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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11화 (11/106)

〈 11화 〉 11. 그분께서 바라신다

* * *

"...버려진 자손들로부터 뻗쳐 나오는 사악한 손길을 사하여 주옵시고, 빛의 정의를 통해 당신의 종을 바른길로 인도해주소서. 정의로운 빛으로 벼려진 심판의 검이 저희를 구원 하시옵고, 그들을 파멸로 인도하나니..."

퀼른에 위치한 교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어느 독방.

따스한 햇빛을 따라 흘러 들어오는, 가늘고 여린 빛줄기만을 허락하는 작은 창 아래에서, 엄숙한 목소리가 작은 독방안에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의와 빛의 이름으로, 타락한 존재들을 이 미천한 종의 손으로 단죄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값진 일이 없어라..."

거구의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 끼기기긱....

녹슬고 낡은 독방의 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햇빛의 작은 편린만을 허락하던 독방 안에 화악, 하고 밝은 빛이 들어찼다.

"오랜만이다. 퀼른으로 파견 나왔다 하더니, 파견이 아니라 좌천이었구만."

오래전 함께 싸웠던 친우이자 전우의 목소리에,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거구의 몸이 먼지를 떨구어 내리며 비틀어졌다.

"...오스틴 형제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래 나도 반갑... 아니, 넌 왜 만날 때마다 독방에... 너 씨발 또 방 안에 두개골 걸어 놨냐?"

"...형제님. 그것은 합당한 처사 였습니다. 정의의 빛에 반하는 존재들에게 걸맞는 최후가 아닙니까?"

"그렇게 합당한 처사면, 대체 왜 파견되는 교회마다 독방 신세냐? 씨벌... 네가 어떻게 사제가 됐는지 참."

참으로 간만에 들이차는 빛에도, 커다란 근육질의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의 새빨간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스틴을 향하고 있었다.

"그보다, 형제님. 이렇게 갑작스럽게 저를 찾아오신 것은..."

가슴이 뛴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벌써부터 달콤한 피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뇌가 저릿거리는 기분이다.

이 남자가 나를 찾아올 이유는, 단 한가지 밖에 없기에.

"...그래.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로이먼."

왜인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오스틴은, 입을 엶과 동시에 옆으로 살짝 걸음을 옮겨 길을 터 주었다.

"나와. 이미 교구장님께 허락 받았다."

길고 길었다. 한 달간의 독방 생활은, 마치 내 몸에 딱 맞는 관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피가 필요하다.

악한 존재들의 살과 피가, 아주 많이.

손이 말라선 안 된다. 언제나 사악한 존재들의 피에 젖어 있어야 한다.

움직임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제나 사악한 존재들을 으깨고 있어야 한다.

더. 더. 그들의 피가 더 필요해. 아직 한참 모자라.

내 심장이 멈추는 그날까지, 정의를 위한 나만의 성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오면, 우리들을 인도해주시는 정의로운 빛이 그 더럽혀진 살과 피를 취해 주시리라.

나는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 바깥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 끼기긱...

독방의 문이 다시 한 번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닫히고, 두 남자의 발걸음이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지며 점점 멀어져 갔다.

* * * * *

"...이 또라이 새끼."

오랜만에 만난 로이먼은, 여느 때처럼 독방에서 근신 처분을 받고 있었다.

메텔하임에 위치한 성당에서 다른 교회로 파견되고, 다시 메텔하임의 성당으로 올라 갔다가 내쫓기듯 파견된 교회에서도 근신을 면치 못하는 신세라니.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 피에 굶주린 미친 사제놈은, 자신의 방을 마물들의 박제된 시체나 뼈로 도배를 해 놓는 정신 나간 놈 이니까.

­ 끼이익...

"....와 씨발. 이젠 존경스럽다 야."

로이먼이 장비를 챙기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에도, 나는 충격을 머금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언제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마물들의 뼈와 박제된 머리로 도배된 로이먼의 방.

워 울프 두개골에, 고블린의 귀를 방부처리해서 걸어 놓은 꼴 하며... 잠깐만. 저거 바커스 아니야?

"아니, 야 잠깐만. 저거 바커스 아니냐? 활의 인형 바커스?"

