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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6화 (6/106)

〈 6화 〉 6. 엎질러진 물

* * *

­ 똑똑

마야의 입술과 내 입술이 부딪치기 직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마야의 얼굴이 우뚝 멈춰 섰다.

­ 오스틴 경!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까부터 계속 큰 소리가 들려서...

알렉시스 공녀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굳게 닫힌 문을 뚫고 들려옴과 동시에, 문의 손잡이가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귀를 쫑긋거리며 문 밖의 소리에 집중하던 마야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는 찢어진 동공을 더욱 좁히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아... 아니, 그... 숲에서부터 같이 동행해온 분 인데.. 일단 좀 떨어져."

"...흐응."

코끝이 맞닿는 거리에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세로로 찢어진 마야의 눈이, 이내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있는 방문쪽으로 향했다.

­ 오... 오스틴 경? 안에 계신거 맞죠?... 들리시면 대답좀 해 주세요..

내가 반응이 없자, 잠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를 내던 알렉시아 공녀가 다시금 외쳤다.

­ 오스틴 경...! 열쇠를 받아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문을 노려 보던 마야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거친 숨결을 내뱉었다.

"후으...... 알렉시스 공녀... 그 여자 구나...?"

"......크읏... 아... 아닌데?..."

"아니긴. 맞잖아."

자꾸만 내 귀를 간지럽혀 오는 뜨거운 숨결에,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크읏... 그래... 시팔 맞으면 어쩔 건데? 아니, 애초에 알렉시스 공녀님이 꼬드겨서 파티에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라니까?"

"...알아."

".....뭐?"

"나도 알아, 오스틴. 우리가 너를 못살게 굴어서... 파티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

"...알면서 왜 이러는 거야."

허리를 펴고 잠시 내 얼굴을 내려다보던 마야는, 다시금 내 몸 위에 엎어지더니 고양이처럼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그냥. 내 고집이야. 나에겐 오스틴이 필요해."

"....그건, 잡일을 맡던 내가 사라져서 곤란하다. 라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되냐?"

".....아니야."

내 가슴팍에 뺨을 비비던 마야는, 이윽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원래대로 돌아온 동공과 함께, 말라 버린 눈물 자국으로 인해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

"...그냥... 그냥 싫어... 오스틴. 네가 저 여자와... 저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또다시 울음을 터뜨릴것처럼 떨리는 마야의 목소리에, 나는 머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파티에 있을 때에는 매번 구박만 하며 나를 못 죽여서 안달이 났던 미친년들 중 하나가,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는 내가 바람이라도 핀 것처럼 같잖은 연인 행세를 하고 자빠졌다.

마야의 토가 나올 것 같은 이중적인 태도에, 나는 마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이제 슬슬 나와."

"우웅... 싫어..."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고 비음 섞인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젓는 건지.

아마도 후자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들어 줄 필요가 없다.

"...마야."

"...오스틴..."

나는 애틋하게 나를 바라보는 마야의 눈을 잠시 똑바로 응시하다가, 내 허리를 깔고 앉은 마야의 목에 자유로운 두 다리를 번쩍 들어 휘감았다.

"...어...어..?!"

마야가 아직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다리를 교차로 겹쳐 마야의 목을 휘감은 다리를 그대로 내리면서 순식간에 나와 마야의 위치가 역전 되었다.

"이익... 오스틴...!"

나에게 항의하려는 듯, 볼을 조금 부풀린 채로 나를 노려 보며 팔을 움직이려는 마야의 몸을 고정 시키기 위해, 나는 마야의 몸을 휙 뒤집어 팔다리를 이용해 마치 뱀처럼 휘감았다.

"흐앗...! 오스틴...!! 지금 무슨..."

"쉿... 조용."

내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마야의 어깨를 꽉 조이자, 팔이 빠진다는 미래가 예상 된 건지, 마야의 입이 다물어졌다.

"좋아. 이제 이야기가 되겠네."

"......어떻게..."

"응?"

"어... 어떻게 오스틴이 나를... 설마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허, 참."

내가 이리도 얕보이고 있었나. 하는 마음에, 나는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혀를 찼다.

"마야. 내가 맨날 밥이나 해주고 시중이나 들어 줘서 잊었나 본 데, 나는 레인저에서 4년을 굴렀다. 일 대 일의 상황에서, 심지어 대인 전투 에서는 용사나 그레이시가 아닌 이상 질 수가 없어."

지금까지는 널 봐주고 있었던 거다. 라는 뜻이 은연중에 담겨 있는 말 이었다.

그리고, 좋게 말해서 천재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영악한 두뇌를 가진 그녀 역시 내 말을 이해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지만... 아드리엔은 항상. 메텔 왕국의 레인저는 허접하다고..."

아드리엔. 그녀는 항상 나를 비웃으며 내가 복무했던 레인저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 아드리엔. 그 년이 왜 맨날 레인저들을 깔보고 있는 건지 알아?"

"...왜... 어째서..?"

"아드리엔은 내가 한 발을 쏠 시간에 몇십 발이 쏟아지도록 빠르게 쏠 수 있는데, 나는 그에 비해 느려 터진 쇠뇌를 쓰니까."

아드리엔은 항상 내가 쇠뇌를 사용하는 것을 아니꼬와 했다.

전투 상황 중 내가 브리핑 해 준 적들의 위치에 쉴 새 없이 화살을 퍼붓는 동안, 나는 더 정확하고 관통력이 강한 미스릴 쇠뇌와 암기, 그리고 근접 전투 기술을 이용하여 용사를 서포팅 하며 적의 우두머리를 궁지에 몰아 넣는 역할을 맡았었다.

