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 *
"...파티를 맺자고?"
"네!"
오랜만에 만난 로빈은, 갑자기 내게 파티를 맺자고 제안을 해 왔다.
나는 로빈의 제안을 속으로 곱씹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맡은 의뢰라도 있어? 갑자기 이렇게 파티를 맺자고 해도..."
로빈이 맡은 의뢰가 어떤 의뢰인지 모르기에 확답을 내릴 수 없었던 내가 말끝을 흐리자, 로빈은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아하하... 이게 어쩌다 보니 또... 레인저 출신 이라는 사실을 들켰더니, 영주님께 따로 지명 의뢰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저 혼자 하기에는 조금 벅차서... 아, 참. 선배."
"왜 불러."
이야기를 경청하던 내가 대답하자, 로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 용사 파티를 나오셨다면서요? 기껏 그렇게 힘들게 들어가셔놓고 왜 또 파티를 나오셨는지... 무슨 일 있었나요?"
"...그걸 꼭 알아야 하냐?"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민감한 주제를 들춰내려고 하는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하하... 너무 예민한 주제 였나요? 사실 저도 별로 관심은 없었는데, 어제 용사가 길드에 찾아와서 새로운 척후를 뽑아서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파다해서요..."
"...뭐? 새로운 척후?"
이건 또 뭔 소리지. 애초에 지금 제대로 된 척후가 남아 있기나 한가?
"네! 저는 어제 잠시 볼일이 있어서 길드에 없었는데, 접수원 언니한테 들은 얘기로는, 용사가 직접 와서 사냥꾼 한 명을 데리고 갔다는데요?"
...벌써 내 대체재를 찾았구나.
서운한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밉고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난 사이라고 해도, 함께 지낸 3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짧지 않으니까.
3년 동안 함께했던 내 자리는, 며칠만에 갈아낄 수 있을 만큼 그녀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자리였나 보다.
"...씨발 좆같은 년들."
"네? 방금 무슨 말 하셨어요?"
"...아니, 아니야."
용사나 아드리엔은 조금 상식이 딸리지만, 그래도 마야와 이사벨은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친구들이니, 어련히 알아서 뽑았겠지.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용사와 똘마니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 내었다.
"파티를 나온 이유는 나중에 따로 말 해줄 테니까, 지금은 일 얘기부터 하자."
"아... 네! 죄송해요...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헤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헤실헤실 풀어진 표정으로 내게 사과하던 로빈은, 이내 표정을 싹 굳히며 본론으로 이야기를 끌어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뢰 말인데요... 사실 굳이 받으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영주님이 하도 사정 사정을 하셔서 말이죠..."
"아니, 됐고. 그래서 의뢰 내용이 뭔데?"
"그게... 혹시 메르덴 숲에 있는 마왕군의 대가리... 아니, 숲에 있는 마왕군을 이끄는 놈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메르덴 숲에 진을 친 마왕군이 마왕군 제 7군단 이고, 그 7군단의 군단장 이라는 놈이 꼭두각시 아가일 이야."
뭐, 용사 파티에 있었을 때에는 나오기 직전의 목표가 꼭두각시 아가일의 처리 였으니까,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로빈은 진지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헤헤... 역시 전 용사 파티원! 잘 아시네요! 그 아가일의 수하에는 두 명의 측근이 있습니다! 아가일의 왼팔이자, 제 7군단의 궁수들을 지휘하는 활의 인형 바커스. 그리고... 롬팔리아 습격대를 지휘하는 아가일의 오른팔, 창의 인형 데팔. 이 둘이 있어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 하는 로빈의 태도에, 나 역시 진지한 태도로 로빈과의 대화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활의 인형과 창의 인형이라니... 그 둘과는 용사 파티에 몸을 담던 시절에도 몇 번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기에, 나 역시 아는 이름들 이었다.
꼭두각시 아가일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는, 이 시대 최고의 역작이라 불리우는 인조 인간... 이라고 들 하지만, 사실상 골렘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그 둘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고 있는 사이, 로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중 창의 인형 데팔이 이끄는 롬팔리아 습격대가 숲 근처를 지나는 연합군의 보급 부대를 계속해서 털어먹는 바람에, 영주님께서 제게 데팔의 처리를 맡기셨어요... 아니, 애초에 데팔을 처리 하라면서 아무 인원도 붙여 주지 않는 게 말이 되나요?!"
볼을 부풀리며 영주의 무리한 부탁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 놓는 로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알렉시스 공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알렉시스 공녀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알렉시스 공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곳 퀼른의 영주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의뢰를 해결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면, 어쩌면 게이트를 더 빨리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내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현재 숲을 지나는 보급 부대들이 계속해서 털려 먹히는 와중에, 초조해진 영주가 직접 내건 의뢰를 먼저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게이트 한 번쯤은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알렉시스 공녀의 동의를 구하고, 나는 로빈쪽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래. 오랜만에 합 한번 맞춰 보자, 로빈."
