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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3화 (3/106)

〈 3화 〉 3. 빈 자리는 크게 느껴지고

* * *

"크윽... 놔아..!! 이거 놔!! 차라리 죽이란 말이야! 흐윽.."

...시발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갑자기 튀어나온 '그 대사' 에 잠시 혼을 빼앗겼던 나는, 머리채를 붙잡힌 여기사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항을 하는 여기사를 붙잡고 낄낄 거리는 오크들의 뒤를 돌아 여기사가 정면으로 보이는 풀 숲에 위치한 나는, 빠르게 오크들의 동향을 살펴 적들의 수를 눈대중으로 어림 잡았다.

둘 넷 여섯... 대충 열 넷 정도.

그중 열마리 정도는 여기사와 붙잡힌 병사들 근처에 모여서 히히덕 거리고 있고, 나머지 넷은 각자 여기저기 흩어진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지성이 낮은 야생의 부족 오크들과는 다르게, 나름 체계가 잡힌 행동... 결정적으로, 경화시킨 가죽 경갑에 그려진 불길한 표식.

마왕군의 끄나풀 들이군.

나는 발소리를 죽인 채 내가 숨은 풀 숲 앞에 서 있던 오크의 얼굴에 천을 둘러 낚아 챘다.

"...?!!?!!"

재빠르게 천으로 입을 틀어 막고, 오크의 육중한 몸을 풀숲으로 끌어 당긴 다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숏소드를 목에 가져다 대었다.

"#$@&$&?!!... #$$@!..!!!"

"쉬이.... 조용. 뒤 돌아보면 죽는다."

메텔 왕국의 정예 부대인 레인저에서 단련된 은신 기술은 조금의 잡음도 용납하지 않는다.

걸을 때 풀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붙잡은 인질의 숨소리도, 심지어 심장의 박동 소리 까지도.

서슬퍼런 검날로 목을 살짝 베어주니, 날뛰려던 오크가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말을 잘 듣는 친구 구나? 자.. 지금부터 잠깐 입을 열어 줄테니까 묻는 말에 대답해. 소리지르면 재미 없을 줄 알아. 알아 들었지?"

손바닥에 느껴지는 입김이 거칠어 지고, 오크의 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인다.

다시한번 고개를 주억거리는 오크의 입을 막은 천을 내리고, 오크의 목젖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혹시나 소리를 지르려 한다면, 그대로 성대를 뜯어 버리리라.

"쿠익... 케흑... 헥..."

"그래 그래. 대답할 준비가 됐으려나?"

"퀴익.... 네 놈.. 대체 정체가 뭐... 뭐냐..."

"오... 아냐 아냐. 대답이 틀렸어... 이럴 때는 '네' 라고 하는거야."

"...원하는게 뭐지?"

대답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뭐, 넘어갈까.

"자.. 우선 이름과 소속은?"

"꾸익... 마왕군 제 7군단 붉은 깃털 부대.. 모르그.."

"...그래, 모르그. 너희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마왕군은 숲 내부에 들어온 용사일행을 쫓는게 아니었나?"

"..우리는.. 쿠익..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서 따로 움직이는 부대다... 퀴익.. 우리는 숲 끄트머리 에서.. 근처에 있는 인간들의 부대에 보급품을 나르는.. 놈들의 처리를 맡았다.."

­ 퀴익!! 모르그는 어디 갔지!

­ 모르겠다. 쿠익! 모르그!! 모르그 어디 있나! 꾸익!

...시간이 없다. 여기사의 저항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다행인 점 이라면, 오크들이 곧바로 여기사를 덮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일까.

여기사가 앙칼지게 반항하는 모습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구경하는 오크들을 힐끔 바라본 나는, 모르그 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래, 모르그. 눈대중으로 봤을 때는 열 넷 정도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놈 들은 없나?"

"...말 해줄 수 없다... 꾸익!"

"그럴 것 같았어."

그대로 목을 움켜 잡아 성대를 뜯어 낸 뒤, 피를 울컥 거리며 바람 새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면서 천천히 죽어가는 모르그를 나무 뒤에 숨겨 놓고 꿈틀거리는 성대를 풀 숲에 던져 버렸다.

저쪽에서도 아까까지 전투를 벌였던 참이라, 피냄새를 들키는 일은 없었다.

­ 쿠익! 모르그! 어디 갔나!

­ 모르그, 오줌 누러 갔나? 꾸익!

모르그가 밝히지 않았던 것과 달리, 실제로 주변에 또 다른 기척이 느껴지진 않는다.

나는 조용히 쇠뇌를 들어 모르그를 찾는 오크 둘을 조준하고, 바로 볼트를 장전할 수 있도록 칼자루를 쥔 손가락 사이에 연막 볼트를 끼웠다.

바람이 잦아들고, 가늠쇠와 볼트 촉 끝으로 시야를 집중한다.

옆에 서 있던 오크의 머리와 다른 오크의 머리가 사선에서 겹치는 순간.

­ 파앙!

