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1화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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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 좋은 게 좋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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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이 갈라졌다.

만물의 머리 위에 서겠다는, 핍박받고 사냥 당하던 마물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과 함께 들고 일어난 마왕 아래 모인 마왕군의 발길이 닿는 곳 마다 불길이 치솟고, 죄악의 표식이 남겨졌다.

그것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살육의 증표.

씻을 수 없는 죄악의 표식이었다.

대륙 서부와 동부를 잇는 유일한 육로인, 메르덴 숲 위에 터전을 일군 대륙 최후의 보루였던 메텔 왕국은 급하게 용사 소환 의식을 진행했고, 결국 이계의 용사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마왕군에 대항할 용사가 나타났다!'

시시각각 밀리는 전선에 애가 탔던 메텔 왕국의 국왕, 마이어스 3세는 급히 대륙 각지에서 용사 파티의 파티원이 될 인재를 모집했다.

메텔 왕국이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견된 수순에 불안을 느낀 엘븐 왕국과 드워븐 왕국, 수인들의 나라인 미도 연방과 신을 섬기는 신성 교국에서 메텔 왕국의 요청에 응하였고, 이내 수많은 인재들이 메텔 왕국의 수도, 메텔하임으로 몰려들었다.

메르덴 숲에서 평생동안 검을 수련한 기사, 미도 연방에서 온 번개 마법의 대가, 드워프들이 직접 제련한 건틀렛을 낀 격투술의 달인, 온 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요리사, 엘븐 왕국의 자랑인 바드 양성 아카데미의 천재 바드까지.

각 분야의 실력자들이 정의감, 명예, 지위, 금전 등 각양각색의 목적을 갖고 메텔하임으로 몰려 들었고, 수많은 실력 검증과 오랜 심사 끝에 이윽고 용사를 중심으로 한 6인의 파티가 구성되었다.

이세계에서 온 용감하고 정의로운 용사, 이유정.

메텔 왕국의 왕실 근위대장이자, 맷집 하나는 대륙 최강이라 불리우는 그레이시.

신성 교국에서 온 신의 총애를 받는 성녀, 이사벨.

고대 마법사 켈프의 유일한 제자이며, 바람 마법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고양이 수인 마법사, 마야.

엘븐 왕국에서 신궁(??) 이라 불리우며 적들에게 화살 비를 내려 주는 궁수, 아드리엔.

그리고... 용사 파티에서 척후를 담당하게 된 나, 오스틴.

척후(??).

몸을 숨기고 근처의 적의 위치를 파악한 뒤 지도나 약도로 기록 하고, 인근의 지형지물을 탐색하며 아군에게 중요 정보를 알려 주는 일종의 서포터 클래스를 말한다.

물론, 폭 넓게 보자면 단순히 정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파티의 길잡이 역할과 함정 제거, 야영지 은신, 전투 상황 발생 시 측면에서 적 중요 요인 암살 등 여러 가지 발 빠른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이들이 맡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파티에서 유일하게 남자이다 보니, 막상 뽑히고 난 뒤 파티원과 용사를 만났을 때는 조금 오묘한 감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어째서 내가?' 라거나 '감히 나 따위가?' 라고 할까.

뭐, 솔직히 내 실력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아니, 시발 아무리 그래도 대륙 최고의 실력자들이 속속들이 모여 들었는데, 어째서 내가?

모험가 길드 소속의 지도 제작자셨던 나의 아버지와 왕국에서 이름난 사냥꾼이셨던 어머니에게서 여러 기술과 지식을 물려받았고, 메텔 왕국 레인저에 복무했을 시절에도 부대에서 나름 인정 받았었기 때문에, 척후 관련 기술과 지식은 누구보다 앞선다고 자부하긴 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우물안의 세상 기준이지 우물 바깥의, 전 대륙을 기준으로 잡자면 당연히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파티에서 유일하게 남자인 입장으로서는, 다른 누군가 에게는 부러운 자리일지 몰라도 18살이었던 당시의 나에게는 엄청나게 부담 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나를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 간에는 큰 마찰이 없었다.

청일점 이었던 나로 인해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있었던 파티 였지만, 필사적으로 쉬지 않고 아가리를 놀린 내 노력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파티원들끼리 유대감이 생겨나며 분위기도 좋아졌고, 나와 파티원들은 서로 허울없이 지내며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오스틴. 말 너무 많아."

