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의 화원-26화 (26/62)

〈 26화 〉 리오나 (26)

* * *

가스파르는 멈추지 않았다. 리오나도 빼지 않았다.

둘은 밤새 체위를 이리저리 바꾸어가며 서로를 백탁색으로 물들였다.

어떤 때에는 앉아 서로 마주 보면서.

“하아앙. 이거 가스파르를 볼 수 있어서 좋앗…. 흐앙!”

또 한 때는 리오나가 위에 올라타서.

“흐윽! 하악…. 이거 너무 기퍼엇…! 흐응! 가스파르는, 가스파르는 가만히…! 흐아아앙!”

가스파르가 리오나를 완전히 들어 안고 박은 적도 있었다.

“하앙! 으응! 가스파르~. 키스으…. 키스해 줘, 아앙…. 응, 츄릅….”

용은 정력도 굉장하다. 한번 불타오르면 그 몸에 내재한 어마어마한 마력을 다 쏟아 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그 용에 맞추어 만들어진 그릇의 몸의 내구력도 상당하다. 리오나도 몇 달째 안타깝게 애만 태워진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가랑이를 벌리고 가스파르의 육봉을 조른다.

그가 가장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 그를 가장 흥분시키는 교성을 지르며, 그의 정액을 가장 깊은 곳에 조른다.

가스파르는 단 한 번도 밖에 싸지 않았다.

“하아….하아….하아….”

해가 뜬다.

리오나의 지체가 일출하는 태양 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보석들 위를 쓰레기처럼 나뒹군다.

탈진한 그녀는 다리부터 무너져 내려, 엉덩이만 높게 쳐든 채 가랑이에서 희고 탁한 액체를 흘리고 있다.

“…! ……. …!”

아직도 쾌락이 온몸에 맴돌고 있는지, 이따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교성을 작게 내지르며 어깨나 발끝을 덜덜 떤다.

리오나는 여성의 쾌락에 휩쓸려 돌아올 수 없는 곳에 가버렸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잠이 들었다. 그녀의 하복부, 용의 문장에 어느샌가 마지막 획이 그려져 있다.

그릇으로서의 완성. 가스파르의 아이가 수정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가스파르와 리오나의 첫 아이다.

“후우….”

가스파르도 이제는 좀 지친 건지, 일출에 깨어난 보석 호수 위에 대자로 누웠다.

어제는 하나의 끝이었지만, 오늘은 하나의 시작이었다.

가스파르가 복잡한 표정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오늘의 하늘도 어제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태양은 아침마다 동쪽 하늘에서 나타나 어느 때에는 뜨거운 황금빛을, 어느 때에는 거친 은빛을 세상에 수놓는다. 그리고 언제나 저녁이 되면 부끄러운 듯 발간 얼굴로 산속으로 도망친다.

수 만 년을 산 가스파르지만 도대체 무슨 조화로 금빛이 은빛이 되고, 이내 핏빛이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같은 하늘, 같은 태양인데 왜 항상 다른 걸까.

꽃들도 그렇다. 근래 만 년 동안 수없이 많은 메이드들과 수십, 수백만 번 넘게 몸을 섞었지만, 하루하루가 새롭고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그녀들은 그가 부르던, 부르지 않던 그에게 충성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그녀들은 그 없이도 각자 자신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들이 항상 마시는 분홍 액체는 그녀들이 언제나 활기차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기쁨과 생명력을 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태어난 지루함과 권태를 지우고 삶에 향기와 색을 더한다.

가스파르의 성은 좁지 않다. 규칙과 사회도 있고, 시간을 때울 책과 오락거리도 많다. 마법에 정통한 이들은 제 나름대로 바깥과 소통을 나누기도 한다.

모두 가스파르의 배려와 사랑 덕분이다. 가짜 죄책감이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던, 그가 그녀들의 행복을 바란 건 진심이었다. 그의 진심을 느낀 그녀들도 주인의 행복과 안녕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다.

그녀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주인인 가스파르다. 아무리 각자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해도, 그가 잠자리를 청해 올 때 이상의 행복은 그 성에 없었다.

가스파르도 모든 메이드들을 평등하게 사랑했다. 서로 다른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그의 하루 일과였다.

처음 까먹을 때와 어느 정도 두었다 꺼내 먹을 때의 맛이 다르다. 둘이 하는 것과 셋 이상이 하는 것도 다르다.

알을 배기 전과 후가 다르다. 알을 배고 있을 때와 배고 있지 않을 때도 다르다.

메이드끼리 서로 즐기게 한 후 그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즐겁고, 한참 동안 부르지 않다가 불현듯 떠오른 듯 손을 잡으면 그 반응이 또 즐겁다.

무엇보다 한 존재의 정의를 송두리째 뒤집어엎고, 굴복시키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그녀들은 모두 용에 용감히 저항했던 자신들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와 동료, 지위와 황금, 우정과 명예, 옛사랑과 고향, 굳은 충정과 신념까지. 하나의 삶이 쌓아 올린 모든 가치가 그의 발밑에서 멈춘다.

그 꽃들은 제 인생의 모든 것을 태우며 그의 앞에서 다시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 광경을 직접 보는 것도 물론 각별하거니와, 한 번 꺾은 꽃을 다시 껴안을 때마다 그 사실이 상기되어 가스파르의 육봉을 단단하게 만든다.

