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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7화 (7/106)

〈 7화 〉 7.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

* * *

마야가 떠난 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자리를 뒤척이던 나는 결국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8일 동안 마왕군이 포진해 있는 숲을 뚫고 도시로 오느라 내 몸은 피곤에 찌들어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마야가 내게 눈물을 보이며 사과를 한 뒤부터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어젯밤 미리 꾸려둔 가방을 메고 침대에 앉아 꾸벅 꾸벅 졸고있을 때 였다.

­ 똑 똑

짙은 피로감에 몸이 스르륵 앞으로 숙여지려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알렉시스 공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오스틴 경... 혹시 일어나 계신가요?

나는 반 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잠시 멍 하니 앉아 있다가, 이윽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방 문을 열어 젖혔다.

"아... 오스틴 경. 일어나셨군요."

내가 대답이 없자 다시 문을 두드리려 했던 모양인지, 알렉시스 공녀는 문을 두드리는 자세 그대로 굳은 채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 입니다. 알렉시스 공녀님."

"네. 그, 어제 오스틴 경이 오늘 최대한 빨리 게이트를 이용하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부득이하게 이른 시간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혹시 폐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감사합니다. 저야 일찍 가면 좋죠."

그렇게 서로 짧은 아침 인사를 건네고, 우리는 여관의 1층 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뒤 마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아까부터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과,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것이 느껴졌기에 굳이 먼저 나서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찰나, 알렉시스 공녀 쪽에서 먼저 침묵을 깨고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저... 오스틴 경."

"알렉시스 공녀님."

"ㄴ... 네?"

"이제 와서 말씀 드리지만, 굳이 제게 존칭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오스틴 이면 족합니다."

"...아..."

평민인 내게 경 이라는 존칭을 붙인다니, 아마 전 용사 파티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존칭이 붙지 않았겠지.

알렉시스 공녀가 계속해서 나를 오스틴 경 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치 내가 이전에 용사 파티의 일원 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서 전부터 신경 쓰이던 참 이었다.

"그럼... 오스틴...?"

"...예. 그거면 됩니다. 오히려 평민인 제게 경 이라는 존칭이 붙는게 이상하지요."

애초에 경 이라는 호칭은 기사들 에게나 붙는 호칭 이었으니까, 특별히 용사 파티라는 것을 상기시키지 않았어도 여전히 거부감을 드러 냈을 것이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으니까.

"실례했습니다. 해서, 하시려던 말씀은..."

"아! 그... 혹시 무례한 질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오스틴은 어떤 경위로 용사님의 파티를 탈퇴하게 되신 건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기껏 경 이라는 호칭을 그만두게 했더니 또 다시 용사 파티를 상기시키는 알렉시스 공녀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움찔 거렸다.

"...알렉시스 공녀님 께서는, 아카데미를 다니고 계신다고 말씀 하셨죠."

"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나는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알렉시스 공녀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 에서는, 주로 어떤 방식의 수업을 진행 합니까?"

내가 알렉시스 공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하자, 알렉시스 공녀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가며 대답해 주었다.

"음...... 일단 기본적으로는 교수님께서 강의실에서 강의를 해 주세요. 가끔씩 과제를 내어 주시기도 하는데, 보통 혼자서 할 수 있는 과제들이 보통 이지만, 한 학기당 두번 정도 임의로 조를 짜서 과제를 하는 조별 과제를 하기도 한답니다."

"알렉시스 공녀님 께서는, 조를 짜서 과제를 할 때 의견이 맞지 않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조원들은 어떻게 대하십니까?"

"...비록 그런 경험은 없지만서도... 처음에는 차분히 대화로 해결 하려 하겠지만, 그럼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교수님께 말씀을 드려서 조원을 바꾸거나 제가 다른 조에 가는 것이... 좋겠죠."

갑자기 이런건 왜 물어 보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알렉시스 공녀의 대답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카데미의 조별 과제 처럼, 모험가나 용병들이 이루는 파티 또한 별 다를바 없습니다. 저는 용사 파티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의도치 않은 마찰을 겪은 것이고, 그렇기에 파티에서 탈퇴 했습니다. 만족 하실만한 대답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사소한 일 이 있었던 것 뿐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알렉시스 공녀는 납득한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을 한다거나, 용사 파티의 좆같은 점을 폭로 한다면... 뭐, 속이 시원하기야 하겠다.

하지만, 나는 용사 파티의 불화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꼴을 별로 원하지 않고, 그럼으로 인해 또다시 그녀들과 엮이게 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어서 가시죠."

"...아, 네...!"

알렉시스 공녀는 내 대답을 들은 뒤 부터 마탑에 도착할 때 까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걸었다.

그렇게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을 유지한 채로, 우리는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때 쯤 마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렉시스 공녀의 신분으로 마탑의 입장을 허가 받고, 함께 마탑의 내부로 들어온 알렉시스 공녀는 오래전 자신의 가정 교사 였다는 마탑주를 잠시 뵙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굳이 옛 스승과 제자간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마탑의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은 채 알렉시스 공녀를 기다렸다.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일까, 알렉시스 공녀를 기다리던 나는 내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도 모르게 얕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꾸벅 꾸벅 졸음과 싸우고 있을 때, 내 머리에 무언가 살포시 얹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 폭신하고 부드러운 무언가에 내 머리가 누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편하다. 이대로 딱 한 시간만 자고........

"......?"

아까부터 자꾸만 볼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나는 뻑뻑한 눈을 힘겹게 뜨곤 흐려진 초점을 바로 잡기 위해 미간을 찡그렸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금발의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깃털처럼 쓸어 내리고 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미소.