철사처럼 얇게 만들어진, 단단하지만 유연한 미스릴 와이어를 여러줄 꼬아서 만든 현의 엄청난 힘을 그대로 싣고 날아간 볼트는, 깔끔하게 오크 두 마리의 관자놀이와 미간을 헤집고 지나갔다.

­ 퍼석!

오크 둘을 관통한 볼트가 나무를 쪼개는 소리와 함께 나무에 박히고, 여기사와 병사들에게 몰려 있던 오크들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일 때, 나는 이미 두발 째를 장전 했다.

레인저에서 복무하던 시절에도, 부대 내 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었던 내 전매특허 기술인 속사.

놈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바로 장전된 연막 볼트를 쏘았다.

­ 퍼엉!!

오크 하나의 가슴팍에 그대로 박힌 볼트가 엄청난 연기를 뿜어내며 터지고, 피 안개와 연막으로 인해 순식간에 시야가 가려진 오크들은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뀌익!! 무슨 일이냐!!"

"인간! 인간이다! 적이다!!"

나는 숏소드를 단단히 부여잡고 재빨리 풀 숲에서 튀어나가 오크들을 향해 달렸다.

연막의 끄트머리에서 콜록거리며 빠져나오는 오크의 목덜미를 빠르게 썰고, 피가 뿜어져 나오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오크의 뒤에 있던 또 다른 오크의 미간에 쇠뇌를 쏘았다.

모르그를 포함해서 순식간에 여섯이 쓰러졌고, 남은 적은 여덟.

또 다시 연막을 빠져 나오는 오크 셋의 목을 베고 나니, 점차 연막이 걷히고 있었다.

"컬록!!! 쿨럭!! 케흑..!! 모.. 모두 모여라! 흩어져 있으면 안된다!! 꾸익!"

역시 마왕군에 소속된 오크다 이건가. 지능이 상당히 높다.

나는 피가 묻은 숏소드를 가볍게 털어 피를 흩뿌린 뒤, 반 정도 걷혀 시야가 어느정도 드러난 연막 속에서 남은 오크들을 모으려는 부대장 오크의 위치로 시선을 돌렸다.

쇠뇌에 갈고리 볼트를 걸고, 부대장 오크의 목덜미를 향해 빠르게 조준한 뒤, 쏜다.

­ 푹!

"꾸이이익!!!!! 인간!!! 끄르륵... 어디 있는..!!!"

부대장 오크의 목을 관통한 갈고리가 보기 좋게 걸리고, 밧줄로 연결된 갈고리 볼트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쇠뇌를 강하게 잡아 당겼다.

마치 낚시바늘 처럼 목에 걸려버린 갈고리 볼트에 의해 힘 없이 끌려오는 부대장 오크쪽으로 뛰어가 심장에 숏소드를 박아넣고, 거의 다 걷힌 연막 속에서 살아남은 오크들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했다.

앞에서 콜록거리는 오크 둘, 오른쪽에서 엎드린 채 뿌연 시야 속에서 떨어진 무기를 찾는 오크 하나, 그리고 방금 터진 연막 볼트의 잔해가 눈에 튀어 들어간 모양인지, 피가 흐르는 눈을 연신 문지르며 고성을 내지르는 오크가 왼쪽에 하나.

갈고리 볼트를 분리한 뒤 빠르게 일반 볼트를 장전한 나는, 앞에서 콜록거리는 오크 둘을 향해 볼트 두 발을 속사로 발사하고, 실명한 오크의 목을 노려 투척 단검을 던진 뒤, 엎드린 채 바닥을 더듬거리는 오크에게 뛰어가 뒷 목에 칼을 박아 넣었다.

연막이 완전히 걷히고, 서 있는 오크는 없었다.

* * * * *

"좆같은... 용사년 이었으면 칼질 한번에 싹 다 뒤졌을텐데."

나는 오크들이 여기저기 드러누운 땅 위를 걸어 다니며 아직 멀쩡한 볼트를 회수했다.

오리하르콘 볼트 촉을 달고 있는 이 볼트는 가격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싸서, 용사 파티를 나온 내 입장 에서는 한 발도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건진 볼트는.. 세 개 인가.

"저... 저기.."

상태가 괜찮은 볼트를 통에 담고 있는 찰나, 연막 때문에 콜록거리던 여기사가 나를 향해 말을 걸며 다가왔다.

"예?"

"저는 알렉시스 공작가의 장녀, 오르엔 알렉시스 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경의 존함을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알렉시스... 알렉시스 공작...

"....아."

생각났다.

3년 전 용사 일행과 왕을 알현했을 때, 왕궁의 알현실에서 왕 옆에 서 있던,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아저씨.

처음 알현실에서 만났을 때, 평민인 내게 '용사 파티에 평민으로 들어가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른다' 라며, 남작 지위를 줄테니 나중에 자신의 가신으로 들어 오라고 내게 제안했던 남자.

