정말 무슨 낯짝으로 모두를 다시 봐야 하지.
터덜터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무튼 걷는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나. 이 성에 오고 나서 오늘이 제일 비참하고 억울하다.
그 녀석이 닿았던 모든 곳에서 역겨운 혐오감이 기어오른다. 일단은 씻어야지. 하지만 아무리 몸을 닦아내도 더러워진 자신을 씻어낼 수는 없을 거다. 가스파르와 함께일 때에는 이런 기분 따위 들지 않았는데.
왈칵 눈물이 차오른다. 가스파르가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이런 모습으로 가스파르를 보고 싶지는 않다. 상반된 마음이 교차한다. 나한테 가스파르가 뭐라고. 나는 왜 계속 그 녀석만….
그 녀석 생각만 하면 머리가 엉망진창이 된다. 그러면 가스파르에게 나는 뭘까? 가스파르는 이렇게 더러워진 나라도 좋아해 줄까? 앞으로 가스파르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눈물이 뺨을 흘러 복도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왜 또 울고 있을까. 억울하고 분해서? 아니면 가스파르가 날 더는 사랑해주지 않을까 두려워서? 아니.
그저 미안했다. 누구한테 뭘 미안해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미안해서 그렇게 울었다.
반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 그 자리에서 죽음을 선택하겠지. 인생이란 게 이렇게 지독한 농담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응?”
복도 너머에 남성 한 명이 보인다. 가스파르는 아니다. 밤색 바지와 하늘색 셔츠, 푸르고 짧은 머리카락. 그 용왕이다.
“으윽….”
발걸음을 돌리고 싶었다. 리오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생리적인 거부감이 먼저였다.
그 자신만만하고 안하무인인 태도에 첫눈부터 구역질이 났다. 리오나와는 절대 어울리거나 섞일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의 연회장에서의 언행은 그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뭐, 인간이 아니라 용이지만.
왕도 리오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와 리오나 사이에는 엄청난 신분의 차이가 있다. 그 사이에 가스파르도 껴있는 이상 무시하고 돌아서거나 지나칠 수는 없다.
리오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가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왕이 리오나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자네가 레온하르트인가.”
최악이다. 그저 지나치기는커녕 리오나 앞에 멈춰 서서 말을 걸어온다.
불길한 생각이 떠오른다. 애초에 연회장에 있던 왕이 왜 지금 내 앞에 있는 거지. 내 비명소리를 듣고 날 따라온 건가. 내 원래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하, 가장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저항하던 장군이라 들었는데, 지금은 그저 귀여운 꼬마 아가씨로구만.”
역겹고 짜증 나는 말투다. 가스파르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말 순수하게 기분이 나쁘다. 어찌 되었든 왕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다. 리오나도 왕과 그 일가족에 대한 예법은 잘 알고 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왕의 말에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아, 아아….”
왕의 손 위에서 붉은빛이 점멸하고 있다. 그 빛을 보자마자 리오나의 사고가 멈춘다. 그 붉은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깜빡. 깜빡. 일정한 리듬으로 점멸하며 그 기이한 광채를 주위에 흩뿌린다.
그 빛이 정상적인 시각처리과정을 무시하고 망막을 뚫고 뇌를 찌른다. 시전자가 심어놓은 어둡고 사악한 마법을 리오나의 뇌에 주사한다.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정지한 사고에 고압적인 명령과 단호한 감정이 스며든다.
머리가 찢어질 것 같다. 상식과 기억이 뒤틀린다. 아프다. 온몸이 더럽고 구역질 나는 쾌락에 뒤덮인다.
이 폭력적인 감정과 육체의 지배. 마치 처음 몸이 강제로 변화 당할 때의 그….
“흥, 가스파르 녀석. 지 물건 간수도 못 하면서.”
리오나의 의식이 멀어진다. 안 돼, 가스파르. 제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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