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9화 (9/106)

〈 9화 〉 9. 옛 추억과 인연

* * *

나의 아버지는 사냥꾼 이셨다.

어디에나 있을, 평범하고 흔한 시골 마을의 고기를 책임지는, 나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

아주 가끔, 내가 사냥에 따라 나서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아버지를 따라 신나게 숲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멋지게 활을 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저도 한번 쏴 볼래요!'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흔쾌히 활을 넘겨 주시곤 했다.

아직 어리기에, 근육도 제대로 붙지 않은 팔로 낑낑거리며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팔이 후들후들 떨리는 채로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따뜻한 미소를 보이시며 맛있는 저녁밥을 차려 주셨었지.

언제나 저녁밥을 먹고 잘 때가 되면, 아버지는 사냥꾼 생활 이전의 모험가 시절을 추억하시며, 당기기도 힘든 아버지의 활을 당기느라 생긴 근육통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내게 탐험과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시곤 했다.

동료들을 구하고, 함께 모험을 떠난다.

던전을 탐색하고, 함정을 피하며, 때로는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언제나 그 끝은 옛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그날의 업적을 자축하는, 그런 삶.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모험가에 대한 꿈을 키워 왔고, 15살이 되던 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모험가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굉장히 걱정 하셨지만,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고민하시더니, 이내 담담하게 모험가가 되는 것을 허락 해 주셨다.

아버지가 모험가 시절 쓰셨던 가죽 경갑과, 내가 쓰기 편하도록 맞춤으로 제작된 숏 보우를 걸치고, 나는 근방의 대도시인 퀼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끓어오르는 탐험 욕구와 주체할 수 없는 모험심에,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며 모험가 길드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모험담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아무도 나와 파티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실로 당연했다. 아무런 실적도 없는, 아직 어린 꼬마와 누가 파티를 맺고 싶었을까.

다른 사냥꾼 아저씨들이나 척후를 맡은 형들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했지만, 때마침 이 도시의 영주라는 사람이 그들을 모두 데리고 가는 통에, 나는 언제나 파리만 날리는 길드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저기, 잠깐 시간되니?"

여느 때처럼 길드 안에서 멍 하니 의뢰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나에게 말을 거는 인기척에,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찰랑거리는 포니테일을 질끈 동여매고,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검을 허리에 찬 예쁜 누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네...?!"

"갑자기 물어봐서 미안한데, 혹시 포지션이 어떻게 돼?"

"어... 일.. 일단은... 사냥꾼, 인데요...."

내 대답을 들은 누나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길드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한참 쳐다보더니 이윽고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솔직히 너무 어려 보이긴 한데... 너, 소속된 파티는 있어?"

"아... 아뇨! 딱히 소속된 파티는 없어요..."

"흠... 사냥꾼이라면, 척후 기술은 어느 정도 있겠네?"

그녀의 질문을 들은 순간, 내 직감이 이건 기회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건 기회다. 지금 붙잡지 않으면, 나는 영영 성장하지 못한다.

"네.. 네! 저희 아버지가 사냥꾼 이셔서.. 척... 후는 잘 알고 있어요!"

나는 결국,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

내 대답을 들은 예쁜 누나는 한참 동안 내 얼굴과 어깨에 걸친 활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용사 이유정 이라고 해. 혹시 우리 파티에 들어오지 않을래?"

"....어... 네..?"

"방금 네 라고 한 거지? 무르기 없기다?"

"아... 네! 잘 부탁 드립니다!"

내가 얼떨결에 대답하자, 자신을 용사라고 소개한 누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를 숙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 같다.

이게 아닌데...?

* * * * *

"아, 심심타. 씨이벌...."

용사와 그 똘마니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2주 동안 강제로 방 안에 틀어박혀 통조림이 되는 것을 택한 나는, 하루 만에 극도의 무료함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마 용사 파티는 조만간 멜데른 숲에 있는 마왕군의 제 7 군단장인 꼭두각시 아가일을 상대하기 위해 다시 숲으로 돌아가겠지만, 용사 파티를 그만둔 나는 딱히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백수 한량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결국 통조림이 되기로 결심한지 하루 만에, 나는 주섬주섬 장비를 걸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루를 못 가냐. 참을성 없긴."

내 참을성 없는 급한 성미에 스스로 자조하며, 장비를 모두 걸친 나는 곧장 알렉시스 공녀의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 똑똑

주먹을 말아쥐고 문을 두드리자, 이윽고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름 값이 나가는 여관이라 그런 것인지, 기름칠이 잘 된 경첩이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고 스르륵 열렸다.

"오스틴 경... 아니, 오스틴..? 무슨 일 이신가요?"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요. 잠시 외출을 할 생각인데, 혹시 함께 가시겠다면..."

내 말을 들은 알렉시스 공녀는 잠시 내 눈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5분 정도가 지나고, 나처럼 장비를 걸친 알렉시스 공녀가 검을 허리에 찬 채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럼, 갈까요."

