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리오나 (31)
* * *
하나둘 하늘로 사라져 간다.
메이드들은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가스파르와 리오나에게 다가오는 용은 없었다. 내 아들들이라지만 참 지독한 녀석들이다.
저 모자들은 각자가 정한 장소에서 또 행복한 추억을 쌓겠지. 제 어미에게는 착실한 녀석들이니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올해도 또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끝났다. 굳이 매해 이렇게 나와서 기 싸움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도망친 것처럼 보일까 봐 관두지 못했다. 아들에게서 도망치는 아비라니 언어도단이다.
“하.”
괜한 헛웃음이 나온다. 나도 참 나다. 저 녀석들 성질머리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생각하면 당연한가.
저들이 차라리 크라우스처럼 욕망에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서로 더 행복하고 원만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을까.
저들도 괜히 나를 닮아서 자신에게 솔직하지도 못하고 끙끙 속만 썩이고 있다.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어서는. 안타깝다.
아니, 안타깝다면 그릇에게서 태어난 모든 용이 그랬다. 슬픈 일이다. 크건 작건 그 책임은 나와 우리 세대에 있다.
인제 와서는 그 책임을 지거나 끌어안을 방법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스파르? 가스파르!”
리오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급하게 날 부르고 있다.
“어? 어어….”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사라지고 없다. 자신과 리오나 만이 텅 빈 정원에 덩그러니 남아 쓸쓸하게 서 있을 뿐이다.
“혼자서 멍하니 왜 그래. 어울리지도 않게.”
“아니,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리오나가 쓴웃음을 짓는다. 괜스레 잡은 손을 더 세게 끌어안고 나를 성안으로 이끈다. 그 마음씨 깊은 웃음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
리오나는 사정에 그리 밝지 않을 텐데도 내 표정만 보고 기분을 살피고 있다. 네가 그럴 필요는 없는데. 정말로, 네가 그럴 필요는 없는데.
달그락달그락.
식기와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텅 빈 식당에 울려 퍼진다. 메이드들은 제 아들과 함께 날아가 버렸고, 이 성에는 지금 리오나와 가스파르 말고는 아무도 없다.
평소엔 꽤 시끄럽고 북적한 성인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조용하기 그지없다. 둘은 그저 묵묵히 미나가 만들어 놓은 연어구이와 버섯 파이를 끄적일 뿐이다.
음식들은 보존 마법 덕분에 아직도 따스하고 먹음직스러웠지만 그래도 식욕은 크게 일지 않았다.
괜히 같이 밥을 먹자고 했나. 자신 때문에 리오나의 기분까지 상하게 한 것 같아 가스파르는 자리가 편하지 않다. 리오나는 아침부터 줄곧 가스파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 녀석들 때문에 괜히 옛 생각이 나고 마음이 갑갑하다. 벌써 만 년도 더 된 응어리가 가스파르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 지금은 호기심에 몰래 둘을 살피는 메이드도 없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이 좋겠지. 어차피 밝은 기분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다.
가스파르가 포크를 내려놓는다. 그 작은 소리에 리오나가 몸을 움츠린다.
“리오나. 그 배의 아이가 태어나면 수컷일 것 같나, 암컷일 것 같나?”
“어, 어? 수컷이지 않을까? 내가 지금껏 본 용들은 다 수컷이었고, 무엇보다 암컷이 나왔다면….”
용이 만 년 동안이나 이 짓거리를 하지 않았겠지. 합당한 생각이다.
“그럼 그 알을 깨고 나온 아이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
“그야, 작은 새끼 도마뱀같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 너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 말고는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아니야.”
“응?”
“모체인 네가 인간이니 인간 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나겠지. 그들이 용의 형상을 취할 수 있는 건 단지 모습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고.”
“어? 어어어? 그러면….”
그래서야 용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으냐. 그것 또한 합당한 의문이다. 나조차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직 수컷으로만 태어나, 태어날 때는 이종족의 모습이야, 이걸 용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길가의 돌멩이도 용이라 부를 수 있겠지.”
가스파르가 크라우스나 아들들 같은 신세대의 용들에게 가진 혐오감의 근원이 바로 그것이었다. 도저히 같은 종, 같은 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생에는 물론이고 그 성격이나 기질까지 다르다. 그 차이는 용의 사회 곳곳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용이라는 종이 그 한계를 맞이하고 새롭게 진화한 것이라면 말이 되는 걸까. 어차피 다 구세대의 용의 과오에서 시작된 일이다. 신세대인 그들을 인정하고 늙은 구세대는 죽어 사라지기만 하면 끝날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가스파르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정말 끝에 몰려 있었지. 용이 시간에 쫓긴 일은 그게 처음이었어. 그러면서도 다들 용이라는 종이 가진 힘과 마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지. 온갖 끔찍한 일을 벌이면서까지도 말이야.”
“가스파르, 저번엔 분명.”
“그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이종족들이 죽었지. 그 끔찍한 비명들을 기억하네. 터져 나온 살과 장기의 감각도 남아있어. 바로 이 손에, 아직도.”
나는 왜 리오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전에는 거짓말로 애써 감췄던 이야기인데. 그 일의 부산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를 몸에 밴 아이에게. 그 일이 없었다면 서로 엇갈리지도 못했을 인연에게 대체 왜.
그때의 나는 광부 짓이나 하며 보석과 금을 모은 게 아니다. 교활한 머리와 뛰어난 마법의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많은 황금을 모을 수 있었다.