"예, 맞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역시 안목이 있으시군요. 비록 제 힘만으로는 버거웠기에, 부끄럽지만 서른 명의 형제님들과 함께 야습을 감행하긴 했으나... 값진 시간 이었지요."

어째 몇 달 전부터 활의 인형 바커스에 대한 소식이 뚝 끊겼다 싶더라니, 이 미친 새끼가 사지를 잘라놓은 채로 박제를 해 놨었다..!!

"와... 너는... 진짜... 미친련, 말이 안 나오네."

"저도 최근 손에 넣은 전리품 중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자부합니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됐다. 빨리 장비 챙겨서 나와."

더이상 로이먼의 방에 있기에는 내 속이 울렁거렸기에, 나는 급하게 로이먼의 방을 빠져나왔다.

문 옆에서 기다리기를 5분 정도 지났을까.

­ 끼이익..

"형제님. 준비 되었습니다."

엄청난 덩치의 거구에 걸맞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파란색과 차르륵 거리는 사슬 소리가 포인트인 전투 사제복을 걸친 로이먼이 안면 보호 가면의 틈으로 쉭쉭 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왔다.

오른손에는 흉흉한 스파이크가 삐죽 삐죽 솟아난 오리하르콘제 플레일 철퇴를 들고, 왼손에는 가시와 칼날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강철 채찍을 든 로이먼의 모습은 실로 기괴했다.

"가시죠, 오스틴 형제님."

"...너 무기 좀 바꾸면 안 되냐? 아니, 그냥 팔라딘을 하면 되잖아."

"팔라딘은, 기도를 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제 개인 방도 배정받지 못하고요."

"너... 아니, 됐다. 따라와. 가면서 설명 해줄게."

우리는 교회의 복도를 뚜벅 뚜벅 걸어가며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일단, 아가일이 메르덴 숲에서 진을 치고 있는 건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아가일이 철의 고원에 있는 마왕군 본대에 합류한 게 아니라, 메르덴 숲에 제 2의 전선을 펼치는 바람에 철의 고원 전선에 있던 연합군이 이쪽으로 조금 모여든 상태야."

나는 잠시 숨을 돌리곤,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로이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퀼른에서 보급품을 징발해서 보급 부대를 보내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계속 숲쪽만 들어서면 보급 부대가 탈탈 털린단 말이지."

"아가일, 그놈의 짓입니까?"

"아니, 일단 들어 봐. 그래서 영주가 이게 대체 무슨 좆같은 일인가 싶어서 확인을 해 보니, 얼씨구. 창의 인형이라는 씨봉박년이 보급 부대를 죄다 찢어먹고 있었네?"

"...데팔."

"그래. 그놈이 우리가 보급 부대를 보내는 족족 다 잘라먹고 있었다고. 롬팔리아 습격대라는 부대까지 따로 만들어서 말이야."

잠시 말을 끊고 로이먼을 힐끔 쳐다보니, 벌써부터 데팔을 패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지, 철 가면의 틈 사이로 숨을 쉭 쉭 들이쉬며 몸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미친 새끼.

"아무튼, 우리의 목표는 데팔의 토벌이다. 부가 목표로 롬팔리아 습격대의 괴멸이 있긴 한데... 뭐, 말 그대로 부가 목표니까. 데팔 토벌이 최우선이야."

"....."

아무래도 내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나 보다.

나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알렉시스 공녀와 로빈이 있을 교회 밖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제발 보고 도망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 * * * *

"어... 그러니까.. 옆에 계신 분이..."

"전투 사제단 소속, 상급 전투 사제 로이먼 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배님. 이 분은 대체..."

앞으로 있을 피가 튀는 전투에 흥분한 듯, 헉헉 거리는 로이먼 사제를 보며 기겁을 하는 알렉시스 공녀와 로빈의 반응 덕분에,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앞장서서 걸어나갔다.

"....좀 미친 새끼 같아 보여도, 마물들을 상대할 때 전투력 만큼은 나보다 배는 강하니까, 믿어도 좋아."

"....어... 네... 선배님이 그러시다면, 뭐..."

"...오스틴..."