보통 마왕군을 이끄는 우두머리들은, 아드리엔의 만달레인 산 실버우드 화살 정도는 버틸 수 있었기 때문 이었다.

우두머리를 잃고 우왕좌왕 하는 오합지졸 들을 상대해 놓고, 전투가 끝나면 언제나 '그 느려 터진 쇠뇌좀 어떻게 해 봐라' 라며 내게 대놓고 면박을 주곤 했었지.

"아드리엔, 그 멍청한 년. 애초에 파티에는 각자가 맡은 역할 이라는 게 있어. 아드리엔은 대규모의 적이나 오우거 같은 거대 마물을 상대 하기에 적합한 역할이고, 나는 척후나 암살, 소규모 적과의 교전을 상정한 훈련을 받은 거야. 마야 너는 그런 멍청한 년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

"......그건."

"정말로 아드리엔이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는 거냐? 아드리엔 따위, 일대일 상황 이라면 1분 내로 죽여 버릴 수 있어."

아드리엔이 복무 했다던 엘븐 왕국의 궁수 기사단인 은빛 날개 순찰대는, 과거 바다를 건너 엘븐 왕국의 뒤를 공격하려 했던 마왕군의 거대한 해양 마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기사단 이다.

물론 엘프 들의 활 솜씨는, 특히나 은빛 날개 순찰대의 활 솜씨는 개인적으로 높이 사지만, 온갖 특수 볼트들과 파괴적인 미스릴 쇠뇌, 그리고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대인 전투 기술은 대 마물 전투에 특화된 아드리엔 에게는 쥐약 이다.

"마야."

"......."

"...마야."

"...엇... 응...?"

어딘가 얼이 빠진 마야의 태도에,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마야를 구속하던 팔다리를 풀어 주었다.

"여하튼, 다시 말하지만 나는 파티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제발 좀 꺼져.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대체."

"......."

"...하아......"

내가 단호한 태도로 다시금 축객령을 내리자, 마야는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리며 손을 조금씩 떨어 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대로 일어나서 문 앞으로 걸어가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나가. 그리고 앞으로는 얼굴 볼일 없으면 좋겠다."

아랫 입술을 꼭 깨물며 문 밖을 힐끔거리던 마야는, 이내 포기한 듯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질질 끌며 문밖으로 나갔다.

"...미안. 잘자."

"그래. 빨리 꺼져. 너 때문에 기분 좆 같아 졌거든."

마야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 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보자니, 마야의 모습이 사라진 뒤 알렉시스 공녀가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와 문을 열고 서 있던 내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허억... 헤엑... 오... 오스틴 경... 어째서 대답을..."

"죄송합니다. 깜빡 잠이 들어서 그만... 제가 사실 잠버릇이 나빠서, 조금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아......"

잠시 눈을 끔벅거리며 입을 오물거리던 알렉시스 공녀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진 것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으우...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아닙니다. 걱정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잠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끙끙거리던 알렉시스 공녀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 났다는 듯 고개를 들고 물었다.

"으으... 아, 참. 혹시 방금 내려 가던 고양이 수인의 마법사 소녀와 아는 사이 신가요?"

"......아니요.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아... 그게... 방금 급하게 계단을 오를 때 마주친 분이신데, 오스틴 경의 이름을 중얼거리시면서 울고 계시더라구요.."

"....저는 모르는 사람 입니다. 저 때문에 주무시는 도중에 깨셨을 텐데, 마저 주무시죠."

우물쭈물 거리는 알렉시스 공녀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어우, 추워."

유난히 서늘한 바람에 창문을 닫는 도중, 문득 저 멀리 여관에서 멀어져 가는 커다란 마법사 고깔 모자가 눈에 들어 왔다.

...오늘 밤은 창문과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자야겠다.

* * * * *

마야는 힘없이 걸어가며 용사와 파티원들이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 갔다.

아무리 후회 한들, 마야가 지금까지 오스틴에게 저지른 행동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었다.

아마 오스틴은 앞으로 파티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마야의 사과조차 받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훌쩍..."

동료들이 머물고 있는 방에 들어가기 전, 급히 눈물 자국을 소매로 닦은 뒤 방의 문을 열자, 오스틴을 어떻게 찾을지 논의중이던 용사와 파티원들이 마야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의문을 표했다.

"마야! 왜 이렇게 늦었어? 저녁도 안 먹어 놓고."

"마야. 대체 어디를 다녀 온 것인가? 계속 걱정했다."

"........."

자신을 따뜻하게 반겨 주는 아드리엔과 그레이시의 태도가, 마야에게는 오늘 따라 한층 더 어색하게 다가 왔다.

"응? 어디 갔다 온 거야? 마야."

용사, 이유정이 걱정 어린 눈길로 다가와 묻고, 마야는 오스틴을 방문했던 사실을 이야기해야 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냥. 산책. 하고 왔어."

"나 참. 말도 없이 나가지 말라니까."

마야의 대답에 용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하고, 마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녀들이 모여 앉은 틈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런 마야를, 방에 들어온 순간 부터 계속 바라보고 있던 이사벨이 마야의 곁에 슬그머니 다가가 앉았다.

"....?"

갑자기 달라붙어 오는 이사벨의 행동에 마야가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이사벨이 갑작스럽게 마야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마야... 산책 다녀 오신거 아니죠?"

"......."

"다 알아요. 이 냄새... 오스틴을 만나고 오신거군요...?"

귓가를 간질이는 이사벨의 숨결에, 마야는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아닌데."

"...그렇군요. 알겠어요."

의외로 순순히 떨어져 나가는 이사벨의 태도에, 마야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야를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운 채 잠시 바라보던 이사벨은, 이윽고 고개를 돌려 파티원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푸에취!!! 어으, 시발 감기 걸렸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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