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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2화 (2/106)

〈 2화 〉 2. 이별의 끝은 또 다른 만남

* * *

상쾌한 새벽 공기가 흘러들며, 여느 때와는 다르게 적막이 감도는 야영지의 아침.

14살 때부터 레인저에서 굴렀던 오스틴의 노력 덕분에, 마왕군이 다닐 경로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만들어진, 나뭇가지나 풀잎 따위로 잘 은폐된 용사 파티의 야영지 천막에서 금빛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빠져나왔다.

언제나 파티원중에서도 가장 먼저 일어나는 성녀, 이사벨 이었다.

"하움.... 오스틴 씨.... 오늘 아침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야영지.

언제나 들리는 아침을 만드느라 분주한 달그락 소리가 아닌, 정적만이 감도는 야영지에 이상을 느낀 이사벨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허리춤에 매달린 철퇴를 손에 쥐었다

.....적습인가?

"...오스틴 씨..?"

아침을 만들고 있어야 할 오스틴은 온데간데없고, 어제 저녁의 설거지 거리가 그대로 모닥불 앞에 널브러져 있다.

야영지 근처에 오스틴이 설치 해 둔 함정도 그대로 이고, 마야가 그려 둔 방범 마법진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습은 아닌 것 같다.

오스틴 씨는 어디가셨지?

평소답지 않은 이상한 분위기에, 이사벨은 천막으로 뛰어 들어가 다른 파티원들을 깨웠다.

"여러분! 일어나세요! 어서요!"

"후응.... 뭐야..? 이사벨...?"

"우음.. 일어났어.. 일어났는데... 5분만.."

어물쩡 거리는 파티원들을 손수 일으키며 잠에서 깨운 이사벨은, 아직도 비몽사몽 한 파티원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여... 여러분.... 오스틴 씨가 사라졌어요.."

"...뭐?"

오스틴이 사라졌다는 말에, 방금까지 졸린 눈을 끔뻑거리던 모습은 어디 가고, 금세 눈을 크게 뜨곤 주변을 둘러보는 용사와 다른 파티원들.

"아니, 오스틴이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어? 얘 어디 갔어...?"

"오... 오스틴..? 어디..?"

"오스틴! 너 장난 그만치고 나와! 아침밥은 안 만들고 어디로 간 거야?"

"......저건 뭐지?"

다들 오스틴을 찾는 와중에 그레이시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레이시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그곳에는, 한 장의 작은 가죽 조각이 놓여 있었다.

"...어.. 이게 뭐야...?"

조금 당황한 용사, 이유정이 가죽 조각를 쥐어 들며 자리에 앉고, 잠시 주변을 경계하던 다른 파티원들 역시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가죽 조각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용사에게 옹기종기 모여 들었다.

"용사. 그게 대체 무엇인가?"

"잠시만... 어.. 나는 더 이상 못해먹겠다... 너희들끼리 마왕 알아서 잘... 잡고..... 나 찾지 마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용사와 일행은 잠시 멍 하니 가죽 조각만을 바라보았다.

다시봐도 똑같은 내용.

"어....? 이게... 이게 뭐야..?"

당황한 용사의 말에, 아드리엔이 활을 집어 들며 벌떡 일어났다.

"...자.. 장난인 게 뻔하잖아! 어디 또 정찰이라도 하러 갔나 보지!"

"...그래. 정찰을 하러 간 거다. 이런 가죽 쪼가리는.. 장난을 친 것이 뻔하지.. 기다리면 올 거다."

"그.. 그래요..! 조금만 기다리면.. 또 평소처럼 몸에 나뭇잎을 잔뜩 붙인 채로 돌아오실 거예요.."

가죽 조각에 남겨진 글을 읽은 아드리엔과 그레이시, 이사벨은 오스틴이 파티를 떠났다. 라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떠들어 댔다.

"오스틴... 지도쟁이 주제에...! 돌아오면 활 연습 표적으로 써버릴 거야!"

"음. 나도 검술 연습 상대로 써 보는 것을 고려해 봐야겠군."

오스틴이 돌아오면 어떤 처벌을 할지 이야기하는 그레이시와 아드리엔의 옆에서, 마야는 황망한 표정으로 가죽 조각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스틴이... 오스틴이. 파티를.. 나갔어..?"

그러나 작은소리로 중얼거린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파티원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통 정찰하러 갈 때면 항상 파티원들에게 미리 말을 해 두고 정찰을 나서는 오스틴이, 말도 없이 정찰을 갔을 리가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애써 부정했다.

"그래. 또 멋대로 정찰하러 갔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보자."

잠시 소란스러워진 분위기에 용사가 나서서 입을 열고, 용사와 일행들은 어제 저녁을 먹었던 자리에 앉아 오스틴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뜬 시간까지 기다려도, 오스틴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스틴.... 네가 우릴 버려..?"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 한 그녀들은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황.

"....좋게 넘어가려 했건만, 안 되겠군."

"이건... 정의롭지 못 한 행동이네요."

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인 파티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꽉 움켜쥐며 애꿎은 땅바닥을 노려보았다.

평소 하는 것도 없는 한량, 짐 덩이 라고 여겼던 파티원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리라.