"...레인저에서 복무 했던 오스틴 이라고 합니다. 알렉시스 공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굳이 용사 파티의 일원 이었다는 말을 밝히고 싶지 않았기에, 레인저에서 복무 했던 사실만을 이야기 했다.

"오스틴... 오스틴....... 혹시.. 용사님과 함께 계셨던..?"

염병, 대번에 들켰다.

"...저를 아십니까?"

"알죠! 당연히 알죠! 3년 전에 왕궁에서 만나 뵌 적이 있답니다! 오스틴 경도 저를... 기억 하시나요..?"

평민인 내게 경 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꼴이 퍽이나 웃겨서,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알렉시스 공작님의 뒤에서 옷깃을 부여 잡고 쭈뼛거리던 영애님 한 분이 기억 나네요. 어느새 어엿한 아가씨가 되셨군요."

"읏... 짖궂어요. 정말..."

성인 남자가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중갑을 걸친 채로 부끄러워 하는 알렉시스 공녀의 모습에 묘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잠시, 나는 그녀의 뒤에서 부상자들을 치료 하는 병사들을 바라 보았다.

"알렉시스 공녀님 께서 이런 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알렉시스 공녀는, 쓰러져 있는 병사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마왕군과 대치중인 부대에 보급품을 전달하기 위해 퀼른에서 출발했습니다만... 부끄럽게도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숲 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딱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최전선에 있는 부대들은 부대마다 레인저를 두 명씩 배정받는것이 정석이지만, 레인저는 어중이 떠중이들을 아무나 막 들이는 부대가 아니다.

인력은 한정되어 있고,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그 결과가 이 꼴이라는 소리지.

아마 용사파티 에서도 수도로 직접 돌아가서 구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레인저를 구하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다.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제가 동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보급 마차는 애저녁에 부서진 상태고, 부대원의 절반이 오크들의 습격으로 사망한 상태에서 임무를 속행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내 말을 들은 알렉시스 공녀가 화색을 띄우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물론이죠! 오스틴 경이 동행 해주신다면, 정말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알렉시스 공녀의 동의를 얻은 후, 보급품과 식량을 넉넉히 챙긴 나는 병사들의 선두에서 알렉시스 공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저... 오스틴 경?"

"네, 알렉시스 공녀님?"

"그... 헌데 용사님과 일행 분들은 어디에...?"

"...아, 그."

지도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파티 나왔거든요, 저."

* * * * *

"씨발... 씨발..!! 아드리엔! 대체 이 새끼들 어디에서 쏘는 거야!!"

"오른쪽! 오른쪽 나무 사이에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그 오른쪽이 어디냐고!!!"

어느새 코 앞까지 날아온 불덩이를 성검으로 베어낸 용사, 이유정은 아드리엔을 향해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나타난 스켈레톤 아크 메이지와 끝을 모르고 덤벼드는 상급 구울 떼로 인해, 이미 견갑은 찌그러지고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 씨바알... 그레이시! 앞장 서!! 마야!!!"

"크읏.... 방패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마야.. 서둘러라..!"

"으읏... 바.. 바람이여!"

마야가 일으킨 돌풍이 방금까지 불덩이가 날아오던 곳을 휩쓸고, 술자였던 스켈레톤 아크 메이지가 파괴당함으로서 상급 구울들이 슬라임처럼 녹아 내렸다.

"후우... 후....... 왜 이렇게 힘든거야? 대체 뭐냐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성검을 땅에 박은 용사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손쉽게 해치웠던 적들이 갑자기 너무나도 까다로워진 작금의 상황에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오스틴의 부재 라는 것은, 그녀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쯤되면 모르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오스틴 씨를.. 다시 데려 와야 해요. 도시로 돌아가서 장비 수리도 받아야 하구요."

한번의 전투로 체력이 바닥이 난 이사벨이 주저 앉은 채로 힘겹게 말하자, 파티에 잠시 침묵이 내려 앉았다.

여지껏 그 누구도 꺼내지 않던 이름이 다시 거론되자, 너나 할것없이 눈치를 보던 와중 아드리엔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젠장, 그래. 오스틴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 해야겠어. 이제와서 수도로 돌아가서 새로운 척후를 들일수도 없는 노릇이고."

"음... 확실히, 새로운 척후를 들이는 것은 힘들것 같군. 최근 레인저 에서 인원 부족으로 인해 인력 파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수도로 가서 새로운 척후를 영입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용병 길드의 도적 정도 겠지."

그레이시가 그을리고 찌그러진 방패를 만지작 거리며 아드리엔의 말에 동조하고, 구울의 피를 닦아내던 마야가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찾으러. 가자. 오스틴."

힘겹게 일어선 그녀들은, 오스틴이 남긴 몇 안되는 물건 중 하나인 지도를 펼쳐 가장 가까운 도시를 물색했다.

오스틴이 그동안 걸어왔던 루트를 확실히 기록 해 놓았기 때문에, 그녀들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퀼른."

만약 오스틴이 우리를 떠났다면, 필시 이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용사는 성검을 꼭 움켜쥐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오스틴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끌고 오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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