그래... 서로 허울 없이...

"오스틴! 밥 언제 다 돼?! 빨리 좀 해! 나 배고파!"

...허울 없이....

"오스틴. 너처럼 허약한 인간이 어떻게 우리 파티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허울...

"어머, 오스틴씨. 이런 잔상처에는 포션을 드시는 게... 신성력은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하여튼, 누가 허접 레인저 출신 아니랄까봐, 엄살도 심하다니까?"

....너무 허울없이 지내는 게 문제지.

씨발년들.

* * * * *

"아드리엔. 그러니까 여기에 적들이 매복하고 있을 수도.."

근처 산 위에 올라가서 적의 위치를 살펴보고, 주변 지형을 둘러보며 적이 매복 해 있을 법한 위치를 파악한 뒤 돌아온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대차게 까이고 있었다.

"아, 됐다고! 그래봤자 마왕군 송사리들일텐데, 제까짓게 매복좀 했다고 우리가 질 것 같아? 지도 좀 치워!"

시건방진 아드리엔이 일갈하고, 뒤이어 무거운 중갑을 절그럭 거리며 다가온 그레이시가 말했다.

"네놈은 너무 겁이 많아서 탈이다. 조금은 용기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떤가? 우리는 강하다. 고작 매복따위에 무너질 파티가 아니야."

대체 이 머저리 들은 학습능력 이라는 것이 없는 걸까?

"아.... 아니... 후우.... 너희 저번에도 불침번 차례가 돼도 일어나지도 않다가 기습 당했던 거 기억 안나? 너무 방심하면..."

"그만. 빨리 밥이나 해라. 네놈 때문에 다른 파티원들이 굶고 있잖나."

"내 말이! 대체 그놈의 쓸데없는 정찰은 왜 하는 건데? 정찰을 하느라 밥 시간도 늦어지고.. 우리가 배고픈건 생각 안 해?"

그럼 니가 척후를 겸임 하던가.

이 멍청한 깐프년은 오로지 활 '만' 쏠 줄 알지, 다른 머리쓰는 일이나 지형 탐색 같은 일을 할 줄도 모른다.

하긴, 활 한번 쏘면 수십발이 우수수 떨어지게 만드는 괴물년인데, 나처럼 쇠뇌로 볼트나 쏘는 게 한계인 놈처럼 정찰하는 법 따위를 알아서 뭐 하겠는가? 그냥 화살 비나 쏟으면서 싸우면 그만인데.

...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가슴 큰 금발 엘프는 바보가 많다는 게 맞는 말 이긴 한가보다.

애초에 적 위치를 알아야 활을 쏘든 말든 하는 건데, 그 적 위치를 누가 물어다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전투력 하나는 뛰어나지만, 대인전 이라던가 척후나 정찰 관련 지식은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인 아드리엔이 나를 하대하는 꼴을 보자니, 절로 뚜껑이 열릴 것 같다.

내가 답답한 마음을 내뱉듯 한숨을 쉬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레이시와 아드리엔.

나는 잠시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터덜터덜 거리며 모닥불로 걸어가 파티의 식사를 준비 했다.

어느새 냄비에서 맛있는 스튜 냄새가 퍼져 나가고, 주변에서 정비를 하거나 떠들고 있던 파티원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그녀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오다 보니, 이미 내 요리 수준은 메텔하임의 레스토랑 요리사 못지않게 되었다.

'시발 고기 다 뒤졌다 ㅋㅋ'

스튜 안에서 먹음직스럽게 기름기를 뽐내는 고기의 자태에, 나는 얼른 파티원들에게 스튜를 배분해주고 그릇을 들었다.

힘들게 정찰 하느라 축 처진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맛있는 스튜의 냄새에 입맛을 다시며 국자를 들자, 우리 파티의 마법사를 맡은 마야가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내 오른쪽에 앉았다.

"오스틴. 오늘도 삽질 하느라 수고 했어. 밥은 이거 먹어."

여느 때처럼 나를 개무시하는 마야는 나에게 딱딱한 빵과 육포를 내밀곤 내 그릇을 빼앗아 갔다.

"어... 어? 마야..? 이게 무슨..."

"아! 그건 말이죠, 오스틴씨."