"...좋아. 제까짓게 파티에서 나가 봤자 어떻게 먹고 살겠어?"

하루 세 끼 식사 시간은 꼬박 꼬박 챙겨 먹던 용사 이유정에게, 끼니를 거르게 된다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의도치 않게 아침과 점심을 거르게 된 그녀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이를 아득 물었다.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가자. 잘됐네. 파티에서 식량만 축내던 버러지가 나갔는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오스틴 따위가 없어도 우린 충분하다고."

용사의 말에 하나둘 고개를 주억거린 그녀들은, 딱딱한 빵과 소금으로 버무려진 듯 짠 육포를 어영부영 챙겨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빵은, 정말 맛없었다.

"오스틴... 우리를 버린 대가를 치르게 만들거야."

* * * * *

"어우, 시발 소름 돋아."

갑자기 온몸을 타고 흐르는 한기를 느낀 나는, 소름이 돋는 팔을 쓸어 내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수풀을 헤쳐 나아갔다.

용사를 비롯한 파티원들과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쉬지 않고 숲을 헤쳐 나갔다.

품에 지니고 있던 지도를 토대로, 가지고 있던 레인저 시계를 방위 삼아 길을 되돌아 가다 보니 어느새 마왕군이 포진해 있던 숲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근처에 도시가.... 멀리도 왔네. 염병할 거."

휴대용 삼각자를 꺼내어 축척을 계산해 보니, 가장 가까운 도시인 퀼른까지 걸어 간다면 적어도 5일 정도는 걸어야 한다. 퀼른에는 마탑이 한 채 있으니, 퀼른까지만 걸어 가서 게이트를 이용 한다면 수도까지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쉬지 않고 걸어 알이 배긴 다리를 바닥에 쭉 뻗으며 등을 나무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평소 나에게 푸대접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떠났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 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좋아했으면 좋아 했지, 슬퍼하거나 후회 한다거나 하는 감정을 가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혹여나.. 혹시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슬퍼하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을까?

"...짜증 나게시리."

기껏 파티에서 빠져나온 참이건만, 그녀들 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까지도 그녀들을 생각하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난 나는 미간을 좁히며 눈가를 꾹 꾹 눌렀다.

내가 없어져서 곤혹을 겪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함께 다닌 3년 동안 끼니도 내가 해결해 주고, 파손된 장비 손질을 비롯한 기타 잡일들도 내가 다 해결해 주었는데, 그녀들끼리 알아서 잘하고 있을까?

....뭐, 나중에 다른 레인저 출신 척후병을 영입 한다거나 하지 않겠는가?

"....내가 볼 때는 레인저 보다 조리병이 더 필요해 보이는데 말이야."

나는 등에 멘 작은 가방을 열어 보급품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펴 보았다.

보존 식량은... 어림잡아 3일치.

마물들이 득실득실 한 숲 속에서, 사냥할 수 있는 사냥감이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은 깔끔하게 접는 편이 낫다. 아껴 먹는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수통의 물 만큼은 아직 넉넉하니, 굶주린 배만 부여잡고 열심히 걷는다면 5일 안에는 퀼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 ..!

­ *#@@##!!

물론, 무사히 도착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저 멀리서 들리는 고함 소리에, 나는 천천히 쇠뇌의 현을 잡아당기고, 볼트를 통아에 걸며 소리가 나는 쪽을 노려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소리... 어디서 들었더라..

마치 쇠와 쇠가 부딪치는 듯한... 어...

"...또 뭐야 시발."

확실한 건, 저쪽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숲 도적들이 약탈을 벌이는 흔한 상황으로 치부하기에는, 마왕군이 코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숲에서 도적질하는 놈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장전된 쇠뇌를 왼손으로 들고, 언제든지 뽑을 수 있도록 오른손은 검의 손잡이를 잡은 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갔다.

­ 조금만 더... 안 돼!!

­ 쿠익... 오늘은 상등품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짙어지는 혈향과, 절박한 인간들의 목소리.

그와 반대로, 살육의 희열을 느끼며 잔뜩 고양된 함성을 내지르는 마물들의 소리에, 나는 최대한 조용히 풀 숲을 뛰어 갔다.

코 앞에서 들리던 전투의 소리는 어느새 점차 잦아들었고, 이내 마물들의 웃음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리며 시야를 가리는 풀을 옆으로 슬쩍 제치니, 커다란 나무 몽둥이를 어깨에 걸친 오크 여럿이 중갑을 입은 여기사와 무릎 꿇은 병사들의 앞에서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보였다.

"퀴익!! 맛이 좋아 보이는 계집이다!"

"젠장..... 길을 헤매지만 않았더라면..."

"영애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모자랐던 탓에.."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려던 나는, 보고야 만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의 뒤로 보이는 보급 마차에 잔뜩 실려 있는 보급품들을.

...이거 잘하면 퀼른까지 굶어가면서 가지 않아도 되겠다.

좋아. 지금 당장 저 사람들을 구해주러...

"쿠익! 너! 이 몸의 반려 가 된다면 살려 주겠다!"

"큭... 죽여라!"

..나가려던 찰나, 튀어나와 버린 '그 대사' 에 나는 얼어붙은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조금만 더 지켜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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