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 고양이와 궁지에 몰린 쥐
* * *
"안녕하세요! 척후를 맡은 오스틴 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첫 인상은 평범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푸른빛의 눈동자.
조금 맹해 보이는 그의 행동거지와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그의 유려한 말솜씨는,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던 파티원들의 사이에 스며 들어 기름이 되어 주었다.
"그때! 내가 그 새끼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면서 말 한거지. '후임 관리 똑바로 안하냐?' 라고 하면서..."
파티원들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할 때도.
"내가 레인저에 있을 때는 말이야? 진짜 거짓말 안하고 집채만한 워 울프가 나왔다니까? 아니, 내가 들어도 안 믿기긴 하는데, 진짜로..."
그레이시와 아드리엔의 의견 충돌로 파티의 분위기가 서먹해졌을 때에도.
"젠장.. 이사벨! 정신 차려! 이 씹... 아드리엔! 포션!! 포션 없어?!"
상급 마물인 라바 드레이크를 처음 상대하다가, 이사벨이 부상을 당했을 때에도.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저 놈 존나게 세다! 왼쪽! 왼쪽 조심해!! 온다!!!"
마왕의 수하 중 한 명인, 제 8 군단장 기간트와 처절한 전투를 벌였을 때에도.
그는 언제나 우리 파티의 중요한 순간 마다, 파티의 기둥이 되어 주었다.
"자! 기간트인지 뭐시기인지 잡느라 고생한! 나 오스틴, 마야, 이사벨, 아드리엔, 그레이시, 그리고... 용사 이유정! 모두 수고 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처음 마왕의 8 군단장 중 하나를 잡았을 때에도, 그는 끊임없이 브리핑을 하느라 쉬어버린 목소리로,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를 격려해 주었다.
힘에 부치는 순간이 찾아올 때 마다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언제나 제일 먼저 행동으로 옮기던 남자.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의 청명한 하늘 처럼 빛나는 푸르른 눈동자 속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들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오스틴 이라는 남자 에게 동화 되었다.
하지만, 마물들을 상대하며 벌어지는 사선을 넘나들 정도의 긴박한 수백, 수천번의 전투는, 아직 어린 나이였던 용사를 비롯한 나와 다른 파티원들 에게는 너무나도 고된 싸움 이었다.
오스틴이나 다른 파티원이 부상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파티에는 먹구름이 짙게 끼었다.
매 전투마다 쇄도해 오는 마물들의 공세.
코가 저릴만큼 흘러 들어오는, 짙은 피 냄새.
그리고 정말로 죽을 뻔 했던, 마왕군의 제 4 군단장 전선파괴자 우르간 과의 전투.
매 순간 순간이 고비였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후우... 괜찮아. 이 정도 상처는 레인저에 있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하지만 그는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미련하다, 고 생각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 될 것을. 힘들면 조금 쉬어도 될 것을.
"자 자. 다 나았으니까, 다시 출발!"
나약한 나와 다르게, 그는 강했다.
계속되는 전투와 몇 번의 실패로 인해 예민해지는 다른 파티원들의 응석을, 그는 쓰게 웃는 낯으로 묵묵히 들어 주었다.
"오스틴... 오늘은 정찰 하지 말고 와서 어깨좀 주물러줘..."
"아니.. 아드리엔. 전투에 앞서 정찰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내가 누누이...."
"아, 됐고! 쫌!! 그냥 어깨 조금만 주물러 달라고! 매일 쉴 새도 없이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그가 우리의 응석을 한 번 받아 들인 뒤 부터, 파티원 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오스틴에게 부과되는 일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식사 준비, 빨래, 야영지 물색, 간호, 장비 점검 등.
온갖 잡일을 떠맡겨지듯이 받은 오스틴은, 그럼에도 애써 웃는 낯을 유지했다.
오스틴, 너는 힘들지도 않은거야?
힘들면 힘들다고 말 하면 되잖아.
억지로 웃어가면서까지 우리를 먼저 생각해주는 이유가 뭐야?
"아까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에는 말이야? 아마 거기서..."
자신을 한계까지 채찍질 하면서도, 억지로 웃는 낯을 하며 처음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그가 싫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파티원들을 더 확실히 말리지 않은, 나의 미지근한 태도가 혐오스러웠다.
"마야, 가방 무거우면 들어 줄까?"
"...괜찮아."
"어... 무겁지 않아?"
"마나를 수련한. 마법사 들은. 육체도 강해."
"...아니, 그래도..."
"오스틴."
"어, 응?"
"말. 너무 많아."
".....미안."
파티의 분위기를 띄워주던 오스틴은, 그 날 이후로 말수가 없어졌다.
"전방에 블랙 하운드 떼가 있어. 지나갈 때 까지 숨어있자."
"푸른 오우거 한테는 불 속성 마법 보다는, 번개 속성 마법이 더 잘 통해. 마야, 차지 볼트 준비."
어느새 다정했던 말투는 점차 사라지고, 원인과 결과만을 따지는 냉철하고 차가운 말투가 그에게 자리 잡게 되었다.
슬펐다.
우리 파티의 큰 축을 담당했던, 그렇게 밝고 활기찼던 오스틴이 저렇게 바뀐것이 우리의 잘못 이라는 것은, 나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섣부르게 단정 짓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카드 뒤집듯 태도가 바뀐 그가 미워지기도 했었다.
몇번이고 주저앉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더는 걷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용사 파티의 일원이다.
마왕을 처치할 수 있는, 대륙의 유일한 희망 이라는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자리.
그러한 위치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라는 선택지는 용납되지 않았다.
