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8. 시한폭탄
* * *
"이 씨발년아. 다시 지껄여봐."
내가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며 따귀를 놓자, 이사벨은 한 손으로 얼얼해진 볼을 감싸며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오... 오스틴...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
짜악!!
여전히 헛소리를 하는 이사벨의 태도에 질려버린 나는, 이번에는 반대쪽 볼을 향해 따귀를 올렸다.
이사벨의 오른뺨을 강타하는 내 손바닥과 함께, 이번에는 왼쪽으로 얼굴이 돌아간 이사벨이 눈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스틴...!! 대체 지금 무슨 짓을..."
"닥치고 대가리 갖고와."
"아...... 미... 미안해요... 제가 말이 헛 나와서..."
"미안하면 다야? 이 씨발, 그런 대단한 면죄부가 존재할 줄은 몰랐네. 나도 죄송할테니깐 일단 좀 맞자."
방금전 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용사를 불러 오겠다며 나를 협박하던 태도와는 다르게, 이제와서 용서를 구하는 그녀의 태도에 이골이 난 나는 다시 한번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
짜악!!!
"아흑...!"
...어... 이번에는 좀 많이 세게 때린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당황한 사이, 볼에 시퍼렇게 멍이 든 이사벨이 손을 들어올려 힐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흐윽... 히... 힐...!"
이사벨의 손에서 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고, 이윽고 내게 얻어 맞아 멍이 들었던 뺨이 평소같은 새하얀 피부로 돌아왔다.
하지만, 힐을 한다고 해서 맞았던 고통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
나는 다시한번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이사벨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야.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좆같이 굴렀는데, 이제 와서 뭐? 강제로 끌려가기 싫으면 순순히 따라 오라고? 너희가 씨발 나랑 같은 사람 새끼들이 맞냐?"
"히끅......"
뺨을 문지르며 눈물을 닦던 이사벨은, 방금 전 까지 뺨따구를 후리던 내 손바닥을 보더니 숨을 집어삼키며 몸을 움츠렸다.
좋아. 이제야 대화가 통하겠구만.
역시 말이 안 통하면 몸으로 대화 하라던 우리 아버지의 말씀은 어디 하나 틀린 곳이 없다.
"하여튼, 어제 마야에게도 말 했지만 나는 파티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내가 니 뺨 때린건 미안한데, 네가 먼저 내 속을 벅벅 긁어대는 말을 했잖아. 알지?"
"흐윽... 흑..."
"...그래. 마지막에 때린건 내가 힘 조절을 못했어. 그건 미안해. 그렇게 아팠냐?"
"너... 너무해요오... 흐끅!..."
"...울어. 그래, 실컷 울어. 염병, 지금 이게 뭔 상황인지."
그렇게나 아팠던 건지, 내 품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어대는 이사벨을 토닥거리며, 나는 착잡한 얼굴로 그녀를 달래 주었다.
"흐극... 오... 오스틴... 미안해요... 제... 제가... 오스틴에게 심한 말을 해서.... 히끅!... 오스틴의 마음에 상처를 줘 버렸어요... 흑...."
얘네는 잘못한걸 알면서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이사벨의 길고 긴 고해성사가 시작 되고, 나는 조금 화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다.
"제... 제가... 히끅...! 오스틴씨를... 못살게 굴었던 건... 흐윽...! 그냥... 그냥 미안해요..."
"그래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좀 울어라 제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사벨의 울음이 어느정도 진정 되고, 나는 내 옷에 눈물을 닦는 이사벨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 울었어?"
"...네... 미안해요."
눈물은 멎었지만 아직도 가끔씩 훌쩍 거리는 이사벨을 바라보던 나는, 이사벨을 품에서 떼어 내며 복도 바깥을 가리켰다.
"뭐, 할 말 다했으면 이제 가."
"......네?"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이사벨.
나는 그런 그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복도 끝을 가리켰다.
"할 말 다했으면 가라고. 난 파티에 돌아갈 생각 없으니까. 방금 때린건 좀 미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파티에 돌아가거나 할 생각은 없어."
"하... 하지만..."
이사벨이 내 말에 토를 달려는 그때, 우리가 앉은 의자의 맞은편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알렉시스 공녀가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 수도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기쁨에, 헐레벌떡 일어나 이사벨을 뿌리치고 알렉시스 공녀에게 다가갔다.
"알렉시스 공녀님, 오셨군요! 자 자. 어서 게이트를 이용해 봅시다!"
내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알렉시스 공녀에게 손을 내밀자, 알렉시스 공녀는 잠시 나를 흘깃거리며 손가락을 꼬물 거리다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어... 저기... 그게..."
"예! 무슨 일 이십니까? 게이트를 지금 당장 이용할 수 있다구요? 아니 세상에 그런!!"
"그... 그게 아니라...!!"
"...오스틴. 이 분은 누구신가요..? 알렉시스 공녀라면..."
갑자기 차가운 얼굴을 하며 대화에 끼어 들려 하는 이사벨을 무시로 일관한 나는,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은 채 알렉시스 공녀의 입술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저기... 그... 사실은...!!"
"네! 제 똥줄 태우지 마시고, 얼른 말 해주세요!"
알렉시스 공녀는 깊은 한숨을 한차례 내뱉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전선에 있는 마법사들의 포션이 부족해진 터라, 마나 포션을 제조하기 위해서... 게이트의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셨... 습니다..."
"........."