"정말이죠? 물리기 없기에요?"
내가 파티 제안을 수락하자, 로빈은 그 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어대며 기뻐했다.
...저렇게 기뻐할 일인가.
잠시 흥분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리던 로빈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얼굴을 조금 굳히며 입을 열었다.
"저... 선배님. 그런데, 이 조합으로 가도 되는 걸까요...?"
...확실히. 우리 파티의 조합은 좋은 조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군요... 마법사나 사제라도 한 분 계시면 좋을 텐데요..."
알렉시스 공녀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얕은 신음을 흘리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제나 마법사 중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있던가?
마법사쪽은 사실상 마야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일단 마법사는 논외로 쳐야 한다.
사제... 사제라... 내가 아는 사제중에, 퀼른에 머물고 있을 만한 사람이...
"...이 씨발."
있다. 딱 한 명.
내가 아는 사제중에서 가장 사제같지 않은, 전투와 피에 목마른 정신나간 사제가 지금, 퀼른에 와 있었다.
"씨발, 하필이면."
나는 또 한 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별수 있겠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떼워야지.
* * * * *
이른 아침부터 퀼른을 떠나 숲으로 돌아가는 용사파티는, 다시금 들어온 척후의 존재로 인해 한결 편안한 여정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빛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단 두 명, 이사벨과 마야를 제외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탄식을 내뱉는 이사벨의 옆에서 나란히 걷던 마야는, 정면에서 앞장서서 걷고 있는, 자신과 키가 비슷한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척후는커녕. 활 한번 안 쏴본. 어린아이를...'
마왕을 토벌하기 위한 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말인 즉 슨, 아직 새파랗게 어린 꼬마가 함께 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 이라는 뜻 이기도 하다.
마왕을 토벌하기 위한 여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군단장 아가일과의 전투가 코 앞인 지금 시점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것일까.
어제 용사에게 맥스에 대해 따져 봤지만, 용사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떼워야 하지 않겠냐며 멋대로 단정 지었다.
'하지만, 오스틴이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기다려? 지금 이 순간에도 아가일의 군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나도 임시로라도 척후를 찾으려고 어지간히 노력했는데, 영주가 싹싹 긁어간걸 어떡해? 맥스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마야는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이사벨을 힐끗 바라본 뒤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만약 오스틴이 있었다면... 이미 아가일을 처리하지 않았을까?
그 후 평소처럼, 아가일을 토벌한 기념으로 소소하게 술을 한잔씩 돌리고, 자축을 하고... 오스틴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술에 취해서... 홧김에...
"핫...!"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마야는 고개를 붕붕 휘저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음흉한 상상을 몰아내었다.
그렇게 숲 속을 한참 동안 걷던 일행은, 이윽고 맨 앞에서 그레이시와 나란히 걷던 맥스를 따라 걸음을 멈추었다.
"웁..... 우웁.....!!"
그것은, 처참하게 부숴진 마차 한대와 주변에 주변에 흩뿌려진 피, 그리고 난폭하게 긁어진 전투의 흔적 이었다.
구역질을 하는 맥스를 뒤로하고, 그레이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전투의 흔적이 잔뜩 새겨진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무언가 베어 낸 상흔이군. 깊이와 길이, 그리고 상흔이 저 멀리에서부터 원을 그린 것을 보아하니, 검은 아니고... 창 이로군."
창을 든 어떠한 존재가, 연합군의 보급 부대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었다.
주변에 흩뿌려진 피의 양은, 그 존재가 썰어 낸 희생양들이 얼마나 처참히 죽어 나갔는지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주변을 살피던 용사가 다가와 그레이시와 함께 흔적을 살펴 보았다.
"...시체가 없어. 피는 잔뜩 있고... 이거, 마물이 벌인 짓 같은데."
"그런 것 같군. 아마 시체는... 이미 놈들의 입속으로 들어 갔겠지."
잠시 주변을 살피던 용사와 그레이시는, 이윽고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제 맥스가 나설 차례야!"
"네.... 네...? 제가요...?"
"응! 이 흔적과 핏자국을 따라서, 네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해 줘!"
용사의 말에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맥스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뻣뻣한 몸짓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쭈뼛거리며 흔적을 따라 어렵사리 숲을 헤쳐나가는 맥스의 뒤로, 일행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와라."
창을 짊어진 누군가가, 일행들을 지켜보는 것도 모른 채.
"대륙의 희망, 오늘로 싹을 잘라 내겠다."
서슬 퍼런 창날이,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