"오스틴... 어제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셨나 보네요. 평소에는 주변을 경계하신다고 절대 졸지 않으시더니..."

"......이사벨."

내 눈 앞에는, 파티에 있었을 당시 웃는 낯으로 나를 매몰차게 대했던 성녀, 이사벨이 있었다.

* * * * *

"정말... 어젯밤에 대체 뭘 하셨길래... 꾸벅 꾸벅 졸고 계신 건가요?"

"......."

어젯밤 마야가 그랬듯,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이사벨의 태도에, 나는 말 없이 이사벨의 허벅지에서 일어났다.

이사벨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어제. 마야가 찾아왔죠?"

"...마야가 나에 대해 말 했나?"

내가 역으로 질문 하자, 이사벨은 여전히 속을 알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을 이었다.

"아뇨. 마야는... 다른 분들께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숨기려고 했다고 할까요?"

"...마야가?"

내가 믿지 못하는 말투로 묻자, 이사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야가 나에 대해 말 하지 않았다면, 이사벨은 대체 어떻게 내 위치를 알고 찾아 온 것 일까.

"후훗... 다 방법이 있어요. 너무 깊이 알려고는 하지 마시구요..."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한 이사벨의 말에, 나는 조금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왜 온거야?"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난 너랑 할 얘기 없는데."

"참... 그러지 마시구요."

나는 슬금 슬금 내 팔에 팔짱을 끼우는 이사벨의 행동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팔을 쑥 빼내어 의자의 맨 끝으로 이동했다.

이사벨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금 내 옆으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꺼져. 마야도 그렇고, 왜 자꾸 다들 이제와서 달라 붙는거야?"

내가 마야의 이름을 꺼내자, 다시금 내게 팔짱을 끼려던 이사벨이 멈칫하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왜?"

"어젯밤에... 마야랑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는데?"

"아뇨 그냥... 하아......"

내가 계속해서 대답하기를 거절하며 대화를 뚝뚝 끊자, 보기와는 다르게 참을성이 적은 이사벨은 답답한듯 한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한숨을 쉬어야 할 상황 아니냐?

"...오스틴. 어제 마야와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제 마야가 오스틴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네가 알든 말든 내 알바 아니고, 빨리 꺼져."

"어젯밤, 마야는 한숨도 못잤어요. 저도 그렇고요."

"아니 내 말 안들려? 옆에서 쫑알대지 말고 꺼지라고."

"마야는 제 바로 옆에서 잠을 잤거든요. 밤새 훌쩍이는 소리 때문에, 아드리엔이 깨기라도 할까 불안해서 정말 혼났답니다?"

"...이 여편네가 노망이 났나. 꺼지라니까? 아니면 내가..."

"미안해요."

"...뭐?"

온화한 얼굴을 가진 성녀 이사벨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여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파티에 있을때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에, 나는 이사벨의 사과에 시선을 돌려 이사벨과 눈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미안해요. 파티에서 제가 당신에게 행했던 모든 악행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릴게요. 미안해요."

"...이미 늦었다는거, 너도 잘 알잖아."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내가 되물어보자, 말끝을 흐리던 이사벨은 내 눈을 보기가 껄끄러웠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오스틴. 우리에게는 마왕을 잡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

"신기하네. 나는 이제 그딴 사명 없는데."

"오스틴... 제발, 파티 탈퇴를 재고해주실 수 없나요...?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요. 우리들의 노력을, 이렇게 저버리실 건가요?"

"...뭐?"

뜬금없이 '우리들의 노력' 을 들먹이며, 마치 자신들이 일궈낸 노력을 내가 무시하고 떠나갔다는 듯 말하는 이사벨의 태도에, 나는 어이가 없어져 잠시 정신이 멍 해졌다.

"우리들의 노력? 이 씨발, 너 말 다했냐?"

이 미친년의 뻔뻔한 태도를 보니, 어제 마야의 사과가 얼마나 진정성이 넘치는 사과 였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파티에 있을 때는 노예 취급하고, 다쳐도 힐도 안 해주더니, 이제 와서 뭐? 우리들의 노력? 야 이 미친년아. 사람 뚜껑 열리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 혓바닥 조심해서 놀려라."

내가 인상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음에도, 이사벨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오스틴. 제가 당신에게 했던 무례한 발언들은 사과 드릴게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저희는 마왕을 토벌하지 못해요. 부디 파티 탈퇴를 재고해주세요."

"그래. 재고해줄게. 방금 재고 해 봤는데, 탈퇴 하는걸로 결론 내렸어. 됐지?"

"오스틴... 계속 이렇게 나오실건가요...?"

"계속 이렇게 나오면, 뭐 어쩔건데. 한대 치게?"

"제발... 오스틴. 마왕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냥. 내 고집이야. 나에겐 오스틴이 필요해.'

아까부터 왜 이렇게 이사벨과 마야의 사과하는 태도가 비교되어 보이는 것인지.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한숨을 푹 내뱉으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려 했다.

"....오스틴. 정말 이렇게 나오실건가요?"

이사벨이, 내 속을 벅벅 긁어대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는데, 안되겠군요. 오스틴, 자꾸 이러시면 저도 용사님을 모셔올 수 밖에 없어요. 강제로 끌려 가는 것 보다는,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야."

"마음이 바뀌셨나요? 잘 됐네요. 저도 강제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

­ 짜악!

여전히 멋대로 나불거리는 이사벨의 뺨에, 나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고개가 확 돌아간 이사벨은, 벌써 빨갛게 부어 오르는 뺨을 부여잡고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 보았다.

"이 씨발년아. 다시 지껄여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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