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리오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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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렇게 올려다본 가스파르를 제일 좋아한다.
흥분과 욕망으로 일그러진 표정. 덮쳐오는 그의 냄새와 체온. 리오나를 원해서 딱딱하게 발기시킨 자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자세로 가랑이를 벌리는 자신.
정말 참을 수 없다. 기대로 가슴이 가득 찬다.
원래 리오나와 가스파르가 누구였고, 어떤 관계였는지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얼마나 깊고 어리석은 우연인가.
가스파르가 리오나를 달래주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말이 옳다. 이미 다 정해져 있던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 기이하고 이상야릇한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녀는 수십 년을 남자, 그것도 군인으로서 살았다. 그 모든 게 이제는 허무맹랑한 거짓말만 같다. 리오나인 자신이 진짜 같고, 레온하르트의 기억은 그저 무의미한 사실의 집합처럼 느껴진다.
리오나의 미래는 봄꽃처럼 화려하고 생기롭게 피어오르고 있는데, 과거의 레온하르트는 잊힌 압화처럼 그저 시들고 메마를 뿐이다.
분명 나름대로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었다. 가족도 있고, 친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큰 기쁨과 행복에 다 덧칠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 따위 상관없다. 리오나에게는 가스파르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행복하고 기쁜 이유야 명확하다. 리오나는 돌고 돌아 드디어 자신의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리오나는 그녀 자신도 몰랐던 꿈과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던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가스파르, 가스파르…. 나의 사랑, 나만의 반쪽.
가스파르는 리오나의 생각처럼 완벽하고 다정한 남자가 아닐지 모른다. 오늘 그가 드러낸 속 이야기는 확실히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아.
가스파르가 마음의 상처를 가진 비극 속 왕자님이라면, 아름답고 자애로운 리오나 공주님이 품고 치유해주면 될 일이다. 뻔한 왕자님 이야기보다 이런 이야기가 더 특별하고 애틋한 법이다.
아아, 내게로 와줘, 가스파르. 이 성에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치유해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리오나의 검은 욕망과 우월감이 다시 고개를 든다. 가스파르가 여자 놀음을 시작한 지 만 년이 지났지만, 그가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한 여자는 아마 자신뿐이리라. 아일라도, 미나도, 마야도 아닌 나 자신뿐.
리오나가 슬며시 가스파르의 목 뒤로 손을 두른다. 다리는 이미 들쳐 올려졌다. 사지가 완전히 가스파르와 얽힌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원하고 또 원한다. 서로의 눈에 서로만이 비친다.
가스파르가 일어서면서 빠진 자지를 다시 보지에 가져다 댄다. 뜨거운 귀두가 클리토리스를 애무하며 몇 번이고 질 입구를 키스한다.
“리오나, 그 표정…. 항상 그래, 네 그 표정 때문이야.”
가스파르가 리오나의 귓전에 속삭인다. 표정? 무슨 표정? 나는 대체 무슨 표정으로 가스파르를 올려다봤을까. 얼마나 음탕하고 남자를 홀리는 표정이었을까.
리오나의 입꼬리가 일그러진다. 오늘의 가스파르는 정말 어제와 달랐다.
능숙하게 강아지를 조련하던 주인님은 어디로 갔는지, 마치 짝사랑을 눈앞에 둔 어리숙한 소년처럼 상기 된 얼굴로 옅은 숨만 내쉴 뿐이다. 정말 사랑을 하는 게 태어나서 처음인 걸까.
귀여워. 바보 같아.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면서 진심을 통한 상대 한 명 없는 거야? 역시 가스파르는 내가 없으면….
“못 참겠어. 그 표정 때문에 정말 못 참겠단 말이야.”
달궈진 쇠 창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리오나를 관통한다. 조금 전 기승위로 가지 못한 가스파르의 자지는 한층 더 두껍고 단단했다.
뜨겁다. 서로의 몸이 마치 불덩이 같다. 두른 손에 저절로 힘이 실린다. 아까 전 절정으로 민감해진 질 내는 또 날카롭고 분명한 쾌락을 리오나에게 전한다.
참지 못한 가스파르가 거센 피스톤 질을 시작한다. 리오나도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지른다.
“하앙…. 흐앙! 하아아앙!”
“하아, 귀여워, 리오나. 하아…. 정말 좋아해.”
가스파르는 리오나를 쑤시면서 귓가에 계속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 흥분과 쏟아지는 쾌락 때문인지, 말이 짧고, 목소리가 거칠다. 그건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은 순수한 그의 진심이리라.
시끄러워. 정말 바보 같아. 사랑하는 여자에게 좀 더 우아하고 고상한 말을 속삭여줄 수는 없는 거야?
“흐아앙! 흐응! 흐읍?! 으응! 읍….”
리오나의 신음이 가로막힌다. 가스파르가 거칠게 리오나의 입술을 탐한다.
위아래로 이어진 채로 하는 키스. 리오나는 이미 몇 번이고 겪어 봤지만, 언제나 당해낼 수 없다. 풀리지 않는 쾌락이 하반신에 계속 쌓이고, 머릿속은 행복으로 가득 찬다.
가스파르의 마나, 향기, 사랑이 리오나에게 쏟아져 내린다. 자지를 찔러넣는 속도는 점점 빨라질 뿐이다. 리오나는 가슴이 너무 세차게 뛰어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다.