내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묻자, 내 맞은편에서 스튜를 거의 마시듯이 흡입하던 성녀 이사벨이 스튜로 범벅이 된 입가를 닦으며 싱긋 웃었다.

"당신이 오늘도 식사 준비는 안하시고 쓸데없이 정찰하러 가신 사이, 저희끼리 따로 의논한 결과, 파티에서 기여도가 가장 낮은 오스틴씨는 오늘부터 저희가 따로 식사를 드리기로 했어요. 남아있는 보존식량을 아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니, 불만은 없으실거라 믿어요."

"....이 씨벌,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내가 어이가 없는 말투로 따지려 들자, 내 왼쪽에 앉아 있던 그레이시가 내 팔을 꽉 껴안으며 입을 열었다.

"불만 있나?"

"아니, 내가 만든 밥인데 내가 못먹어? 염병 당연히 불만이 있.."

­ 꽈아악

"불만. 있나?"

"....는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너희들 말이 맞네. 하하!"

명색이 대륙 최고의 맷집이라는 이 미친 괴력녀는, 그녀가 평소 입고 다니는 엄청난 무게의 중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통나무도 부러뜨릴 수 있을 만큼 끝을 모르는 근력을 가졌다.

팔을 빼 보려고 하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내 팔이 빠질것만 같다.

내 팔 하나쯤은 나뭇가지 비틀듯 똑 부러트릴 수 있겠지.

"....그, 팔좀 놔 줄래?"

"음. 너라면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본래 빵 만 제공 할 예정 이었다만, 육포를 받은 것에 감사히 여기도록."

"그래. 거 존나게 고맙다. 눈물 날 것 같다 야."

눈물 젖은 빵은, 염장된 육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간이 잘 배어 들어 있었다.

...난 괜찮다. 마왕만 잡으면 받을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만 생각하자.

그렇게 돌같은 빵을 눈물로 적셔가며 뜯어먹고 있을 때, 성녀 옆에 앉아서 벌써 스튜를 세 그릇이나 비워 낸 용사, 이유정이 이를 쑤시며 입을 열었다.

"오스틴! 오늘 밥도 형편없었어! 스튜를 끓일 때는 고기좀 더 넣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는 거야?"

고기는 지가 다 쳐 건져 먹어 놓고, 또 개소리를 지껄이는 용사의 말에 나는 대꾸하길 포기 했다.

좋게 말해서 털털한 성격을 지닌 용사 이유정은, 아저씨 같은 행동거지와는 다르게 검은색의 찰랑거리는 포니테일이 잘 어울리는 미인이다.

껍데기만 보기 좋은 게 문제지만.

"....다 먹었으면 슬슬 치울게. 어두워지면 설거지 하기 힘들거든."

허기진 배를 돌 같은 빵과 짭짤한 육포로 채운 나는, 스튜가 가득 차 있었던 냄비가 바닥을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할 준비를 했다.

....나도 먹고 싶었는데. 고기 스튜.

내가 그릇을 옮기는 동안, 용사 이유정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오스틴. 오늘 있었던 전투가 너무 힘들어서, 나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불침번을 서긴 힘든데 말이야... 너는 아직 팔팔하지?"

"....야. 잠깐만. 니들 설마"

"그럼 부탁할게!"

뻔뻔하게 불침번을 나에게 전부 떠맡기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짓고 통나무 위에 다시 주저앉았다.

원체 먹는 속도가 느린 마야는, 다른 파티원들이 모두 천막으로 들어간 뒤에야 내게 싹싹 비워진 그릇을 건네주었다.

"...오스틴. 그.. 자다가 졸리면.. 나 깨워도 돼. 내가 이어서 설게."

마야가 툭 던지듯 한마디를 내뱉고, 이내 모닥불 곁에는 나 혼자만이 남아 그림자를 일렁이게 되었다.

"....이어서 서기는... 깨우려 하면 개지랄을 떨면서."

마야는 자는 도중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행위를 가장 싫어한다.

나는 그런 마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곤, 이내 깜깜한 밤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 찌르르르

­타닥 타닥

마치 기름이 튀는 듯한 장작 태우는 소리를 내며, 허공에 흩날리는 모닥불의 불똥과 함께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깜깜한 밤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내 선명하게 자신들만의 자태를 뽐내며 은은하게 빛나는, 마치 주근깨처럼 빼곡하게 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무리가 보인다.