"오스틴! 오늘 밥도 형편 없었어! 스튜를 끓일 때는 고기좀 더 넣으라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 듣는거야?"
여느 때 처럼 오스틴의 면전에 가슴 시린 독설이 파고들었다.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힘겨워 보이던 것은, 내 착각 일까.
"...오스틴. 자다가 졸리면... 나 깨워도 돼. 내가 이어서 설게."
그나마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양심이 내 가슴을 찔렀기 때문 이었을까?
나는 되도않는 동정을 보이며 천막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불침번도 멋대로 떠맡기고 천막으로 들어간 다음 날 아침.
오스틴은, 결국 우리를 떠났다.
* * * * *
".....마야."
이런 씨발, 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설마 아까 시장에서 숙소로 향할 때, 미행 당했나?
대체 어디서부터 미행을 당한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찰나,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마야가 입을 열었다.
"오스틴. 염치 없다는 건 알지만. 잠깐 들어가도 될까?"
"...마야. 나는 이제 너희와 함께 할 생각 없어. 더 이상 엮이고 싶지도 않고."
"아냐. 지금은... 혼자 왔어."
"...뭐?"
용사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 까지 데려왔을 것 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혼자 찾아 왔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문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어 복도를 살펴 보았다.
용사는... 없군.
"...그래서? 혼자 왔는데, 뭐 어쩌라고."
뭐, 혼자 왔던 떼거지로 몰려 왔던 내 입장은 변함 없다.
내가 여전히 차가운 태도를 고수하자, 마야는 고개를 푹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용사나 다른 파티원들에게는... 말 하지 않았어..."
"........"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마야의 눈가는, 눈물로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오스틴... 미안... 미안해... 흑... 흐윽..."
티 없이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마야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어느새 훌쩍이며 울기 시작한 마야는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흐느꼈다.
"흑... 히끅... 미... 미안해... 홀대 해서, 미안해... 히윽... 너무 미안해서... 흑... 오스틴이 싫어할 걸 알면서도... 따라 왔어... 흐극..."
...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갑자기 홀로 찾아와서 문을 두들기더니,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하는 현 상황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으며 미간을 좁혔다.
"후......."
"미안해... 훌쩍... 내... 내가 뭐든지 할게... 흑... 다시... 다시 파티에 돌아와 줘... 흐윽... 나... 오스틴이 없으면... 안 돼..."
"...마야."
"오... 오스틴이 없으면... 나... 훌쩍... 흐에엥..."
"마야."
"아... 으... 응! 킁... 미안... 히끅!... 계속 말 해..."
뭐라고 하긴, 뭘 어째.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는 더이상 너희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 툭툭 내뱉었던 그 가시돋힌 말들이, 나한테는 어떻게 다가왔을지 생각은 해 봤어?"
내가 단호한 말투로 말하자, 눈물을 흘리던 마야는 잠시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 보며 입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귀를 축 늘어 뜨리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 깔았다.
"내가 파티에서 맡았던 역할은 척후야. 밥 짓기나 빨래, 안마와 다리 주무르기가 아니라. 이 씨발, 나는 내가 무슨 가정부로 끌려 온건가 싶었어."
"........"
"...이야기를 질질 끌고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파티로 돌아가지 않아. 그러니까 돌아가. 두번 다시 나를 찾아오지 말고."
"...짓말."
"그럼 난... 뭐?"
"거짓말."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 앞으로 너희랑은 연 끊고 싶다니까? 무슨 거짓말 타령..."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잠깐만. 느낌이 좋지 않은데.
"......마야?"
여전히 바닥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마야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이용해 문을 쾅 밀어 닫았다.
철컥.
"마야...? 문은 왜 잠그는..."
"...아까, 알렉시스 공녀... 라고 했지."
"어? 내가 그랬나? 하하..."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향해 다가오는 마야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던 나는, 어느새 구석에 몰린 채 등을 벽에 기대었다.
"알렉시스... 알렉시스 공녀... 그 년이 너를. 꼬드긴거야?"
"...뭐?"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맞잖아."
그리 말하며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마야의 표정은, 거짓말 안 하고 사람 한 명 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여 버릴 것 같은 차가운 표정 이었다.
심각한건, 그런 마야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 라는 거고.
그렇게 내 눈을 계속해서 응시하던 마야는, 갑자기 내 팔을 꽉 잡고 내 몸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쿠당탕!
"악... 이 씨발... 마야! 우선 진정좀 해!"
"가만히 있어. 그러다. 죽어."
"...선생님. 말로 합시다 우리."
넘어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던 마야는, 갑자기 몸을 숙이며 내 위로 엎어졌다.
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채로 굳어 있는 사이, 내 위에 몸을 겹친 마야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 묻더니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스읍... 하아...... 오스틴 냄새. 8일 만에 맡네..."
"...마야. 우리 이러지 말자. 너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알렉시스 공녀... 그 년이. 너를 꼬드겼지? 다 알아."
"아니, 알긴 뭘 알아! 그런거 아니라고! 이 씨팔, 너 진짜 자꾸 이럴래?"
"....아니. 못 믿어."
내 목덜미에서 얼굴을 떼어 낸 마야는, 이내 숨소리가 들릴 만큼 내 귀로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속삭였다.
"하아... 우리를... 나를 버리고. 어딜 가려고...? 아무데도 보내지. 않을 거야."
완전히 마운트 포지션을 잡힌 나는, 마나를 이용해 육체를 강화한 마야의 손에 붙들려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스틴. 절대 떠나 보내지. 않을거야..."
어느새 고양이 처럼 세로로 갈라진 마야의 동공이, 내 얼굴을 향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