“푸핫, 하아, 하아…. 리오나, 사랑해. 사랑해.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해.”
하아, 가스파르. 그러니까 좀 더 세련된….
“나도, 나도 사랑해, 가스파르! 정말, 정말정말정말 사랑해! 좋앗, 죽을 만큼 좋아앗!!!”
숨길 수 없는 진심이 터져 나온다. 미칠듯한 쾌락이 머리에 몰려들어 유치하고 순수한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촌스럽고 부끄러운 사랑 고백이 텅 빈 성을 가득 채운다.
리오나도 그랬고, 가스파르도 그랬다. 세상에 서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서로의 몸이 너무 기분 좋아서, 서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그렇게 진심이 줄줄 새어 나온 것이다.
이제 둘은 서로를 코앞에 두고 마주 본다. 둥근 동공이든,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든 서로에게 취해 빛을 잃은 건 똑같다. 가스파르가 리오나를 세게 끌어안는다. 리오나는 그런 가스파르를 몸속 가장 깊은 곳에 받아들인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렸나.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다. 들끓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 안에 이미 그의 씨가 있는데, 정도를 모르고 또 그를 원한다.
“안 돼, 가. 또, 또! 흐응!”
“리오나. 나도….”
절정이 다가온다. 아직 절정에 달하지도 않았는데, 둘은 이 행복에 끝이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 서로를 더 깊고 아득한 곳으로 이끈다.
“안에! 안에! 가스파르읏…! 또 안에, 아앙! 흐앙! 하아아아아아아앙!”
가스파르의 마나가 리오나의 몸속에 한없이 쏟아진다. 퓨릇, 부르르릇. 부륵. 가스파르는 자지를 한계까지 쑤셔 박고 리오나를 껴안는다.
높이, 더 높이. 세게, 더 세게. 몸뿐이 아니라 마음마저 이어진 정사는 이다지도 다른 걸까. 지금껏 나눈 그 어떤 정사보다도 높고 생생한 절정이 리오나를 관통한다.
쾌락의 해일이 리오나를 덮친다. 거칠고 폭력적인 쾌감이 리오나를 잡고 뒤흔든다. 그녀는 그전보다도 높고 거센 파고에 어쩔 줄 몰라 교성을 내지르며 미친다.
리오나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두른 손에 힘을 널고 가스파르의 사랑을 더욱더 갈구한다.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 미칠 것 같은데도 몸속을 흐르는 정액과 목전을 간질이는 그의 거친 숨을 선명하게 느낀다.
가스파르가 리오나를 더욱더 세게 꼬옥 안아준다. 얼굴이 또 가깝다. 안 돼, 그거 지금…. 넌 끝났겠지만, 난 아직….
쪽.
다시 위와 아래가 함께 이어진다. 그나마 지르던 교성도 틀어막힌다. 작은 리오나의 몸이 가스파르에게 완전히 덮인다. 원래 있던 세상에서 둘만 똑 떨어져 나와 갇혀버린 것만 같다.
리오나의 마음속 해일이 점차 가라앉는다. 이렇게 가스파르에게 안기면 새삼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에 행복으로 머리가 아득해진다. 맞닿은 입술, 힘세게 꽉 안아주는 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섬세한 손길까지. 무척 아늑하고 편안하다
가스파르와 함께인 이 세계는 사랑과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다. 벗어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이어져 있고 싶다. 그래, 설령 천 년, 만 년 동안이라도 언제나, 이렇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가스파르가 못내 아쉽다는 듯 천천히 입술을 뗀다. 조금씩 몸을 일으켜 리오나를 해방한다. 리오나도 두른 팔을 풀고 올려진 다리를 내린다. 사지를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펼쳐놓는다.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쾌락과 흥분으로 피부가 벌겋다. 탐스러운 복숭앗빛 허벅지와 무릎이 베베 꼬이며 여전히 가스파르를 유혹하고 있지만, 리오나가 의식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오늘 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몰라도 지금은 둘 다 휴식이 필요하다.
가스파르가 리오나 옆에 나란히 눕는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몸을 돌려 리오나를 바라본다.
그가 알과 정액으로 약간 부푼 리오나의 아랫배를 살포시 쓰다듬어 준다. 살짝 손이 닿았을 뿐인데, 리오나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찔거린다.
용의 문장은 여전한 모습으로 밝게 점멸하며 리오나의 뇌에 쾌감과 만족감을 보내고 있다. 리오나도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가스파르의 얼굴을 바라본다.
“가스파르…. 나 지금 너무 행복해. 두렵고 무서울 정도로.”
“괜찮아. 괜찮아, 리오나. 나도 그래. 네가 나를 부쉈어. 하루 만에 세상이 뒤바뀐 것 같아.”
가스파르가 고개를 기울인다. 톡. 둘의 이마와 이마가 맞닿는다. 코끝이 간지럽고 서로의 체온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데, 이 마음이 틀릴 리 없잖아. 두려워하지 마. 날 믿어줘, 리오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행복하게 해줄게.”
“가스파르….”
이번에는 리오나가 가스파르의 입술을 훔친다. 애타게, 매달리듯이. 가스파르는 그런 그녀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배를 쓰다듬던 손의 손가락을 모아 용의 문장이 내뿜는 분홍빛을 가린다. 문장의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게, 완벽히.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스파르는 한동안 그 손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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