초라한 내 처지와는 상반되게 반짝거리는 은하수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대체 용사 파티의 척후담당인지, 아니면 가정부로 따라 다니는 건지.

열여덟의 나이로 용사 파티의 척후담당으로 파티에 들어오고 스물 한살이 된 지금까지, 지난 3년 중 2년 가량을 용사와 파티원들을 따라 다니면서 온갖 잡심부름을 해오며 개처럼 굴렀다.

그동안 힘겨웠던 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적적한 분위기 속에서 감성적으로 변한 나에게,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온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호기롭게 '마왕을 처단하겠다.' 라는 포부와 함께 성공 가도를 달릴 내 미래를 그리며 파티에 들어 왔더니,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처음 1년 가량은 그래도 서로 우정과 연대감을 쌓아 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있던, 인간미 넘치는 파티 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나라고 그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셀 수도 없이 많은 위험과 난관을 맞닥뜨렸다.

용사로 소환된 이유정 역시, 이계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죽고 죽이는 무자비한 싸움. 멈추면 죽고,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치킨 레이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피도 눈물도 없는 판단이 요구되는, 피로 얼룩진 3년 이라는 기간.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저, 그녀들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표적이 나였다는 것 이겠지.

나는 허벅지에 달린 단검 자루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 한 자루를 꺼내었다.

스르릉 하는 서늘한 소리를 내며 칼집에서 끌려 나오는 예리한 단검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탓일까. 이미 셀 수도 없이 수많은 피에 젖어왔던 지난 3년 이라는 기간으로 인해, 흐릿한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단검을 돌려 내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눈을 반짝이며 모험을 떠났던 열여덟살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피곤함에 퀭한 눈을 비비적거리며 잡일만 하는 잡부가 보인다.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다."

지금까지 잘 참아 왔듯이, 마왕을 잡을때 까지 버티고 있으면 정말로 마왕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3년 동안 마왕의 최측근인 8명의 군단장 중 4명을 죽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너무 힘들다.

계속해서 나를 무시하고, 하대하는 너희의 태도에 질려 버렸다.

언제 부턴가 엄호도 해주지 않고, 치료도 해주지 않으며 비수같은 독설만 내뱉는 너희들이 신물이 난다.

.......파티를, 탈퇴 할까?

왕국에서도 명망있는 레인저 부대 출신으로서 용사 파티에서 척후담당을 맡은 나 덕분에, 최근 레인저 지원자가 늘었다고 들었다.

...아마 수도에서 레인저 교관으로 복무 중인, 아는 교관님께 간다면 조금은 신세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줌마... 아니, 교관님은 특히 나를 신경 써 줬었지.

적어도 지금처럼 푸대접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 세상을 구경 하고 싶다니, 네가 정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내가 레인저라는 좁은 세상을 부수고 세상으로 나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 교관님은 나를 걱정하다가 마지못해 허락 해 주었었다.

'하지만, 만약... 혹시 마음이 바뀐다면, 나를 찾아와라.'

나는 어느새 얕은 숨소리가 새어 나오는 천막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지금까지 파티원들과 나름 동고동락을 했던 사이이다 보니 조금 망설여지기는 한다.

'그놈의 쓸데없는 정찰은 대체 왜 하는 건데?!'

....나는 그저 파티를 위해서 최선을 다 했을 뿐인데.

'됐고, 와서 밥이나 해라. 오스틴.'

나는 파티의 척후담당이지, 가정부가 아닌데.

'넌 대체 하는 게 뭐야?'

"....씨발."

온갖 좆같았던 기억이 떠오른 나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는 없지만, 일단 수도 메텔하임으로 가서 레인저 교관님께 잠시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참에 나도 내 인생좀 살아보자."

빠른 정찰을 위해 가볍게 무장하고 다녔던 나는, 챙길 짐 이랄 것도 없이 숏소드를 허리에 차고, 쇠뇌와 가방을 등에 걸며 설거지 거리를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는 게 없는 것 같으면, 내가 없어도 상관없겠지.

'나는 더 이상 못해먹겠다. 너희들끼리 마왕 알아서 잘 잡고, 나 찾지 마라.'

가죽 한 장을 꺼내어 목탄으로 작별의 글을 남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야영지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나름 야영지를 은폐 시켰고, 그녀들은 초인 이니 별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디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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