자신은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멈추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 공허함은 뭘까.

멍하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오늘의 태양도 밝은 황금색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리오나가 부족한 게 아니다. 그녀는 그가 만 년 동안 경험한 이종족 중 가히 최고였다. 아직도 그녀의 기분 좋은 감촉과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있다.

“하아….”

그녀는 특별하다.

가스파르의 마음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그저 좀 예쁘고 자존심 센 메이드일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뿐, 결국 다른 아이들처럼 그에게 굴복한 건 같다.

오늘 같은 뜨거운 첫날밤도 성의 메이드들과 이미 수없이 지내온 하룻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의 완성도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지금도 수십이 넘는 그의 아들들이 하늘을 한적하게 유영하고 있다.

이런 인간 여자애 따위, 원래라면 이 둥지를 굴러다니는 내 옛 수집품들과 다를 게 없는데.

“흐냐아….으응….”

전부 다 변명이다. 가스파르는 남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일이 잦았다.

그녀가 남들과 같았다면 그가 어제 같은 특별한 하루를 준비했을 리 없었다. 그가 나서서 데이트 코스를 짤리도 없었고, 그 혼자서 그녀가 좋아할 만한 디저트와 과일을 준비할 일도 없었다.

자신의 치부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며 그런 기예를 펼칠 이유도 없었다.

“하아아…….”

가스파르가 한층 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 이상 자신의 감정을 외면할 수 없다.

그도 자신이 좀 유별난 용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갓 노예에게 연정을 품다니.

어제는 그 무엇보다 빛나고 가치 있는 보석으로 보였지만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다른 용들에게 말하면 비웃음만 사겠지. 한바탕 쏟아내니 꽤 머리가 식었다. 나도 노망이 난 걸까.

“흐으으응. 흐윽! ……. 후냐….”

리오나는 제 주인의 기분도 모르고 잠꼬대까지 하면서 기분 좋게 자고 있다. 분명 지쳐서 실신한 거 아니었나?

그릇의 몸이 원체 튼튼하기도 하지만, 참 대단한 회복력과 무신경함이다. 그 세상 편안한 얼굴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런 점이다. 이 년이 위험한 건.

주위를 쓸데없이 가볍고 밝게 만든다. 어딘가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야무진 것이 보고 있자면 흐뭇하기 그지없다. 옆에 있으면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고민이나 걱정 따위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평생을 곁에 두고 싶었다. 같이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마음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이렇게 손에 넣었는데.

“레온하르트. 리오나…. 레온하르트? 리오나….”

무언가, 무언가가 틀리다. 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인지는 아무리 팔을 뻗어도 잡히지 않았다.

새삼 주위에서 비릿한 쩐 내가 났다. 밤새 동안 몸을 섞었으니 당연하리라. 가스파르는 청결 마법으로 리오나와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체액들을 씻어냈다.

가스파르가 리오나의 앞에 쪼그려 앉는다. 어두운 표정으로 벌써 세 번째 한숨을 내뱉더니, 갑자기 묘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리오나의 볼을 콕콕 찌른다.

푹푹. 뽀송뽀송하고 몰캉몰캉한 감촉이 손끝에 감돈다. 그도 지금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 앙칼진 년이 말이야. 주인 맘도 모르고 제멋대로 굴다가 걱정이나 끼치고 말이야. 어? 그때 그대로 크라우스한테 납치당했으면 어쩌려고. 콕콕콕콕.

코끝도 잡아 보고 귀도 당겨본다. 정말 푹 잠이 든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리오나의 단아한 얼굴이 이리저리 뒤틀린다. 이거 좀 재밌는데.

가스파르가 리오나의 턱에 손을 대자 그녀의 목에 걸린 보석이 태양 빛을 받아 살짝 반짝였다. 그 보석에 담긴 마법은 아직도 그녀의 사고와 행동을 강하게 묶고 있을 터였다.

“…….”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가스파르가 그 보석에 손을 댄다. 천천히 초커에서 보석을 떼어낸다.

오늘은 참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마법이 담긴 그 보석을 으깨어버리고, 똑같이 생겼지만 아무런 마법적 힘이 담기지 않은 핑크사파이어 하나를 바닥에서 찾아내 다시 초커에 달았다.

리오나는 이미 완전히 타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완성된 용의 문장은 리오나의 하복부에서 아직도 옅은 분홍빛을 발하고 있다. 이 행위에 의미 따윈 없다.

대체 왜?

가스파르가 자신에게 묻는다. 대체 왜 이런 의미 없는 짓을 하는 거냐고.

후회? 후회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반년 전으로 돌아가던, 만 년 전으로 돌아가던, 자신은 똑같은 짓을 다시 하겠지.

속죄나 죄책감 따위도 아니다. 이건 그런 알기 쉬운 감정이 아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뭐를 위해서 이런 한심한 자위나 하고 있느냔 말이다.

리오나는 여전히 행복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 괜히 괘씸하다.

털썩. 가스파르가 다시 보석 위에 대자로 누웠다.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해 봤자 머리만 아프다. 도망치는 것도 현명한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잠이 몰려온다. 몸의 피로는 이미 다 가셨지만, 용도 생명체인 이상 잠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 한숨 자고 성에 가서 생각하자. 아일라 정도면 이 감정을 알 수도 있겠지. 노예 하나 때문에 끙끙 앓다니 나답지 않다.

가스파르는 그렇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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