메텔하임 대성당은 왜 하필이면 저놈을 퀼른으로 보내서. 차라리 다른 사제를 파견 시켜 주지.

"...뭐, 농담이 아니라 대마물전은 진짜로 잘 싸우니까. 나름 사제라고 힐과 무기 축복도 쓸 줄 알고."

그렇게 로이먼에 대한 평가를 억지로 높여 주며, 장비의 점검을 끝낸 우리는 퀼른을 나와 숲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스읍... 하아... 저번보다 사악한 공기가 짙어졌군요. 어찌 이런 일이..."

"그런가요? 저는 잘..."

"로빈 자매님은 아직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억지로 권 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축복으로 빛나는 플레일이 오우거의 골통을 깨 부수는 순간은 참으로..."

"...제발 입 좀 다물어 주라, 로이먼."

그렇게 숲 속을 한참 동안 걸었을 무렵, 어디선가 그르릉 거리며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주변에서 적이 넷 감지됩니다. 제 기준 우측에 있는 풀숲에 둘, 좌측 쓰러진 나무에 둘 있습니다."

로빈이 자신의 특기인 탐지 마법을 통해 적의 위치와 수를 말해주고, 나는 쇠뇌와 칼에 슬며시 손을 가져가며 로이먼 사제의 팔을 툭 쳤다.

"로이먼, 들었지? 실력좀 보여 줘."

"...디어..."

"...뭐?"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이 새끼 왜 이래.

"크아아악!!! 죄다 찢어 죽여 주마, 이 버러지 같은 놈들!!!!"

갑작스럽게 고함과 함께 뛰쳐나간 로이먼의 양옆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라이칸슬로프 네 마리가 뛰쳐나와 로이먼 사제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릉..!! 캬아악!!! 인간이다!! 죽여라!!"

"크르... 인간!! 죽... 낑 깨갱!!"

로이먼과 라이칸슬로프들의 혈투가 펼쳐졌다.

물론, 지금 사방으로 비산하며 튀기는 피들은 모두 라이칸슬로프들 에게서 나온 피 였다.

별안간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철 채찍이 휘둘러지고, 날카로운 가시와 칼날을 달고 있던 강철 채찍과 함께 라이칸슬로프의 살갗이 쫘자작 찢어지기 시작했다.

"깨갱! 깽! 끼개갱!!!"

"아우우우... 욹?! 자.. 잠시만!! 항복!! 항복을... 끼잉! 낑!"

잠시 말이 없어져 알렉시스 공녀와 로빈과 함께 멍 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이내 전투가 끝이 났다.

온몸이 채찍에 찢어지고, 플레일로 인해 형편없이 찌그러진 라이칸슬로프들의 시체 사이로, 한 마리의 라이칸슬로프가 로이먼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끼잉... 낑.. 사.. 살려... 깨갱..!!"

살아남은 라이칸슬로프가 목숨을 구걸하며 구슬프게 울부짖자, 로이먼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분께서 네놈의 죽음과 척추를 바라신다. 사악한 존재여."

"처.. 척추라니.. 그게 무슨.. 깨갱! 깽!"

라이칸슬로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이먼의 손이 찢어진 털가죽을 뚫고 들어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살을 헤집는 끔찍한 소리와 라이칸슬로프의 비명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마침내 로이먼은 척추와 머리를 드드득, 뽑아내며 자랑스럽게 이쪽을 돌아보았다.

"...진짜 미친 씨벌..."

아무래도, 그냥 셋이 올 걸 그랬나 보다.

­ *##?@##!!!!

­ ##@#?!!!!!!

그렇게 한동안 로이먼과 거리를 두고 있을 찰나, 어디선가 구슬프게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높게 째지는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로빈. 들었어?"

"네... 저도 희미하게 들려요. 여자 목소리 같은데... 보급 부대 일지도..."

아무래도 보급 부대가 습격당하는 것 같은 소리에, 우리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이먼. 제발 그 흉물 좀 버려 주면 안 되냐?"

"그분의 전리품을 버릴수는 없습니다."

그리 말하는 로이먼의 눈은, 오랜만에 맛 보는 피에 흥분한 듯 붉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데팔과의 전투는 걱정 없을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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