용의 위기가 닥치고 모두가 모였을 때, 눈앞에서 금목걸이를 빼앗긴 나는 바로 그다음 날 실험실에 감금되었다. 재능으로 범한 죄를 갚으라는 뜻이었겠지.
나는 그 프로젝트의 머리가 되어 모든 권리와 책임을 떠넘겨졌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실험체들.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왕이 준 생전 처음 겪은 공포.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과를 내기 위해 죄 없는 생명을 끊임없이 손에 걸쳤다.
울부짖는 엘프와 형태를 갖추지 못한 미숙아들. 검고 붉은 핏자국과 역겨운 지린내.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끝에 결과가 나온 건 오십 년 후였다. 용의 일생에서 짧다면 짧은 순간이지만 그 오십 년이 가스파르의 일생과 용의 미래를 바꾸었다.
그때는 아직 가스파르라는 이름도 받기 전이었다. 선왕이 건 주술 때문에 나는 아직도 원래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고생 끝에 실험실에서 나온 나를 기다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물 냉장고와 이 증오스러운 이름이 전부였다.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면 그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와 지독한 죄책감뿐.
이 성을 짓고 메이드들을 들인 것 모두 지독한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꽃으로 주위를 치장한다 해도 나는 죽을 때까지 그날의 하루하루를 잊을 수는 없겠지.
그렇게 내가 자신을 다 바쳐 만들어 낸 것이 용의 그릇과 신세대의 용.
암컷 용의 생식능력은 만들어내기도 어려웠고, 안정시키기에는 더 큰 노력과 추가적인 실험이 필요했다. 나는 결국 암컷 용을 구현하지 못했다.
이제 용은 영원히 이종족인 그릇에 의존하며 종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것이 나와 이 종족의 최선이었다.
저주받은 종족과 그 때문에 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이들. 지금도 크라우스의 군대가 새로운 대륙에서 새로운 종족을 정복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나는 그 끔찍한 일들과 아무 상관 없는 이 하늘에서 자기 손으로 뒤틀어버린 메이드들과 함께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참 어이없는 놈이 아닌가? 게다가 그렇게 남을 짓밟는 일에 옅은 희열까지 느끼고 있으니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살기 위해 그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책임을 질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차피 한 생명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후회도 하지 않는다. 설령 괴물이나 다름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태어난 생명이 있고, 그렇게 태어난 인연도 있다. 게다가 아일라부터 리오나까지, 아직 모두 내 곁에 있는데 그 일의 장본인인 내가 후회를 한다니, 그것이야말로 책임 없는 짓이다.
남은 건 후회가 아니라 아주 작은 미련뿐이다. 지금의 나라면 그런 식으로 연구를 끝내지는 않았을 거다. 설령 이제 와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좀 더, 좀 더 나은 방향이….
연어구이가 차갑게 식어간다. 리오나는 내가 두서없이 쏟아낸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듣고 있다.
화를 내 거나 책망하지도 않는다.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리오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길고 긴 식탁 옆을 지나 가스파르의 앞까지 다가온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래도 알 수 있다. 너는 아까처럼 걱정하는 표정으로 나를 위로해 주겠지.
내가 갑자기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쏟아내도 너는 모든 걸 이해한 것처럼 나를 껴안아 줄 거야. 나도 그걸 바라면서 이런 말을 한 거고.
용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인형한테 위로받는 꼴이 우습다.
우스워도 좋다. 나는 진심으로 리오나의 위로를 바라고 있다. 그런 아들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큰 마음의 상처가 된다. 올해는 곁에 리오나가 있다. 조금 어리광부린다 해서 나쁜건 없지 않나.
리오나가 가스파르 앞에 섰다. 가스파르는 앉은 몸을 돌려 리오나를 바라본다. 리오나는 그렇게.
"흐윽, 흑. 바보, 거짓말쟁이…."
울고 있었다.
가스파르의 생각이 멈춘다.
아냐, 리오나. 나는 그저…. 정말 그런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낸 게 아닌데.
자신이 얼마나 얕은 생각으로 제멋대로인 이야기를 풀어냈는지 깨닫는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까지.
"미안해, 리오나. 난 정말…."
안 돼, 리오나만은 잃고 싶지 않다. 한갓 위로의 한마디를 위해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아니야, 리오나. 제발.
지금 말한 건 다 거짓말이야. 예전에 한 이야기가 다 사실이고. 응? 그러니까.
생각이 입 끝에만 머물고 말이 되지 않는다. 멍청이가 된 것 같다. 붕어처럼 놀란 얼굴로 입만 뻐금거린다.
리오나가 점점 더 다가온다. 리오나, 아냐. 잠깐만.
와락.
"진작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왜 그렇게 혼자 끌어안고 괴로워하고. 나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네 옆에서 실실 웃기만…."
아.
리오나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리오나는 어디도 가지 않는다.
엉엉 소리 내 울면서도 팔에 힘을 주어 나를 끌어안고 열심히 위로하고 있다. 들은 이야기를 이해하기나 했을까. 아니, 그녀도 바보는 아니다. 전부 이해하고서도 나를 이렇게 위로하고 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
처음부터 이런 걸 바라고 한 말이었는데. 이 공허한 기분은 뭐지.
방금 느꼈던 그 기분은 또 뭘까. 나에게 리오나가 대체 뭐라고.
"가스파르, 괜찮아. 가스파르는 나쁘지 않아. 덕분에 나도 모두도 다 이렇게 행복한걸. 그러니까, 응?"
이 연극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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