알렉시스 공녀의 입에서, 가장 듣고싶지 않았던 최악의 대답이 나왔다.
"꼬르륵....."
나는 눈을 까 뒤집으며, 그 자리에서 뒤로 철푸덕 쓰러지고 말았다.
* * * * *
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내려지는 건지, 나는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복도에 주저앉아 꺼이 꺼이 울어댔다.
그나마 알렉시스 공녀가 황급히 나를 일으키며 위로를 해 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나 혼자 그 소식을 들었다면 머리카락이 전부 쥐어 뜯겼을 것이다.
결국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방 안에 앉은 채로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하... 아니, 그럼 이제 어떡하죠?"
이사벨이 돌아가고, 내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알렉시스 공녀를 향해 묻자, 알렉시스 공녀 역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어요. 무엇보다 지금은 전시 상황 인걸요... 최전선 도시에 있는 마탑의 마나 코어를 징발 대상으로 잡은 이상, 허가서도 없는 저희가 당장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여전히 절망적인 현실에, 나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으며 도리질을 쳤다.
이건 꿈이야... 시발 이게 현실일 리 없어...!!!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렉시스 공녀는 내 행동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이렇게 될 것을 모르지는 않았어요... 따로 알아본 것이지만, 마차를 통해 육로로 가신다면 4주 정도면 수도에 도착할 수 있어요."
"4... 4주요..."
"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저희 아버님께서 게이트 이용 허가서를 편지로 보내어 주신다면, 아마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을 거에요."
...이... 이거다..!!
"그럼, 허가서를 받는데 드는 시간은..."
"아마... 2주 정도 걸릴 거에요..."
"염병, 씨벌."
2주나 용사년을 비롯한 똘마니들이 머물고 있는 도시에 함께 있어야 한다니.
나는 연신 욕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으며 머릿속으로 끊임 없이 고뇌하기 시작했다.
"...기다리죠, 까짓거. 어차피 육로로 가는 것보다 빠르고, 안전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알렉시스 공녀는,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2주만 참고 기다리자.
* * * * *
단 한가지의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 이사벨의 발걸음은,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기껏 오스틴을 만났건만.
".....하아........"
이사벨은 고개를 들어 벌써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걸까.
오스틴이 머물고 있다는 여관의 위치를 알아낸 것과, 게이트의 이용이 중지되어 오스틴이 당장 수도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 이었다.
'그때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꺼낸 건... 역시 조금 그랬나...'
오스틴에게 툭 내뱉듯이 꺼내었던, 협박성이 다분한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는데, 안되겠군요. 오스틴, 자꾸 이러시면 저도 용사님을 모셔올 수 밖에 없어요. 강제로 끌려 가는 것 보다는,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사벨은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멍청함에 한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쓸어 내렸다.
아무리 마왕군이 코 앞까지 들이닥친 상황 이라고 해도, 노예처럼 부려먹힌 탓에 파티를 나갔던 오스틴을 짐짝처럼 취급 하고 협박을 해서는 안되었다.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다는 소식에, 표정이 일그러지다 못해 찌그러지는 수준 까지 갔던 오스틴의 얼굴이 떠올라, 이사벨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나 우리와 함께하기가 싫다는 걸까. 당장 우리에게서 멀리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떼를 쓸 정도로?
평소 오스틴의 차분하고 진중한 성격만을 봐 왔던 이사벨로서는, 그런 오스틴이 복도에 드러누워 빽빽 울어대며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소위 '땡깡' 을 부리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다.
"하아.... 아얏!"
어느새 여관 앞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멍을 때리며 걷던 이사벨은, 닫힌 문에 콩 하고 부딪힌 이마를 연신 문질렀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건지..."
오스틴이 알렉시스 공녀와 함께 있던 것을 본 뒤로, 어째서인지 정신이 멍 해지며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어딘가 찜찜한 기분과 함께 얼얼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고운 미간을 조금 찡그린 이사벨은, 이윽고 문을 열어 젖히며 여관의 계단을 올라갔다.
어느덧 방 문앞에 도착한 이사벨은, 잠시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하며 문 안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용하네요."
평소 같으면 식사를 끝낸 후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방 안에서는, 왜인지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고 있지 않았다.
잠시 숙소의 방 문앞에 선 이사벨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잠시, 별안간 어디선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 이가 나타났다.
"아, 이사벨! 여기 있었구나!"
항상 들어오던 용사, 이유정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이사벨은, 순간 멍 한 표정을 지은채 용사와 그녀의 곁에 서 있는 파티원들을 쳐다 보았다.
용사의 옆에,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에.
이제 막 15살 정도가 되었을 법한,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 아이가, 가죽 경갑과 숏 보우를 어깨에 걸친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사벨을 바라 보고 있었다.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은 마야의 얼굴이 눈에 걸리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요... 용사님. 옆에 계신 분은...?"
설마... 설마 저런... 아직 어린애 인데... 아니겠지...?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사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인사해! 우리 파티의 새로운 척후, 맥스야!"
"안녕하세요! 척... 척후...? 를 담당하게 된 맥스 라고 합니다!"
이사벨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이... 이사벨님?!"
그런 이사벨을 향해 달려온 맥스의 굳은살 하나 안 박힌, 평생동안 활시위 한 번 당겨본 적 없는 듯한 부드러운 손을 보며, 이사벨은 실성한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아하하...!!!!"
'좆됐어요, 시발....!!!'
이사벨의 소리 없는 비명이, 여관을 가득 채우며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