"네! 그런데, 따로 들러야 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알렉시스 공녀의 질문에,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탑을 다시 방문하는 것은, 걸음과 시간만 낭비하는 선택지 일 것이다.

그렇다고 용병 길드에 가자니, 용병쪽으로는 별로 인맥이 없는 나에게는 조금 껄끄럽고, 현상금 사냥꾼 길드는 알렉시스 공녀가 갈 만한 곳이 아니다.

...어디로 가지?

내 행동 반경이 이렇게나 좁았던가?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모험가 길드에 가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험가 길드에는 뭔가 시간을 때울만 한 게 있겠지.

내 제안에 알렉시스 공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모험가 길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 *

10분 정도 걸었을까, 나와 알렉시스 공녀는 모험가 길드의 문 앞에 서 있었다.

모험가 길드 쪽도 별다른 인맥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용병 길드나 현상금 사냥꾼 길드 보다는 덜 껄끄러운 곳이니까.

­ 끼이익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문을 밀자, 우리가 머물던 고급진 여관과는 다르게 기름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낡은 경첩이 세월의 흔적이 담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

예상은 했지만, 모험가 길드 역시 퀼른의 영주가 모험가들을 죄다 긁어 가는 바람에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접수대에서 턱을 괸 채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접수원을 보며, 우리는 의뢰가 붙은 게시판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퀼른의 영주가 대부분의 모험가들을 싸그리 긁어간 판국에, 처리하지도 못하고 썩히고 있는 의뢰도 해결하고, 시간도 때우고, 돈도 벌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 아니겠는가?

게시판 앞에 도착한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괜찮은 일거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 메르덴 숲에서 붉은 점박이 버섯을 채취해 주실 분을 구합니다! 개당 150실버에 매입해 드리겠습니다! (저울질 사절)

­ 저희 마을 우물에 너커가 나타났어요! 토벌해 주시는 분께 1300 실버를 드리겠습니다! (수중 호흡 포션 필참, 금화로 환전 사절)

­ 메르덴 숲 경계에서 길을 점거 중인 리빙 아머 두 기를 토벌해 주실 분을 구합니다. 방패를 든 전위가 둘 이상 필요할 것으로 사료....

"쓰읍."

이걸 어쩐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퀘스트가 난이도가 제법 있는 퀘스트들 뿐이다.

붉은 점박이 버섯은 만지기만 해도 구토를 유발하는 독버섯 이다. 게다가 크기도 사람만 할 정도로 클 뿐 더러, 시시각각 내뿜어대는 포자를 들이마시면 온몸이 마비되어 꼼짝없이 마물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독 저항 포션과 투척용 마비 포션을 만드는데 쓰이기 때문에 수요가 적지 않다. 때문에 매년 붉은 점박이 버섯을 채취하려다 젊은 나이에 요절해 버리는 초보 모험가들이 적지 않다.

너커는... 아니 씨발, 애초에 너커같은 용족 토벌 의뢰를 고작 1300 실버에 올리는 머저리는 또 누구야?

중갑을 입은 상대는 내게 너무 힘든 상대이기 때문에, 리빙 아머 의뢰 역시 거르고... 뭐, 보상도 안 적어 놨네? 이거 완전 도적놈 심보잖아.

"....님..."

흠... 이를 어쩐다. 다른 의뢰들을 둘러 보아도, 별 달리 괜찮아 보이는 의뢰가 없다.

"...배님...!"

알렉시스 공녀 역시 아카데미에서 기사로서 훈련을 받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리빙 아머는 조금 그런데... 차라리 너커를 토벌하는 게...?

"선배님!!!"

"아이, 씨. 깜짝이야. 놀래라."

갑자기 내 귀를 강타하는 높고 째진 고함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소리가 난 쪽을 홱 돌아보았다.

"역시, 오스틴 선배님 맞으시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초롱 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주황빛의 중단발을 단정하게 묶은 한 미친년이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아는 체를 해 왔다.

"어... 아시는 분 인가요..?"

".....잠시만요."

알렉시스 공녀의 당황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기에, 나 역시 내 앞에 나타난 미친년의 신상을 밝히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주황색의 중단발 머리에, 오뚝 솟은 콧날.

뺨에 희미하게 새겨진 작은 흉터는 그녀의 볼의 움직임을 따라 꿈틀거리고, 페리도트처럼 영롱한 초록색을 띄우는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세터(Setter)... 아니, 로빈이냐?"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 얼굴은 아직 기억하고 계시네요?"

"...기억하다마다. 너 같은 꼴통새끼는 처음 봤었으니까."

"그... 그런.. 너무해요...."

내 눈앞에서 축 늘어진 채로 서 있는 여자는, 내가 레인저에 복무하던 시절 내 맞후임 이었던 로빈 이었다.

로빈은 짐짓 시무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금 표정을 활짝 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선배님! 갑작스럽지만... 혹시 저와 파티 하지 않으실래요?"

"....뭐?"

이게 뭔 소리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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